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1은 2020년 7월 7일부터 8월 15일까지 기획전 《서러운빛 Haven of Light》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독립기획자 장혜정의 기획으로, 제 몸을 갖지 못한 그래서 나타남과 사라짐을 동시에 수반한 대상을 오랜 시간 바라보고 기억하는 태도를 공유하는 작가 권현빈, 오종, 한진이 참여하고 이들의 태도와 결과물은 무형의 것이 머물 수 있는 은신처를 제공하는 행위로 해석되며 함께 놓인다.
작은 가지 끝 마디마디도 선명해지는 한낮부터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한밤에도 빛은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서럽게도 빛은 제 몸을 갖지 못했는데, 우리는 무엇으로 이 무형의 존재를 보는 걸까. 어쩌면 그것은 비어있는 시간일 수 있다. 《서러운빛 Haven of Light》의 권현빈, 오종, 한진은 나타나면서 사라지고 마는 무형의 존재들을 머물게 하기 위해 나타남의 순간을 복기한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시차는 우리가 알아야 하는 중요한 공백이 된다.
하늘을 톡톡 치는 분수의 꼭대기를 생각한 기존 작업이 그랬듯, 권현빈은 대상의 가시적인 현재의 상태를 가능성 응축된 하나의 기점으로 바라보고 그것과 연결된 또 다른 영역과 시간을 상상한다. 권현빈은 작업실에 앉아 무심히 놓인 돌 위에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빛과 구름의 그림자를 바라보거나 혹은 그 돌이 떨어져 나오기 전에 가졌을 더 큰 덩어리 등을 그려본다. 그리고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순간들과 존재를 새겨낸다. <모두-하나 그리고 빛>(2020)에는 돌이 품고 있었던 수많은 가능성과 순간들이 한발 늦게 그러나 단단하게 새겨져 있다.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방식으로 소멸하는 것들을 붙잡으려 애쓰는 한진은 유실의 서러운 숙명을 인정한 채 더 오래 기억하는 길을 택한다. 한진은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주워 붓 대신 사용하여 겹겹의 공기로 화면을 채우는 동안(<바람의 노래 #1>(2012)), 이쑤시개로 얹히듯 혹은 찌르듯 소금처럼 빛나는 밤의 빛을 그리는 동안(<스민 밤 #1>(2016)), 그리고 빗줄기로 또는 눈물로 흩어지고 흐려진 풍경을 문지르듯 더듬어내는 동안(<흩 #1>(2016), <밤의 소절 #2>(2015)), 끊임없이 사라지는 대상을 생각하고 감각한다. 그렇게 한진의 시간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화면은 그 앞에 머물며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시계 태엽을 되감듯 점점 더 가까운 풍경이 된다.
가느다란 실, 미세한 광택을 가진 안료, 약간의 무게를 지닌 체인 등 가장 최소한의 제스처로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희미한 존재들이 비로소 나타나게 하거나 다시 사라지는 순간을 유예시키는 오종은 오랫동안 한 공간에 머물며 발견된 내부의 건축적 구조, 그림자나 모서리 등을 축으로 삼아 서로를 잇는 가상의 선을 그린다. (2020)에서 오종이 그린 선들은 P21의 공간에 시시각각 다르게 새어 들어오는 빛과 공간을 가득 메우는 공기를 바라보게 하고, 권현빈과 한진의 작업 사이의 분리된 시간과 기억을 희미하게 잇는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공백은 이미 사라진 것의 은신처가 된다.
장혜정 (독립기획자)
참여작가소개
권현빈(b. 1991)은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조소과 석사를 졸업하였다. 개인전 《피스 piece》 (에이라운지, 서울, 2019), 《편안한 세상 속에서》 (레인보우큐브갤러리, 서울, 2019)를 가졌고, 《블라인드 스팟》 (A.ROUND, 부산, 2020), 《두산아트랩》 (두산갤러리, 서울, 2019), 《세 번 접었다 펼친 모양》 (브레가 아티스트 스페이스, 서울, 2018)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오종(b. 1981)은 2008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 2011년 뉴욕 SVA Fine Arts 석사를 마쳤다. 개인전 《Sunstone》 (Sabrina Amrani Gallery, 마드리드, 2019), 《주고받는 모서리》 (서울시립미술관 프로젝트 갤러리, 서울, 2018), 《Windward》 (Jochen Hempel Gallery, 베를린, 2018), 《AIR》 (Krinzinger Projekte, 비엔나, 2015) 등을 개최했고, 단체전 《기하학, 단순함 너머》 (뮤지엄 산, 원주, 2019), 《Every Day Is A Good Day》 (Spiral, 도쿄, 2018),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 (아트선재센터, 서울, 2018), 《Sculpting With Air》 (DeCordova 미술관, 보스턴, 2018) 등에 참여하였다. 현재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거주한다.
한진(b. 1979)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사와 전문사를 졸업했다. 개인전 《흑빙》 (갤러리 조선, 서울, 2018), 《White Noise》 (아트 스페이스 풀, 서울, 2016), 《아득한 울림》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15), 《dim. Garden》 (DM 갤러리, 서울, 2011) 등을 개최했고, 이인전 《회색의 바깥》 (아트 스페이스 풀, 서울, 2014) 을 포함하여, 《용기와 시》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2019), 《The Conversation》 (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 2018), 《이면 탐구자》 (경기도미술관, 안산, 2017), 《Art 50*50》 (아트선재센터, 서울, 2016), 《Drawn to Drawing》 (KAZE, 오사카, 2013) 등 다수의 단체전에서 선보였다.
참여작가: 권현빈,
오종, 한진기획: 정혜정
출처: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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