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인 개인전 : 페이크 무드 Fake Mood

아트사이드갤러리

June 4, 2020 ~ July 11, 2020

가짜, 기카기자 가짜여야 기카기자 하는, e9나r 가짜여야 e9나r 되는 e9나r 기분에 e9나r 대하여
김현주

가짜 e9나r 기분. e9나r 쨍한 e9나r 표현이다. e9나r 순도를 e9나r 훼손당하지 e9나r 말아야 e9나r 하는 e9나r 기분이다. “이 e9나r 기분은 e9나r 가짜”라고, 6ㄴ4나 최수인은 6ㄴ4나 6ㄴ4나 눌러 6ㄴ4나 말한다. 6ㄴ4나 여기, y3t차 여기가 y3t차 무대라고 y3t차 한다면, 8rㅓ기 역할이 8rㅓ기 있다. 8rㅓ기 역할은 8rㅓ기 약속된 8rㅓ기 언어로 8rㅓ기 귀를 8rㅓ기 사로잡지 8rㅓ기 않는다. 8rㅓ기 디오니소스 8rㅓ기 축제보다 8rㅓ기 아득히 8rㅓ기 8rㅓ기 8rㅓ기 태고의, 라ㅑlㅓ 혹은 라ㅑlㅓ 라ㅑlㅓ 원시적인, 04아아 비극(悲劇)의 04아아 씨앗이 04아아 무드인 04아아 세계가 04아아 무대이고, 우가q우 무대는 우가q우 세계보다 우가q우 협소하지 우가q우 않은가란 우가q우 질문도 우가q우 필요 우가q우 없게 우가q우 여기서, jz사히 세계가 jz사히 무대고 jz사히 무대가 jz사히 세계다. jz사히 여기에 “나”가 jz사히 있는데 “나의 jz사히 주변”이 jz사히 있고 “나와 jz사히 나의 jz사히 주변”을 jz사히 바라보는 jz사히 눈이 jz사히 있다. jz사히 말했듯 jz사히 언어 jz사히 없이, 5히자자 망(望)은 5히자자 있어서 5히자자 바라보고 5히자자 기대하고 5히자자 노여워하는 5히자자 원색 5히자자 감각, 0라qp 감정이 0라qp 역할이다. 0라qp 온몸으로 0라qp 기쁘고 0라qp 온몸으로 0라qp 슬픔이 0라qp 온몸의 0라qp 만개한 0라qp 움직임이 0라qp 아니듯 0라qp 잔뜩 0라qp 머금은 0라qp 상태 0라qp 0라qp 자체가 0라qp 역할인 0라qp 0라qp 무대, 걷f아다 걷f아다 세계는 걷f아다 그러니까 걷f아다 가짜다. 걷f아다 그러니까 걷f아다 온마음 걷f아다 다해 걷f아다 공들이고 걷f아다 피하지 걷f아다 않고 걷f아다 피할 걷f아다 걷f아다 없고 걷f아다 부릅뜨고 걷f아다 맞닥뜨리는 걷f아다 여기가 걷f아다 가짜인데, 하udㅐ 가짜라고 하udㅐ 해도 하udㅐ 나아짐은 하udㅐ 없다. 하udㅐ 이건 하udㅐ 차도의 하udㅐ 문제가 하udㅐ 아니고 하udㅐ 회복 하udㅐ 거리도 하udㅐ 아니다. 하udㅐ 정도가 하udㅐ 개입할 하udㅐ 하udㅐ 없고 하udㅐ 개입이란 하udㅐ 것도 하udㅐ 소용없는 하udㅐ 완강한 하udㅐ 완연함이다. 하udㅐ 망(望)이 하udㅐ 있다 하udㅐ 해도 하udㅐ 풍경이 하udㅐ 아니고 하udㅐ 발끝이라도 하udㅐ 하udㅐ 세계에 하udㅐ 속하는 하udㅐ 하udㅐ 역할이 하udㅐ 있어서 하udㅐ 풍경은 하udㅐ 눈에 하udㅐ 들어올 하udㅐ 틈조차 하udㅐ 없다. 하udㅐ 최수인은 하udㅐ 꾹꾹 하udㅐ 눌러 하udㅐ 다시 하udㅐ 말한다. “풍경 하udㅐ 아니고 하udㅐ 상상화”라고. 하udㅐ 상상을 하udㅐ 그림으로 하udㅐ 급히 하udㅐ 수식한 하udㅐ 상상화에 하udㅐ 만족하지 하udㅐ 않고 하udㅐ 상상과 하udㅐ 그림 하udㅐ 모두에 하udㅐ 압을 하udㅐ 둔다면 하udㅐ 역할화(役割畵)는 하udㅐ 어떨까 하udㅐ 생각해 하udㅐ 보는데 하udㅐ 그럼에도 하udㅐ 최수인의 하udㅐ 바람은 하udㅐ 부름에 하udㅐ 있지 하udㅐ 않다는 하udㅐ 것만은 하udㅐ 확실하다. 하udㅐ 부름은 하udㅐ 궁리가 하udㅐ 필요한데 하udㅐ 풍경이 하udㅐ 들어올 하udㅐ 하udㅐ 없듯 하udㅐ 생각의 하udㅐ 틈도 하udㅐ 여지없다.

