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비추는 거울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김혜린
우리는 하루 동안 무수하게 많은 거울들과 마주한다. 그 거울들은 용모를 단장한다거나 옷의 매무새를 가다듬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검은 화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몽롱한 정신에도 휴대폰을 찾는다. 그들은 기계적이고도 분주한 손놀림으로 더듬거리고 휴대폰을 집어 들기에 바쁘다. 잠들기 전까지 혹은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놓지 못하고 눈이 쫓던 휴대폰의 화면은 아침의 침실에서 세상의 모든 색을 흡수해 버린 것처럼 검다. 그리고 그 검은 거울은 당신의 하루가 시작되는 때에 당신의 얼굴을 가장 먼저 비추는 것이 된다.
신 중심시대에서 인간 중심시대로의 변화는 오직 인간만의 힘으로 세계의 변혁과 번영을 꿈꾸게 했다. 자연과 세계에 대한 가치를 판단하고 정복하고자 한 인간의 열망은 과학기술이라는 미명 아래에 산업화 시대를 거쳐 정보화 시대로의 도래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인간이 발명한 컴퓨터라는 기계장치 그리고 인터넷은 인간에게 초일류적이고 초인적인 힘에 대한 기대를 불어넣었다. 인터넷을 통해 인간은 이 세계 너머에 녹슬거나 쇠락하지 않을 것만 같은 하나의 영역을 발견하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거대하고 강고해 보이는 영역은 인간에게 굉장한 쾌감을 선사하면서 그 영역 내부에 있는 치밀하고 교묘한 감시망과 왜곡과 몰가치성으로 인한 윤리관의 변질 대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이를 꼬집는 일례로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 시리즈를 들 수 있다. 블랙 미러는 우리 생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텔레비전 화면과 모니터 스마트폰을 일컫는다. 드라마의 기획자 찰리 브루커는 기술이 마약이나 마찬가지이고 사용 또한 마약처럼 사용된다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무엇일지 물음을 제기하면서 그 물음에 대한 불안함과 즐거움 사이의 모호함이 블랙 미러라고 밝혔다. 십 년이나 넘게 이어진 이 시리즈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미디어와 기술의 발달이 인간적인 것보다 우선시되었을 때의 야기되는 부정적인 면면들이다.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만든 것이 인간성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규연도 이와 같이 정보사회의 일면인 블랙 미러를 연구한다. 블랙 미러를 “둔탁한 반사광”이라는 조형언어로 조망하며 시각예술에 기반한 철학적인 사유로 해석해 나간다. 작가에 따르면 현대 정보화 사회의 개인은 정보기술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주체적이고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기보다는 정보사회의 촘촘한 망에 손과 발이 묶이고 시야가 가려지는 수동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은 항상 체스판 위의 말처럼 세상을 계산하는 거대한 무언가에 의해 조종과 감시를 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자본이 권력이 되는 이 세상 특히나 온라인 콘텐츠가 재화가 되어버린 시대라는 블랙 미러에 갇혀 버리게 된 셈일지도 모른다. 블랙 미러적인 시대에 갇힌 인간은 그저 재화의 기본 단위로서 기능할 수밖에 없다. 인본주의적인 사고는 차치하고서라도 자연과 기계론적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며 당당하고 명석하다 자부하던 인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진다. 더욱 은밀하고 영악하며 조밀해져 가는 정보의 권력구조에 의해 인간은 최소한의 자본 단위로서 계속적으로 쪼개지고 희생되어 가는 것이다.
정보기술은 발달은 소수의 권력자가 다수를 감시하는 양상은 물론 감시를 당하는 이들이 권력자들을 역으로 견제하는 메커니즘까지도 야기하며 결국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되는 사회적 현상을 낳는다. 이러한 감시의 시대에 인간은 전염병이라는 재해의 한가운데에도 놓여 있다. 이는 문명이 발달할수록 바이러스 또한 변이되듯 정보의 권력과 감시 또한 다변화된 맥락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비교적 명확하고 경계도 분명했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 사이의 균형이 깨짐으로써 음밀한 계약이 되기도 하고 필수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인간이 인간을 더 나은 세상으로 구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 끝에 얻어낸 일종의 전리품이자 인간을 향상시키기 시도와 방법이었으나 이제는 인간다움의 가치를 시험하고 인간성을 전복시킬 수 있는 위험의 이면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최규연은 이 당면 사회 문제를 자신의 둔탁한 반사광을 통해 제기하고자 한다. 블랙 미러에 비친 현대의 인간을 응시하는 행위를 통해서 시인 이상이 <거울>을 통해 말하듯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이지만 “또괘닮았”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작가라는 프리즘을 통과한 빛은 인간과 인간만이 이룰 수 있는 예술의 영역으로 반사되며, 블랙 미러에 비친 개인들 속의 개인을 응시하는 행위는 결국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을 진단할 수 있는 진찰인 것이다.
참여작가: 최규연
출처: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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