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A 서울시립미술관은 2016년 서소문 본관의 마지막 기획전으로 SeMA Gold «X: 1990년대 한국미술»전을 마련한다. SeMA ‘골드’는 한국 미술 작가를 세대별로 조망하는 SeMA 삼색전―원로 작가를 위한 ‘그린,’ 중견 작가를 위한 ‘골드,’ 청년 작가를 위한 ‘블루’―의 일환으로 개최되는 격년제 기획 전시이다. 이미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정립하고 한국 미술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중간 허리 작가들을 보여주는 SeMA 골드의 올해 전시는 한국 미술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 1990년대를 화두로 삼아 동시대 한국 미술의 미학적, 문화사적 의미를 성찰하고자 한다.
1990년대는 이미 최근 TV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문화적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전시가 다루는 90년대는 1987년부터 1996년에 이르는 10년간으로, ’87 민주화항쟁과 ’88 서울올림픽, 동구권의 몰락, 김영삼 정부 출범과 김일성 사망,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등의 사건들로 얼룩진 과잉과 상실, 그리고 붕괴와 도약의 시기였다. 본 전시는 1990년대를 현대미술의 이름으로 촉발시키면서 포스트모더니즘, 글로벌리즘으로 일컬어지는 동시대 미술 패러다임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것이 오늘날 미술에 끼친 영향 및 그 역학 관계를 살펴본다.
1990년대의 이정표적 징후들, 즉 70년대 모더니즘이나 80년대 민중미술과 차별화되는 90년대 특유의 시대정신은 이 시대를 대변하는 X세대 또는 신세대 작가들의 탈이데올로기적 창작 활동을 통해 드러난다. 설치미술, 테크놀로지, 대중매체, 하위문화 등 당시의 다양한 문화적 코드들을 저항적이고 실험적인 미술 언어로 재무장한 이들의 활동은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 소그룹 운동과 주요 개별 작가들의 활동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이는 1990년대의 ‘앙팡테리블’로 한국 미술계의 지형을 바꾸어놓은 X세대 주역들의 미술사적 업적을 재조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X: 1990년대 한국미술»전은 뮤지엄, 서브클럽, 진달래, 30캐럿 등의 소그룹 운동과 소위 ‘신세대 작가’로 불리웠던 개별 작가들이 부분 또는 전체적으로 재제작한 당시 주요 작품과 관련 자료 아카이브, 대중문화와 뉴테크놀로지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이슈 제기로 주목받았던 주요 전시의 재연, 그리고 새로운 창작 에너지의 발원지였던 홍대와 신촌 등의 카페 공간을 편집 · 재구성한 섹션이 교차적으로 펼쳐진다.
이번 전시는 역사적 기록이나 감상적 노스탤지어에 그치는 단순한 회고전시에 그치지 않고, 90년대 미술을 시대 특정적, 장소 특정적인 프레임 속에서 재맥락화하고 그것이 현재에서 가지는 의미의 연속성을 가시화하는 것에 주력하고자 한다.
전시 구성
PART1 90년대 신세대 소그룹
90년대에 ‘X세대’로 불린 신세대 작가의 다수는 단발적 프로젝트를 위해 이합집산하는 소그룹 활동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전 세대의 소그룹이 하나의 가치를 공유하는 조직화된 모임의 형태였다면, 90년대 신세대 소그룹은 프로젝트의 주제에 따라 구성원, 매체, 전시 방식이 변화하는 임시적, 일시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이번 전시에서 90년대를 대표하는 소그룹으로는 극단적인 실험주의와 이전 세대와의 미학적 단절을 내세운 뮤지엄, 미술・출판・퍼포먼스・음악 등 다양한 탈장르가 결합된 새로운 전시 방식과 형식을 실험한 프로젝트 그룹인 서브클럽, 포스터와 같은 사회적 소통의 방식으로서의 디자인과 시각 이미지 생산자로서의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했던 진달래, 신세대 여성작가로서 ‘나’로부터 출발한 정체성을 고민했던 30캐럿 등의 활동을 과거 작품의 재제작 및 아카이브 형식으로 소개한다.