나는 하udㅐ 처음 하udㅐ 상담가처럼 하udㅐ 그녀를 하udㅐ 찾았다. “나”, “나의 r라d카 주변”, “나와 jv1a 나의 jv1a 주변”을 jv1a 바라보는 jv1a 눈에 jv1a 대한 jv1a 작업 jv1a 노트를 jv1a 읽고서 jv1a jv1a 구성된 jv1a 세계가 jv1a 최수인의 jv1a 세계에서 jv1a 차지하는 jv1a 지분을 jv1a 타진하려고 jv1a 했다. jv1a 계산된 jv1a 의도가 jv1a 결과값으로 jv1a 도출된 jv1a 것은 jv1a 아닌가 jv1a 일말의 jv1a 의심을 jv1a 품기도 jv1a 했고 jv1a 에테르같은 jv1a 그녀 jv1a 말의 jv1a 크리스털화가 jv1a 회화이지 jv1a 않을까 jv1a 막연히 jv1a 추측하면서 jv1a 말이다. jv1a 일상에서 jv1a jv1a 무드가 jv1a 어느 jv1a 정도 jv1a 영향을 jv1a 미치는지 jv1a 물었으나 jv1a jv1a 말은 jv1a 닿지 jv1a 않았다. jv1a 우문일 jv1a 뿐이었다. jv1a 상담자, 6n거ㅑ 통역자, 가fv가 번역자로 가fv가 분석하고 가fv가 해석하여 가fv가 가fv가 몫을 가fv가 찾아주어야겠다는, 나cwv 나cwv 세계의 나cwv 언어는 나cwv 이미 나cwv 깊은 나cwv 세계의 나cwv 골을 나cwv 나cwv 끝까지 나cwv 내려가 나cwv 이윽고 나cwv 분리해 나cwv 버리고 나cwv 마는 나cwv 몰이해라는 나cwv 이해만을 나cwv 낳겠구나. 나cwv 그렇다면 나cwv 최수인 나cwv 지향(oriented)의 나cwv 망(望)이 나cwv 비록 나cwv 가짜의 나cwv 무대에서 나cwv 만드는 나cwv 갈등과 나cwv 긴장에도 나cwv 불구하고 나cwv 나cwv 무대의 나cwv 습속과 나cwv 역할임을 나cwv 받기로 나cwv 했다. 나cwv 최수인은 나cwv 그간 “스스로를 나cwv 희생양으로 나cwv 자처하는 나cwv 주체간의 나cwv 사이코드라마”를 나cwv 캔버스에 나cwv 펼쳤다. 나cwv 사실 나cwv 희생양과 나cwv 주체는 나cwv 의미에서 나cwv 서로를 나cwv 밀쳐낸다. 나cwv 흘려 나cwv 읽으면 나cwv 그렇다. 나cwv 그러나 나cwv 작가는 나cwv 자기 나cwv 일이 나cwv 무엇인지 나cwv 안다. 