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간 배다리
2016년 4월 8일 ~ 2016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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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굴 없는 포트레이트를 찍어 보자
사진을 찍으면서 “얼굴”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얼굴은 히잡과 베일로 온 몸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조차도 드러내는 가장 보편적인 신체부위입니다. 사진에서도 ‘포트레이트’라는 분야가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는 일이 많아지면서 초상권에 대한 개념이 새롭게 대두되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찍어 함부로 올리면 초상권 침해로 손해배상까지 청구당할 수 있게 되면서 얼굴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공평하게 하나씩 달고 태어나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얼굴, 그런데 그 얼굴에 요즘 초상권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그 초상권을 지켜주면서 스트리트 포토 혹은 캔디드 포토를 어떻게 찍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얼굴 없는 포토레이트’를 찍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드 사진이라고 해서 정말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적당하고도 교묘하게 가릴 것을 다 가림으로써 결국 독특한 미학이 완성되듯이, ‘얼굴 없는 포트레이트’역시 얼굴을 가림으로써 나타나는 독특한 미학을 연출하고자 했습니다. 아담과 이브를 그린 중세시대의 그림을 보면, 아직 원죄를 범하기 전이라 옷을 전혀 입지 않았음에도 적재적소에 꽃과 풀잎이 나타나서 신체 일부를 가려 줍니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신체 동작에 의해 혹은 무언가에 의해 교묘하게 가려진 얼굴을 찍었습니다. 이렇게 얼굴이 교묘하게 가림으로써 가장 보편적인 신체부위를 가장 은밀한 신체부위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뭐든… 가릴수록 신비스러운 법이니까요.
또한 얼굴이 보이지 않음으로써 모호하고 불분명하고 때로 불쾌하고 기괴한 느낌까지 느끼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낯선 사람을 보면 본능적으로 그의 얼굴을 보며 표정을 읽습니다. 여자인가 남자인가, 우호적인가 적대적인가 등으로 재빨리 피아식별을 하고 그 이후의 행동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굴과 표정이 보이지 않음으로써 기본적인 피아식별을 못하게 되면 거기서 오는 불안감이 커집니다.
“얼굴 없는 포트레이트”란 바로 이러한 것을 표현하고자 한 사진입니다
2. 초상권에 대한 조롱과 저항
한편 초상권도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누군가 내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이 때로 매우 위험한 일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마 몇 년 전의 지하철 “개똥녀”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것 역시 누군가가 함부로 찍어 올린 사진 때문에 인터넷에서 큰 비난을 받게 되었는데, 결국 이러한 일 때문에 혹시 내가 “00녀”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커진 것 같습니다. 또한 몰카나 도촬은 여성에게 가장 불안하고 불쾌한 일이기도 하구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캔디드 사진, 스트리트 스냅은 도촬로 비난받고, 때로 초상권 침해이니 삭제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초상권에 대해 한번 정면으로 맞서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내가 너의 사진을 찍되 초상권을 지켜주마’ 라는 의미로 사진을 찍되 얼굴을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마치 통닭처럼 얼굴이 잘려진 사진을 보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초상권을 주장하는 이 사회에 대한 조롱과 저항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절대 피사체 개인에 대한 조롱과 모욕의 의미는 없음을 밝힙니다.
3. 디지털 시대의 사진의 생산과 소비를 표현
전시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필름 카메라를 쓰는데 필름 값이 비싸서 한 장 한 장 아껴 찍었고 인화된 사진은 앨범에 넣어 보관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디지털 시대가 오면서‘필름 값’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배터리를 충전해서 하루 500장 내지 1,000장까지 찍는 것을 생각하면, 요즘의 디카들은 마치 수돗물로 굴러가는 자동차 같습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수돗물을 채운 생수통 두 병으로 서울과 부산을 오고 가듯이 배터리 팩 두 개면 하루 온종일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진을 무한정 많이 찍을 수 있게 되면서 이것을 인화해서 앨범에 보관한다기 보다는 블로그에, 개인 홈피에, SNS에, 그리고 동호회 게시판에 올립니다. 보는 사람들 역시 출근길에 스맛폰으로, 회사에서 짬짬이 인터넷으로, 그리고 집에 와서 소파에 드러누워 태블릿 피시로 봅니다. 앨범은 내가 보여주는 사람만 볼 수 있지만 블로그, SNS, 동호회 게시판은 나도 전혀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봅니다. 그러다가 스맛폰을 분실하고 SNS 계정을 삭제하고 또 동호회를 탈퇴해버리면 사진은 순식간에 날아가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시대에 사진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전시 역시 가장 “디지털스럽게 놀아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름이라는 실체가 전혀 없이 오로지 디지털 코드로만 존재하는 디카 사진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인화가 아닌, 프로젝트를 통해 허공에 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실체가 없이 존재했다가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디카 시대의 생산과 소비 방식을 표현한 것입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하얀 네 벽으로 둘러싸인 정 사각형의 방을 준비해서 그 가운데 몇 대의 프로젝션을 설치하고서 각 벽마다 영상 이미지를 계속 쏘아줍니다. 대략 프로젝션 한대당 200~300장씩 해서 서너 대의 프로젝션으로 1000장의 사진을 연속으로 쏠 수 있습니다. 평소에 워낙 작업량이 많고 그래서 개개 사진당 퀄리티는 좀 떨어지지만 양으로 승부하는 저의 평소 작업방식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방 한가운데 프로젝터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방안을 돌아다니면 관람객의 얼굴이나 몸 위로 이미지가 쏘아 지기도 합니다. 사진 속에 관람자가 실루엣으로 들어가는 그 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어릴때 극장에서 영화를 볼때 갑자기 일어서면 내 그림자가 스크린 위에 보여지던 그 신기한 느낌, 유명한 그림 구경을 할때 문득 내가 저 그림속으로 들어가보고 싶다는 그 심리를 재현한 것입니다. 즉 작가가 찍은 사진 속에 관람자가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 효과를 노렸습니다.
그리고 작가인 저 역시 전시회 동안 카메라를 들고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관람객을 찍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십니다. "이런 사진 어떻게 찍었어요?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아요?" 그 촬영과정을 제가 직접 재현하겠습니다. 관람객을 캔디드로 찍다보면 싫다고 도망가는 사람. v자 그려주며 포즈 취해주는 사람. 불쾌하다며 삭제요청하는 사람 등등이 있습니다. 이때 불쾌하다는 표현을 하시는 분 앞에서는 사진을 삭제하는 과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삭제” 는 디지털 시대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디카 사진에서는 삭제와 삭제 과정을 아예 없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삭제”란 촬영, 수정과 함께 사진의 주요 공정 중 하나 입니다. 그 삭제의 의미를 조명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전시를 하는 이유;
사진은 20세기의 대표적인 복제예술입니다. 예술이 복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이 과연 예술이냐? 라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21세기 디카의 시대가 되면서 더욱 쉽게 사진을 접합니다.
이제 사진은 액자속에 끼워진 고고한 예술작품이 아닌, 일상적인 대중문화이며, 그래서 누구나 사진을 찍고 찍힐 수 있으며, 포토샵으로 합성을 하듯 내가 사진 속으로 들어가 다시 찍힐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사진전이 정적인 전시가 아닌, 하나의 퍼포먼스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전에 1980~90년대에 그림을 그림으로 전시하는게 아니라, 물감을 찍어 직접 그려주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회화가 공간속에 존재하는 정적인 예술이 아닌 시간속에 존재하는 동적인 예술일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듯, 사진 역시 시간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퍼포먼스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 작가노트



출처 - 사진공간 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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