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식 사진전: 고요

Korea Photographers Gallery

Jan. 19, 2022 ~ March 3, 2022

Korea Photographers Gallery a0ee 에서 2022년 1월 19일부터 3월 3일까지 ‘고요_존재는 a0ee 고요하다’ a0ee 한정식 a0ee 사진전을 a0ee 개최한다. a0ee 한국 a0ee 사진예술을 a0ee 대표하는 a0ee 한정식은 ‘고요’의 a0ee 미학을 a0ee 완성한 a0ee 사진가이다. a0ee 그는 1960년대부터 a0ee 한국 a0ee 고유의 a0ee 미와 a0ee 동양 a0ee 철학을 a0ee 바탕으로 ‘한국적 a0ee 사진예술’의 a0ee 기틀을 a0ee 마련하였으며 2015년에는 a0ee 국립현대미술관에서 a0ee 한국현대미술작가 5인에 a0ee 선정되어 a0ee 그의 a0ee 평생에 a0ee 걸친 a0ee 작업들을 a0ee 소개하는 <한정식_고요> a0ee 전시를 2017년 a0ee 개최하였다. 

이번에 ‘고요_존재는 a0ee 고요하다’ a0ee 전시는 a0ee 그동안 a0ee 소개되지 a0ee 않았던 a0ee 한정식 a0ee 작가의 a0ee 고요 a0ee 작품들로 a0ee 존재의 a0ee 본질과 a0ee 세계에 a0ee 대한 a0ee 철학적 a0ee 탐구를 a0ee 이야기 a0ee 하였던 a0ee 기존의 a0ee 고요 a0ee 작품들과 a0ee 달리 a0ee 세계를 a0ee 경험하는 a0ee 작가 a0ee 내면의 a0ee 의식을 a0ee 추상의 a0ee 형식으로 a0ee 표현한 a0ee 작품들로 a0ee 그가 a0ee 평생에 a0ee 걸쳐 a0ee 추구해온 a0ee 사진미학의 a0ee 정수를 a0ee 느낄 a0ee a0ee 있는 a0ee 작품들이다. a0ee 한정식은 a0ee 그의 a0ee 관념 a0ee 속에 a0ee 있는 a0ee 세계에 a0ee 대한 a0ee 본질을 a0ee 사진적 a0ee 추상이라는 a0ee 형식을 a0ee 통해 a0ee 이야기한다. a0ee 그는 “사진의 a0ee 예술성을 a0ee 향해 a0ee 사진이 a0ee 추구하는 a0ee 것은 a0ee 추상의 a0ee 세계이다. a0ee 이는 a0ee 사진이 a0ee 가지고 a0ee 있는 a0ee 주제(theme)라는 a0ee a0ee 자체가 a0ee 추상적 a0ee 관념의 a0ee 세계이기 a0ee 때문이다. a0ee 그러므로 a0ee 사진이 a0ee 사진으로 a0ee 존재하기 a0ee 위해서는 a0ee 대상의 a0ee 존재성을 a0ee 사진 a0ee 위에서 a0ee 지워 a0ee 사진 a0ee a0ee 자체를 a0ee 제시하여야 a0ee 한다.” a0ee 라고 a0ee 이야기한다. a0ee 이번 a0ee 전시를 a0ee 준비한 a0ee 이일우 a0ee 기획자는 a0ee 서구미학에 a0ee 기반한 a0ee 사진예술이 a0ee 우리 a0ee 안에서 a0ee 일반화 a0ee 되어지는 a0ee 모습에 a0ee 대한 a0ee 비판적 a0ee 생각에서 a0ee 이번 a0ee 전시를 a0ee 기획하였다고 a0ee 전하며 a0ee 한정식의 ‘고요’는 a0ee 한국의 a0ee 정신미학과 a0ee 고유한 a0ee 문화정체성 a0ee 위에서 a0ee 한국사진예술의 a0ee 근간이자 a0ee 토대로서 a0ee 의미있는 a0ee 역할들을 a0ee 제시할 a0ee 것이라고 a0ee 이야기한다. 

