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진 개인전 : 술렁이는 낮을 위한 조율

쇼앤텔1

July 30, 2019 ~ Aug. 24, 2019

SHOW
나의 ㅐ9거파 작업에서 ㅐ9거파 보이는 ㅐ9거파 자연 ㅐ9거파 소재나 ㅐ9거파 풍경들은 ㅐ9거파 나의 ㅐ9거파 작가적 ㅐ9거파 문제의식과 ㅐ9거파 상황을 ㅐ9거파 해결하는 ㅐ9거파 통로가 ㅐ9거파 된다. ㅐ9거파 작업안의 ㅐ9거파 불완전한 ㅐ9거파 소재, 0c거o 연약함의 0c거o 인상들은 0c거o 작가적 0c거o 체험과 0c거o 방향성을 0c거o 시각화 0c거o 0c거o 것이다.

TELL
​나의 0c거o 작업은 0c거o 불완전함을 0c거o 인식하는 0c거o 것에서 0c거o 출발한다.
갑작스러운 0c거o 사건, f가ㅐㅓ 낯선 f가ㅐㅓ 환경으로의 f가ㅐㅓ 변화 f가ㅐㅓ f가ㅐㅓ 거기에서 f가ㅐㅓ 느낀는 f가ㅐㅓ 불안함에 f가ㅐㅓ 민감하다. f가ㅐㅓ 그것은 f가ㅐㅓ 반대로 f가ㅐㅓ 변화하지 f가ㅐㅓ 않는 f가ㅐㅓ 것, 7걷다z 지속 7걷다z 가능한 7걷다z 것에 7걷다z 대한 7걷다z 관심으로 7걷다z 연결된다. 7걷다z 그래서 7걷다z 나는 7걷다z 인간의 7걷다z 불완전함, ㅓ카ㅐw 불안과 ㅓ카ㅐw 같은 ㅓ카ㅐw 감정들을 ㅓ카ㅐw 이겨 ㅓ카ㅐw 내기 ㅓ카ㅐw 위한 ㅓ카ㅐw 작업을 ㅓ카ㅐw 해왔다.
제의적 ㅓ카ㅐw 상상력을 ㅓ카ㅐw 기반으로 ㅓ카ㅐw 하는 ㅓ카ㅐw 이번 ㅓ카ㅐw 작업 ㅓ카ㅐw 역시 ㅓ카ㅐw 인간의 ㅓ카ㅐw 불완전함을 ㅓ카ㅐw 인식하고 ㅓ카ㅐw 그것을 ㅓ카ㅐw 극복 ㅓ카ㅐw 하고자 ㅓ카ㅐw 하는 ㅓ카ㅐw 의지를 ㅓ카ㅐw 담고 ㅓ카ㅐw 있다.


술렁이는 ㅓ카ㅐw 낮을 ㅓ카ㅐw 위한 ㅓ카ㅐw 조율

매년 11월이면 ㅓ카ㅐw 대학수학능력시험을 ㅓ카ㅐw 치르는데, 마가rt 이때 마가rt 수많은 마가rt 수험생들의 마가rt 가족이 마가rt 각자가 마가rt 믿는 마가rt 종교에 마가rt 따라 마가rt 교회, y우7ㅐ 절, 우7rㅐ 성당 우7rㅐ 등에 우7rㅐ 가서 우7rㅐ 시험을 우7rㅐ 우7rㅐ 치르게 우7rㅐ 해달라고 우7rㅐ 빌고 우7rㅐ 우7rㅐ 기도하는 우7rㅐ 모습을 우7rㅐ 우7rㅐ 우7rㅐ 있다. 우7rㅐ 몇몇은 우7rㅐ 절에서 우7rㅐ 백팔배를 우7rㅐ 하고, 가h다카 몇몇은 가h다카 교회와 가h다카 성당에서는 가h다카 가h다카 가h다카 없이 가h다카 기도를 가h다카 한다. 가h다카 모든 가h다카 사람이 가h다카 자신이 가h다카 원하는 가h다카 대로, gㅓko 계획한 gㅓko 대로 gㅓko gㅓko gㅓko 있다면 gㅓko 좋겠지만, wqbe 대부분 wqbe 그렇지 wqbe 못하다. wqbe 입에 wqbe wqbe 약을 wqbe 마셔야 wqbe wqbe 때도 wqbe 있고, ㅑx사y 목표점에 ㅑx사y 도달하기 ㅑx사y 위해 ㅑx사y ㅑx사y 둘러서 ㅑx사y 가야하는 ㅑx사y 경우도 ㅑx사y 있기 ㅑx사y 때문이다. ㅑx사y 끝이 ㅑx사y 보이지 ㅑx사y 않는 ㅑx사y 지난한 ㅑx사y 고통의 ㅑx사y 시간을 ㅑx사y 견디기 ㅑx사y 위해 ㅑx사y 사람들은 ‘믿음’을 ㅑx사y 가진다. ㅑx사y 현실의 ㅑx사y 제약을 ㅑx사y 뛰어넘는 ㅑx사y 초자연적 ㅑx사y ㅑx사y 혹은 ㅑx사y 신에 ㅑx사y 관한 ㅑx사y 믿음 ㅑx사y 말이다. 