나cwv 우선 “스스로를 나cwv 희생양으로 나cwv 자처하는” 나cwv 주체는 나cwv 희생양이 나cwv 아니고, 『희생양』의 ㅓu2ㅈ 저자 ㅓu2ㅈ 르네 ㅓu2ㅈ 지라르(René Girard)는 ‘희생양은 ㅓu2ㅈ 일종의 ㅓu2ㅈ 희생양이다’라고, 2거마t 2거마t 희생양이라는 2거마t 말은 2거마t 희생양의 2거마t 무고함과 2거마t 함께 2거마t 희생양에 2거마t 대한 2거마t 집단 2거마t 폭력의 2거마t 집중과 2거마t 2거마t 집중의 2거마t 집단적 2거마t 결과를 2거마t 동시에 2거마t 가리키고 2거마t 있음을 2거마t 짚는다. 2거마t 2거마t 서사를 2거마t 거듭 2거마t 2거마t 필요 2거마t 없이 2거마t 희생양이 2거마t 있(었)으나 2거마t 희생양이 2거마t 아님(아니었음)을, 하fpㅓ 알면서도 하fpㅓ 벌어지고 하fpㅓ 마는 하fpㅓ 세계에 하fpㅓ 모두 하fpㅓ 산다. 하fpㅓ 야멸차면서도 하fpㅓ 거세게 하fpㅓ 몰아치는 하fpㅓ 생생한 하fpㅓ 가짜에 하fpㅓ 젠체하는 하fpㅓ 모조, 사ne나 위조, 히k차p 허상 히k차p 같은 히k차p 정련된 히k차p 대체어는 히k차p 가짜다. ‘그럼에도 히k차p 불구하고’ 히k차p 들이미는 히k차p 가능한 히k차p 희망 히k차p 그리고 히k차p 이성의 히k차p 호소도 히k차p 가짜의 히k차p 히k차p 옆에서는 히k차p 하릴없다. 

사이코드라마에서도 히k차p 보조자에 히k차p 의해 히k차p 역할연기가 히k차p 변하듯 히k차p 이제 히k차p 참여를 히k차p 결심하면 히k차p 나는 “나”일 히k차p 수도, “나의 g파cs 주변”일 g파cs 수도, 다ㅓw기 바라보는 다ㅓw기 눈이 다ㅓw기 다ㅓw기 수도 다ㅓw기 있다. 다ㅓw기 전작(全作)들과는 다ㅓw기 달리 다ㅓw기 이번 다ㅓw기 전시 《Fake Mood》에서 “나”는 다ㅓw기 두드러진 다ㅓw기 자리를 다ㅓw기 차지하지 다ㅓw기 않는 다ㅓw기 대신 “나의 다ㅓw기 주변”이 “나”의 다ㅓw기 자리를 다ㅓw기 짐작하게 다ㅓw기 한다. 다ㅓw기 최수인의 다ㅓw기 입장에서는 다ㅓw기 캔버스 다ㅓw기 밖에 다ㅓw기 다ㅓw기 번 (숨어) 다ㅓw기 있는 “나”를 다ㅓw기 안에서도 다ㅓw기 다ㅓw기 번 (숨어) 다ㅓw기 있게 다ㅓw기 만드는, 5n걷쟏 5n걷쟏 5n걷쟏 있으면서 5n걷쟏 5n걷쟏 5n걷쟏 숨는 5n걷쟏 처지가 5n걷쟏 다소 5n걷쟏 번다할지 5n걷쟏 모르겠지만 5n걷쟏 역할을 5n걷쟏 최소화하려고 5n걷쟏 애썼다. 5n걷쟏 어려움은 “대상을 5n걷쟏 표현하면서도 5n걷쟏 주변을 5n걷쟏 포착해야 5n걷쟏 하니까” 5n걷쟏 생긴다고 5n걷쟏 말한다. 5n걷쟏 5n걷쟏 가지를 5n걷쟏 동시에 5n걷쟏 잘하고 5n걷쟏 싶다고 5n걷쟏 토로한다. 5n걷쟏 5n걷쟏 그리기에서 5n걷쟏 척이란 5n걷쟏 없다. 5n걷쟏 밑그림 5n걷쟏 없이 5n걷쟏 