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를 호령하던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실이라는 성주가 폐위됐다. 고전적인 인식론과의 단절을 드러내는 것으로 제시된 개념인 포스트-진실은 사전적으로는 ‘정서적이고 개인적인 믿음에의 호소가 객관적 사실보다 여론을 형성하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가리킨다. 새로이 도래한 이 포스트-진실의 시대에 더 이상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세계를 지배하던 거시적 이데올로기는 미시적인 수준에서 전염되고 변이하는 바이러스성 밈들로 대체되었다.
고전적 인식론의 성의 폐허에 모호하고 불확실한 다수의 가능한 진실들의 캠프가 지어진 것이다. 집단적 차원에서의 공포나 불안과 같은 강렬도(Intensity)로 뼈대를 갖추고,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믿음으로 천을 두른 게르들. 여러 미디어가 통치 기관이나 IT 기업에 부착하는 부정적 이미지 - 대중에게 결코 공개할 수 없는 비윤리적이고 기만적인 프로젝트들을 서로 공모하여 진행하고 있다는 - 는 공식적으로 제공되는 지식과 정보에 대한 의심을 촉발하는 동시에 그러한 정보를 유포하는 주체에 의해 우리의 사적 데이터들이 늘 관음당하거나 통제된다는 불안을 확산시킨다. 더 나아가 이는 권력을 가진 주체들이 우리의 삶 전반을 일방적이고 지속적으로 해하고 억압한다는 극단적인 망상을 키워내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편집증적 망상이 2세기 전 유럽의 성주를 폐위시키는 데 강력하게 일조한 니체가 제기한 개념인 르상티망(Ressentiment)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이다. 강자인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그들을 단죄함으로써 약자인 ‘우리’를 정화하고자 하는 손쉬운 해결책이 그것이다. 이러한 르상티망으로부터 비롯되는 선동은 반대 진영이 있을 때에만 성립가능하다. 선동의 주체는 이 군집에서 가해자들을 선정하여 무대 위에 올리고 사람들의 정서적 원한과 분노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정치적 힘을 행사한다. 무대의 규모가 클수록 정치는 효과적이다.
선동, 가짜뉴스 그리고 음모론과 같은 편집증 기계는 동일성의 차원에서 군집들을, 거대한 그램분자적(molar) 집합들을 다룬다. 이것은 과거에 일어난 특이적인 사건들을 적분하고 분자적인(molecular) 욕망의 생산들을 통계적 구성체, 사회체의 형식에 종속시킨다. 분자적인 욕망의 생산에 대한 반작용이기에 그램분자적 생산들은 언제나 이차적이다. 본질적인 생산이 실행된 이후에야, 특이적인 사건 -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는지와 상관없이 - 이 발생한 이후에야 적분이 가능하고 사후적으로 가능세계를 가정할 수 있기에 이곳에선 우연한 잠재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본 전시는 1950년대 미국 CIA가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생체실험인 MK-Ultra 작전의 공개로 파생된 ‘마인드 컨트롤’ 음모론과 미국 환경부의 클라우드 씨딩(Cloud Seeding) 인공강우 실험으로부터 비롯된 ‘켐트레일(Chemical Trail)’ 음모론을 주제로, 현실에 대한 불안과 의심이 편집증 기계를 작동시키는 과정을 가시화한다. 두 개의 작품은 각각 관찰자가 전파 무기를 작동시키는 가해자가 되는 가상의 조건과 작가의 사적 데이터에 침입하는 물리적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편집증 기계의 작동 궤적을 감각하도록 유도한다. 전시장은 과거의 정보와 사건들을 적분하여 가능한 진실들을 생산해내는 편집증 기계의 몸을 은유하고, 관찰자의 신체는 이러한 가상의 유기체의 내부 기관으로 이식된다. 작품의 설정은 관찰자의 신체에 우발적으로 침투하여 고전적 인식론 체계에 균열을 만들고 가능하고도 모호한 다중의 진실들을 중첩시킨다.
글_조아란
참여작가:
한하예닮비평:
윤태균 본
전시는 한하예닮 작가의 인터랙티브 설치물과 함께 윤태균 기획자의 비평글이 설치되어 있습니다.서문:
조아란포스터:
최연훈사운드테크니션: 신승재
출처: 옥상팩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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