커먼센터
2014년 11월 21일 ~ 2014년 12월 31일
청춘과 잉여 The Young and The Restless
이를 통해 동시대 지배적인 미술에 비추어, 스스로의 위치를 생각해 볼만한 상황이 만들어 졌다. 따라서 이 전시는 1990년대의 어떤 틈 사이로부터 동시대 미술의 모습을 유추해내려고 했다. 한편, 지금은 불안정함의 시대다. 지배적인 비평이나 양식이 사라진지 오래며, 전지구적 규모의 정치 경제 사회적 불안이 음슴하게 지속되고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의 문화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건 매우 어려워졌거나, 그 동기를 잃어버린 듯하다. 오늘날의 미술은 그 어떠한 기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청춘, 즉 잉여가 마주한 곤란이다.
<청춘과 잉여>라는 전시 제목은 두 세대의 작가군을 상징적으로 지칭한다. ‘청춘’과 ‘잉여’는 크게 두 세대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됐다. 청춘은 ‘낭만적 시대’의 상징이다. 1980년대 3저 호황을 토대로 문화의 시대를 연 1990년대 청년들의, 어떤 낙관주의를 표현하고자 했다. 잉여는 (폴 그루그먼의 유명한 책 제목처럼) ‘기대감소의 시대’를 뜻한다. 2010년대 중반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가까이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어디쯤에서부터 시작된 불안정성을 표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청춘 안에는 항상 잉여가 존재하기 마련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 둘은 사실 하나의 양태를 다르게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전시에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동시대적 시각성을 성취해낸 한국의 기성작가 다섯, ‘지금 여기’를 고민하고 있는 젊은 작가 다섯이 참여한다. 큰 틀에서 나이대가 각기 다른 10명의 작가들이 쌍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마치 신세대와 구세대가 대립되는 구도로 보이겠지만, 이 전시는 세대를 구분하고자 기획된 것은 아니다. 또 이 다섯 쌍들 각각이 완전히 독립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세대간, 주제간의 연관성은 언제나 폭넓게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는 1990년대 이후 한국 미술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일련의 양상과 함께 차이를 보여주고자 했다.
다섯 팀의 작가들은 오늘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각자의 의제를 가지고, 작품 제작의 모티브나 방법론 등을 공유하는 형태로 신작을 제작했다. 전시는 이들의 신작과 이에 연관된 구작을 함께 놓고, 오늘날의 파편적 지형에서 90년대로 소급해 일종의 계보를 찾아보고자 했다. 과거의 무의미한 반복이 아닌, 그렇다고 점점 비평적 기준을 잃어가고 있는 오늘도 아닌, 미술의 새로운 “지속” 가능성은 어디서부터 찾아질 수 있을까?
90년대부터 냉전, 분단, 무속신앙 등 한국의 근대적 무의식에 관심을 가져 온 민중미술의 적자 박찬경과, 오늘날 보편적 현상으로서의 자본주의 구조를 탐구해 온 이완은 이번 전시에서 ‘아시아’라는 지정학적 주제를 공유한다. 박찬경은 이번 신작 <파경(罷經) 실험 1>(2014)에서 ‘전통(종교)문화’와 아시아 근대성 간의 관계를 드러내는 실험적 고찰을 준비했다. “‘전통(종교)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참조로 삼을 만한 산물은 무엇일까? ‘전통(종교)문화’는 기호로 해석될 수 있을까?” 따위의 질문이 작업을 통해 펼쳐질 것이다. 박찬경이 생략된 과거를 발굴하는 고고학자에 가깝다면, 이완은 아시아의 오늘을 만든 결정적 증거로서, 과거의 파편을 모으는 일종의 탐정–수집가로 분한다. 오늘날 급격한 산업화 과정 속에 놓인 캄보디아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의 면면을 포착하는 신작 <움직임>(2012–2014), 쇠락한 식민지 설탕산업의 오늘을 담은 <메이드 인 대만: 설탕>(2013), 한국 근현대사의 정치적 순간과 연관된 수집품 모음<한국근현대사 취미수집 “정치 권력”편>(1940–현재)은 모두 비동시적인 것들을 동시에 출현케 한다. 몰락한(할) 기억의 몽타주는 오늘의 신자유주의 문화를 다시 한 번 숙고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근대성의 모순을 비판하는 작업을 지속해 온 송상희와, 불가능한 시대를 은유하는 만화를 인터넷 상에 그려온 이자혜는 ‘어떤 세계를 모험하는 어떤 주인공’을 공통의 주제로 삼았다. 송상희는 신작 (2014)에서 15–17세기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점령의 역사와 아프리카 탕가니카 호수에 사는 시클리드 물고기의 교미 장면을 병치하여 번식과 확장의 욕망을 폭로한다. 이자혜는 커먼센터의 건축 구조를 활용한 벽화를 선보인다. ‘앤니 로리’란 이름의 주인공이 마법 세계의 여전사가 되기 위해 겪는 시련들이 시대 별로 펼쳐진다. 주인공은 중세, 근세, 근대, 1970년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매 시대마다 부당한 죽음을 맞이하지만, 각 단계마다 전사가 될 미덕을 갖추게 되어 고통도 슬픔도 없는 마법 동산에 안착하게 된다. 각 벽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죽은 주인공을 위로하는 파티 장면이 쌍을 이루어 그려지며, 문패트롤 동산이란 이름의 마법 동산이 구현된다. 시공을 초월하는 두 작가의 ‘모험담’은 유토피아에 접근하는 세대적 관점을 꽤나 적나라하게 보여줄 것이다.
작품 내에서 ‘이야기’를 소통 방식으로서 활용해 온 안규철과 김영글은 이번 전시에서 1990년대 주변의 이야기를 다룬다. 안규철은 90년대 자신의 대표작이었던 <그 남자의 가방>(1993)의 속편을 선보인다. <그 남자의 가방 II>(2014)는 <그 남자의 가방>의 시점으로부터 20년 후의 이야기다. 이전의 작품이 “다른 세계의 존재, 유보된 다른 가능성의 존재”에 관한 것과는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다릴 게 없음을 선언”하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려는 태도가 암시된다. 안규철이 스스로의 작업을 비평함으로써 1990년대를 은유적으로 읽어낸다면, 김영글은 보다 근접한 시점으로 1990년대의 특정한 정서에 접근한다. 김영글의 신작 <가장(家長)의 근심>(2014)은 1997년 IMF 시기에 몰락한 중산층 남성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가장의 방 안에 있을 법한 사물의 명칭을 비롯하여 당시 가장이 가졌을 심리를 묘사하는 300여개의 단어들이 전시장 사방에 배치된다. 두 작가의 이야기는 1990년대의 정서와 태도를 비평하는 동시에 지금을 새롭게 규정하는 단서를 제공해줄 것이다.
정연두와 백정기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꿈과 소망, 그리고 그 실현이 갖는 의미들을 되짚는다. 신작 (2014)은 두 작가의 지난 작업과 다양한 오브제/기계장치를 유기적인 하나로 재조합한 작업이다. 정연두의 대표작 <내 사랑 지니>(2001)에는 이미지로서의 결과물에 선행하는 무수히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던 등장인물의 사연은 백정기의 촛불장치가 생산하는 전기 에너지의 힘을 빌어 라디오로 송출된다. 다른 방에 설치된 수조에서도, 똑같은 전력을 사용하는 기포분사기에 의해 작은 공기방울이 약하게, 끊임없이 새어나온다. 이런 요소들이 종합된 은 파국적 상황의 알레고리로서, 꿈과 희망, 여기에 포개진 어떤 불가능성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장치가 된다. 두 작가는 오랜기간 ‘꿈의 작가’로 명성을 떨쳐왔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낙관과 비관 어느 한 쪽으로 쉽게 기울 수 없는 양가성을 드러낼 것이다.
박미나, 이상훈은 특정한 조건 아래 회화라는 전통적 매체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지속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이 둘은 ‘블랙 앤 화이트’, 두 색채를 공통분모로 삼아 느슨한 협업을 진행했다. 박미나의 신작 <2014 –Black>(2014)은 각 물감회사에서 제시하는 기본색을 다룬 <12 Colors>(2013)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으로, 각기 다른 회사의 공산품 유화물감 55개를 규격화된 캔버스에 채색해 ‘만들어진’ 검정색을 비교, 대조한다. 이번 전시가 첫 데뷔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상훈은 미디어버스에서 출간된 <조영법(造影法)1: 000 –111>(2014)의 다이어그램을 전시용으로 각색하여 책과 함께 전시한다. 그는 사생의 조건을 분해해 일종의 회화 제작 매뉴얼처럼 구성하고자 했다. 전시에서는 매체에 관한 숙고를 통해 다원주의의 막다른 골목에서 ‘최소한’의 미적 기준점을 확보하고자 하는 현대미술가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 것도 새롭지 않다’고 여겨지는 오늘날 시각문화의 문제는 사실, 과거부터 끊임없이 반복된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거울 삼아 문제를 발견하고, 현대적 관점에서 갱신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 이해될 수 있다면, (박찬경의 문장을 도용하자면) 이번 전시가 “비록 어설픈 지도 그리기에 불과하다고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 최정윤, 안대웅(유능사)