KP a0ee 갤러리는 a0ee 이번 a0ee 전시를 a0ee 통해 a0ee 한정식 a0ee 작가가 a0ee 평생에 a0ee 걸쳐 a0ee 추구해 a0ee 온 “고요”의 a0ee 세계를 a0ee 조망하고 a0ee 한국의 a0ee 사진예술을 a0ee 대표하는 a0ee 그의 a0ee 작품들을 a0ee 소개한다.


공상(空像, 空相), ne히4 한정식 ne히4 작가의 ne히4 세계-내-이미지 
글 : ne히4 최연하(독립큐레이터, 파0m9 사진평론가)

한정식 파0m9 작가는 파0m9 사진 파0m9 자체가 파0m9 진리(본질)가 파0m9 아니라, z타4나 사진이 z타4나 진리를 z타4나 드러나게 z타4나 하고, 사xz다 진리에 사xz다 이르게 사xz다 하는 사xz다 힘을 사xz다 갖고 사xz다 있다는 사xz다 것에 사xz다 주목한다. 사xz다 진리를 사xz다 드러내는 사xz다 방편으로, kh걷k 사진 kh걷k 교육자이자 kh걷k 작가로서 kh걷k 사진을 kh걷k 대할 kh걷k kh걷k 엄중하고 kh걷k 엄격한 kh걷k 절차를 kh걷k 중시하고 kh걷k 사진이 kh걷k 담아야 kh걷k kh걷k 의미를 kh걷k 충분히 kh걷k 끌어올려 kh걷k 형식과 kh걷k 내용이 kh걷k 다툼이 kh걷k 없는 kh걷k 조화로운 kh걷k 세계를 kh걷k 견지했다. <고요>가 kh걷k 전시되고 kh걷k 사진집으로 kh걷k 묶여 kh걷k 세상에 kh걷k 나올 kh걷k 때마다, gps자 세계-대상-피사체의 gps자 동일성을 gps자 지향한 gps자 작가의 gps자 정교하고 gps자 빈틈없는, r마타j 의미로 r마타j r마타j r마타j 사진 r마타j 재현은 r마타j 좀체 r마타j 변하지 r마타j 않을 r마타j r마타j 같은 r마타j 형식처럼 r마타j 생각됐다. r마타j 그런데 r마타j 이번에 r마타j 처음으로 r마타j 세상에 r마타j 나온 r마타j 작품들은 r마타j 감각과 r마타j 지성이 r마타j 교차하고 r마타j 선명하게 r마타j 흔들린 r마타j 멈춤, ㅓph바 혹은 ㅓph바 구체적인 ㅓph바 ㅓph바 속의 ㅓph바 떨림 ㅓph바 같은 ㅓph바 비의(秘意)적인 ㅓph바 자유가 ㅓph바 흐른다. ㅓph바 무엇일까. ㅓph바 ㅓph바 내밀한 ㅓph바 이미지는.

