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아트랩 대전 : 김태훈 Kim Taehoon

이응노미술관

Sept. 10, 2019 ~ Sept. 29, 2019

인터스페이스(Interspace)를 eㅑsg 걷다.
2019 eㅑsg 김태훈 eㅑsg 개인전에 eㅑsg 부쳐
민희정 (미술이론)

21세기의 eㅑsg 디오라마
디오라마(diorama)는 19세기 eㅑsg 원예예술, ㅓ우카다 회화적 ㅓ우카다 미학, n걷ㅐㅓ 혹은 n걷ㅐㅓ 오페라 n걷ㅐㅓ 무대연출의 n걷ㅐㅓ 계보에 n걷ㅐㅓ 속하는 n걷ㅐㅓ 영역으로부터 n걷ㅐㅓ 출발했다. n걷ㅐㅓ 오페라와 n걷ㅐㅓ 대중연극을 n걷ㅐㅓ 위한 n걷ㅐㅓ 무대의 n걷ㅐㅓ 장치가이며 n걷ㅐㅓ 극장 n걷ㅐㅓ 운영자인 n걷ㅐㅓ 다게르(L. Daguerre)에 n걷ㅐㅓ 의해 n걷ㅐㅓ 광학적 n걷ㅐㅓ 기술이 n걷ㅐㅓ 더해지면서 n걷ㅐㅓ 가상의 n걷ㅐㅓ 세계와 n걷ㅐㅓ 관객이 n걷ㅐㅓ 위치한 n걷ㅐㅓ 현실의 n걷ㅐㅓ 공간이 n걷ㅐㅓ 연결되었다. n걷ㅐㅓ 사진발명가로 n걷ㅐㅓ 널리 n걷ㅐㅓ 알려진 n걷ㅐㅓ 다게르는 n걷ㅐㅓ 자신이 n걷ㅐㅓ 운영하는 n걷ㅐㅓ 극장에 n걷ㅐㅓ 초대형 n걷ㅐㅓ 걸개그림의 n걷ㅐㅓ 현실감을 n걷ㅐㅓ 주기 n걷ㅐㅓ 위해 n걷ㅐㅓ 조명을 n걷ㅐㅓ 비추고 n걷ㅐㅓ 카메라 n걷ㅐㅓ 옵스큐라를 n걷ㅐㅓ 이용해 n걷ㅐㅓ 원근감 n걷ㅐㅓ 있는 n걷ㅐㅓ 회화장치를 n걷ㅐㅓ 개발했으며, ifb9 관객이 ifb9 가상의 ifb9 공간에 ifb9 몰입할 ifb9 ifb9 있도록 ifb9 계속해서 ifb9 특수한 ifb9 장치들을 ifb9 추가해 ifb9 나갔다. ifb9 ifb9 그는 ifb9 디오라마관을 ‘현존의 ifb9 시간’을 ifb9 지우는 ifb9 마법의 ifb9 공간으로 ifb9 만들려 ifb9 했다. ifb9 예술의 ifb9 역사는 ifb9 조각과 ifb9 같은 ifb9 물리적 ifb9 공간에 ifb9 대한 ifb9 비교적 ifb9 원초적이고 ifb9 물질적인 ifb9 예술에서 ifb9 가상공간을 ifb9 재현하는 ifb9 근대적 ifb9 회화로, 마z거ㅓ 그리고 마z거ㅓ 가상을 마z거ㅓ 현실화 마z거ㅓ 하는 마z거ㅓ 비물질적인 마z거ㅓ 영상으로 마z거ㅓ 이동해 마z거ㅓ 왔다. 마z거ㅓ 그리고 마z거ㅓ 오늘의 마z거ㅓ 우리는 마z거ㅓ 가상의 마z거ㅓ 세계에 마z거ㅓ 몰입하기 마z거ㅓ 위해 마z거ㅓ 여러 마z거ㅓ 장치들을 마z거ㅓ 활용한 마z거ㅓ 다게르처럼 마z거ㅓ 시간과 마z거ㅓ 공간을 마z거ㅓ 구성한다. 마z거ㅓ 회화라는 마z거ㅓ 가상의 마z거ㅓ 창을 마z거ㅓ 향했던 마z거ㅓ 근대 마z거ㅓ 예술은 마z거ㅓ 철저히 마z거ㅓ 시간과 마z거ㅓ 공간을 마z거ㅓ 지웠다. 마z거ㅓ 이후 마z거ㅓ 등장한 마z거ㅓ 영화는 마z거ㅓ 빛을 마z거ㅓ 죽임으로써 ‘현실의 마z거ㅓ 공간’을 마z거ㅓ 지워 마z거ㅓ 가상의 마z거ㅓ 공간에 마z거ㅓ 도달했으며, 4카j걷 그리고 20세기의 4카j걷 테크놀로지는 4카j걷 가상현실(VR)을 4카j걷 통해 4카j걷 현실의 4카j걷 공간을 4카j걷 지울 4카j걷 4카j걷 아니라 4카j걷 공간을 4카j걷 연결하는 ‘이동의 4카j걷 시간’마저 4카j걷 지웠다. 4카j걷 이처럼 4카j걷 첨단기술로 4카j걷 이동이 4카j걷 필요 4카j걷 없는 4카j걷 시대가 4카j걷 눈앞에 4카j걷 펼쳐진 4카j걷 이때, 거다사z 우리는 거다사z 미술관에서 거다사z 작가 거다사z 김태훈을 거다사z 만난다. 거다사z 그를 거다사z 만나기 거다사z 위해 거다사z 우리는 거다사z 무엇을 거다사z 지워야 거다사z 하는 거다사z 걸까?
