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도스
2022년 2월 16일 ~ 2022년 2월 22일
파종의 미학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김혜린
프랑스에서는 늦은 낮과 이른 저녁 사이의 어느 지점 즉 해가 질 무렵에 대상의 윤곽이 제대로 분간되지 않는 검붉고도 푸른 때를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멀리서 보이는 대상이 살가운 기색으로 다가오는 개인지 아니면 이를 드러내고 위협할 수도 있는 늑대인지 알 수 없기에 묘한 긴장감을 일으키는 시간이 된다는 의미에서이다. 자칫 한기를 몰고 오는 듯이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오묘한 떨림의 시간에 대해 영원한 이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는 조금 다르게 해석을 했다. 낯설고 적대적이던 사물들이 거짓말처럼 부드럽고 친숙해지는 시간이고 그렇게 반대로 생각해도 그 시간이 좋다고 말이다.
이처럼 예술가의 눈은 기존의 것들을 다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래야만 스스로가 창조의 원천을 체득하여 자신으로부터 동기화할 수 있다. 다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새로운 방향과 방법으로 본다는 것이다.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닐 수 있어도 보는 것이 앎을 대변할 수는 있으므로 예술가의 시각은 노출되어 있는 만큼의 세상에 대한 지적 활동이다. 그러나 예술가의 시각은 도전과 인내를 멈추지 않는다. 그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본다는 것의 의미를 확장한다. 의미의 확장을 위해 수고로움을 자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필요충분조건에 의해 새로운 시각은 새로움 그 자체로 개진되며 곧이어 사실을 비롯한 대상과 현상, 그리고 진실에 대해서까지도 어떠한 가능성을 추출할 수 있는 역량으로 자리 잡는다. 목지윤의 지적활동은 숲의 반경을 흡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선으로 목지윤은 “밤도 아침도 아닌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그 찰나의 시간대에 보이는 검정 색감의 숲”이라고 언급한다. 대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은 반경 내에서 경계라는 어떠한 사실 혹은 현상에 대해 시선을 떼지 않는 것이다. 의미를 발견하고 세계를 넓히기 위한 도전으로써 관찰하고 주목하며 마주한다. 이렇듯 용기 내어 다가가는 행보에는 잇따라 목지윤이 언급하는 바와 같이 “두려움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촉매하는 시도가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도를 통해 획득된 새로운 시작은 항상 설렘을 동반한다. 이는 새로움의 내핵에 설렘이 잠재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로움의 직전에 두려움을 발견하게 됨을 알고 그것이 오히려 시작의 반증임을 깨닫는 인간이라면 설렘은 배가된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설렘을 통해 새로움과 시작을 독해할 수 있는 눈 즉 자유와 가능성의 표지를 체득한다.
작가는 불분명하고 모호해서 명명 이전의, 아직은 어떠한 것이라고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들의 씨앗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들을 파종한다. 제각기 다른 모양의 씨앗들은 전시의 저변에 넓고도 깊게 퍼져 있으며 검정 숲의 색감이 입혀져 있다. 검은 붕대로 감겨 있으나 이는 규정될 수 없음에 대한 불안이나 초조함을 은유하기 위한 어둠이 아니다. 모든 색이 더해져 만들어진 검은색에는 모든 색의 가능성이 담겨 있듯이 가능성의 끝없는 생성과 앞으로의 무한한 생장 이에 따른 기대와 설렘을 은유하는 새로운 시작의 빛깔이다. 즉 뿌려지고 돋아나며 성장함에 대한 희망이 촘촘하고 부드럽게 직조된 섬유처럼 씨앗을 보듬고 활기차고 친숙하게 형형하는 빛깔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한편 작가는 책을 기반으로 한 작업도 선보인다. 책의 재료가 되는 종이는 숲에서 태어나 자라고 번성한 나무의 변화 가능성을 내포한다. 종이 위에는 음절과 단어, 문장이 조합되어 이야기와 삶을 이룬다. 삶을 이루는 구성요소 하나하나가 지혜롭고도 자유롭게 영향을 주고받고 얽히다가 종내에는 삶에 대한 어떠한 메시지 혹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보여줌으로써 예술작품의 수용자를 위로하고 보호한다. 이 놀라운 가능성에 작가는 생명력을 더하여 숲의 세계를 확장한다. 순지를 여려 겹으로 덮어서 단어나 문장을 흩트리고 모호하게 만들면서도 오히려 순지가 쌓여 만들어진 층을 드러내고, 완숙된 식물의 일부가 아닌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로서 새로운 시작을 도모할 수 있는 가망 즉 씨앗들을 파종함으로써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는 소우주적인 숲으로 우리를 안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들에는 일정한 규칙이 약속되지 않는다. 엄정하고 획일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자유와 자율 그리고 가능성의 발아가 담보하는 생명력이 작가의 작업과 작품에 깊이 스며들어 있음이다.
목지윤의 작품은 고로 우리에게 파종의 미학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불분명하고 모호한 것들은 작가의 시각을 통해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희망을 탐구하게 만든다. 유망한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기대와 설렘으로 우리를 다시 한 번 살아 숨 쉬게 한다. 어둠은 더 이상 어둠이 아닌 생명력을 띤 숲의 빛으로 파종된 씨앗을 비추고 검푸르고도 붉은 윤곽의 시간이 저 멀리서 물결칠 때 우리는 기다림을 배운다. 기다림은 기쁨으로 거듭나면서 마침내 파종된 씨앗들이 움트는 시간은 당신에게 심장 박동으로 영글게 될 것이다. 이 어떠한 것들이 언제 무엇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이 새로운 시작의 낯섦을 따스하고 생기 있는 미학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충만해질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참여작가:목지윤
출처: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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