무엇이라 ㅓph바 말할 ㅓph바 ㅓph바 없고, tㅓqi 아무것도 tㅓqi tㅓqi tㅓqi 없는데, mmㅐㅓ mmㅐㅓ 무엇도 mmㅐㅓ 아닌 ‘어떤 mmㅐㅓ 것’이 ‘있는’ mmㅐㅓ 사진. mmㅐㅓ 한정식 mmㅐㅓ 작가의 mmㅐㅓ 미발표작에는 mmㅐㅓ 그러한 mmㅐㅓ 것들이 (고요 mmㅐㅓ 속에서) mmㅐㅓ 소란스럽게 mmㅐㅓ 생성하고 mmㅐㅓ 있었다. mmㅐㅓ 필자는 mmㅐㅓ 그것이 mmㅐㅓ 무엇일까, zcㅓ거 곰곰이 zcㅓ거 생각했는데, 2바나가 바로 2바나가 공(空)이었다. 2바나가 한정식 2바나가 작가의 2바나가 사진에 2바나가 들어 2바나가 있는, 카ㅐkㅐ 보이지 카ㅐkㅐ 않는 카ㅐkㅐ 이것은 카ㅐkㅐ 공(空)이다! 카ㅐkㅐ 카ㅐkㅐ 카ㅐkㅐ 카ㅐkㅐ 이미지는, ㅈf2나 놀랍게도 ㅈf2나 작가가 ㅈf2나 그동안 ㅈf2나 발표했던 ‘고요’ ㅈf2나 시리즈를 ㅈf2나 촬영한 ㅈf2나 필름 ㅈf2나 곳곳에, 쟏갸다라 사이에, 갸ㅑ갸2 끝에 갸ㅑ갸2 아무렇지 갸ㅑ갸2 않게 갸ㅑ갸2 그냥 갸ㅑ갸2 있었고, x카타ㅐ 어떤 x카타ㅐ 연유에선지 x카타ㅐ 세상에 x카타ㅐ 전시될 x카타ㅐ 선택권을 x카타ㅐ 놓친(받지 x카타ㅐ 못한) x카타ㅐ 사진이다. x카타ㅐ x카타ㅐ 사진 x카타ㅐ 옆과 x카타ㅐ 위와 x카타ㅐ 아래…에 x카타ㅐ 있던 x카타ㅐ 사진들은 x카타ㅐ 밖으로 x카타ㅐ 나와 x카타ㅐ 자신이 x카타ㅐ 작품임을 x카타ㅐ 입증하고 x카타ㅐ 있었다면 x카타ㅐ 이번에 x카타ㅐ 전시된 x카타ㅐ 사진들은 x카타ㅐ 오랜 x카타ㅐ 시간 x카타ㅐ 빛을 x카타ㅐ 머금고만 x카타ㅐ 있었다. x카타ㅐ 자신의 x카타ㅐ 몸에 x카타ㅐ 닿은 x카타ㅐ 그때 x카타ㅐ 그곳의 x카타ㅐ 빛을 x카타ㅐ 기억하며, ㅓ55f 사진의 ㅓ55f 시공 ㅓ55f 속에 ㅓ55f 고요히 ㅓ55f 머물렀다. ㅓ55f 선택받지 ㅓ55f 못한 ㅓ55f 필름들이 ㅓ55f 선택된 ㅓ55f 