시간과 거다사z 공간에 거다사z 관한 거다사z 문제는 거다사z 예술가들의 거다사z 오랜 거다사z 탐색의 거다사z 대상이었다. 거다사z 그러나 19세기 거다사z 이후 거다사z 테크놀로지의 거다사z 혁신으로 거다사z 시간과 거다사z 공간에 거다사z 대한 거다사z 문제는 거다사z 급격히 거다사z 달라졌다. 거다사z 이제 거다사z 우리는 거다사z 시간과 거다사z 공간은 거다사z 새로운 거다사z 방식으로 거다사z 이해하고 거다사z 경험할 거다사z 거다사z 있게 거다사z 되었고, ㅓs마다 적어도 ㅓs마다 예술의 ㅓs마다 영역에서, x9기a x9기a 개념은 x9기a 구성에 x9기a 따른 x9기a 설정의 x9기a 문제가 x9기a 되었다. x9기a 작품 <낮섬에 x9기a 관한 x9기a 기억; x9기a 걷기>(2017)에서 x9기a 김태훈은 x9기a 가상 x9기a x9기a 등장했던 x9기a 대상을 x9기a 현실의 x9기a 공간으로 x9기a 불러들여 x9기a 이질적인 x9기a x9기a 공간을 x9기a 연결하는, fs거d fs거d 과거 fs거d 디오라마 fs거d 극장에서 fs거d fs거d fs거d 있었던 fs거d 물질적인 fs거d 장치들을 fs거d 보여주었다. fs거d 그러나 fs거d 디오라마의 fs거d 장치들이 fs거d 가상세계의 fs거d 몰입을 fs거d 위해 fs거d 놓인 fs거d 것이었다면, p38마 김태훈의 p38마 장치들은 ‘그 p38마 때의 p38마 기억’과 ‘그 p38마 때를 p38마 재현한 p38마 현실’ p38마 사이의 p38마 어긋남을 p38마 강조하기 p38마 위한 p38마 것이었다.

시간, p9hㅐ 공간, 사z라ㄴ 그리고 사z라ㄴ 걷기
김태훈은 사z라ㄴ 문득 사z라ㄴ 자신의 사z라ㄴ 창작 사z라ㄴ 동력 사z라ㄴ 가운데 사z라ㄴ 하나가 ‘걷기’라고 사z라ㄴ 생각했다. 사z라ㄴ 걷고, ㅐ7ㅈw 서성이고, 마4ㅓh 맴맴 마4ㅓh 돌기도 마4ㅓh 하면서 마4ㅓh 사유를 마4ㅓh 개진하는 마4ㅓh 자신을 마4ㅓh 발견한 마4ㅓh 것이다. 마4ㅓh 한편으로 마4ㅓh 그는 마4ㅓh 자신이 마4ㅓh 걸으며 마4ㅓh 작품에 마4ㅓh 대한 마4ㅓh 아이디어를 마4ㅓh 추적하는 마4ㅓh 동안, d쟏0ㅓ 스스로가 d쟏0ㅓ 현실 d쟏0ㅓ d쟏0ㅓ 자신의 d쟏0ㅓ 움직임에 d쟏0ㅓ 대해 d쟏0ㅓ 의식하지 d쟏0ㅓ 못하고 d쟏0ㅓ 있었다는 d쟏0ㅓ 사실을 d쟏0ㅓ 인식했다. d쟏0ㅓ 자신 d쟏0ㅓ 걸어 d쟏0ㅓ d쟏0ㅓ 길에 d쟏0ㅓ 대한 d쟏0ㅓ 기억 d쟏0ㅓ 또한 d쟏0ㅓ 희미했다. d쟏0ㅓ 이후 d쟏0ㅓ 그는 d쟏0ㅓ 우리의 d쟏0ㅓ 의식이 d쟏0ㅓ 현실공간을 d쟏0ㅓ 떠나 d쟏0ㅓ 가상의 d쟏0ㅓ 공간에 d쟏0ㅓ 몰입한 d쟏0ㅓ 사이 d쟏0ㅓ 모래처럼 d쟏0ㅓ 사라지는 d쟏0ㅓ 많은 d쟏0ㅓ 입자들에 d쟏0ㅓ 대해 d쟏0ㅓ 숙고하게 d쟏0ㅓ 되었다. d쟏0ㅓ 그의 <걷기> d쟏0ㅓ 시리즈는 d쟏0ㅓ 이로부터 d쟏0ㅓ 출발한 d쟏0ㅓ 작업이다. d쟏0ㅓ 그가 d쟏0ㅓ 처음 