이번 ㅑx사y 전시 <술렁이는 ㅑx사y 낮을 ㅑx사y 위한 ㅑx사y 조율>에서 ㅑx사y 작가 ㅑx사y 홍수진은 ㅑx사y 일종의 ㅑx사y 두려움과 ㅑx사y 그것을 ㅑx사y 견디기 ㅑx사y 위한 ㅑx사y 믿음, ㅓ기fc 비는 ㅓ기fc 마음에 ㅓ기fc 관한 ㅓ기fc 작업을 ㅓ기fc 선보인다. ㅓ기fc 먼저, 사a쟏다 마치 사a쟏다 기도할 사a쟏다 사a쟏다 손을 사a쟏다 모으는 사a쟏다 사a쟏다 같은 사a쟏다 자세로 사a쟏다 사a쟏다 손바닥을 사a쟏다 마주한다. 사a쟏다 작가는 사a쟏다 물풀을 사a쟏다 손바닥에 사a쟏다 바르고, 라바zㅐ 철로 라바zㅐ 만들어 라바zㅐ 라바zㅐ 구조물 라바zㅐ 앞뒤로 라바zㅐ 손을 라바zㅐ 움직이며 라바zㅐ 누에고치처럼 라바zㅐ 보이는 라바zㅐ 라바zㅐ 오브제를 라바zㅐ 만든다. 라바zㅐ 손의 라바zㅐ 움직임은 라바zㅐ 얇은 라바zㅐ 실타래와 라바zㅐ 같은 라바zㅐ 흔적을 라바zㅐ 남기며, 거ㅓ4ㅑ 홍수진의 거ㅓ4ㅑ 시간과 거ㅓ4ㅑ 행위는 거ㅓ4ㅑ 형상을 거ㅓ4ㅑ 가지게 거ㅓ4ㅑ 되는 거ㅓ4ㅑ 것이다. 거ㅓ4ㅑ 특정한 거ㅓ4ㅑ 행동을 거ㅓ4ㅑ 반복하여 거ㅓ4ㅑ 그것을 거ㅓ4ㅑ 루틴(routine)으로 거ㅓ4ㅑ 만듦으로써, 5타타차 5타타차 사람의 5타타차 간절한 5타타차 마음을 5타타차 표출하는 5타타차 셈이다. 5타타차 절이나 5타타차 기도가 5타타차 아무런 5타타차 흔적을 5타타차 남기지 5타타차 않는 5타타차 정신적인 5타타차 영역에서 5타타차 이루어지는 5타타차 믿음의 5타타차 표출이라면, 우거ㅈ걷 홍수진의 우거ㅈ걷 작업은 우거ㅈ걷 우거ㅈ걷 같은 우거ㅈ걷 비는 우거ㅈ걷 마음에 우거ㅈ걷 물체의 우거ㅈ걷 성질을 우거ㅈ걷 부여한 우거ㅈ걷 것에 우거ㅈ걷 다름 우거ㅈ걷 아니다.  

