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진 개인전: 부분의 부분

공간독립

2022년 9월 28일 ~ 2022년 10월 16일

내밀하게 드러나는 몸짓과 실체에 관하여
- 당신이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글: 조하빈

대체로 심리학 및 논리학에서는 감각 기관이 겉으로 보기에는 객관적이고 진위 판별이 명료한 정보를 수용하는 듯하지만, 사실상 우리의 모든 생활 영역에서 각 영역의 기초적인 행동 양상은 비합리적이고 자의적인 신념체계의 영향을 받는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자기 신념에 영합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취하는 내・외적 일관성을 형성 및 유지한다. 이처럼 마냥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왔던 인간의 근원적 속성은 사실과 신념의 불일치가 초래하는 심리적 불편함을 축소하기 위해 부조화의 순간을 회피하거나 실재를 도외시하는 행동 양식으로 인해 평온히 붕괴한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노엽고도 명백한 진실을 마주할 때가 다가왔다. 

행위와 사고 근저의 은밀한 비밀을 폭로하는 것은 주저될 뿐더러 불쾌하기 짝이 없다. 최유진의 두 번째 개인전 <부분의 부분>은 이러한 인간의 생리적 본능을 기민하게 짚어내고자 한다. 최유진 작가는 작년 공간독립에서 이루어진 상반기 단체전 <WISH YOU WERE HERE> 에서도 부재의 근원과 인지적 맹점(blind spot)을 독자적인 설치 작업으로 풀어낸 바 있다. 작년과 동일한 수평선을 공유하고 있는 본 전시 <부분의 부분>은 인간이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편향적 시각에 대해 심도 있게 조명하고자 한다. 

최유진의 조형적 언어는 본성상 여타 작가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학제적인 동시에 일상적이다. 그의 예술 활동은 철학적 분과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확증 편향과 같은 심리학적 이론이나 계몽된 인간이 우매한 인간들에 의해 죽임당하는 플라톤의 동굴 우화가 최유진의 작업의 기저를 형성하고 있다. 검은 대청마루 위 작업명 ‘토끼굴’은 영화 <매트릭스>의 대사를 차용한다. 등장인물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지금껏 그랬듯 안온하고 평온한 일상을 살아갈지, 토끼굴에 떨어진 앨리스와 같은 기분으로 실체the real와 진짜the truth를 마주하면서 살아갈지를 묻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토끼굴’의 무수한 조밀함은 무사 안일하게 보고 싶은 것만을 선택적으로 보고 외부 세계를 판단할 것일지,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의도를 갖고 사물과 사건의 이면을 발견하고 계몽된 인간이 될 것인지 관객에게 선택지를 제공한다.

중앙 공간에 위치한 흰색의 2개의 거대한 좌대 또한 철학적 흐름의 맥이 닿아있다. 두 좌대 위에는 일상생활에서 작가가 우연히 발견한 작업실의 개미떼와 더러워진 세면대 사진이 부착되어 있는데, 당시에는 유의미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다가왔던 순간의 영감이 더 이상 ‘예술적’이지 않게 된 미묘한 감정을 최유진은 ‘예술적’으로 형상화한다. 오브제를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기능을 하는 좌대를 비정상적으로 높이 올려 예술 작품이 제대로 만개하지 못하는 상황을 의도하여, 천장에 설치된 조그마한 거울로 특정 각도에서만 비틀어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진실을 알고자 함은 이질성과 비정상적 상상력, 비전형성과 고독, 그리고 집요함을 요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현관 바로 위 작업 일부분 시리즈 또한 대상에 비해 한참 작은 거울로 사물을 비춰볼 수밖에 없는 관점을 상정하여 전체의 아주 일부만을 관객의 시야에 담는다. 

야외 전시장에 설치된 빨랫줄 작업에는 ‘말’과 관련된 문장들이 수놓아져 있다. 각각의 문장은 언어의 불필요성, 불완전성, 대체 가능성을 제시하며 우리가 읽고 말하고 들음으로써 얻는 정보들의 독재를 전복하고자 시도한다. 동선의 마지막인 아카이빙 룸 방향에 걸린 세 점의 회화는 손전등을 든 소녀의 모습이 연속적으로 그려지며, 정면의 3개의 빛무리로 이어진다. 어떠한 빛이 누구의 손전등에서 나오고 있는지 작가도 관객도 알 수 없다. 시각적인 정보만으로는 어떠한 진실도 알아낼 수 없는 한정적이고 견고한 환경을 설계하여, 복잡하고 불분명한 정보가 범람하는 현대 사회와 대조적인 환경에서 일어나는 관객들의 제한된 행동반경을 추적하고 기록한다. 

최유진의 작업은 관객으로 하여금 예술가 자신뿐만 아니라 세계의 특수하고 불편한 존재와 대면하게 한다. 그러한 예술화는 예술을 넘어 실제 현실로도 넘어가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우선되는 가치와 태도에 철학적으로 주목하게 한다. 당신이 보는 것이, 듣는 것이, 느끼는 것이 다가 아니다. 아주 일부의 부분의 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한 인식에 번연히 도달하는 것이 본 전시의 궁극적 목표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참여작가: 최유진
기획: 공간독립
협력: 147콜렉티브

출처: 공간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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