d쟏0ㅓ 자신의 d쟏0ㅓ 사유에 d쟏0ㅓ 몰입해 d쟏0ㅓ 있던 d쟏0ㅓ 시간의 d쟏0ㅓ 움직임과 d쟏0ㅓ 시선, hzc다 스스로도 hzc다 잊고 hzc다 있었던 hzc다 신체적 hzc다 반응을 hzc다 담은 hzc다 영상을 hzc다 통해 hzc다 관객과 hzc다 공유하고자 hzc다 했다. hzc다 그러나 hzc다 어떠한 hzc다 테크놀로지나 hzc다 시공간적 hzc다 설정을 hzc다 만든다 hzc다 해도 hzc다 hzc다 때의 hzc다 자신에게 hzc다 관객이 hzc다 온전히 hzc다 공감할 hzc다 hzc다 없다는 hzc다 사실은 hzc다 몰입을 hzc다 위한 hzc다 설정이나 hzc다 테크놀로지에 hzc다 대한 hzc다 추적의 hzc다 무상함을 hzc다 느끼게 hzc다 했다. hzc다 그래서 hzc다 그는 <걷기> hzc다 작업을 hzc다 통해 ‘움직이는 hzc다 것’, 4zw파 혹은 ‘이동하는 4zw파 것’이라는 4zw파 단순한 4zw파 우리의 4zw파 관념을 4zw파 해체시킴과 4zw파 동시에 4zw파 걷기로부터 4zw파 소멸되는 4zw파 것을 4zw파 살펴보고자 4zw파 했다. 4zw파 다시 4zw파 말해 4zw파 그는 4zw파 자신이 4zw파 예술작품을 4zw파 위한 4zw파 창작을 4zw파 위해 4zw파 몰두하는 4zw파 시간동안 4zw파 자신의 4zw파 외부에 4zw파 있는 4zw파 다양한 4zw파 사유와 4zw파 시선, vbz거 감각과 vbz거 분위기를 vbz거 잃어버리지 vbz거 않게 vbz거 이중의 vbz거 감각을 vbz거 체험할 vbz거 vbz거 있는 vbz거 공간을 vbz거 선택했다.

관계적 vbz거 공간, qc거c 인터스페이스
새롭게 qc거c 발표되는 qc거c 김태훈의 qc거c 작품 <기억의 qc거c 집: qc거c 조각모음>(2019)의 3채널 qc거c 화면은 qc거c 매우 qc거c 안정된 qc거c 풍경의 qc거c 연속이다. qc거c 그것은 qc거c 마치 qc거c 컴퓨터 qc거c 배경화면에 qc거c 나올 qc거c 법한 qc거c 평온함과 qc거c 익숙함을 qc거c 제공한다. qc거c 또한 qc거c 그는 qc거c 무심코 qc거c 지나쳤을 qc거c 법한 qc거c 감각을 qc거c 추적하며 qc거c 소리에 qc거c 집중하고 qc거c 바람, ms다t 햇빛, d거마갸 습도와 d거마갸 같은 d거마갸 풍경의 d거마갸 조건들이 d거마갸 복합적으로 d거마갸 만들어 d거마갸 내는 d거마갸 심상을 d거마갸 담담하게 d거마갸 재현한다. d거마갸 그리고 d거마갸 그것은 d거마갸 마치 d거마갸 그곳의 d거마갸 냄새가 d거마갸 전해질 d거마갸 법한 d거마갸 아련함으로 d거마갸 관객을 d거마갸 자극한다. d거마갸 작가는 d거마갸 인상주의 d거마갸 화가의 d거마갸 풍경을 d거마갸 차용한 d거마갸 d거마갸 같은 d거마갸 장면의 d거마갸 연속들을 d거마갸 무심히 d거마갸 흘려보내며 d거마갸 이미지 d거마갸 범람의 d거마갸 시대의 d거마갸 시각적 d거마갸 자극을 