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세 개의 거울’이 있다.
기호화된 인격체 ‘동구리’가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권기수 회화는 먹으로 그리는 대나무, 곧 전통 묵죽墨竹 따위를 현재로 되비쳐내는 반사 Reflection다. 그의 대나무는 동아시아에서 두 천년 가까이 문인과 화가들 손끝과 의식 속에서 성장해온 묵죽을 현대 미학으로 재구성하여 창조해낸 산물이다. 고래의 묵죽이라는 의복을 벗어버린 권기수의 대나무는 형형색색 작가가 직접 배합한 양화洋畵 물감을 서슴없이 사용하되 전통의 구성과 사유를 모던하게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일찍이 없던 시도이자 성과다. 먹으로 그린 대나무에서 청량한 기운과 선비 기상이 풍겨 나온다면 귄기수 대나무에서는 현대의 고독과 비애와 관조가 현란하게 조형화되고 있다. 이번에 그가 내놓은 작품은 대나무 작업을 잇는 파초 연작이다. 권기수 2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파초가 어떻게 자리를 잡고 잎이 새로 피어나는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터이다.
권순영 회화는 한국 회화에 부재했던 익명의 슬픔과 고통을 ‘나의 황홀경’으로 표현해내는 내면의 반사다. 그는 자기 안에 오래도록 고여 있거나 꿈틀거리는 감정들을 드러내고자 바깥 사물들을 차용할 따름이다. 여느 회화와 달리 그에게 사물은 목적이 아니다. 권순영의 작업은 명백히 액체다. 응고할 수 없는 불안과 번민이 떠돌면서 형태를 만들어낸 뒤 곧 꺼져 내릴 것처럼 화폭에 자리하고 있다. 자의식, 내면 따위로 부르는 근대 이래 포착해온 개인의 감정 덩어리들이 그에게는 살아있는 실체이자 사물들이다. 지난 백 년 넘는 근대 한국사회의 고독이 마침내 권순영의 떠도는 불안 한 점을 얻었다고나 할까. 개인의 감정 안쪽을 집요하고도 철저히 천착하고 있는 작가가 권순영이다. 그의 작업 덕분에 개별화된 채 떠도는 우리 안에 생동하는 부재不在들은 가까스로 하나씩 이름을 얻어가고 있다. 권순영의 회화에서 나를 발견해내는 일은 행복한 불행이거나 불행한 행운이다.
유재연의 피스 페인팅 Piece-painting은 물질사회의 풍요 속 산책자Promenade를 우울한 블루를 통해 유쾌하게 반전시켜내는 반사다. ‘Piece-painting’이란 작가 스스로가 자기 작업 형식에 붙인 이름이다. 어떤 미술 권력이나 장르를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작업을 말하기 위한 발상일 뿐이다. 그의 작업들은 필시 우울하지만 필연코 유쾌하다. 둘은 함께 어우러지기 어려운 모순 관계임에도 이 작가에게 와서 아무 탈 없이 섞여 들고 있다. 우울을 그저 칙칙하게, 유쾌함을 곧장 밝게 담아냈다면 한낱 진부함을 넘어서기는 어렵다. 유재연은 모순 사이로 길항拮抗하면서 질주해가는 작업을 하는 작가다. 이는 작가의 삶뿐 아니라 오늘날 물질사회가 품고 있는 풍요와 그늘, 상처와 무심함이 함께 일상에서 작용하고 있기에 비로소 가능한 작업이다. 그의 작업은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러 감정과 가치들 사이를 걷는다. 도회 산책자다. 이 산책은 타자화된 세계를 통해 끊임없이 자기를 묻는 과정이기도 하다. 쓸쓸함이 도리어 따뜻하다고나 해야 할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는 그 중심을 관통해가고 있다. 유재연이 스치듯 그려내고 있는 청색 도회 말이다.
그림은 시대의 거울이다. 오늘 회화는 우리네 삶을 어떻게 반사시켜내고 있는가. <반사된 세 장면 Reflection of the Three>은 전통과 내면과 현재를 투사하고 있는 거울이다. <반사된 세 장면 Reflection of the Three>은 질문하고 있다. 오늘을 살고 있는 ‘나’는 어떤 거울인가. 또 ‘나’는 어떤 거울을 보고 있는가.
서마립(예술비평가)
참여작가: 권기수, 권순영, 유재연
출처: 프로젝트 스페이스 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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