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철 개인전 Choi, Sang Chul

아트스페이스3

Oct. 28, 2021 ~ Dec. 11, 2021

아무것도 euㅓ7 아닌 euㅓ7 것을 euㅓ7 에워싼 euㅓ7 숨결

“진정한 euㅓ7 시는 euㅓ7 말하면서 euㅓ7 닫아 euㅓ7 버리는 euㅓ7 말, 13마p 말의 13마p 폐쇄된 13마p 공간이 13마p 아니라, d바nr 그것을 d바nr 통해 d바nr 시인이 d바nr 공간을 d바nr 키우고 d바nr 리듬에 d바nr 맞춰 d바nr 사라지기 d바nr 위해 d바nr 스스로를 d바nr 소진하는 d바nr d바nr 쉬는 d바nr 내밀성이다. d바nr 아무것도 d바nr 아닌 d바nr 것을 d바nr 에워싼 d바nr 내면의 d바nr 순수한 d바nr 화상(火傷)”
- d바nr 모리스 d바nr 블랑쇼 (『문학의 d바nr 공간』, 2011, ㅑ마g6 그린비, 207쪽)

“토로록 ㄴ쟏차가 ㄴ쟏차가 티딕 ㄴ쟏차가 톡, m마ot 톡.” m마ot 각진 m마ot m마ot 하나 m마ot 없는 m마ot 매끈한 m마ot 작은 m마ot 돌멩이 m마ot m마ot 개가 m마ot 화면 m마ot 위에서 m마ot 튕겨 m마ot 구르기를 m마ot 반복한다. m마ot 고요한 m마ot 작업실을 m마ot 채우는 m마ot m마ot 의미를 m마ot m마ot m마ot 없는 m마ot 소리뿐이다. m마ot 언제쯤 m마ot m마ot 구르기가 m마ot 끝날지 m마ot m마ot m마ot 없다. m마ot 최상철은 m마ot 손안에 m마ot 들어오는 m마ot 제각각인 m마ot 크기의 m마ot 자갈 m마ot m마ot 하나를 m마ot 선택하여 m마ot 검정 m마ot 아크릴 m마ot 물감에 m마ot 적신 m마ot 후, vaeㅑ 캔버스 vaeㅑ 위에서 vaeㅑ 이처럼 vaeㅑ 굴리기를 vaeㅑ 반복한다. vaeㅑ 굴리기를 vaeㅑ 위하여 vaeㅑ 캔버스 vaeㅑ 측면에 vaeㅑ 손잡이 vaeㅑ 역할을 vaeㅑ 겸한 vaeㅑ 틀이 vaeㅑ 덧대어진다. vaeㅑ vaeㅑ 구르기가 vaeㅑ 멈추는 vaeㅑ 때는 vaeㅑ 자신의 vaeㅑ 몸에 vaeㅑ 묻은 vaeㅑ 물감이 vaeㅑ 완전히 vaeㅑ 사라질 vaeㅑ 때이다. vaeㅑ vaeㅑ 과정을 vaeㅑ 그만의 vaeㅑ 미학적 vaeㅑ 형식으로 vaeㅑ 부를 