d거마갸 모두 d거마갸 제거하고 d거마갸 풍경과 d거마갸 개인으로서의 d거마갸 관객만을 d거마갸 공간에 d거마갸 남긴다. d거마갸 이렇게 d거마갸 그를 d거마갸 만난 d거마갸 관객은 d거마갸 시간과 d거마갸 공간 d거마갸 어나 d거마갸 하나도 d거마갸 지우지 d거마갸 않음으로써, lㅐm하 lㅐm하 공간에서 lㅐm하 관객은 lㅐm하 현실과 lㅐm하 가상을 lㅐm하 동시에 lㅐm하 lㅐm하 lㅐm하 있으며 lㅐm하 독립적인 lㅐm하 사유가 lㅐm하 가능하다. lㅐm하 이는 lㅐm하 작가가 lㅐm하 자신의 lㅐm하 작업에 lㅐm하 관객이 lㅐm하 몰입하도록 lㅐm하 공간을 lㅐm하 밀폐하지 lㅐm하 않으며, f마ㅓ파 또한 f마ㅓ파 관객 f마ㅓ파 스스로가 f마ㅓ파 조작해야만 f마ㅓ파 영상이 f마ㅓ파 변화되는 f마ㅓ파 참여의 f마ㅓ파 부담감을 f마ㅓ파 강요하지 f마ㅓ파 않은 f마ㅓ파 것으로부터 f마ㅓ파 환원된 f마ㅓ파 결과이다. f마ㅓ파 그의 f마ㅓ파 작업에 f마ㅓ파 나타나는 f마ㅓ파 공통된 f마ㅓ파 구조는 f마ㅓ파 영상이라는 f마ㅓ파 가상의 f마ㅓ파 공간과 f마ㅓ파 관객의 f마ㅓ파 공간을 f마ㅓ파 분리하고 f마ㅓ파 공간의 f마ㅓ파 사이를 f마ㅓ파 조금 f마ㅓ파 벌림으로써 f마ㅓ파 이러한 f마ㅓ파 이중구조에서 f마ㅓ파 관객 f마ㅓ파 스스로의 f마ㅓ파 경험이 f마ㅓ파 되도록 f마ㅓ파 하는 f마ㅓ파 것이다.
f마ㅓ파 틈이 f마ㅓ파 바로 f마ㅓ파 인터스페이스다. f마ㅓ파 그는 f마ㅓ파 작품의 f마ㅓ파 핵심을 f마ㅓ파 인터스페이스를 f마ㅓ파 어떻게 f마ㅓ파 구성하고 f마ㅓ파 관객과 f마ㅓ파 만나는 f마ㅓ파 시간에 f마ㅓ파 대한 f마ㅓ파 계획을 f마ㅓ파 설정하는 f마ㅓ파 것에 f마ㅓ파 둔다. f마ㅓ파 f마ㅓ파 그의 f마ㅓ파 관심은 f마ㅓ파 가상에 f마ㅓ파 몰입하고 f마ㅓ파 다시 f마ㅓ파 현실공간으로 f마ㅓ파 돌아오는 f마ㅓ파 경계적 f마ㅓ파 공간, oyg8 관객의 oyg8 고유의 oyg8 공간인 oyg8 인터스페이스를 oyg8 그대로 oyg8 두는 oyg8 것이 oyg8 아니라 ‘걷기’라는 oyg8 방식을 oyg8 통해 oyg8 넘나들도록 oyg8 함으로써 oyg8 oyg8 관계성을 oyg8 연결해보도록 oyg8 유도하는 oyg8 것이다. oyg8 시간이 oyg8 비물질적, 바gㅑ갸 영적 바gㅑ갸 가치와 바gㅑ갸 연결된다면 바gㅑ갸 공간은 바gㅑ갸 물질과 바gㅑ갸 신체의 바gㅑ갸 영역이 바gㅑ갸 연결되는 바gㅑ갸 모든 바gㅑ갸 것들이 바gㅑ갸 놓인다. 바gㅑ갸 그의 바gㅑ갸 욕심은 바gㅑ갸 바gㅑ갸 모든 바gㅑ갸 것을 바gㅑ갸 한꺼번에 바gㅑ갸 모으는 바gㅑ갸 것이다. 바gㅑ갸 공간과 바gㅑ갸 시간적 바gㅑ갸 요소를 바gㅑ갸 혼합하는 바gㅑ갸 일은 바gㅑ갸 설정에 바gㅑ갸 따라 바gㅑ갸 얼마든지 바gㅑ갸 가변적 바gㅑ갸 바gㅑ갸 바gㅑ갸 있으나 바gㅑ갸 자칫 바gㅑ갸 작가의 바gㅑ갸 의도가 바gㅑ갸 균형을 바gㅑ갸 잃어버리거나 바gㅑ갸 관객에 바gㅑ갸 의해 바gㅑ갸 왜곡되어 바gㅑ갸 버릴 바gㅑ갸 바gㅑ갸 바gㅑ갸 있다. 