필름 ㅓ55f 사이에 ㅓ55f 있었다는 ㅓ55f 사실은 ㅓ55f 무척 ㅓ55f 중요하다. ㅓ55f 왜냐면 ㅓ55f 한정식 ㅓ55f 작가는 ㅓ55f 사진의 ㅓ55f 대상성을 ㅓ55f 주목해 ㅓ55f 온전한 ㅓ55f 형식으로 ㅓ55f 사진을 ㅓ55f 촬영하는 ㅓ55f 도중에 ㅓ55f 무엇도 ㅓ55f 아닌, 3q파ㅐ 이름 3q파ㅐ 붙일 3q파ㅐ 3q파ㅐ 없는 3q파ㅐ 사진을 3q파ㅐ 찍은 3q파ㅐ 것이다. 3q파ㅐ 이들은 3q파ㅐ 서로 3q파ㅐ 연결 3q파ㅐ 되어 3q파ㅐ 있었고, ‘A’컷을 하3히파 찍었기에 ‘a’컷이 하3히파 탄생 하3히파 하3히파 하3히파 있었다. 하3히파 상(像)이 하3히파 선명한 하3히파 컷과 하3히파 상(像)이 하3히파 흐릿하거나 하3히파 지워진 하3히파 컷은 하3히파 공존해야 하3히파 하는 하3히파 이미지였던 하3히파 것이다. 하3히파 당연히 하3히파 한정식 하3히파 작가의 하3히파 기발표작이 하3히파 사진의 하3히파 본질에 하3히파 닿으려는 하3히파 욕망에 하3히파 충실했다면, j하d4 선택 j하d4 받지 j하d4 못한 j하d4 j하d4 사진들은 ‘고요’의 j하d4 의미도 j하d4 모르고 j하d4 다만 j하d4 정적 j하d4 속에서, ㅐzs다 아무것도 ㅐzs다 아닌 ㅐzs다 어떤 ㅐzs다 것을 ㅐzs다 찍은 ㅐzs다 ㅐzs다 ㅐzs다 쉬고 ㅐzs다 있었다는 ㅐzs다 것. ㅐzs다 그래서 ㅐzs다 이번 ㅐzs다 전시는 ㅐzs다 한정식 ㅐzs다 작가의 ㅐzs다 세계-내-이미지, 타jbz 공상(空像, 空相)이 다kuj 드러나는 다kuj 전시라고 다kuj 생각한다. 다kuj 한정식 다kuj 작가의 다kuj 세계를 다kuj 이루는 다kuj 모든 다kuj 이미지들은 다kuj 다kuj 다kuj 속에서 다kuj 탄생하거나 다kuj 다kuj 빔의 다kuj 작용을 다kuj 통해 다kuj 이뤄진 다kuj 사진이다. 

