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
2004년 3월 5일 ~ 2004년 4월 25일
로댕갤러리는 2004년도 첫 기획전시로 미술이 시각의 영역을 넘어 문학과 사상의 세계로 확장하는데 기여해 온 조각가 안규철의 작품세계를 조망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사진과 조각, 드로잉과 글쓰기 작업을 통해 한국의 개념적인 미술을 주도해온 안규철은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과 수공적 조형성, 그리고 언어의 개념성 등 공존시키기 어려운 요소들을 성공적으로 결합하여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이다. 보는 것을 절제하는 대신 지적인 연상 작용을 이끌어 내는 그의 작업은 시각적 일루전을 최소화한 사물과 정교한 언어를 결합하여 현실사회의 모순과 전도된 가치를 드러내 왔다.
<49개의 방>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신작들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관심사와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관객의 신체와 개별적인 상상력을 개입시켜 다양한 읽기를 유도하는 작품들이다. 일상기물이 아니라 현실 속의 실제 공간을 본뜬 방들은 일종의 가상현실이 되고 관객은 물리적인 공간을 직접 체험하면서 작가가 제시한 현실과 자신의 현실을 중첩시켜 볼 수 있다. 뿌리내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이나(<바닥없는 방>) 불안정한 삶을 얽어매두려는 욕망(<흔들리지 않는 방>), 그리고 입구이자 출구이며 희망이자 허상인 문들(<112개의 문이 있는 방>)을 통해 삶의 모순을 표현한 공간은 그 표면적인 의미 위에 관객의 사적인 의미들이 덧붙여질 여지를 남겨둔 열린 프로젝트가 된다.
더불어 우화라는 문학적인 방식으로 미술영역의 확장을 시도한 1990년대의 작품 세 점을 신작과 함께 전시함으로써 부재不在에 대한 화두를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새롭게 해석하는 기회를 갖는다.

모자 Hat, 1994/2004, 1200x380cm, 시트지, 모자 color sheet, felt hat
다섯 컷의 패턴을 반복하여 벽화로 구현한 이 작품은 두 사람이 만나 악수를 나누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잡아먹는 기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만화적 상상력의 산물로서 허황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약육강식의 살벌한 인간관계에 대한 사유가 있다. 함께 전시되는 모자는 잡아 먹힌 사람이 떨어뜨린 것으로 간주되며 이는 이야기와 물증 사이의 진실 여부를 묻는 또 다른 화두가 된다.

그 남자의 가방 The man's suitcase, 1993, 드로잉: 각30x50cm 11점, 가방: 60x100x11cm
종이에 연필, 나무에 라커, 학고재 소장 pencil on paper, lacquer on wood, collection of Hakgojae
11점의 드로잉과 그에 상응하는 글, 그리고 날개모양의 가방으로 구성되는 이 작품은 알 수 없는 남자가 맡기고 간 가방 속에 정말 날개가 들어있는가를 묻는 우화적 상상력으로 가득 찬 작품이다. 허구와 실제 사이의 대응관계를 섬세하게 드러낼 뿐만 아니라, 미술과 문학의 접목을 통해 우리의 시각영역을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세계 속으로 확장한다.

상자속으로 사라진 사람 Man who disappeared into the box, 1998/2004, 드로잉: 22.5x32cm 13점,
상자: 65x50x41cm 3개, 천: 지름 150cm, 길이 1000cm, 종이에 연필, 나무에 라커, 천 pencil on paper, lacquer on wood, cloth
드로잉을 곁들인 13장의 텍스트에는 눈앞에 놓인 작은 상자를 통해 현실세계로부터 도피하는 방법이 자세히 적혀있다. 3개의 상자에는 현실과 현실 바깥을 이어주는 통로인양 긴 헝겊 터널이 각각 연결된다. 이 작품 역시 시각적 증거물에 의존하는 우리의 문화구조를 드러내는 측면이 있지만, 현대인의 현실탈주욕구를 만화적인 방식으로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흔들리지 않는 방 Unshakable room, 2003/2004, 660x570x380cm, 나무 wood
바닥없는 삶을 사는 우리들의 무의식적 공포를 구현한 방으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삶의 기물들을 각목으로 엮어서 단단히 묶어두고 있다. 흔들림에 대한 저항은 불안전한 현실에 대한 강박증을 반영하며 공황장애를 유발하는 우리사회의 안전 불감증에 대한 역설적인 비판이다. 반면 이 작품은 소멸에 저항하려는 인간의 오랜 욕구를 재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비극적이며 동시에 희극적이기도 한 이 욕망에 작가는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바닥없는 방 Bottomless room 2004, 540x360x122cm, 나무, 복합재료 plywood, various material
독신자용 원룸 아파트의 설계도를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지은 집으로 창문, 환기구, 싱크대, 세면대 등 실재의 공간이 그대로 재현되었지만 허리 아래의 벽과 바닥은 결여돼 있다. 현대인의 뿌리내리지 못하는 삶을 직접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우리시대의 미적 취향의 기준으로 제시된 똑 같은 아파트 구조가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처럼 삶이 스쳐 지나갈 뿐, 머물지 못하는 곳은 아닌지 묻고 있다.

112개의 문이 있는 방 Room with 112 doors, 2003-2004, 760x760x230cm, 나무, 금속 wood, matal
네 면이 모두 여닫을 수 있는 문으로 구성된 49개의 방은 폐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킬 만큼 여러 겹으로 중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침입에 무방비로 노출된 방이다.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공간은 네트웍에 연결되어 감시하고 감시당하면서도 파편화된 관계만을 유지할 뿐, 전체를 조망할 수 없는 현대사회를 의미한다. 또는 완성과 변화를 상징하는 7 또는 49란 숫자의 상징성으로부터 인생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 낼 수도 있겠다.


슬럼프 드로잉 Drawings against artist's slump, 2003/2004, 38x59cm
종이에 먼지, 머리카락, 빵가루, 접착제 등 various material on paper
작가로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제안된 이 드로잉들은 작가의 삶의 흔적으로 구성된다. 머리카락, 먼지, 매일 아침 먹는 토스트 부스러기 등등. 유일하게 요구되는 테크닉이라면 단순반복행위를 지속할 수 있는 인내심 정도인데, 그것은 기네스북에 등재되기 위해 기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미술 창작행위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소품 연작 Maquettes, 2003-2004, 높이 15~25cm, 나무, 시멘트, 금속 various material
작가의 조형적 아이디어를 살펴볼 수 있는 코너. 과장되거나 비논리적인 상태로 표현된 사물들은 현실 속에 잠재된 폭력이나 모순, 또는 우리의 욕망을 드러내지만 그 전달의 방법은 만화적 상상력에 의존해 있어서 지극히 가볍고 유쾌하다. 그의 관념 속 세상사는 불안정하여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것인데 이에 대해 저항하는 인간의 비극적이며 동시에 희극적인 운명을 사물로 표현한다.
출처 : 로댕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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