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리 개인전 : ENTREVOIR

팔레드서울

2016년 4월 19일 ~ 2016년 4월 24일


오랜 시간 내 작업의 근간을 이루어온 근본 개념은 통합이다. 기억에 의존해 그린 페인팅 작업도, 기억에 상상적 이미지가 결합된 오브제 작업도, 사진을 바탕으로 기억과 결부되는 장소, 시간, 사물을 조합해 그린 드로잉 작업도 흩어져 있거나 분리되어 있는 시간, 공간, 사물을 하나로 잇고자 하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통합이라는, 혹은 연결이라는 개념은 먼저 분리된 것에 주목하게 한다.


하나가 아닌 것들은 많다. 과거, 현재, 미래, 삶과 죽음, 빛과 어둠, 멈춤과 운동….., 먼저 나는 시간에 주목한다. 작업의 소재가 되는 것들은 분명 모두 과거에 속해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그리기 위해 떠올리고 작업에 옮기는 순간, 과거는 현재가 되고 현재가 된 과거는 작업이 완성된 후 미래로 이어진다. 여기서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영원한 마침표가 될 수 없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과 시간 사이의 벌어진 틈이고, 맞물려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작업의 주제인 Entre-Temps인 것이다.


통합은 만남이다.

오래 전 옷으로, 인형으로 제작한 오브제들이 그려지는 대상으로 전환되며 완성된 작업과 그려지는 대상 사이의 간극을 꾀했던 것이나, 평면과 입체를 한 화면 속에 걸어둔 작업, 실과 바늘을 사용해 드로잉 한 천 위에 직접 바느질을 하거나, 실과 바늘을 그대로 작업과 하나가 되게 해 재료가 작품이 되게 하는 것, 이러한 일련의 시도들은 모두 통합이라는 주제를 설명하는 물질적 도구이다.

이미지를 통한 개념적 도구의 사용은 줄기와 잎이 나고 뿌리가 난 감자와 양파, 안과 밖을 구분하거나 잇는 창문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통합이라는 주제를 통해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것과 저것 사이에 존재하는 ‘사이’이다. 시작과 끝의 ‘사이’, 삶과 죽음 ‘사이’, 너와 나 ‘사이’일 뿐, 빛도 어둠도 아니다. 그러니 쑥쑥 꽃대를 밀어 올리는 생명력이나 죽음을 향해 치닫는 덧없음에 대한 슬픔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이쪽 끝과 저쪽 끝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중간 지점, 그 중간 어디쯤에 존재하는 Entre-Temps인 것이다.


내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과 풍경, 사물들은 모두 지난 시간동안 내가 살며 여행하고, 머물며 만난 장소와 사람들이다. 그 모두가 하나의 그림 속에서 다시 만난다. 공간과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진 서로 다른 시공간 속의 현실적 이미지들은 조합되며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낳게 되는 것은(누군가는 초 현실이라 지칭하고, 또 누군가는 심상의 표현이라 했던) 지나간 것과 지나가지 않은(이 또한 지나갈) 것, 현실 속에서는 공존하지 않는 것들이 한 화면 안에서 만나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의 그림 속에는 과거와 현재, 기억 속에 각인된 여러 장소들, 그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했던 타인과 나, 나를 대변할 수 있는 모든 기억들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재회하며 이쪽과 저쪽, 과거와 현재라는 공간과 시간의 가로로 이어지는 일직선상의 사이를 메워준다. 그것은 시작과 끝, 삶과 죽음, 빛과 어둠, 꿈과 현실 등으로 나눠지는 이분법적 논리에 대한 저항이며, 순환, 혹은 영원에 대한 개념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비이원론적 사고의 표출이다.

한때 천과 솜을 사용해 옷과 오브제를 만들던 작업들이 화폭으로 옮겨지며 오브제들은 완성된 조형물로서의 의미가 아닌 그려지는 대상이 된다. 그를 통해 얻어진 비현실적 이미지들 또한 그 이미지가 주는 우화성에도 불구하고 대상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인해 현실성을 획득한다.

그림 속에 종종 등장하는 바느질은 오브제 작업의 흔적으로 회화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회화가 아닌 것을 이어주고, 이미지 안에서 떨어져 있는 것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림 바깥의 오브제와 그림 속의 대상을 연결하며 화면 속 세상과 관람객이 서 있는 공간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내 작업에 등장하는 바느질의 흔적들은 조각난 것, 분리된 것을 하나로 잇는 바느질의 일차적 목적에 부응한다.


내 작업의 근간은 평면이다. 회화 작품으로의 독립성을 갖고 전시장 벽면에 설치될 드로잉 작업들은 그러나 전시 공간이라는 더 큰 화면과 만나며 드로잉 속 소재가 되는 오브제가 그림과 함께 공간 속에 놓이고, 그림 안에서 시작되어 전시 공간 속으로 이어져 나오는 실은 물론 다른 작품들과 어우러져 주체자가 아닌 보조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데, 이것은 일원론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순환’이라는 하나의 개념 속으로 응축시키는 작업 방향과 일치하는 것이다.


출처 - 갤러리팔레드서울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참여 작가

  • 지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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