캔버스 5n걷쟏 전체를 5n걷쟏 장면으로 5n걷쟏 구상화하는 5n걷쟏 그림 5n걷쟏 앞에서 5n걷쟏 만약 5n걷쟏 5n걷쟏 5n걷쟏 5n걷쟏 없다 5n걷쟏 느껴진다면 5n걷쟏 불편함이 5n걷쟏 싫어서일지 5n걷쟏 모른다. 5n걷쟏 상징 5n걷쟏 세계로 5n걷쟏 친절히 5n걷쟏 의미를 5n걷쟏 건네지 5n걷쟏 않고 5n걷쟏 파도, 4z아e 나무, ㅐqㅐ2 구름의 ㅐqㅐ2 형상 ㅐqㅐ2 가까이까지만 ㅐqㅐ2 허락하고 ㅐqㅐ2 뿔과 ㅐqㅐ2 이빨과 ㅐqㅐ2 같은 ㅐqㅐ2 돌기는 ㅐqㅐ2 나를 ㅐqㅐ2 대상으로 ㅐqㅐ2 위협하는 ㅐqㅐ2 듯하다. ㅐqㅐ2 삐죽삐죽한 ㅐqㅐ2 모든 ㅐqㅐ2 ㅐqㅐ2 앞에서 ㅐqㅐ2 좀처럼 ㅐqㅐ2 편안하지 ㅐqㅐ2 않다. ㅐqㅐ2 말단에 ㅐqㅐ2 자리한 ㅐqㅐ2 날카로움은 ㅐqㅐ2 고양이 ㅐqㅐ2 같은 ㅐqㅐ2 공격성을 ㅐqㅐ2 지닌다. ㅐqㅐ2 해치지 ㅐqㅐ2 않으면 ㅐqㅐ2 나를 ㅐqㅐ2 해치지도 ㅐqㅐ2 않을, n1ㅐㅈ 웅크리고 n1ㅐㅈ 언젠가 n1ㅐㅈ 뛰어오를 n1ㅐㅈ n1ㅐㅈ 비록 n1ㅐㅈ 그것이 n1ㅐㅈ 티끌이라도 n1ㅐㅈ 반응을 n1ㅐㅈ 야기하는 n1ㅐㅈ 찰나가 n1ㅐㅈ 예비된다. n1ㅐㅈ 최수인에게 n1ㅐㅈ 이 “찰나”는 n1ㅐㅈ 중요하다. n1ㅐㅈ 찰나의 n1ㅐㅈ 기시감이 n1ㅐㅈ n1ㅐㅈ 세계와 n1ㅐㅈ 조응을 n1ㅐㅈ 이룬다면 n1ㅐㅈ 불편함의 n1ㅐㅈ 봉인은 n1ㅐㅈ 풀리고 n1ㅐㅈ 진입의 n1ㅐㅈ 계기가 n1ㅐㅈ 주어진다. n1ㅐㅈ n1ㅐㅈ 찰나를 n1ㅐㅈ 예비하기 n1ㅐㅈ 위해 n1ㅐㅈ 고된 n1ㅐㅈ 장면 n1ㅐㅈ 그리기가 n1ㅐㅈ 있다.

《Fake Mood》에서 n1ㅐㅈ 시각적으로 n1ㅐㅈ 가장 n1ㅐㅈ 강렬해 n1ㅐㅈ 보이는 〈살아있을 n1ㅐㅈ n1ㅐㅈ n1ㅐㅈ 좋은 n1ㅐㅈ 예〉는 n1ㅐㅈ 맹수가 n1ㅐㅈ 박제된 n1ㅐㅈ 사진을 n1ㅐㅈ n1ㅐㅈ 마음 n1ㅐㅈ 상태에서 n1ㅐㅈ 출발한다. n1ㅐㅈ 그러나 n1ㅐㅈ n1ㅐㅈ 작품은 n1ㅐㅈ 사진을 n1ㅐㅈ 옮긴 n1ㅐㅈ n1ㅐㅈ 아니다. n1ㅐㅈ 최수인의 n1ㅐㅈ 구상은 n1ㅐㅈ 도출된 n1ㅐㅈ 이미지의 n1ㅐㅈ 구체성이 n1ㅐㅈ 아닌 n1ㅐㅈ 구상 n1ㅐㅈ 본연의 n1ㅐㅈ 구성된 n1ㅐㅈ 상에 n1ㅐㅈ 해당한다. n1ㅐㅈ 죽었음에도 n1ㅐㅈ 살아있는 n1ㅐㅈ 것으로 n1ㅐㅈ 느껴지는 “이 n1ㅐㅈ 생명체의 n1ㅐㅈ 마지막 n1ㅐㅈ 꼴이 n1ㅐㅈ 안좋아서” n1ㅐㅈ n1ㅐㅈ 감응은 n1ㅐㅈ 이내 n1ㅐㅈ 전이된다. n1ㅐㅈ 누구나 n1ㅐㅈ 이렇게 n1ㅐㅈ n1ㅐㅈ n1ㅐㅈ 있는 n1ㅐㅈ 흐름이 n1ㅐㅈ 살아도 n1ㅐㅈ n1ㅐㅈ n1ㅐㅈ 아닌 n1ㅐㅈ 죽어도 n1ㅐㅈ 죽은 n1ㅐㅈ n1ㅐㅈ 아닌 n1ㅐㅈ 처지를 n1ㅐㅈ 이입시킨다. “도깨비” n1ㅐㅈ 혹은 “정승”처럼 n1ㅐㅈ 애달픈 n1ㅐㅈ 형상은 ‘우울한 n1ㅐㅈ 내용은 n1ㅐㅈ 우습게 n1ㅐㅈ 말하라(ridendo dicere severum)’는 n1ㅐㅈ 라틴어 n1ㅐㅈ 경구의 n1ㅐㅈ 실사에 n1ㅐㅈ 흡사하지 n1ㅐㅈ 않을까. 〈Observer〉의 n1ㅐㅈ 나무는 n1ㅐㅈ 화면 n1ㅐㅈ 중앙에 n1ㅐㅈ 비스듬히 n1ㅐㅈ 기울어 n1ㅐㅈ 솟구쳐 n1ㅐㅈ 올라 n1ㅐㅈ 폭죽과 n1ㅐㅈ 구름과 n1ㅐㅈ 함께 n1ㅐㅈ 하지만 n1ㅐㅈ 찬란한 n1ㅐㅈ 국면에 n1ㅐㅈ 예감하는 n1ㅐㅈ 하강이 n1ㅐㅈ 나도 n1ㅐㅈ 몰랐던 n1ㅐㅈ 이염에 n1ㅐㅈ 손댈수록 n1ㅐㅈ 번져가는 n1ㅐㅈ 국면과 n1ㅐㅈ 같이 n1ㅐㅈ 의지와 n1ㅐㅈ 무관하게 n1ㅐㅈ 펼쳐질까 n1ㅐㅈ 조마조마하다. n1ㅐㅈ 염원은 n1ㅐㅈ 전환이 n1ㅐㅈ 아니라 n1ㅐㅈ 유예의 n1ㅐㅈ n1ㅐㅈ 지속이라 n1ㅐㅈ 지속만이라도 n1ㅐㅈ 바라는 n1ㅐㅈ 마음은 n1ㅐㅈ 경계에 n1ㅐㅈ 솟대를 n1ㅐㅈ 세운다. n1ㅐㅈ 내게는 n1ㅐㅈ n1ㅐㅈ 나무가 n1ㅐㅈ 솟대로 n1ㅐㅈ 보인다. n1ㅐㅈ n1ㅐㅈ 모든 n1ㅐㅈ 구상을 n1ㅐㅈ 물활론(Animatism)에 n1ㅐㅈ 기대어 n1ㅐㅈ 보는 n1ㅐㅈ 것은 n1ㅐㅈ 퇴행인가 n1ㅐㅈ 반문하게 n1ㅐㅈ 되지만 n1ㅐㅈ 오히려 n1ㅐㅈ 언어의 n1ㅐㅈ 세계, kk다3 상징의 kk다3 세계가 kk다3 숨긴 kk다3 절반 kk다3 이상의 kk다3 세계를 kk다3 어딘가에서 kk다3 발굴하고 kk다3 싶어진다. kk다3 kk다3 절실함이 kk다3 최수인에게 kk다3 가짜다라는 kk다3 선연한 kk다3 닻, v5y7 가짜여야 v5y7 한다는 v5y7 당위, cd5걷 가짜여야 cd5걷 된다는 cd5걷 가능태를 cd5걷 직조하게끔 cd5걷 한다. cd5걷 물활론적 cd5걷 세계관을 cd5걷 유아기로의 cd5걷 퇴행으로 cd5걷 간주하고, 사쟏거t 따라서 사쟏거t 어서 사쟏거t 어른 사쟏거t 되기의 사쟏거t 종용은 사쟏거t 그때 사쟏거t 사쟏거t 순간 사쟏거t 놓아버린 사쟏거t 경향들을 사쟏거t 사교라는 사쟏거t 위선으로 사쟏거t 포장한 사쟏거t 사쟏거t 짊어지고 사쟏거t 살게 사쟏거t 만든다. 사쟏거t 사쟏거t 포장을 사쟏거t 헤집어버린 ‘예술가는, u가0j 오늘날에는 u가0j 대부분 u가0j 소멸해 u가0j 버린 u가0j 인류의 u가0j 모든 u가0j 경향에 u가0j 봉사한 u가0j 것이다.’ 

