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BETA
2023년 9월 22일 ~ 2023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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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이미지 역사가이자 문화이론가인 아비 바르부르크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에서 고대 그리스의 흔적을 확인하며 ‘고대의 잔존/고대의 사후세계Nachleben der Antike(Afterlife of antiquity)’를 언급한 바 있다. 즉 새로이 등장하는(듯한) 무엇은 획기적이거나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망각하고 있던 어떤 것이 예상치 못한 시기에 낯선 매체를 뚫고 나오는 것이며, 이렇게 삶은 사후에야 비로소 지속된다는 것이다.
본 전시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의 사후의 삶을 상상한다. 가령 소속이 불분명한 신원미상, 추적할 수 없는 데이터, 삭제된 기록, 이름 없는 존재는 어떤 형태로, 무엇을 통해 지속되어 왔는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외부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들은 규명되지 못한 탓에 비가시화되어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무어라 부를 방법이 없으니, 범주를 세분화하고 이름을 붙이는 편이 나을까? 범주화한다면 존재가 드러날 수 있는가? (사람이건, 사물이건, 사건이건) 그것에 대해 우리가 아직 잘 모르더라도, 질서 체계와 경계를 느슨하게 넘나들고 여러 형태로 분기할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 그 자체로 기록할 방법은 없을까?
<사후의 삶>은 불확정적인 것의 기록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 과거의 자료에서 신원미상과 같이 분명하지 않은 존재를 찾아보거나 (임수미, <미상(unk)>), 사라진 영화에 대한 흔적을 재구성하거나 (유지완, <아편차(opium tea)>), 누락된 이름을 찾아 이미지와 이야기를 수집한다 (고지연, <etc.zines>). 그리고 이 명료하지 않았던 존재와 흔적이 사료들 속에서 회자되며 사후의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각자의 방식으로 상상을 가미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이름을 알게 되거나 사라졌던 것을 복원하거나 새로운 범주화의 필요성을 깨닫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 그것이 무지의 시간을 지나 다른 시간, 어디에선가 등장할 수 있음을 자각할 뿐이다.
작품소개
고지연, <etc.zines>
고지연은 <etc.zines>에서 조각난 이름들을 찾고, 그들의 그림자를 수집하여 진(zine)의 형식으로 구성하였다. ‘이름 명(名)’은 ‘저녁 석(夕)’에 ‘입 구(口)’가 합해진 것으로 어두운 저녁에는 얼굴이 보이지 않아 입으로 상대를 불러 확인해야 하는 것에서 비롯된 글자이다. 이름이란 서로를 인지하고 그 존재를 받아들이는 행위이자 믿음인 것이다. 만약 이 믿음이 깨진다면? 여러 조각으로 흩어지거나 어둠에 갇혀 호명할 수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진을 통해 직접 찍거나 캡처한 이미지, 프로그램으로 생성한 이미지에 드로잉과 메모를 조합하여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1995) 속 주인공의 지워진 이름을 찾는 과정을 ‘그림자’ 로 담아내고, 이를 또 다른 진으로 연결하여 부재하지만 존재하고 있는 것의 이야기를 모아 본다.
유지완, <아편차(opium tea)>
유지완은 사라진 조선무성영화 중 하나인 나운규의 <풍운아>(1926)의 흔적들을 활용하여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번째 흔적은 남아 있는 스틸이미지 세 장, 두번째 흔적은 영화소설, 세번째 흔적은 변사 녹음 유성기 음반이다. 무성영화 <풍운아>의 개봉은 1926년, 영화 소설의 발간은 1930년, 유성기 음반의 발매는 1931년으로 이어진다.
유지완은 이 요소들과 함께 <풍운아>에서 니콜라이 박(나운규)에 맞서는 아편밀매단의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Nick Cave & the Bad Seeds의 노래 ‘opium tea’에서 제목을 가져온 <아편차(opium tea)>는 사운드 설치, 필름 이미지 영사와 함께 이루어진다.
<풍운아>의 유성기 음반 재생에 이어 유성기 음반에 실린 변사의 목소리 데이터로 생성된 목소리가 아편밀매단의 새로운 이야기를 발화한다. 그리고 영화 소설에 실린 <풍운아> 악보와 텍스트 이미지, 스틸 이미지가 함께 영사된다.
임수미, <미상(unk)>
임수미는 저작권 시효가 만료된 국내를 촬영한 기록영상 속에서 신원미상을 모색한다. 영상은 1940년대에서 1970년대에 촬영한 것으로, 현재의 관람객에게 영상에 기록된 피사체 모두는 신원미상이다. 카메라가 포착하는 대상과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역사적 공백을 사이에 두고 도리어 정체불명의 개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일단은 맥락에서 어긋난(것처럼 보이는), 규칙을 따르지 않는(것처럼 보이는), 카메라의 시선을 역이용하는(것처럼 보이는) 개인을 포착한 부분을 수집하여 하나의 영상 다발을 만들고, 반복되는 변주를 통해 이미지에 내재하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실험하였다.
기획: 임수미
참여작가: 고지연, 유지완, 임수미
협력작가: 박영선(필름 프로세싱, 슬라이드 프로젝션), 김근채(AI목소리 프로세싱), 곽영빈(비평), 정현숙(글)
전시에 관한 글: 이도훈
번역: 김아영
사진: 생동스튜디오
협력: 413BETA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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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13:00 - 19:00
수요일 13:00 - 19:00
목요일 13:00 - 19:00
금요일 13:00 - 19:00
토요일 13:00 - 19:00
일요일 13:00 - 19:00
휴관: 월요일, 공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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