vaeㅑ 수도 vaeㅑ 있겠지만, gㄴ거으 그보다는 gㄴ거으 예술을 gㄴ거으 빌미로 gㄴ거으 gㄴ거으 놀이라 gㄴ거으 불러도 gㄴ거으 gㄴ거으 것이다. gㄴ거으 여하튼 gㄴ거으 이와 gㄴ거으 같은 gㄴ거으 비정형적인 gㄴ거으 작업 gㄴ거으 과정을 gㄴ거으 거쳐 gㄴ거으 화면 gㄴ거으 안에는 gㄴ거으 그만의 gㄴ거으 시간과 gㄴ거으 공간이 gㄴ거으 피어난다. gㄴ거으 돌이 gㄴ거으 굴러가는 gㄴ거으 시간만큼의 gㄴ거으 흔적과 gㄴ거으 gㄴ거으 움직임을 gㄴ거으 그대로 gㄴ거으 받아들인 gㄴ거으 얼룩의 gㄴ거으 변증법은 gㄴ거으 작가가 gㄴ거으 작업을 gㄴ거으 통하여 gㄴ거으 얻고자 gㄴ거으 하는 gㄴ거으 것이 gㄴ거으 무엇인지를 gㄴ거으 어렴풋이 gㄴ거으 떠오르게 gㄴ거으 한다. gㄴ거으 비유해보자면, 차hh다 자연의 차hh다 시간, 바va1 그러니까 바va1 해가 바va1 뜨고 바va1 지고, 01b우 달이 01b우 뜨고 01b우 지는 01b우 절대적인 01b우 시간 01b우 안에서 01b우 구르는 01b우 돌은 01b우 상대적인 01b우 시공간을 01b우 창조한다. 01b우 01b우 작품당 01b우 01b우 개의 01b우 돌을 01b우 사용하여 01b우 01b우 번의 01b우 구르기가 01b우 끝나면 01b우 작업도 01b우 완성된다. 01b우 01b우 번이라는 01b우 숫자가 01b우 특별히 01b우 마음을 01b우 건들지만, ㅐ3쟏c ㅐ3쟏c 역시 ㅐ3쟏c 인위적인 ㅐ3쟏c 사유의 ㅐ3쟏c 한계가 ㅐ3쟏c 만들어낸 ㅐ3쟏c 상징일 ㅐ3쟏c 뿐이다. ㅐ3쟏c 아마도 ㅐ3쟏c 작가에게 ㅐ3쟏c ㅐ3쟏c 번이란 ㅐ3쟏c 횟수는 ㅐ3쟏c 작업을 ㅐ3쟏c 멈추기에 ㅐ3쟏c 모자라지도 ㅐ3쟏c 넘치지도 ㅐ3쟏c 않는 ㅐ3쟏c 숫자가 ㅐ3쟏c 아닐까. ㅐ3쟏c 요컨대 ㅐ3쟏c 작가는 ㅐ3쟏c 숫자에 ㅐ3쟏c 의미를 ㅐ3쟏c 부여하지 ㅐ3쟏c 않는다고 ㅐ3쟏c 한다. ㅐ3쟏c 의미에서 ㅐ3쟏c 벗어나는 ㅐ3쟏c ㅐ3쟏c 어쩌면 ㅐ3쟏c 작업을 ㅐ3쟏c 하는 ㅐ3쟏c 이유 ㅐ3쟏c ㅐ3쟏c 하나일 ㅐ3쟏c 터. ㅐ3쟏c 우연의 ㅐ3쟏c 법칙에 ㅐ3쟏c 따라 ㅐ3쟏c 나타나는 ㅐ3쟏c 예측 ㅐ3쟏c 불가능한 ㅐ3쟏c 세계를 ㅐ3쟏c 환대하는 ㅐ3쟏c 것이야말로 ㅐ3쟏c 미학적 ㅐ3쟏c 충돌이 ㅐ3쟏c 발생하는 ㅐ3쟏c 순간일 ㅐ3쟏c 것이다.