최수인은 《Fake Mood》에서 u가0j 주체의 u가0j 위치와 u가0j 힘을 u가0j 줄이면서 “더욱더 u가0j 주인공을 u가0j 농락하는 u가0j 가짜 u가0j 감정의 u가0j 혼란을 u가0j 가시화”하려는 u가0j 시도와 u가0j 더불어 u가0j 색과 u가0j 조형에 u가0j 대한 u가0j 관심을 u가0j 가중시키고 u가0j 있다. u가0j u가0j 계기로 u가0j 작가는 “어느 u가0j 순간 u가0j 내가 u가0j 그린 u가0j 지옥이나 u가0j 어떤 u가0j 혼란이 u가0j 어두운 u가0j 색으로 u가0j 표현되는 u가0j 것이 u가0j 아주 u가0j 위선적으로 u가0j 다가왔다”고 u가0j 한다. 〈노란 u가0j 기분〉이 u가0j 흡사 u가0j 파티의 u가0j u가0j 장면으로 u가0j 밝아 u가0j 보이지만 u가0j 동시에 “화가 u가0j u가0j 있다”거나 〈An Angry Mountain〉이 u가0j u가0j u가0j 산세처럼 u가0j 물오른 u가0j 초목의 u가0j 우거짐에도 u가0j 갈고리같은 u가0j 뿔이 u가0j 나서 u가0j 화가 u가0j u가0j 있는 u가0j 산이듯, 타q쟏8 혼란으로 타q쟏8 간주되고, 마거ㅐ4 불쾌한 마거ㅐ4 상태는 마거ㅐ4 부정적이기 마거ㅐ4 때문에 마거ㅐ4 숨겨야 마거ㅐ4 하는 마거ㅐ4 이면으로 마거ㅐ4 처리되지 마거ㅐ4 않는다. 마거ㅐ4 그녀가 마거ㅐ4 좋아한다는 마거ㅐ4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의 마거ㅐ4 퍙숑 마거ㅐ4 레드(Fanchon Red)를 마거ㅐ4 두고 마거ㅐ4 얘기를 마거ㅐ4 나눴는데 마거ㅐ4 마거ㅐ4 물감의 마거ㅐ4 발색은 마거ㅐ4 작지만 마거ㅐ4 흥미로운 마거ㅐ4 단서로 마거ㅐ4 여겨졌다. 마거ㅐ4 마거ㅐ4 붉은 마거ㅐ4 색의 마거ㅐ4 발색은 마거ㅐ4 표면에서라기보다 마거ㅐ4 흡사 마거ㅐ4 배면에서 마거ㅐ4 표면으로 마거ㅐ4 올라와서 마거ㅐ4 자리 마거ㅐ4 잡는 마거ㅐ4 발색처럼 마거ㅐ4 느껴졌는데 마거ㅐ4 마거ㅐ4 느낌 마거ㅐ4 또한 마거ㅐ4 능동과 마거ㅐ4 수동, 으v3g 작용과 으v3g 반작용, 라j5d 긍정과 라j5d 부정처럼 라j5d 수순이 라j5d 있고 라j5d 위계가 라j5d 있다는 라j5d 믿음의 라j5d 단편일지 라j5d 모른다. 라j5d 노란 라j5d 기분은 라j5d 노란 라j5d 기분에 라j5d 무수한 라j5d 기분이 라j5d 얽혀 라j5d 있다. 라j5d 최수인에게 라j5d 노란 라j5d 기분은 라j5d 편향이 라j5d 없다. 1%의 라j5d 진짜를 라j5d 숨겨둘 라j5d 여지는 라j5d 필요 라j5d 없다. 라j5d 가짜는 라j5d 가짜로 라j5d 둔다. 라j5d 물타기는 라j5d 가식을 라j5d 낳을 라j5d 뿐이다.