뮤지엄
1987년 최정화, 고낙범, 이불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뮤지엄은 작품의 창고로 전락한 미술관의 전통과 권위 대한 비판과 기성 화단과의 단절을 내걸었다. 70년대 모더니즘이나 80년대 민중미술과는 전혀 다른 90년대 특유의 도시적 키치 감수성으로 보여주는 <U.A.O> <썬데이 서울> <쑈쑈쑈> 등의 실험적인 전시들은 작가들 스스로가 기획하고 참여하는 작가 주도형 활동이었다. 매 전시마다 참여 작가가 다른 임시적 프로젝트의 방식을 추구함으로써 일회성, 임시성, 개별성을 강조했다.
서브클럽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미술 형식의 탐구”라는 명제를 가지고 1990년 시작한 서브 클럽은 미술, 출판, 퍼포먼스, 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새로운 전시 방식과 형식을 실험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오존, 발전소 등 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서브 클럽은 이상윤, 김형태 등이 주축은 이뤘으나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한 이합집산의 방식을 추구했다. <언더 그라운드> <유기적 총체로서의 자연> <메이드 인 코리아> 등 전위적인 형식 실험의 전시와, 각 전시에 맞춰 발간한 무크지 역시 혁신적인 편집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진달래
진달래는 1995년 장르별 단체전의 컨셉을 표방하던 <집단정신> (덕원미술관)전의 기획 과정에서 디자인 분과의 김두섭, 이기섭을 중심으로 ‘시각 문화 실험 집단’을 표방하는 디자인 창작 모임으로 결성되었다. <집단정신>전에서는 컴퓨터가 이끌어 낼 새로운 시각 이미지의 무한한 가능성을, <뼈—아메리칸 스탠다드>전에서는 ‘발언으로서의 포스터의 기능’을 새롭게 발견하여 메일링 아트로 발전시키는 디자인의 새로운 영역들을 추구했다. 이는 상업과 예술의 경계에 서있는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동시대 시각 문화의 부분으로 디자인을 고민하는 태도를 반영한다.
30캐럿
30캐럿은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30대 여성 작가 10인이 주축이 되어 1993년 결성한 신세대 여성주의 그룹이다. ‘30캐럿’은 30대에 속한 자신들을 30캐럿의 다이아몬드에 비유한 것으로, 억압된 여성 문화에 주로 주목하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여성의 심리, 성차별 등을 30대 여성의 시각으로 해석해왔다. 이들은 매 전시마다 함께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열어갔는데, 여성의 자아발견, 남성중심주의 사회, 한국성과 같은 주제를 통해 남성 위주의 미술담론이 지니는 한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PART2 전시의 전시
‘키치’ ‘언더그라운드’ ‘테크놀로지’ ‘대중문화’ ‘세계화’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1990년대 새로운 흐름들을 이끌었던 전시들과 관련 자료들, 그리고 전시의 일부를 전시장에 펼쳐낸다.
