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아마도전시기획상: 윈도우 리컨스트럭션 Windows Reconstruction

아마도예술공간

2023년 3월 10일 ~ 2023년 4월 6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제 디지털 기반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디지털과 인간이 유착되는 관계는 기술의 발전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자명하였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 관계성이 역전되어 디지털 기반의 세계가 현실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본 전시는 디지털 암흑시대와 같이 좀 더 익숙한 아포칼립스적 이야기에서 윈도우 운영체제와 같은 소프트웨어에도 미디어 자체에 반하고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상정한다. 이 동력은 일찍이 테드 창의 소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에서 등장하기도 하였는데, 컴퓨터 안에서 살아가는 디지언트라는 이름의 객체들이 시스템 지형이 오래되어 침식되자 겪는 위기가 그러한 모습이다. 터전이 오래되자 업데이트하지 못하는 디지언트들은 주인에 의해서 눈을 감거나 혹은 다른 형태로 이주를 시도한다.

SF 소설의 한 장면은 일찍이 프리드리히 키틀러가 컴퓨터가 발전하는 과정은 하나의 차원들이 하나씩 차례대로 철폐되는 순서를 지니고 있다고 일찍이 분석한 것과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압축이 이루어지는 순서에서 압축되기 이전의 차원은 은폐되고 숨겨지고 왜곡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점차적으로 하나의 차원을 덜어내는 흐름 속에서 컴퓨터는 현실의 모든 것을 완전히 압축하여 일차원적인 텍스트도 남지 못하는 숫자나 비트로만 구성되고 있다.

견고해보이는 숫자나 비트의 세계는 실제로 그 구조를 조직하는데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라는 개념과 같이 견고함을 은연 중에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역시 침식의 현상을 겪는데, 매우 단순하게도 지금은 은폐된 작은 버그(bug)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캘린더 애플리케이션에서 날짜를 보기 위해서 2038년 이후를 선택하게 되면, 갑자기 그 이후의 시간이 없는 것처럼 1970년 1월 1일로 돌아가는 버그가 이따금씩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버그의 원인에는 ‘유닉스 시간(Unix Time)’이라는 소프트웨어 자체의 시간체계가 있다. 대부분 컴퓨터 운영체제의 기반이 되는 이 시간체계는 1970년 1월 1일 00:00:00시부터 계속 흐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윈도우에서 흔히 보는 32비트 부호 정수형은 2의 31승에서 1이 빠진 2,147,483,647까지 최대값을 나타낼 수 있는데, 이 값을 넘어서면 이제 32비트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거나 오작동한다. 시간이 멈추는 셈이다. 그래서 2038년 1월 19일 3시 14분 7초 이후의 시간에 대해서 32비트 유닉스 시간은 그것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돌아가는 오버플로(overflow) 버그를 택하기도 한다. 이 처음 값으로 돌아가는 것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작동의 순간들을 안고 돌아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오버플로 시점에 다다르기 전에 유닉스 시간은 32비트의 세계를 마모시키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가 닳아 없어지는 것만 보았지만,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도 또 다른 시간체계로 금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비트의 시간이 가진 끝은 명징하다. 이에 대해 해결책이라 할 수 없지만, 소프트웨어 아키텍처가 할 수 있는 것은 큰 비트의 시간체계로 옮겨가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새로운 아키텍처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곳에도 분명히 끝이 있지만,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디지언트들의 이주처럼, 끊임없이 소진되고 새로 지어지는 터전처럼, 인류가 자손으로 이어 나간 역사처럼,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처럼, 운영체제의 계속되는 업데이트처럼 말이다. 

유닉스 시간의 흐름은 일견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1975년부터 사용이 승인된 연와조와 세멘벽돌조의 건물인 아마도예술공간고 함께 궤를 같이하며 시간을 체화하고 있다. 이 과거가 쌓인 삐걱거리고 벗겨지고 있는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는 마모되고 낡은 건물로 현현한다. 

제 10회 아마도전시기획상 《윈도우 리컨스트럭션》은 운영체제가 재건축되는 모습을 기반으로 동시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미디어의 신화는 반대방향으로 나가는 동력, 즉 시간체계를 스스로 수반하고 있기에 영원히 빛나는 모습은 아닐 것이라 의심을 던져본다. 시간을 상징적으로 회화의 장면으로 구현하는 조효리 작가의 회화 작업들,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 네덜란드관 대표 작가인 멜라니 보나요의 진보와 퇴보가 반복되는 기술의 역사를 경험한 노인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실험적 다큐멘터리 〈진보 대 퇴보〉, 냉동 난자의 목소리로 움츠러든 시간을 살펴보는 강은희 작가의 신작 〈Dear Freeze〉,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신체에 대한 장서영 작가의 〈스키드〉, 디지털 네트워크를 구현하면서 은폐하는 악세스 플로어에서 시작한 기예림 작가의 〈Versatile Dynamics〉, 인공물들의 폐허를 구축한 박예나 작가의 〈발굴〉이 본 전시의 주요 작품으로 소개된다. 


기획: 김맑음
참여작가: 강은희, 기예림, 멜라니 보나요, 박예나, 장서영, 조효리

공간 디자인: 강대민
제작: 장성진, 이노세이프, 삼환금속
공간 조성: 장성진, 이해련, 홍민희
미디어 설치: 올미디어
그래픽 디자인: 박채희
번역: 김맑음, 이정은
협력: AKINCI 갤러리, 디스위켄드룸
주최, 주관: 아마도예술공간
후원: 서울문화재단

*첫날은 7:00PM까지 전시장이 열려있습니다.
*매 정각에 시작되는 영상 작품이 있습니다.

출처: 아마도예술공간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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