캔버스 ㅐ3쟏c 위에 ㅐ3쟏c 물감이 ㅐ3쟏c 묻은 ㅐ3쟏c 돌을 ㅐ3쟏c 놓는 ㅐ3쟏c 순간부터 ㅐ3쟏c 작업이 ㅐ3쟏c 시작된다. ㅐ3쟏c 캔버스를 ㅐ3쟏c 움직여서 ㅐ3쟏c 돌이 ㅐ3쟏c 그림을 ㅐ3쟏c 그릴 ㅐ3쟏c ㅐ3쟏c 있는 ㅐ3쟏c 운동성을 ㅐ3쟏c 받으려면 ㅐ3쟏c 작가의 ㅐ3쟏c 몸에 ㅐ3쟏c 비례하여 ㅐ3쟏c 화면의 ㅐ3쟏c 크기가 ㅐ3쟏c 결정된다. ㅐ3쟏c 최상철은 ㅐ3쟏c 주어진 ㅐ3쟏c 회화의 ㅐ3쟏c 형식을 ㅐ3쟏c 자신의 ㅐ3쟏c 몸에 ㅐ3쟏c 맞춰 ㅐ3쟏c 재편한다. ㅐ3쟏c 중요한 ㅐ3쟏c ㅐ3쟏c 바로 ㅐ3쟏c 모든 ㅐ3쟏c 작업이 ㅐ3쟏c 그의 ㅐ3쟏c 몸에서 ㅐ3쟏c 비롯된다는 ㅐ3쟏c 점이다. ㅐ3쟏c 근대미술의 ㅐ3쟏c 실험은 ㅐ3쟏c 캔버스의 ㅐ3쟏c 크기와 ㅐ3쟏c 물성도 ㅐ3쟏c 회화를 ㅐ3쟏c 구성하는 ㅐ3쟏c 주요한 ㅐ3쟏c 요소이자 ㅐ3쟏c 담론으로 ㅐ3쟏c 확장시켰다. ㅐ3쟏c 한국 ㅐ3쟏c 현대미술에서 ㅐ3쟏c 작가의 ㅐ3쟏c 몸과 ㅐ3쟏c 회화의 ㅐ3쟏c 관계를 ㅐ3쟏c 다룬 ㅐ3쟏c 사례는 ㅐ3쟏c 흔치 ㅐ3쟏c 않다. ㅐ3쟏c 오히려 ㅐ3쟏c 작가의 ㅐ3쟏c 자아를 ㅐ3쟏c 부풀려 ㅐ3쟏c 작업의 ㅐ3쟏c 규모를 ㅐ3쟏c 키운 ㅐ3쟏c 경우는 ㅐ3쟏c 빈번했던 ㅐ3쟏c 편이다. ㅐ3쟏c 워낙에 ㅐ3쟏c 탈형식적 ㅐ3쟏c 측면이 ㅐ3쟏c 강하기에 ㅐ3쟏c 캔버스와 ㅐ3쟏c 신체의 ㅐ3쟏c 관계는 ㅐ3쟏c 비교적 ㅐ3쟏c ㅐ3쟏c 드러나는 ㅐ3쟏c ㅐ3쟏c 사실이다. ㅐ3쟏c 그러나 ㅐ3쟏c 미니멀리즘 ㅐ3쟏c 미술이 ㅐ3쟏c 공간과 ㅐ3쟏c 신체의 ㅐ3쟏c 관계를 ㅐ3쟏c 탐구한 ㅐ3쟏c 것처럼 ㅐ3쟏c 그의 ㅐ3쟏c 예술세계를 ㅐ3쟏c 풍부하게 ㅐ3쟏c 관측할 ㅐ3쟏c ㅐ3쟏c 있는 ㅐ3쟏c ㅐ3쟏c 다른 ㅐ3쟏c 가능성을 ㅐ3쟏c 주목해야 ㅐ3쟏c ㅐ3쟏c 것이다. ㅐ3쟏c ㅐ3쟏c 다시 ㅐ3쟏c 그의 ㅐ3쟏c 작업 ㅐ3쟏c 방식으로 ㅐ3쟏c 되돌아가 ㅐ3쟏c 보자. ㅐ3쟏c 그렇게 ㅐ3쟏c 캔버스의 ㅐ3쟏c 크기가 ㅐ3쟏c 결정되면 ㅐ3쟏c ㅐ3쟏c 놀이가 ㅐ3쟏c 시작될 ㅐ3쟏c 것이다. ㅐ3쟏c 그는 ㅐ3쟏c 우연의 ㅐ3쟏c 법칙을 ㅐ3쟏c 따른다. ㅐ3쟏c 이것은 ㅐ3쟏c 매우 ㅐ3쟏c 단순하고 ㅐ3쟏c 직관적으로 ㅐ3쟏c 이루어진 ㅐ3쟏c 법칙으로 ㅐ3쟏c 언어적 ㅐ3쟏c 설명이나 ㅐ3쟏c 의미를 ㅐ3쟏c 벗어난 ㅐ3쟏c 작가의 ㅐ3쟏c 태도를 ㅐ3쟏c 보여주는 ㅐ3쟏c 지점이다. ㅐ3쟏c ㅐ3쟏c 최상철의 ㅐ3쟏c 회화는 ㅐ3쟏c 무엇을 ㅐ3쟏c 말하지도 ㅐ3쟏c 어떤 ㅐ3쟏c 대상을 ㅐ3쟏c 지시하지도, 5사7걷 그렇다고 5사7걷 의미를 5사7걷 내포하지도 5사7걷 않는다. 5사7걷 그렇다면 5사7걷 회화는 5사7걷 무엇이 5사7걷 되어야 5사7걷 하는가. 5사7걷 나아가 5사7걷 무엇을 5사7걷 보여주어야 5사7걷 하는 5사7걷 가라는 5사7걷 물음이 5사7걷 뒤따른다. 5사7걷 이러한 5사7걷 미학적 5사7걷 질문은 5사7걷 근대 5사7걷 이후 5사7걷 예술이 5사7걷 당면했던 5사7걷 문제였고, y히l6 가상과 y히l6 현실 y히l6 사이에서 y히l6 길을 y히l6 찾고 y히l6 있는 y히l6 동시대 y히l6 미술의 y히l6 고민이기도 y히l6 하다. y히l6 예술을 y히l6 표현하는 y히l6 언어를 y히l6 포기하려는 y히l6 결심은 y히l6 단지 y히l6 언어를 y히l6 버린다는 y히l6 결정론적 y히l6 행위가 y히l6 아니라 y히l6 과연 y히l6 언어가 y히l6 무엇인지를 y히l6 되짚어보자는 y히l6 반성의 y히l6 요구와 y히l6 맞닿아 y히l6 있다. y히l6 파울 y히l6 클레는 y히l6 놀이를 y히l6 통하여 y히l6 그림의 y히l6 원형을 y히l6 되찾았고, d으h아 d으h아 케이지는 d으h아 음악 d으h아 이전에 d으h아 이미 d으h아 존재하는 d으h아 소리의 d으h아 가치를 d으h아 제시했으며, ㅐ라라히 아그네스 ㅐ라라히 마틴의 ㅐ라라히 ㅐ라라히 긋기는 ㅐ라라히 깊이에의 ㅐ라라히 욕망을 ㅐ라라히 버리고 ㅐ라라히 오로지 ㅐ라라히 평면 ㅐ라라히 안에서 ㅐ라라히 수직과 ㅐ라라히 수평의 ㅐ라라히 기하학적 ㅐ라라히 관계로 ㅐ라라히 세계를 ㅐ라라히 사유했다. ㅐ라라히 이러한 ㅐ라라히 예술의 ㅐ라라히 실험들이 ㅐ라라히 구하는 ㅐ라라히 것은 ㅐ라라히 무엇인가? ㅐ라라히 그것은 ㅐ라라히 미술이 ㅐ라라히 세계의 ㅐ라라히 모방에서 ㅐ라라히 벗어나 ㅐ라라히 존재라는 ㅐ라라히 본질을 ㅐ라라히 탐구하라는 ㅐ라라히 요청이었다.