대표적으로 압구정동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미술의 개념을 일상적 이미지를 포함하는 시각문화 전반으로 확대하는 전시 «압구정동: 유토피아, 디스토피아»(1992, 갤러리아백화점미술관), 과학기술의 발전에 빠르게 동화되어가는 우리 시대 문화를 다뤘던 전시 «가설의 정원»(1992, 금호미술관)가 주요 작가들의 작품, 전시 카탈로그나 관련 사진, 영상 등의 아카이브 자료들과 함께 조명된다. 이를 통해 90년대를 관통하는 정치, 사회, 문화의 흐름들과 전시(미술)의 역사가 어떤 접점을 맺는가를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압구정동: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압구정동: 유토피아/디스토피아>>전은 90년대 압구정동을 본격적인 문화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전시로 압구정동 한 가운데 위치한 갤러리아 백화점 내 미술관에서 열렸다. 회화, 사진, 영상,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장르의 전시 참여 작가들은 대중문화를 이끌어 가는 다양한 매체와 장르의 표현기법을 적극 활용, 도입함으로써 미술의 개념을 일상적 이미지를 포함하는 시각문화 전반으로 확대했다. 한국자본주의가 생산해내고 소비하는 압구정동이라는 문화현실을 다각도에서 구조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 문학가, 사회학자, 평론가, 문화이론가, 건축가 등의 글과 전시 참여 작가의 작품 사진이 함께 실린 동명의 책이 출간되었다. 또한 현장연구를 통해 압구정동의 생활양식과 문화형식에 대한 분석지표를 만들고, 사회적 환경과 문화적 조건으로서의 압구정동을 해부하고 기록했다. 이는 90년대 우리 문화의 외면할 수 없는 단면임에도 그 동안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흥미 위주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뿐인 압구정 문화에 대해 가치중립적인 태도로 분석하고 비평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장소: 갤러리아 백화점 갤러리 / 기간: 1992. 12. 12 ~ 12. 30
전시: 김환영, 박불똥, 박혜준, 변영주, 김복진, 서숙진, 신지철, 이지수, 조경숙, 정기용, 최시형, 조하익
출판: 강내희(중앙대 교수·영문학), 김정환(시인), 도정일(경회대 교수·비평이론), 조혜정(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 김효선(여성신문사 기자), 정기용(건축가)
가설의 정원
<가설의 정원>>전은 국내 미술계에서 미술과 테크놀로지의 조형적 만남을 점검하고 테크놀로지 미술의 위상을 모색했던 주요한 전시로 손꼽힌다. 컴퓨터를 위시한 첨단 과학문명의 혜택 속에서 살아가는 미술가들의 감성과 미의식을 과학기술을 차용해 드러냄으로써, 미술에 있어서 매체 및 표현 영역의 확대를 실험하고 기술 진보에 의한 현대의 변화된 가치와 인식 체계의 변환을 탐색했다. 과학과 미술의 만남, 매체와 소통의 관계, 변화된 환경과 인간의 정서 등의 주제를 점검하는 한편, 첨단 과학 기술에 대한 타성적 태도를 비판하는 동시에 이에 대응해 발 빠르게 동화되어 가는 우리 시대 문화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장소: 금호미술관 / 기간: 1992. 7. 4 ~ 7. 23
1부(7. 4 ~ 7. 13): 김훈, 백광현, 신진석, 안수진, 정회진, 홍성도
2부(7. 14 ~ 7. 23): 공성훈, 김명혜, 김영진, 문주, 육태진, 이상윤
PART3 작품 재제작 또는 기록
90년대 미술의 특성 중 하나는 바로 회화 중심에서 벗어나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의 새로운 매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작품이 대거 등장했던 점이다. 퍼포먼스는 일시적인 행위 이후 사라지고, 영상작품은 저장 기술의 변천에 따라, 설치 작품의 경우 큰 규모 때문에 그 보관이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제약이 따른다. 이러한 작품들 중 상당수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전시를 위해 많은 참여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재제작하거나, 과거 작업을 담은 영상 기록물을 선보인다. 이와 더불어, 한 세대를 건너뛴 후배작가 Sasa[44], 김익현, 최윤, 김영은이 한국 미술에 있어 동시대성이 발현했던 90년대에 대한 자료들을 새롭게 재구성, 재해석한 아카이브 작품들이 전시장에 함께 구성된다.
이불
1987년 ‘뮤지엄’의 창립 멤버로 참여한 이불(1964~)은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돌연변이 생명체 같은 의상조각을 입고 열흘 동안 거리를 헤맨 초기 퍼포먼스 <수난유감 - 당신은 내가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줄 알아?>(1990)을 영상을 통해 소개한다. 이와 더불어, 퍼포먼스에서 작가가 입었던 의상이자 ‘부드러운 조각’인 <무제(크레이빙 레드)>(1988)도 함께 전시된다.