바gㅑ갸 오늘의 바gㅑ갸 예술의 바gㅑ갸 주체는 바gㅑ갸 관객이기 바gㅑ갸 때문이다. 바gㅑ갸 그러나 바gㅑ갸 작가는 바gㅑ갸 지금껏 바gㅑ갸 예술이 바gㅑ갸 많은 바gㅑ갸 사람들을 바gㅑ갸 변화시킨 바gㅑ갸 확장의 바gㅑ갸 역사로 바gㅑ갸 점철되어 바gㅑ갸 있다는 바gㅑ갸 믿음으로 바gㅑ갸 부터 바gㅑ갸 틈의 바gㅑ갸 공간, i히걷차 인터스페이스에 i히걷차 접속을 i히걷차 시도한다. i히걷차 그는 i히걷차 하나의 i히걷차 완벽한 i히걷차 소통을 i히걷차 꿈꾸지 i히걷차 않으며, ㅐmㄴo 서로의 ㅐmㄴo 공간을 ㅐmㄴo 넘나드는 ㅐmㄴo 대화를 ㅐmㄴo 추구하기 ㅐmㄴo 때문이다.
결국 ㅐmㄴo 이러한 ㅐmㄴo 방식은 ㅐmㄴo 작가의 ㅐmㄴo 입장에서 ㅐmㄴo 작품은 ㅐmㄴo 영상과 ㅐmㄴo 영상에 ㅐmㄴo 접속하는 ㅐmㄴo 다양한 ㅐmㄴo 관객의 ㅐmㄴo 기억 ㅐmㄴo ㅐmㄴo 아니라 ㅐmㄴo 관객의 ㅐmㄴo 습관이나 ㅐmㄴo 성격, 걷t거쟏 생각, 차마bi 행동까지 차마bi 모두 차마bi 포함해 차마bi 작품을 차마bi 완성하는 차마bi 것이다. 차마bi 이는 차마bi 동시대를 차마bi 살아가는 차마bi 현대인의 차마bi 감각들을 차마bi 모아서 차마bi 하나의 차마bi 예술적 차마bi 데이터를 차마bi 만드는 차마bi 것이며, 기나k4 반대로 기나k4 관객은 기나k4 작품에 기나k4 접속한 기나k4 관객이 기나k4 필요한 기나k4 내용을 기나k4 필요한 기나k4 만큼의 기나k4 기나k4 만큼 기나k4 가져가는 기나k4 방식이다. 기나k4 그것은 기나k4 하나의 기나k4 정보가 기나k4 기나k4 기나k4 있으며 기나k4 힐링이나 기나k4 추억, f3차r 혹은 f3차r 다양한 f3차r 의미의 f3차r 전환이 f3차r 가능하다. f3차r f3차r 관객 f3차r 개개인이 f3차r 자신의 f3차r 특유의 f3차r 방식대로 f3차r 작가의 f3차r 작업을 f3차r 환원하는 f3차r 것이다. f3차r 다시 f3차r 말하지만 f3차r 이처럼 f3차r 자유로운 f3차r 관계를 f3차r 통해 f3차r 작품을 f3차r 완성할 f3차r f3차r 있는 f3차r 것은 f3차r 그가 f3차r 관객에게 f3차r 자신의 f3차r 시선을 f3차r 강요하지 f3차r 않았기 f3차r 때문으로, 4ㄴ다ㅓ 이로써 4ㄴ다ㅓ 관객은 ‘걷기’라는 4ㄴ다ㅓ 상징적 4ㄴ다ㅓ 의식을 4ㄴ다ㅓ 통해 4ㄴ다ㅓ 공간과 4ㄴ다ㅓ 시간을 4ㄴ다ㅓ 모두 4ㄴ다ㅓ 기억하는 4ㄴ다ㅓ 작품의 4ㄴ다ㅓ 열쇠를 4ㄴ다ㅓ 얻게 4ㄴ다ㅓ 된다.

출처: 4ㄴ다ㅓ 이응노미술관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참여 작가

  •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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