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스프로젝트 서울은 레베카 애크로이드(b. 1987, 영국 첼튼엄)의 개인전 《Fertile Ground》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애크로이드가 페레스프로젝트와 함께하는 세 번째 개인전이자, 아시아에서의 첫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녀의 올해 최신작으로 회화 7점과 조각 작품 2점을 선보인다. 그녀는 런던의 한 건설 현장과의 조우를 얘기하며 이번 전시에 대한 운을 뗀다. 작가는 지면으로 나 있는 틈 깊숙한 너머 계획적인 구조로 짜 맞춰진 금속과 파이프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시스템을 포착하여, 그로부터 잠재의식의 구조와 기억 깊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작용을 탐구하고자 한다.
석재, 콘크리트, 강철로 이루어져 있어 육중한 무게로 중심을 잡은 채 우뚝 서 있는 현장의 건축물과 대조적으로, 애크로이드의 작품은 마냥 안정적이라고 볼 수 없다. 한없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배수구, 그리고 볼트와 너트같이 일상적이고 가정적인 주제들은 초현실적으로 표현되어 이들이 갖는 고정적인 의미를 지워내고 있으며, 장밋빛을 이루는 색채로 당연시되곤 하는 붉은색, 분홍, 초록, 그리고 주황색으로 가득 찬 화면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어딘지 모를 묘한 분위기와 애매한 감정에 휩쓸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마치 우리를 정신 속 깊은 곳으로 이끄는 듯한 나선형 패턴이 반복된다. 이 시각적인 상징성은 애크로이드가 계속해서 탐구해 오던 정신분석학, 그리고 기억과 그 대상 간의 변증법적인 관계로부터 얻은 영감이다. 작품에서 중점적으로 느껴지는 긴장감은 현재에서 과거를 반복하는 것과, 기억이 가진 단편적이고 단정 짓기 어려운 특성에서 파생된다. 이러한 기억은 거듭 되풀이되면서 왜곡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기억이 어떻게 잠재의식의 구조와 현재의 기반을 지탱하는지를 고민한다.
전시 제목과 동명의 조각 작품 <fertile ground>(2022)는 애크로이드 자신을 모델로 하여 어머니의 부츠를 신고서 에폭시 레진으로 본을 딴 것이다. 몸통과 다리가 분리된 채 철창 구조물의 위와 안쪽에 각각 위치해 있으며, 원형의 톱날들 또한 내외부에 각각 위치한다. 분리된 반투명한 신체 형상들은 파편화되어 있으며 거친 가장자리는 마치 유령처럼 스산한 느낌을 풍기는 듯하다. 작가가 작업 시 착용했던 1960년대 부츠는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활성화, 그리고 작품 속 공존하고 있는 현재와 과거에 대한 시간적 압축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세대 간 대화는 시간을 바라보는 또 다른 태도에 대한 제스처로써, 어떻게 시간의 구애를 받는 신체가 임신과 출산을 통해 시간을 지속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자기 반영적인 작가의 작업은 창조적인 표현과 잠재의식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된다. 그녀가 자신의 경험에 얽매여 있는 동안, 그녀의 작업은 창의적인 과정 속에서 자발성과 자유로움을 반영하며 점점 발전한다. 작품이 점점 더 개인적이고 취약해질수록, 작품에 담긴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 변화하는 시간의 성질은 더욱 짙어져 간다.
레베카 애크로이드 Rebecca Ackroyd
b. 1987, 영국(런던・베를린 거주 및 작업)
애크로이드의 몽환적이고 허구적인 풍경들은 성별과 금기가 존재하지 않는, 마치 종말이 도래한 듯한 환상과 유사하다.그녀는 조각과 설치, 회화를 넘나들며 야생과 가정 공간, 파멸과 위축, 욕망과 혐오를 탐구한다. 집과 같은 개인적인 기억을 다루면서도, 동시에 21세기에 영국의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작품들은 이동 또는 추방, 여성과 신체를 주제로 하며, 전시될 공간과의 관계까지 고려되어 완성된다.
조각 작품들이 다양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는 모호한 성별의 인물들을 보여준다면, 회화 작품들은 더 단순하고 딱딱하며, 추상적이고도 산업적인 표현으로 여성과 여성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성성에 대한 대립과 생동감, 연약함과 약간의 분노를 표현한 화면 속에는 일종의 ‘비명’이 담겨있다. 애크로이드의 작업은 여성성에 관한 자신의 고민과, 여성들이 표현하기 어려운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이다.
애크로이드는 페레스프로젝트에서의 《The Mulch》, 폴 럭크래프트(Paul Luckraft)가 기획한 영국 런던의 자블루도비치 컬렉션(Zabludowicz Collection)의 《The Root》 등 전 세계적으로 개인전을 개최해왔다. 그녀는 2019년 프랑스 파리의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기획팀이 주관하는 제15회 리옹 비엔날레에 참가했으며, 2020년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폰다지오네 포모도로(Fondazione Pomodoro)에서 클로에 페론(Cloe Perrone)이 기획한 개인전 《Underfoot》을 선보였다. 작년에는 페레스프로젝트에서의 두 번째 개인전 《100mph》를 개최했다. 그룹전으로는 이탈리아 브레시아의 갤러리아 마시모 미니니(Galleria Massimo Minini)에서 열린 《cadavre exquis》, 프랑스에 위치한 파리 세르지 보자르(Ecole Nationale Supérieure d’Arts de Paris-Cergy) 이그렉 개러리(Ygrec Gallery)에서 열린 《Masters and Servants》, 영국 러그비 아트갤러리&뮤지엄(Rugby Art Gallery and Museum)에서 사라 홀더웨이(Sarah Holdaway)가 기획한 《Act 1: Body en Thrall》, 그리고 프랑스 옥시타니 지역 현대미술센터(Centre Régional d’Art Contemporain Occitanie)에서 타라 론디(Tara Londi)가 기획한 《Mademoiselle》에 참여했다. 현재 독일 하노버의 케스트너 게젤샤프트(Kestner Gesellschaft)에서 2023년에 개최될 예정이자 아담 부다크(Adam Budak)가 기획을 맡은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오는 9월, 키아프 참가와 더불어 페레스프로젝트 서울 공간에서 개인전 《Fertile Ground》을 선보일 예정이다.
출처: 페레스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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