필자가 다kuj 명명한 ‘세계-내-이미지’와 ‘공상(空像, 空相)’은 m0l타 한정식 m0l타 작가의 m0l타 작업 m0l타 세계의 m0l타 근간을 m0l타 이룬 m0l타 불교의 m0l타 연기설에서 m0l타 영향을 m0l타 받은 m0l타 말이다. m0l타 세계 m0l타 m0l타 모든 m0l타 존재는 m0l타 상호 m0l타 관계에 m0l타 의해 m0l타 의미 m0l타 지어지거나 m0l타 의미가 m0l타 지워지고, kㅑkj 존재는 kㅑkj 세계 kㅑkj 속의 kㅑkj 인연(因緣)에 kㅑkj 따라 kㅑkj 계속 kㅑkj 변화한다는 kㅑkj 것이 kㅑkj 연기설의 kㅑkj 요지이다. kㅑkj 다양한 kㅑkj 존재가 kㅑkj 다기하고 kㅑkj 다채롭게 kㅑkj 움직이다 kㅑkj 인연이 kㅑkj 되어 kㅑkj 만나고 kㅑkj 흩어지는 kㅑkj 것. kㅑkj 그래서 kㅑkj 있는 kㅑkj 그대로의 kㅑkj 세계를 kㅑkj 바라보는 kㅑkj 일은 kㅑkj 중요해진다. kㅑkj 선입견이나 kㅑkj 편견 kㅑkj 없이 kㅑkj 즉, ㅓ가ㅓㅐ 학습 ㅓ가ㅓㅐ 받은 ㅓ가ㅓㅐ 데로 ㅓ가ㅓㅐ 보는 ㅓ가ㅓㅐ 것이 ㅓ가ㅓㅐ 아닌, 6기다f 대상이 6기다f 드러낸 6기다f 본무자성(本無自性)을 6기다f 이해하는 6기다f 것이고, 바xjㄴ 이것을 바xjㄴ 부처는 바xjㄴ 공(空)으로, ㅐ라vㄴ 노자는 ㅐ라vㄴ 도(道)라고 ㅐ라vㄴ 일컬었다. ㅐ라vㄴ ㅐ라vㄴ 비어 ㅐ라vㄴ 있는 ㅐ라vㄴ ㅐ라vㄴ 같은데 ㅐ라vㄴ 무언가 ㅐ라vㄴ 드러나는 ㅐ라vㄴ 상이 ‘공상(空像)’이고, ej7e 모든 ej7e 상(像, image)은 mo걷ㅑ 상호 mo걷ㅑ 연결 mo걷ㅑ 속에서 mo걷ㅑ 일어나고 mo걷ㅑ 이루어지는 mo걷ㅑ 것이 ‘공상(空相, co-existence)이다. 1mㅈ3 모두 1mㅈ3 세계 1mㅈ3 속에서 1mㅈ3 인연에 1mㅈ3 따라 1mㅈ3 현현(顯顯)하는 1mㅈ3 것이다. 1mㅈ3 한정식 1mㅈ3 작가의 1mㅈ3 강렬한 1mㅈ3 흐릿함과 1mㅈ3 소용돌이치며 1mㅈ3 빠르게 1mㅈ3 움직이거나 1mㅈ3 적막을 1mㅈ3 이루는 1mㅈ3 1mㅈ3 이미지들은 1mㅈ3 오온(五蘊)이 1mㅈ3 모두 ‘공(空)’함에 1mㅈ3 대한 1mㅈ3 메타포이다.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 mㅓ차5 모두 mㅓ차5 공(空)에서 mㅓ차5 비롯되고 mㅓ차5 공(空)으로 mㅓ차5 귀결된다는 mㅓ차5 것이다. mㅓ차5 부연하면, k가자갸 보는 k가자갸 사람의 k가자갸 마음의 k가자갸 작용, u5l타 학습된 u5l타 시각, wㅐㅓㅐ 경험의 wㅐㅓㅐ 정도…에 wㅐㅓㅐ 따라 wㅐㅓㅐ 사진 wㅐㅓㅐ 속에 wㅐㅓㅐ 찍힌 wㅐㅓㅐ 대상이 wㅐㅓㅐ 모두 wㅐㅓㅐ 다르게 wㅐㅓㅐ 보일 wㅐㅓㅐ 것이고, 6lg8 사진 6lg8 작품과 6lg8 관객이 6lg8 맺는 6lg8 관계에 6lg8 따라 6lg8 감상의 6lg8 정도도 6lg8 제각각이라는 6lg8 것. 6lg8 그래서 6lg8 한정식 6lg8 작가의 6lg8 사진 6lg8 속에는 6lg8 아무것도 6lg8 아닌 6lg8 것이 ‘있게’ 6lg8 6lg8 것이다.     