박찬경 / ‹파경(罷經) 실험 1› / 2014 / 월 텍스트, 아카이브 자료, 프레젠테이션 영상
Park Chan-kyong / ‹Pa-gyung(罷經) Experiment 1› / 2014 / wall text, archive, presentation video

이완 / ‹움직임› / 2012-2014 / 16대의 TV에 1채널 HD 영상 / 21분 반복재생
Lee Wan / Movement / 2012-2014 / 1 channel HD video on 16 TV / 21:00

송상희 / ‹O를 찾아서› / 2012-2014 / 타일드로잉(각 20x20cm 총 28점), 1채널 칼라 영상(무음, 9분 33초)
Song Sanghee / Finding O / 2014 / tile drawing(20x20cm each, 28 pieces) / 1 channel color video(no sound, 09:33)

이자혜 / ‹페미닌 전사 앤니로리의 전설› / 2014 / 혼합재료 벽화
Lee Jahye / Legend of Feminine Warrior Annie Lorie / 2014 / murals with mixed media

이상훈 / ‹조영법 (造影法) 1: 000-111› / 2014 / 책(미디어버스 발간)
Lee Sanghoon / Method of Building Shadow(造影法) 1: 000-111 / 2014 / book(published by mediabus)

안규철 / ‹그 남자의 가방 II› / 2014 / A3 켄트지에 연필 드로잉 각 30x42cm 총 16점, 나무 가방
Ahn Kyu Chul / The Man’s suitcase II / 2014 / pencil on paper, 16 pieces(30x42cm each), lacker paint on wood suitcase

박미나 / ‹2014-Black› / 2014 / 린넨에 유채 / 각 27.3×27.3cm(총 55점)
MeeNa Park / 2014-Black 2014 / oil on linen, 27.3×27.3cm each(55 pieces)

김영글 / ‹다이아몬드가 될 때까지› / 2014 / OHP필름 영사기, 돌, 영상 / 가변설치
Kim Young-gle / Until we become diamonds / 2014 / OHP film projector, stone / dimensions variable
기획: 유능사(최정윤, 안대웅)
협력기획: 김시습, 박희정, 윤율리
주관: 커먼센터
후원: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처 - 커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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