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1994)의 국내 최초 가구 전시 <Donald Judd: Furniture>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그의 디자인 가구를 비롯해 판화 및 드로잉 작품을 선보이고 단순한 형태, 반복, 색채와 재료의 물성을 탐구하며 예술·건축·디자인을 넘나든 급진적인 실천을 조명한다. 현대카드는 도널드 저드의 미니멀 철학에 주목하며 2020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최된 그의 대규모 회고전 <Judd>를 후원한 바 있으며, 이번 전시는 이러한 관심의 연장선으로서 저드 재단(Judd Foundation)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실현됐다.
전시장에서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작가가 나무, 금속, 합판으로 제작한 가구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으며, 실제 생활하고 작업했던 공간을 연상시키는 네 개의 공간으로 구성돼 그의 삶과 예술이 맺은 긴밀한 관계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1970년대 초 도널드 저드는 뉴욕 101 스프링 스트리트에 있는 자신의 거주 공간을 위해 가구 디자인을 시작했으며, 그의 첫 번째 작품은 나무 침대와 금속 세면대였다. 이후 1977년에는 텍사스 마파(Marfa)의 새로운 거주 공간에 구비할 가구의 필요성으로 다시 디자인에 착수했다. 1984년까지 그는 침대, 책상, 벤치, 의자, 선반 등 다양한 목재 가구를 디자인했으며, 의자, 벤치, 침대, 테이블을 포함한 금속 가구를 선보였다.
1984년부터 1993년까지는 새로운 가구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으며, 특히 1991년에는 합판 가구를 도입했다. 이 시기 그는 가구 디자인, 제작, 판매, 유통에 관한 자신의 접근 방식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해 글로 남기고자 했다. 가구 디자인에서 핵심적인 요소는 각 작품의 치수, 재료의 종류, 제작·마감 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인 사양 지정이었다. 그는 제작에 지역 목수와 숙련된 장인의 전문적인 수작업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고려해 높은 품질을 유지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도널드 저드는 자신의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는 제작자를 직접 선정해 함께 작업하며 원하는 수준의 품질을 개발·정제해 나갔다.
이번 전시에서는 텍사스 마파에 위치한 저드 재단의 소장품 가운데 판화와 드로잉 자료들을 소개한다. 실크 스크린과 목판화 기법으로 제작된 1970~1990년대 판화는 회화와 입체 작품에서 다루던 형식과 색채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을 나타낸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1980~1990년대의 드로잉은 나무, 금속, 합판 등 다양한 재료의 개념과 용도를 보여 주며, 일부는 이번 전시에 출품된 가구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그에게 드로잉은 사고의 도구이자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정이었으며, 작품의 변형을 구상하거나 완성된 설계도를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마자막으로 전시장을 가로지르는 중앙 계단부에는 저드의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여덟 권의 아카이브 서적이 전시된다.
도널드 저드는 40년에 걸쳐 애쿼틴트, 에칭, 실크 스크린 등 다양한 기법으로 수백 점의 판화를 제작했으며, 그중에서도 목판화를 주요 매체로 삼았다. 회화와 입체 작품에서 다루던 형식과 색채에 대한 문제들을 판화에서도 깊이 탐구했다. 뉴욕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판화 기법을 공부했으며, 1951년부터 자신의 첫 번째 판화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석판화를 작업했지만 1953년부터는 목판화를 주요 작업 매체로 삼았다. 그는 재현적인 형상에서 벗어나 곡선에서 직선으로의 선, 반복, 형태, 색채 등을 활용했다. 평행 사변형과 같은 도형을 조각, 목판화, 에칭, 애쿼틴트, 실크 스크린 등 다양한 기법으로 실험 및 제작했다.
1960~1970년대에는 단색 판화 시리즈에 집중했다. 1986년에는 갈색,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의 직사각형 색면이 인쇄된 4점의 목판화 세트를 제작했는데, 이는 여러 색을 포함한 최초의 시리즈였다. 각 작품은 60 x 80cm 크기로, 그가 이후 꾸준히 다룬 3:4 비율을 따랐다. 1992~1993년 제작돼 이번 전시에 출품된 <무제>를 비롯해 그의 후기 판화 다수는 1986년 처음 도입된 중앙 색면 직사각형의 형식적 실험을 기반으로 발전해 나갔다.
도널드 저드에게 드로잉은 사고의 방식이자 가능성을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때문에 드로잉은 독립적인 작품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드물었으며, 주로 선을 그어 그 구상이 타당한지 확인해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됐다. 초기에는 고전적으로 훈련받은 제도사로서 드로잉을 했으나, 작품을 입체의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이는 더욱 단순화돼 구상 중인 여러 변형들을 스케치하거나 실제 제작될 작품을 도면으로 그려 내는 정도로 활용됐다. 이번 전시를 통해 도널드 저드가 실천해 온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세계를 만나 보자.
참여작가: 도널드 저드
출처: 스토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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