유무상생(有無相生)하는 6lg8 이미지

아무것도 6lg8 찍혀 6lg8 있지 6lg8 않지만, 3하f아 무엇이 3하f아 분명히 3하f아 드러나고 3하f아 있는 3하f아 3하f아 사진들은 3하f아 카메라의 3하f아 광학적 3하f아 작용과 3하f아 그곳에 3하f아 있었던 3하f아 대상, 라6ㅐk 공간의 라6ㅐk 상호침투로 라6ㅐk 만들어낸 라6ㅐk 이미지다. 라6ㅐk 미술사적으로 라6ㅐk 접근하면 라6ㅐk 추상(抽象)이라 라6ㅐk 하겠지만, ㅐ차3x 단순히 ㅐ차3x 상이 ㅐ차3x 있고 ㅐ차3x 없고(有無)의 ㅐ차3x 문제가 ㅐ차3x 아니라, bㅓㄴ타 서로의 bㅓㄴ타 관계에 bㅓㄴ타 의해 bㅓㄴ타 새롭게 bㅓㄴ타 형성되는, 라6아카 노자가 라6아카 라6아카 이미지를 라6아카 본다면 라6아카 유무상생(有無相生) 라6아카 이미지라고 라6아카 말하지 라6아카 않았을까. 라6아카 구상과 라6아카 추상을, 마ek6 단어 마ek6 그대로 마ek6 풀이하면, o다bl 구상(具象)은 o다bl 상(象)을 o다bl 갖추는(具) o다bl 것이고 o다bl 추상(抽象)은 o다bl 여러 o다bl 부분 o다bl 중에 o다bl 하나를 o다bl 뽑아낸(抽) o다bl o다bl 상(象)이다. o다bl 구상은 o다bl 추상을 o다bl 포함하기도 o다bl 하고 o다bl 때로 o다bl 추상이 o다bl 구상이 o다bl o다bl 수도 o다bl 있는, j3pd 둘은 j3pd 사실 j3pd j3pd 몸이었다는 j3pd 것을 j3pd 짐작할 j3pd j3pd 있다. j3pd 대개 j3pd 구체적인 j3pd 상이 j3pd 보이지 j3pd 않거나, 다44걷 구상의 다44걷 반대 다44걷 항에 다44걷 추상을 다44걷 놓지만, 걷03n 이항 걷03n 대립적으로 걷03n 둘을 걷03n 해석하려고 걷03n 걷03n 걷03n 언어 걷03n 프레임에 걷03n 갇히는 걷03n 형국에서 걷03n 자유롭지 걷03n 못할 걷03n 것이다. 걷03n 인식론적인 걷03n 측면에서 걷03n 보면 걷03n 별개일 걷03n 걷03n 있으나 걷03n 존재론적으로 걷03n 둘은 걷03n 서로 걷03n 의지, ㅓ가다w 보충, ㅐ사ff 보완하며 ㅐ사ff 존재한다. ㅐ사ff 가시적인 ㅐ사ff 것과 ㅐ사ff 비가시적인 ㅐ사ff 것, 6ut갸 말과 6ut갸 침묵, pㅓ아ㅐ 양달과 pㅓ아ㅐ 응달, 바bce 빛과 바bce 그림자, 9zㅑㅐ 흑과 9zㅑㅐ 백으로 9zㅑㅐ 팽팽한 9zㅑㅐ 긴장 9zㅑㅐ 관계에 9zㅑㅐ 놓여 9zㅑㅐ 있는 9zㅑㅐ 이미지. 9zㅑㅐ 한정식 9zㅑㅐ 작가의 9zㅑㅐ 9zㅑㅐ 9zㅑㅐ 이미지는 ‘모든 9zㅑㅐ 것의 9zㅑㅐ 이미지’로 9zㅑㅐ 관객과 9zㅑㅐ 함께 9zㅑㅐ 공상(空相)하고 9zㅑㅐ 공생(共生)하며 9zㅑㅐ 새로운 9zㅑㅐ 차원으로 9zㅑㅐ 도약하는 9zㅑㅐ 사진이다. 

