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주 : 젤리비 부인의 돋보기 Youngjoo Cho : Mrs. Jellyby's magnifying glass

플레이스막3

2019년 9월 18일 ~ 2019년 10월 6일

조영주는 지난 몇 년 동안 ‘아줌마’를 대상으로 영상 작업을 해 왔다. 약 100여 명의 아줌마를 다양한 지역에서 인터뷰했으며, 이들과 함께 간단한 안무를 만들고, 이들에 대한 사진, 영상을 찍어왔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아줌마’라는 굴레 속에서 모두의 목소리는 어느덧 ‘하나의 목소리’가 되었다. 그리고 조영주는 자연스럽게 ‘아줌마’가 된다. 때로는 아가씨인 듯, 때로는 아줌마인 듯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다양한 역할을 오가며 프로젝트를 했던 작가는 그 많은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더 이상 남이 아니라 ‘나’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이야기에 몰입한다.

조영주 작가와 나는 같은 또래이지만, 육아의 세계에는 내가 꽤 오래전에 뛰어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이도 나도 함께 성숙하지만, 그 시절에는 당장 눈앞이 캄캄할 만큼, 하루하루가 버겁고, 날짜에도 무감각했다. 그런 와중에 조영주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일상에서 반복되는 막막함을 넘어서 ‘예술가’로서 바로 서기이다. 작가는 어떤 굴곡진 일들, 목표를 향해 가는 도중 넘어진 것 같은 일에 늘 부딪치면서 궁극적으로는 예술가의 길에 질문을 던진다. 그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심정의 감각들이 이 전시에 녹아 있다.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젤리비 부인’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 『황폐한 집 Bleak House』의 주인공이다. 소설 속 젤리비 부인은 가족을 내버려두고 아프리카 부족을 돌보는 일에 몰두한다. 내 이웃이나 가까운 가족의 일보다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푼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이 용어는 ‘망원경 자선’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조영주는 여기에 ‘돋보기’를 덧대어 예술 프로젝트의 이름으로 ‘아줌마들’과 진행한 지난 작업과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한다. 작가는 예술가라는 사회적 직분, 동시에 일상에서의 다양하고 과중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예술가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되물어 왔다.

작품 제목 중 하나인 ‘Partly Living (불완전한 생활)’이 가지는 이미지처럼 365일을 펼쳐 놓으면 작업과 현실의 과업은 들쑥날쑥 반복된다. 조영주는 작가적 임무를 생활 속 임무와 구분하기도 하고 병치하기도 하며 Partly(부분적으로)를 ‘불완전한’의 의미로 전가한다. 작가는 이러한 물리적이고 감정적인 고단함의 날들을 크게 3가지 파트로 펼친다.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 만큼 어려운 일에 관하여 About a thing as difficult as true love can be>는 석고 가루와 주먹만 한 조각들, 종이 상자 위에 새겨진 텍스트들로 이루어진 설치 작품이다. 고운 석고 가루가 봉긋하게 솟아 올라와 있는 하얀 더미에는 ‘나를 잊어버렸는가?’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작가로서의 ‘나’와 일상에서 ‘나’의 다양한 역할이 뒤범벅된 지금의 모습이 ‘나를 잊어버렸는가?’라는 문구로 메아리친다. 이 문구는 작가 자신인 ‘나’에게 보내는 말인지, 혹은 관객에게 물어보는 말인지 모르게 감정적인 교차가 이루어진다. 몸을 부대꼈거나 손으로 만지작거렸을 것 같은 촉감적 조형물들이 함께 설치되어 있는데, 그것들은 마치 어떤 살덩어리 혹은, 조약돌이나 조개껍데기를 짐작하게 한다.

<나의 몸을 쓰는 것 Writing my body >에서 반복되는 피아노 선율, 흰옷 위로 드러나는 살과 몸이 만들어낸 제스처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임무를 다해야만 하는 누군가의 운명을 연상케 한다. 조영주는 출산 이후, 수십 개월 기록한 육아일지를 기반으로 무보와 악보를 만들고 본 영상을 위해 안무와 소나타 곡을 제작했다. 영상에서 작가는 본인의 신체로 직접 퍼포밍을 한다. 작가의 지금, 그대로의 ‘몸’은 새로운 신체적 경험으로 인해 다시 ‘드러나기’ 과정에 놓인다. 작가는 자신의 몸을 돌아보면서 현재의 육체가 가지는 고유함과 기억에 대해 타자의 시선이 아닌, 본연 그대로의 것으로 드러내고자 시도한다.

비디오 설치 <불완전한 생활 Partly Living>은 정신없이 흘러가는 매일 속에서 스치듯이 홀로 남아 있는 드문드문한 무렵을 담은 영상과 문구들을 엮어낸다. 수족관의 물고기, 아무것도 없는 바다, 공원의 분수대 등 특별한 무언가가 연상되지 않는 장면 위를 좌우로 흘러가는 텍스트는 매우 강인하다. 무거운 현실의 틈으로 잠시 꿈이라도 꾸듯 짧게 찾아오는 순간들은 실재하지만 동시에 비현실이며, 괜한 슬픔이기도 하고, 멈추고 싶은 찰나가 되기도 한다. 잠시 숨을 고르며 운동화 끈을 묶는 시간조차도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면, 그것은 매우 소중하며 이러한 일들은 나와 나의 동료들이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작품에 등장하는 “계획에 없던 피곤함을 견뎌라.”라는 문장처럼, 생각지 않았던 일들이 계속되었다. 조영주의 지금인지, 나의 지금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이 전시를 열면서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헛갈리는 날들을 이제는 수면 위로 떠올려보고 싶다. / 고윤정

출처: 플레이스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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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조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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