이재용
최근 <죽여주는 여자>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영화감독 이재용(1966~)은 1994년 최정화, 오형근 등과 함께 1994년 6월 9일 700여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하루 24시간 동안 펼쳐지는 서울의 다양한 풍경을 담아내는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안타깝게도 예산 부족으로 편집 중에 중단됐던 영상은 10년만인 2004년에 완성되어 <한 도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김성배
독학으로 미술을 배우며 비주류의 길을 걸어온 김성배(1954~)는 1990년부터 작가들에 의해 운영되는 대안적인 성격의 소나무갤러리를 운영하며 뮤지엄, 황금사과, 서브클럽 등의 신세대 소그룹들의 주요 전시들을 개최했다. <김-먹을 수 있는 평면>(1987)은 실제로 먹을 수 있는 김을 이어 붙여 만든 설치 작업으로 원래는 평면처럼 벽에 설치되는 대형 설치 작업이다.
이상현
이상현(1954~)의 <떠오르는 지구달>은 우주와 행성, 그리고 인류의 희망에 대한 그의 일관된 관심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지구문명이 최후를 맞았을 때 살아남은 소수의 지구인들이 숨겨져 있던 지구달을 이용해서 외계의 생명체와 교신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거대한 프로젝트의 모형이다.
공성훈
공성훈(1965~)의 <예술은 비싸다>는 1992년 《가설의 정원》전의 입구에 설치되었던 작품으로 “입장료를 넣어주십시오”라는 초기 화면으로 시작해서 관람객이 입장료를 투입하면 "예술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지금 보신 것이 과연 예술일까요?"에 대한 예/아니오의 답을 선택하도록 했다. 예술의 가치 중에서도 그동안 터부시 되어왔던 금전적 가치와 예술과의 관계, 예술 작품의 범주 등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윰
1995년 퍼포먼스, 영상, 사운드, 설치를 결합한 데뷔전 《빨간 블라우스》를 통해 주목을 끈 이윰(1971~)은 주인공 ‘빨간 블라우스’가 현실세계에서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초대하여 그들의 잃어버린 꿈과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내용의 동명 소설의 내러티브를 이번 전시에서 디지털 기술로 새롭게 재현한다.
박혜성
박혜성(1968~)은 1990년대 특정한 소그룹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OFF & ON》, 《쑈쑈쑈》, 《뼈-아메리칸 스탠다드》 등 일련의 기획전에 함께 참여하면서 신세대 미술가로 주목을 받았다. <나는 너의 침대를 사랑한다 – 비누 비너스>(1994)는 욕조 안에 비누로 만들어진 비너스를 만들고 녹이는 퍼포먼스를 통해 성과 상품, 미와 소비, 불변과 가변의 관계항들이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휘발되는지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PART4 90s카페의 재구성
이형주의 <기억채집>
1990년대 미술은 음악, 문학, 무용, 퍼포먼스, 영화,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들이 함께 예술적 에너지를 교환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언더그라운드 카페는 90년대 신세대 미술가들의 주요한 활동 무대이자 미적 감수성을 형성했던 공간이었다. 도시 상업 공간으로서 본래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비주류 문화 공간으로서의 특색을 유지했다. 특히 예술가들이 직접 운영했거나 디자인에 참여했던 이 카페 공간은 이벤트 카페, 퍼포먼스 바, 라이브 클럽 등의 이색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일종의 대안적 문화의 산실로 기능하기도 했다. 이 전시를 위해 작가 이형주가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서 90년대를 대표하는 언더그라운드 카페들을 편집적으로 재구성한다. 일렉트로닉 카페(1988), 올로올로(1991), 스페이스 오존(1992), 발전소(1992), 곰팡이(1995)가 하나의 공간을 이루는 이곳은 이형주의 기억의 공간이자 90년대 카페를 공유하는 집단적 환기의 장소이다.
관련 행사
학술심포지움: 1990년대 이후 - 동시대미술 읽기
일시: 2016.12.14. (수) 오후1시-6시
현대미술포럼 공동주최
도슨트 시간
12월 : 화-일 오후2시
1월~2월 : 화~일 오후2시, 오후4시
참여작가
이불 고낙범 이형주 강홍구 정승/샌정(뮤지엄)
서브클럽, 진달래, 김미경 염주경 하민수(30캐러트)
금누리 안상수 김성배 오경화 윤동천 이상현 박혜성 이동기 이윰 이재용 / 공성훈 문주 안수진 홍성도 / 박불똥 조경숙 정기용 / Sasa[44] 김영은 김익현 최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