20세기 ㅐ라라히 중반 ㅐ라라히 추상 ㅐ라라히 모더니즘은 ㅐ라라히 근대 ㅐ라라히 세계의 ㅐ라라히 붕괴와 ㅐ라라히 접합 ㅐ라라히 사이에서 ㅐ라라히 출현했다. ㅐ라라히 한국의 ㅐ라라히 모더니즘 ㅐ라라히 미술 ㅐ라라히 역시 ㅐ라라히 냉전 ㅐ라라히 시대의 ㅐ라라히 이념 ㅐ라라히 안에서 ㅐ라라히 동서양의 ㅐ라라히 정신과 ㅐ라라히 물질, 차nfz 양식과 차nfz 이념의 차nfz 혼합물로 차nfz 형성되었으나, 3utㅑ 시간이 3utㅑ 지나면서 3utㅑ 그것은 3utㅑ 숭고한 3utㅑ 3utㅑ 시대를 3utㅑ 대표하는 3utㅑ 기념비적 3utㅑ 양식이 3utㅑ 되고 3utㅑ 말았다. 3utㅑ 한편 3utㅑ 최상철은 3utㅑ 화단의 3utㅑ 경향과 3utㅑ 거리를 3utㅑ 두고 3utㅑ 자신이 3utㅑ 선택한 3utㅑ 묵음의 3utㅑ 세계에 3utㅑ 몰두한다. 3utㅑ 그림이 3utㅑ 되기보다 3utㅑ 그림의 3utㅑ 틀에서 3utㅑ 벗어나기를 3utㅑ 반복하면서 3utㅑ 어떤 3utㅑ 가시적 3utㅑ 해석이나 3utㅑ 형상에의 3utㅑ 욕망에 3utㅑ 사로잡히지 3utㅑ 않는 3utㅑ 작업 3utㅑ 방식을 3utㅑ 거듭 3utㅑ 고안한다. 3utㅑ 그의 3utㅑ 작업 3utㅑ 방식을 3utㅑ 두고 3utㅑ 구도자적 3utㅑ 혹은 3utㅑ 수행적이라는 3utㅑ 상투적인 3utㅑ 수식은 3utㅑ 낡은 3utㅑ 의미를 3utㅑ 재생산할 3utㅑ 뿐이다. 3utㅑ 아마도 3utㅑ 작가는 3utㅑ 이러한 3utㅑ 수식을 3utㅑ 달가워하지 3utㅑ 않을 3utㅑ 것이다. 3utㅑ 왜냐하면 3utㅑ 그가 3utㅑ 예술을 3utㅑ 하는 3utㅑ 이유가 3utㅑ 깨달음을 3utㅑ 찾기 3utㅑ 위한 3utㅑ 구도자적 3utㅑ 수행이 3utㅑ 아니기 3utㅑ 때문이다. 3utㅑ 그는 3utㅑ 오히려 3utㅑ 사유의 3utㅑ 바깥을 3utㅑ 향하고 3utㅑ 있다. 3utㅑ 사유의 3utㅑ 바깥이란 3utㅑ 언어의 3utㅑ 바깥이자 3utㅑ 언어로 3utㅑ 묘사될 3utㅑ 3utㅑ 있는 3utㅑ 세계를 3utㅑ 벗어나려는 3utㅑ 실천이다. 3utㅑ 3utㅑ 그에게 3utㅑ 회화는 3utㅑ 시를 3utㅑ 짓는 3utㅑ 것과 3utㅑ 다르지 3utㅑ 않다. 3utㅑ 주지하다시피, 카아자파 시는 카아자파 형식이 카아자파 아닌 카아자파 사유의 카아자파 방식이다. 카아자파 따라서 카아자파 그는 카아자파 사유를 카아자파 위하여 카아자파 그리기의 카아자파 형식을 카아자파 벗어낸 카아자파 채로 카아자파 그리기를 카아자파 반복한다. 카아자파 그렇게 카아자파 미메시스가 카아자파 재연될 카아자파 카아자파 있는 카아자파 고리를 카아자파 봉쇄해버린다. 카아자파 들뢰즈(G. Deleuze)의 카아자파 개념을 카아자파 빌리자면 카아자파 완전한 카아자파 탈주선(flying line)을 카아자파 그리는 카아자파 중이라 카아자파 부를 카아자파 카아자파 있겠다.

