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 입력된 도시의 이미지는
결과적으로 ‘오류’의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리곤 안내한다.
‘출력값에 오류가 있습니다.’
- 작가노트 -
▒ 또 다른 기본값으로서 오류
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 방식이 일관적이고 반복적인 현상일 때가 많다. 이러한 움직임을 민감하게 포착하여 도시의 초상으로 담아내는 작가의 시선은 도시라는 모래사장에서 다양한 모래성을 쌓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어린아이 같기도 하다. 작가는 우리에게 도시를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생각하기보다는 나만의 모래성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주체적인 인식으로 작품을, 도시를,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은 어떻게 가능한가? 전시장의 동선과 작품을 적극적으로 감상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겠다. 그 전에 전시 제목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작가가 작품마다 어떤 현실의 입력값을 투입했는지 알 수 없지만, 《출력값에 오류가 있습니다》의 출력값은 캔버스에 아크릴릭된 회화 그 자체이고 각자마다 떠올리는 관념 속의 이미지는 출력값에 생겨난 오류의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감상해 온 것에 오류가 있었다면, 그 정체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늘어난 카세트 테이프를 반복적으로 되감으면서 발견하는 것
전시장의 작품은 작가가 바라보는 도시의 이미지가 회화라는 물질로 환원된 것이다. 작가는 특정 장소에 대한 기억 오류가 발생할 때 기시감과 미시감을 동시에 감각하는데, 이러한 경험을 화면에서 뒤틀린 장소성으로 표현한다. 작품의 대다수는 소실점이 없고 평면적으로 보여 공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동안 한 프레임에 한 화면을 담아 고정된 화면에 운동성을 부여하려고 했다면, 최근에는 한 화면에 다양한 프레임을 담아 여러 공간을 뒤섞어 놓았다. 또한 오려 붙인 듯한 화면과 납작함을 강조하면서 단순한 도형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사가 끝난 아날로그 필름을 시작 표시 지점까지 되감으면서 발생하는 필름의 속도에 귀 기울이며 본 적 있는가? 잡음으로 치부된 작동음은 현재에 대한 감각을 생경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작가는 도시 이미지를 연상하면서 기존에 갖고 있던 장소의 형태가 바뀌는 상황을 한 화면에 응축시킨다. <& rewind &>(2023), <& replay &>(2023)은 ‘리와인드(rewind)’, ‘리플레이(replay)’ 기능처럼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끊임없이 재구성되어 우리가 능동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가능한, 그리하여 여러 운동성과 시간성을 부여한 화면 구성이라 표현하고 싶다.
𖣯 납작하게 조각된 색면과 단차로 변환시키기
회화에서 완전한 입력값과 완벽한 출력값을 만들 수 있을까? 이번에는 캔버스 위에서 일어나는 납작함과 쌓아 올림을 통해 도시의 주체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다양한 도형과 색면이 차이와 반복을 이루는 화면을 보자니, 여러 시공간이 겹친 상황을 동시적으로 목도한 듯하다. 그곳을 굳이 특정해 보자면 장소가 없는 듯, 있는 듯한 어떤 도시가 떠오른다. 붓질과 물감으로 그리기 대신 얇고 날카롭게 쌓아 올린 덩어리는 중성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정체를 파악하기 쉽지 않지만, 물질성은 분명히 하고 있다. 도시를 형상화한 듯한 추상적인 이미지 그리고 캔버스와 물감의 두께가 동시적으로 다가오더니 우리의 단단한 인식에 전환을 불러일으킬 ‘오류’를 기꺼이 즐겨보겠냐고 제안한다. 캔버스의 옆면과 앞면에서 보이는 물감의 단차(off-set)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작품은 설계와 구축의 치밀한 과정을 거쳐 ‘납작하게 조각된 색면’의 결과물로 나오는데, 이러한 방법은 작가가 도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현재를 반영하는 다큐멘터리 적 태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다큐멘터리로서 회화가 가능해지려면 제작자로서 작가의 도시 공간에 대한 인식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 기억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 기시감과 미시감 처리하기
작가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을 주체적으로 감상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작품 제목을 단서 삼아 감상하다 보면 공사장의 파편, 광고판의 흔적, 반사하는 유리 건물 등 익숙한 어떤 풍경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실 우리의 머릿속에서 기억하는 장소의 이미지는 실재하는 것과는 다른 형태로 각인되어 있다. 작가는 이미지화된 공간이 실제를 압도하여 우리의 주관성을 잃어버린 상황을 ‘오류’라고 여기고 작품을 통해 오류의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있다. 기억 속에 있는 장소들이 떠오르기도 하는 작품의 이미지는 사실 실재하지 않으며, 우리의 인식에서 잔상의 형태로 저장된 것이다. 도시의 이미지가 각자의 경험에 의해 저장되고 떠오른 것이었을지라도, 어떤 사람, 제도나 산업에서 지속적으로 주입한 피암시성(suggestibility)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를 했다면, 우리는 이제 이 공간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사유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작가는 우리가 공간을 오롯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감상하고 사유하여 지금-여기 장소에 대해 기억하길 희망한다. 여러 매체를 통해 획득한 유사한 경험이나 해석에 우리의 생각을 기대거나 장소의 부산물로 인간을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을 기억해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작품에서 건조하게 드러난다.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표출하기 대신, 도시와 삶의 패턴을 기시감과 미시감이라는 기억 오류의 감각으로 작품에 섬세하게 그리고 납작하고 단단하게 풀어내면서 오랜 시간 우리를 구성해 온 인식에 안녕을 고한다. 그리하여 당신은 무엇을 감지할 수 있게 되었는가.
참여작가: 최은지
글: 이주연
디자인: 정해리
사진촬영: 양이언
후원: 서울문화재단, 서울특별시
July 28, 2023 ~ Nov. 18,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