전시장 우거ㅈ걷 안쪽에 우거ㅈ걷 있는 우거ㅈ걷 보랏빛 우거ㅈ걷 계단을 우거ㅈ걷 가득 우거ㅈ걷 메운 우거ㅈ걷 우거ㅈ걷 오브제들은 우거ㅈ걷 가까이에서 우거ㅈ걷 보면 우거ㅈ걷 작은 우거ㅈ걷 외부 우거ㅈ걷 자극에도 우거ㅈ걷 부서질 우거ㅈ걷 우거ㅈ걷 지극히 우거ㅈ걷 연약해보이면서도, 2아i하 뒤로 2아i하 물러나서 2아i하 여러 2아i하 개를 2아i하 2아i하 눈에 2아i하 보면 2아i하 단단하고 2아i하 견고한 2아i하 성같이 2아i하 느껴지기도 2아i하 한다. 2아i하 깃털처럼 2아i하 한없이 2아i하 가벼울 2아i하 2아i하 같으면서도 2아i하 철제로 2아i하 만든 2아i하 구조 2아i하 내부는 2아i하 부피감이 2아i하 있어 2아i하 안전한 2아i하 피신처처럼 2아i하 보이기도 2아i하 한다. 2아i하 거미줄 2아i하 같기도 2아i하 하고, 기l라n 호롱불 기l라n 같기도 기l라n 기l라n 기l라n 오브제들은 기l라n 동굴과 기l라n 같은 기l라n 지하 기l라n 전시실에서 기l라n 관객을 기l라n 만난다. 기l라n 검정색, jx사j 흰색, ㅓ거기g 녹색, awㅑs 회색 awㅑs 등의 awㅑs 안료를 awㅑs 섞어 awㅑs 만든 awㅑs awㅑs 오브제들은, ㅐㅓ3r 크기나 ㅐㅓ3r 색이나 ㅐㅓ3r 형태가 ㅐㅓ3r 모두 ㅐㅓ3r 달라, 으g사쟏 하나하나가 으g사쟏 개별의 으g사쟏 생명을 으g사쟏 가진 으g사쟏 개별적인 으g사쟏 존재처럼 으g사쟏 보인다. 

으g사쟏 오브제를 으g사쟏 만드는 으g사쟏 것이 으g사쟏 아주 으g사쟏 어려워보이지는 으g사쟏 않는다. 으g사쟏 전시장에서 으g사쟏 으g사쟏 으g사쟏 있는 으g사쟏 영상을 으g사쟏 따라한다면, 카2마0 누구라도 카2마0 해봄직한 카2마0 것이다. 카2마0 다시 카2마0 말해, 아라o4 홍수진은 아라o4 아라o4 누구도 아라o4 따라할 아라o4 아라o4 없는 아라o4 기술력을 아라o4 가졌다기 아라o4 보다는, 3바차p 누구나 3바차p 3바차p 3바차p 있을법한 3바차p 기본적 3바차p 행위를 3바차p 마치 3바차p 수행하듯 3바차p 무한히 3바차p 반복함으로써 3바차p 작품을 3바차p 제작하는 3바차p 과정 3바차p 자체를 3바차p 작품화한다. 3바차p 3바차p 오브제를 3바차p 만드는 3바차p 3바차p 가장 3바차p 중요한 3바차p 역할을 3바차p 수행한 3바차p 작가의 3바차p 손은 3바차p 비누의 3바차p 형태로 3바차p 전시장 3바차p 한편에 3바차p 보존된다. 3바차p 라벤더, r410 프랑키센스, s2e0 페츌리와 s2e0 같은 s2e0 허브가 s2e0 들어간 5개의 s2e0 비누는 s2e0 전시장 s2e0 내부에 s2e0 은은한 s2e0 향기를 s2e0 내뿜으며, ㅐz파차 작가뿐만 ㅐz파차 아니라 ㅐz파차 관객의 ㅐz파차 몸과 ㅐz파차 마음을 ㅐz파차 편안하게 ㅐz파차 해준다. ㅐz파차 비누와 ㅐz파차 함께 ㅐz파차 전시된 ㅐz파차 영상 ㅐz파차 작업은 ㅐz파차 허브에서 ㅐz파차 증류수를 ㅐz파차 추출해서 ㅐz파차 비누 ㅐz파차 만드는 ㅐz파차 과정을 ㅐz파차 담고 ㅐz파차 있는데, f다h2 이는 f다h2 고대 f다h2 연금술을 f다h2 떠올리게 f다h2 하며 f다h2 아름다운 f다h2 물질적 f다h2 전환을 f다h2 보여준다. 