조르주 카아자파 바타유(Georges Bataille)는 카아자파 인류의 카아자파 진화 카아자파 과정을 카아자파 생존에서 카아자파 놀이로, 사nk히 노동에서 사nk히 예술로 사nk히 변한다고 사nk히 보았다. 사nk히 구석기시대에 사nk히 등장한 사nk히 호모 사nk히 파베르, 9ㅐa차 9ㅐa차 도구를 9ㅐa차 만들 9ㅐa차 9ㅐa차 있는 9ㅐa차 존재는 9ㅐa차 생존을 9ㅐa차 위해 9ㅐa차 돌로 9ㅐa차 필요한 9ㅐa차 도구를 9ㅐa차 발명했다. 9ㅐa차 기후가 9ㅐa차 온화해지면서 9ㅐa차 생존의 9ㅐa차 도구는 9ㅐa차 그림을 9ㅐa차 그리는 9ㅐa차 예술적 9ㅐa차 도구로 9ㅐa차 전환된다. 9ㅐa차 생존이 9ㅐa차 우선되는 9ㅐa차 시대를 9ㅐa차 벗어나자 9ㅐa차 생각하는 9ㅐa차 인간은 9ㅐa차 이미지를 9ㅐa차 통하여 9ㅐa차 주술적 9ㅐa차 의미를 9ㅐa차 담은 9ㅐa차 그림 9ㅐa차 놀이를 9ㅐa차 시작한 9ㅐa차 것이다. “이제 9ㅐa차 평온해진 9ㅐa차 인간의 9ㅐa차 활동은 9ㅐa차 곧장 9ㅐa차 노동으로만 9ㅐa차 연결되지는 9ㅐa차 않게 9ㅐa차 되었다. 9ㅐa차 바로 9ㅐa차 이때부터 9ㅐa차 예술 9ㅐa차 활동이 9ㅐa차 더해졌다. 9ㅐa차 생존에 9ㅐa차 유용한 9ㅐa차 활동만 9ㅐa차 있던 9ㅐa차 터에 9ㅐa차 놀이라는 9ㅐa차 활동이 9ㅐa차 더해진 9ㅐa차 것이다.”(조르주 9ㅐa차 바타유, 『라스코 yx히차 혹은 yx히차 예술의 yx히차 탄생/마네, w자히라 워크룸프레스, 2017, 51쪽) 5다wn 알다시피 5다wn 놀이는 5다wn 쓸모와 5다wn 무관하게 5다wn 기쁨을 5다wn 목적한다. 5다wn 바타유는 5다wn 5다wn 나아가 5다wn 언어가 5다wn 만들어지면서 5다wn 노동과 5다wn 도구 5다wn 사이에 5다wn 존재하는 5다wn 감각적인 5다wn 측면이 5다wn 사라졌다고 5다wn 해석한다. 5다wn 5다wn 언어에 5다wn 의하여 5다wn 대상/사물이 5다wn 가진 5다wn 감각적인 5다wn 면을 5다wn 없애는 5다wn 현상이 5다wn 일어난 5다wn 것이다. 5다wn 바타유는 5다wn 이처럼 5다wn 감각적인 5다wn 것의 5다wn 상실이 5다wn 예술의 5다wn 필요성을 5다wn 끌어낸다고 5다wn 보았다. 5다wn 바타유가 5다wn 사유한 5다wn 예술의 5다wn 존재 5다wn 이유는, h6파6 무엇보다 h6파6 언어 h6파6 너머의 h6파6 세계, 099p 의식을 099p 벗어난 099p 감각적 099p 자율성을 099p 되찾는 099p 시적 099p 세계와 099p 조우한다. 099p 한편 099p 프랑스 099p 철학자 099p 모리스 099p 블랑쇼(Maurice Blanchot)는 099p 시를 “열린 099p 세계”라 099p 명시했다. 099p 열린 099p 세계는 099p 무엇을 099p 바라는 099p 공간이 099p 아니다. 099p 오로지 099p 가장 099p 내면적인 099p 것을 099p 향한 099p 순수한 099p 소비가 099p 일어나는 099p 공간이다. 099p 존재는 099p 소진되는 099p 것이며, ㅐw9g 그것이 ㅐw9g 또한 ㅐw9g 존재의 ㅐw9g 본질이란 ㅐw9g ㅐw9g ㅐw9g 누구도 ㅐw9g 모를 ㅐw9g ㅐw9g 없는 ㅐw9g 진리이다. ㅐw9g 그러나 ㅐw9g 세계는 ㅐw9g 인간을 ㅐw9g 존재로 ㅐw9g 보기보다 ㅐw9g 사회적 ㅐw9g 기준으로 ㅐw9g 판단한다. ㅐw9g 그렇게 ㅐw9g 존재의 ㅐw9g 바탕은 ㅐw9g 현실에서 ㅐw9g 지워지고 ㅐw9g 만다. ㅐw9g 그러므로 ㅐw9g 예술이라는 ㅐw9g 시적 ㅐw9g 세계는 ㅐw9g 말의 ㅐw9g 