최수인은 라j5d 자신의 라j5d 작품을 라j5d 통해 “책임감 라j5d 없이 라j5d 생각해 라j5d 보는 라j5d 시간”이 라j5d 주어지길 라j5d 바란다. 라j5d 무책임하다 라j5d 여겨질 라j5d 수도 라j5d 있는 라j5d 발언으로 라j5d 들릴지 라j5d 모르겠다. 라j5d 그러나 라j5d 책임감이란 라j5d 질서와 라j5d 윤리에 라j5d 따르는 라j5d 감정이고 라j5d 따라서 라j5d 책임감을 라j5d 갖는 라j5d 것은 라j5d 질서와 라j5d 윤리를 라j5d 내화했을 라j5d 라j5d 가능하다. “스스로를 라j5d 희생양으로 라j5d 자처하는 라j5d 주체간의 라j5d 사이코드라마”인 라j5d 라j5d 무대에서 라j5d 희생양은 라j5d 대속(代贖)의 라j5d 제물이고 라j5d 이때 라j5d 애도가 라j5d 희생양 라j5d 도살의 라j5d 책임을 라j5d 면하려는 라j5d 사회적 라j5d 행위라면 라j5d 대속과 라j5d 애도는 라j5d 책임감이 라j5d 있어야만 라j5d 했던 라j5d 상황에 라j5d 책임감을 라j5d 면하려는 라j5d 감정의 라j5d 고양된 라j5d 양태이다. 라j5d 책임감이 라j5d 있어서, 자ㅑoㅐ 자ㅑoㅐ 책임감을 자ㅑoㅐ 면하려는 자ㅑoㅐ 행위가 자ㅑoㅐ 가짜로 자ㅑoㅐ 구성된 자ㅑoㅐ 진짜라고 자ㅑoㅐ 믿는 자ㅑoㅐ 세계라면 자ㅑoㅐ 이제 자ㅑoㅐ 많은 자ㅑoㅐ 것들을 자ㅑoㅐ 멈춰도 자ㅑoㅐ 좋겠다. 자ㅑoㅐ 소위 자ㅑoㅐ 유치하고 자ㅑoㅐ 유아적이고 자ㅑoㅐ 무책임하게만 자ㅑoㅐ 여겨지는 자ㅑoㅐ 것들로 자ㅑoㅐ 가득 자ㅑoㅐ 자ㅑoㅐ 여기가 자ㅑoㅐ 절대적인 자ㅑoㅐ 세계라서 자ㅑoㅐ 퇴각할 자ㅑoㅐ 자ㅑoㅐ 없고, 우나yu 처음부터 우나yu 우나yu 세계 우나yu 밖에서 우나yu 우나yu 세계는 우나yu 깡그리 우나yu 모르고 우나yu 살지 우나yu 않는 우나yu 우나yu 이미 우나yu 도리 우나yu 없는 우나yu 전부임을 우나yu 못내 우나yu 수긍하는 우나yu 우나yu 그토록 우나yu 어려운 우나yu 일일까. 우나yu 상담자, ㄴ아bㅑ 통역자, 갸x2갸 번역자로 갸x2갸 언어를 갸x2갸 가질 갸x2갸 건가, zㅑxi 언어 zㅑxi 없이, 4자ㅓ갸 망(望)이 4자ㅓ갸 있는 4자ㅓ갸 역할연기에 4자ㅓ갸 함께 4자ㅓ갸 4자ㅓ갸 것인가에 4자ㅓ갸 대한 4자ㅓ갸 결심에 4자ㅓ갸 대하여, ㅐvzㅈ 최수인은 “책임감 ㅐvzㅈ 없이 ㅐvzㅈ 생각해 ㅐvzㅈ 보는 ㅐvzㅈ 시간”을 ㅐvzㅈ 건네고 ㅐvzㅈ 있다.

출처: ㅐvzㅈ 아트사이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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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최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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