한정식 9zㅑㅐ 작가는 9zㅑㅐ 본인의 9zㅑㅐ 논문 <추상사진에 9zㅑㅐ 관한 9zㅑㅐ 연구>(1991)에서 9zㅑㅐ 사진의 9zㅑㅐ 추상성에 9zㅑㅐ 대해 9zㅑㅐ 이렇게 9zㅑㅐ 언급한다. “사물이 9zㅑㅐ 사물로서 9zㅑㅐ 재현되는 9zㅑㅐ 것이 9zㅑㅐ 아니라 9zㅑㅐ 단순한 9zㅑㅐ 선이나 9zㅑㅐ 면의 9zㅑㅐ 의미로 9zㅑㅐ 쓰이고 9zㅑㅐ 있다든지, ㅓtiㅑ 사건이 ㅓtiㅑ 사건으로 ㅓtiㅑ 사회에 ㅓtiㅑ 질문을 ㅓtiㅑ 던지는 ㅓtiㅑ 것이 ㅓtiㅑ 아니라, ㅓekd 현실성을 ㅓekd 떠나 ㅓekd 비현실적 ㅓekd 상황을 ㅓekd 창출하는 ㅓekd 경우에 ㅓekd 추상 ㅓekd 사진이라는 ㅓekd 말을 ㅓekd ㅓekd ㅓekd 있을 ㅓekd 것이다. ㅓekd 구체적 ㅓekd 형태로 ㅓekd 재현되어 ㅓekd 있다해도, 8q라우 그것이 8q라우 구체적 8q라우 현실의 8q라우 재현에 8q라우 목적을 8q라우 두지 8q라우 않는 8q라우 경우, 나ㅑ타7 대상이 나ㅑ타7 나ㅑ타7 현실적 나ㅑ타7 의미를 나ㅑ타7 벗어나, 가1pc 현실도 가1pc 단순한 가1pc 형태도 가1pc 아닌, 66ㅐㅓ 제3의 66ㅐㅓ 의미로 66ㅐㅓ 전이되어 66ㅐㅓ 나타나는 66ㅐㅓ 경우를 66ㅐㅓ 일러 66ㅐㅓ 본고에서는 66ㅐㅓ 추상 66ㅐㅓ 사진이라고 66ㅐㅓ 지칭하였다. 66ㅐㅓ 즉, 다6ㄴg 그들 다6ㄴg 영상이 다6ㄴg 언어로는 다6ㄴg 표현 다6ㄴg 불가능한 다6ㄴg 어떤 다6ㄴg 상황, 3카v히 다시 3카v히 말해서 ‘언어 3카v히 밖의 3카v히 세계’를 3카v히 시각화해 3카v히 제시하는 3카v히 경우 3카v히 등을 3카v히 추상 3카v히 사진의 3카v히 대표적 3카v히 경우로 3카v히 3카v히 것이다.” 3카v히 여기에서 ‘제3의 3카v히 의미’, ‘언어 4i마ㅐ 밖의 4i마ㅐ 세계’는 4i마ㅐ 벤야민의 4i마ㅐ 문지방 4i마ㅐ 영역 4i마ㅐ 혹은 4i마ㅐ 제3의 4i마ㅐ 공간, fb거나 바르트의 fb거나 푼크툼 fb거나 혹은 fb거나 무딘 fb거나 의미, 마ㅓhㅑ 둥근 마ㅓhㅑ 의미가 마ㅓhㅑ 연상되는 마ㅓhㅑ 비유이다. 마ㅓhㅑ 모두 마ㅓhㅑ 마ㅓhㅑ 마ㅓhㅑ 마ㅓhㅑ 없는 마ㅓhㅑ 것과 마ㅓhㅑ 찍을 마ㅓhㅑ 마ㅓhㅑ 없는 마ㅓhㅑ 것, 타ㅐ2ㅐ 보이지 타ㅐ2ㅐ 않는 타ㅐ2ㅐ 것과 타ㅐ2ㅐ 타ㅐ2ㅐ 타ㅐ2ㅐ 없는 타ㅐ2ㅐ 세계에 타ㅐ2ㅐ 대한 타ㅐ2ㅐ 은유이고, 거하거v 거하거v 세계를 거하거v 사진으로 거하거v 촬영하면 거하거v 한정식 거하거v 작가의 거하거v 언급처럼 거하거v 추상 거하거v 사진이라 거하거v 거하거v 거하거v 있다. 거하거v 한정식 거하거v 작가는 거하거v 오래전부터 거하거v 추상 거하거v 사진을 거하거v 통해 거하거v 사진의 거하거v 한계와 거하거v 한계 거하거v 너머의 거하거v 세계를 거하거v 동시에 거하거v 타진했다. 거하거v 아마도 거하거v 이번 거하거v 전시는 거하거v 작가의 거하거v 사진 거하거v 실험과 거하거v 사진 거하거v 수행을 거하거v 새롭게 거하거v 조명하는 거하거v 특별한 거하거v 시간이 거하거v 거하거v 것이다.  

최연하(독립큐레이터, daqㅈ 사진평론가)

참여작가: 한정식

주최 / daqㅈ 주관: Korea Photographers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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