자율성을 ㅐw9g 요청한다. ㅐw9g 내밀한 ㅐw9g 존재 ㅐw9g 자체에 ㅐw9g 다가가는 ㅐw9g 것이 ㅐw9g ㅐw9g 시인의 ㅐw9g 활동, ㅐㄴㅈ히 예술가의 ㅐㄴㅈ히 실천이 ㅐㄴㅈ히 아니겠는가. ㅐㄴㅈ히 관습과 ㅐㄴㅈ히 의식으로 ㅐㄴㅈ히 굳어진 ㅐㄴㅈ히 언어가 ㅐㄴㅈ히 아닌 ㅐㄴㅈ히 자신만의 ㅐㄴㅈ히 말을 ㅐㄴㅈ히 찾아가는 ㅐㄴㅈ히 길이 ㅐㄴㅈ히 ㅐㄴㅈ히 예술을 ㅐㄴㅈ히 실천하는 ㅐㄴㅈ히 방식이다. ㅐㄴㅈ히 최상철에게 ㅐㄴㅈ히 작업은 ㅐㄴㅈ히 존재의 ㅐㄴㅈ히 순수한 ㅐㄴㅈ히 소비에 ㅐㄴㅈ히 다가가는 ㅐㄴㅈ히 과정이다. ㅐㄴㅈ히 끝으로 ㅐㄴㅈ히 그렇다면 ㅐㄴㅈ히 완전한 ㅐㄴㅈ히 추상에 ㅐㄴㅈ히 도달하는 ㅐㄴㅈ히 ㅐㄴㅈ히 가능할까 ㅐㄴㅈ히 질문해 ㅐㄴㅈ히 본다. ㅐㄴㅈ히 최상철의 ㅐㄴㅈ히 작업 ㅐㄴㅈ히 방식은 ㅐㄴㅈ히 순수한 ㅐㄴㅈ히 소비, vㅓㅑ8 놀이로서의 vㅓㅑ8 예술을 vㅓㅑ8 실천하는 vㅓㅑ8 하나의 vㅓㅑ8 미학적 vㅓㅑ8 방법으로 vㅓㅑ8 보아야 vㅓㅑ8 한다. vㅓㅑ8 완벽한 vㅓㅑ8 추상은 vㅓㅑ8 작업의 vㅓㅑ8 목적일 vㅓㅑ8 vㅓㅑ8 없다. vㅓㅑ8 중요한 vㅓㅑ8 것은 vㅓㅑ8 구상과 vㅓㅑ8 추상의 vㅓㅑ8 구분 vㅓㅑ8 이전에 vㅓㅑ8 박영택이 vㅓㅑ8 말한 vㅓㅑ8 것처럼, e거으0 가장 e거으0 자연에 e거으0 가까운, 나걷a하 인위적이지 나걷a하 않은 나걷a하 미술의 나걷a하 원형성을 나걷a하 추구한다는 나걷a하 점이다. 나걷a하 다만 나걷a하 그럼에도 나걷a하 불구하고 나걷a하 우연의 나걷a하 법칙은 나걷a하 때로는 나걷a하 어떤 나걷a하 형상을 나걷a하 연상시키거나 나걷a하 비유하는 나걷a하 것처럼 나걷a하 보이기도 나걷a하 한다. 나걷a하 이번 나걷a하 전시에 나걷a하 소개된 나걷a하 나걷a하 작품(“無物 21-6”, “無物 21-7”, “無物 21-8”)은 사우nㅐ 자연의 사우nㅐ 형상을 사우nㅐ 떠올리게 사우nㅐ 한다. 사우nㅐ 자연을 사우nㅐ 닮거나 사우nㅐ 그것을 사우nㅐ 연상시키는 사우nㅐ 형상들도 사우nㅐ 결국 사우nㅐ 우연의 사우nㅐ 결과이다. 사우nㅐ 요컨대 사우nㅐ 최상철의 사우nㅐ 회화는 사우nㅐ 작가에 사우nㅐ 의하여 사우nㅐ 완전히 사우nㅐ 통제된 사우nㅐ 세계가 사우nㅐ 아니라 사우nㅐ 작가와 사우nㅐ 작업, 거5바으 행위와 거5바으 결과가 거5바으 자율적인 거5바으 관계를 거5바으 맺는 거5바으 세계임을 거5바으 잊지 거5바으 말아야 거5바으 한다. 거5바으 무엇보다 거5바으 감상과 거5바으 해석 거5바으 또한 거5바으 오로지 거5바으 보는 거5바으 이의 거5바으 몫이 거5바으 되어야 거5바으 한다. 거5바으 그렇게 거5바으 작품은 거5바으 작가의 거5바으 이름이 거5바으 사라진 거5바으 익명의 거5바으 것이 거5바으 되어 거5바으 공통의 거5바으 것이 거5바으 거5바으 거5바으 있다. 거5바으 저자성 거5바으 또는 거5바으 작가의 거5바으 의도를 거5바으 벗어나 거5바으 작품을 거5바으 감각하는 거5바으 자율성은 거5바으 모두에게 거5바으 주어진 거5바으 권리이기 거5바으 때문이다.

정현(미술비평, sㅓㅑr 인하대)

참여작가: sㅓㅑr 최상철

출처: sㅓㅑr 아트스페이스3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전시

Jessica Silverman x VSF: Tangerine Dreams rizb 귤빛 rizb 꿈들

Nov. 13, 2021 ~ Jan. 8, 2022

Emma Hart: BIG MOUTH

Nov. 24, 2021 ~ Jan. 23,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