홍수진의 f다h2 작업에서 f다h2 인위적 f다h2 형태를 f다h2 찾기는 f다h2 쉽지 f다h2 않다. f다h2 천과 f다h2 솜을 f다h2 이용해 f다h2 나뭇잎의 f다h2 형상을 f다h2 쿠션처럼 f다h2 만든 <Garden>(2016), 쟏pkp 돌과 쟏pkp 한지를 쟏pkp 이용해 쟏pkp 수풀과 쟏pkp 같은 쟏pkp 형상을 쟏pkp 만든 <지속 쟏pkp 가능한 쟏pkp 풍경>(2016), f걷cu f걷cu 개의 f걷cu 나뭇가지를 f걷cu 서로 f걷cu 기대어 f걷cu 만든 f걷cu 토템과 f걷cu 같은 <다섯 f걷cu 개의 f걷cu 풍경>(2017) f걷cu f걷cu 그가 f걷cu 만든 f걷cu 작업은 f걷cu 자연의 f걷cu 모습과 f걷cu 많이 f걷cu 닮아 f걷cu 있어 f걷cu 실제 f걷cu 자연 f걷cu 풍경과 f걷cu 이질감 f걷cu 없이 f걷cu 어우러지는 f걷cu 특성을 f걷cu 보여 f걷cu 왔다. f걷cu 자연의 f걷cu 형상을 f걷cu 닮은 f걷cu 예술적 f걷cu 시도는 f걷cu 빠르게 f걷cu 변화하는 f걷cu 사회 f걷cu 속에서 f걷cu 가장 f걷cu 기본적이고 f걷cu 원초적인 f걷cu 삶의 f걷cu 질서를 f걷cu 잊지 f걷cu 않으려는 f걷cu 시도로 f걷cu 읽을 f걷cu f걷cu 있을 f걷cu 것이다. f걷cu 그의 f걷cu 작업은 f걷cu 세속의 f걷cu 삶에서 f걷cu 쌓여가는 f걷cu 불안과 f걷cu 스트레스, 파으l우 괴로움을 파으l우 회복하기 파으l우 위한 파으l우 노력의 파으l우 일환은 파으l우 아닐까?

토테미즘이 파으l우 부족의 파으l우 기원과 파으l우 특정 파으l우 동식물을 파으l우 연결하여 파으l우 숭배하는 파으l우 신앙이고, zyu8 샤머니즘이 zyu8 인간과 zyu8 영혼을 zyu8 연결시켜주는 zyu8 무당과 zyu8 zyu8 주술을 zyu8 믿는 zyu8 신앙이라면, 히다e기 홍수진의 히다e기 믿음이 히다e기 향한 히다e기 곳은 히다e기 어디일까? 히다e기 예술 히다e기 히다e기 자체에 히다e기 대한 히다e기 믿음일 히다e기 히다e기 같다. 히다e기 오늘날 히다e기 효율성, 파pㅑ나 기술적 파pㅑ나 진보, 타ㅐd2 과학적 타ㅐd2 성취에 타ㅐd2 대한 타ㅐd2 사람들의 타ㅐd2 맹목적 타ㅐd2 믿음과 타ㅐd2 달리 타ㅐd2 예술은 타ㅐd2 사회적 타ㅐd2 효용을 타ㅐd2 잃은 타ㅐd2 낭만적인 타ㅐd2 것으로 타ㅐd2 여겨지는 타ㅐd2 듯싶다. 타ㅐd2 작가는 타ㅐd2 눈앞에 타ㅐd2 즉각적인 타ㅐd2 효과나 타ㅐd2 빼어난 타ㅐd2 결과가 타ㅐd2 나오지 타ㅐd2 않더라도 타ㅐd2 멈추지 타ㅐd2 않고 타ㅐd2 계속할 타ㅐd2 타ㅐd2 있도록, 1으바b 세상의 1으바b 수많은 1으바b 눈과 1으바b 입에 1으바b 흔들리지 1으바b 않고 1으바b 스스로에 1으바b 대한 1으바b 믿음을 1으바b 잃지 1으바b 않으려는 1으바b 것인지도 1으바b 모른다. 1으바b 마치 1으바b 사람들이 1으바b 백팔배를 1으바b 하는 1으바b 것처럼 1으바b 비효율적이고 1으바b 맹목적인 1으바b 믿음처럼 1으바b 보일지 1으바b 지라도, q가r마 예술은 q가r마 언젠가 q가r마 어떤 q가r마 방식으로든 q가r마 허브 q가r마 향기와 q가r마 같이 q가r마 사람들에게 q가r마 은은하게 q가r마 배어들어 q가r마 영향을 q가r마 끼치고, kl쟏라 kl쟏라 현실에서 kl쟏라 쉬이 kl쟏라 접할 kl쟏라 kl쟏라 없는 kl쟏라 다른 kl쟏라 종류의 kl쟏라 쉼과 kl쟏라 안식을 kl쟏라 kl쟏라 kl쟏라 있을 kl쟏라 것이다. / kl쟏라 최정윤(독립큐레이터)


출처: kl쟏라 쇼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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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홍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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