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싱크대의 시대, 영국 뉴웨이브 The British New Wave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2022년 11월 4일 ~ 2022년 12월 6일

이번 특별전 키친 싱크대의 시대, 영국 뉴웨이브에는 영화에서 일상의 단조로운 풍경을 담았을 뿐인데 돌아보면 삶의 조건과 풍부한 이야기가 가득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이미지나 미장센으론 한정 지을 수 없는 찬란한 영화적 본령의 세계는 여전히 필요해 보입니다. 현실의 가깝고도 낯선 지도들, 가족과 노동과 계급의 기억들, 혹은 ‘일하는 삶’의 기원으로 돌아가려는 모든 시도들이 영국 뉴웨이브 시대를 아름다운 고전의 자리로 올려놓습니다.

영국 뉴웨이브는 부엌을 순수 가치의 공간으로 발견함으로써 이른바 ‘키친 싱크 리얼리즘’으로 불리던 영화 미학의 시절이었고, 주로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전반기는 그 전성기였습니다. 더없이 내밀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신랄한 삶의 조건을 짐작케 하는 이곳을 보면, 종전 후 산업화가 진행되며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는 하나 결코 어딘가 만족스럽지 못한 인생을 영위해야만 했던 ‘성난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이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를 기점으로 <꼭대기 방>,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 <사랑의 유형>, <욕망의 끝> 등으로 이어지면서, 초기에 프리시네마 그룹 출신의 영화감독 세대는 영화를 한없이 투명하게 파악하면서 내밀한 삶과 사회적 삶이 어우러지며 부딪히는 인생 그 자체로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국 뉴웨이브는 집단으로서 보기보단 하나씩 빛나는 조각조각의 개체로 볼 때 진가를 발휘합니다. <하인>은 극도로 전율적인 주인과 하인의 역할극이며 어쩌면 계급과의 불화란 우리의 영원한 테마가 될 거라는 짜릿한 예언과도 같았고, <장거리 주자의 외로움>은 실험적인 불안과 동요의 형식 속에서 그럼에도 전진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감정적 여정을 그립니다. <만약에....>는 곧 부서져 내릴 것 같은 소년들의 기숙 학교 드라마의 끝장판으로서 우리가 즐겨 보는 요즈음 학원물을 농담처럼 보이게 만들어 준다면, <테이스트 오브 허니>는 사춘기 소녀의 인종을 초월한 연애 행각과 게이 남자 친구와의 동거를 무척이나 쿨하고 대담하게 그려 냄으로써 <400번의 구타>에 대한 영국 ‘성난 젊은이들’의 화답과도 같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한편 <빌리 라이어>는 타고난 몽상가다운 영원한 거짓말쟁이 빌리를 형상화해내어 키친 싱크 드라마의 사랑스러운 문제아로 기억되는 영화입니다. 

오늘날 다소 철 지난 영국 뉴웨이브의 시대를 되돌아볼 때, 어딘가 영국적이라고 우리가 느끼는 의외로 적잖은 영화들 – 바로크적 시대극이건 특유의 계급 차이 드라마이거나, 아니면 켄 로치나 마이크 리의 영화들이건 – 속에서 키친 싱크대라는 공간과 미학은 여전히 살아남아 숨 쉬면서 명멸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노센츠>는 고딕 양식의 심리적 공포물을 극도로 수려한 시네마스코프 화면으로 선사하면서, 영국 뉴웨이브의 테마는 결국 어딘가 기저에서 들끓고 있는 억압 혹은 그것의 비가시적인 존재가 아니었는지 다시 한 번 매혹적으로 상기시켜 줍니다. <고 비트윈>은 반드시 놓치지 마셔야 할 최고의 사극 영화이고, <위드네일과 나>는 가장 기막히고 바보 같은 우정의 리얼리티 드라마이며, <페출리아>와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는 성과 사랑, 돈과 세속성이 뒤엉키는 사이키델릭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케스>와 같은 키친 싱크 리얼리즘의 영원한 성장담이 있습니다. <하층민들>과 <네이키드>로 이어지는 1990년대 초중반의 걸작들도 한 번쯤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프로그래머  박은지

상영작(20편)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1959, 토니 리처드슨)
꼭대기 방 (1959, 잭 클레이튼)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 (1960, 카렐 라이츠)
이노센츠 (1961, 잭 클레이튼)
테이스트 오브 허니 (1961, 토니 리처드슨)
장거리 주자의 외로움 (1961, 토니 리처드슨)
사랑의 유형 (1962, 존 슐레진저)
욕망의 끝 (1963, 린지 앤더슨)
하인 (1963, 조셉 로지)
빌리 라이어 (1963, 존 슐레진저)
비틀즈: 하드 데이즈 나이트 (1964, 리처드 레스터)
만약에.... (1968, 린지 앤더슨)
페출리아 (1968, 리처드 레스터)
케스 (1969, 켄 로치)
미드나잇 카우보이 (1969, 존 슐레진저)
고 비트윈 (1971, 조셉 로지)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 (1971, 존 슐레진저)
위드네일과 나 (1987, 브루스 로빈슨)
하층민들 (1991, 켄 로치)
네이키드 (1993, 마이크 리)

출처: 영화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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