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씨유랑화첩 : 말레콘 Malecón

사진위주 류가헌

2016년 3월 15일 ~ 2016년 3월 27일


쿠바로부터 옮겨 온 아름다운 성소(聖所), 말레콘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성소(聖所)’가 필요하다고 한다. 성소가 반드시 종교적이거나 기도의 장소처럼 신성한 공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수평선이라든가 별이라던가, 자신의 시선을 아득한 지점까지 보낼 수 있는 곳, 그럼으로써 혼자 고요해지거나, 여럿이 즐거울 수 있는 곳. 혹은 언제고 옛 시절을 떠올리면 되돌아 가 서는 아련한 추억의 장소 등이 모두 성소일 것이다. 

말레콘(Malecón)은, 쿠바 사람들에게 그런 성소 가운데 하나다. 하바나의 해안가에 가로놓인 이것은 카리브해의 높은 파도로부터 도시의 삶을 지키는 방파제지만, 또 다른 아름다운 기능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 바다와 육지 사이의 이 두툼한 경계선은 쿠바인들의 산책로이자 놀이터, 데이트 장소, 쉼터 등으로 사용된다. 맑은 날에도, 궂은 날에도,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는 날에도, 그곳에는 늘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연인들의 속삭임, 다리쉼을 하는 노인의 고요한 숨소리까지가 모두 그 선상에 있다.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쿠바노들의 삶에 그려진 굵은 획.

쿠바와 하바나의 그 많은 명소들 중에서도 여행자들이 가장 ‘쿠바적’이라거나 ‘하바나적’인 풍경으로 말레콘을 꼽는 이유가 그 때문일 것이다.

또 배우 조민기 씨가 배우로서 여러 역할들을 살다가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할애하고플 때면 말레콘으로 찾아드는 것도 같은 이유다. 헤밍웨이, 스티븐 스필버그, 월트 디즈니, 무라카미 류 등 잘 알려진 많은 사람들이 쿠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토로하는 것처럼, 그에게도 역시 쿠바는 영감의 땅이다. 그 가운데서도, 배우로서 지나온 수많은 배역만큼이나 많은 쿠바노들의 삶의 한 순간과 다양한 감정들이 응집되어 있는 공간인 말레콘은 영감의 원천이자, 자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떠남으로써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되돌아 올 수 있는 그만의 성소이다.


<조씨유랑화첩 _ 말레콘>은 바로 그러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록이다. 낮과 밤, 맑고 흐린 날의 여러 말레콘 풍경을 중심으로 쿠바노들과 그들의 삶의 흔적이 배어 있는 집, 담벼락, 길로 확장되는 이 사진들 속에서, 우리는 왜 그가 지구 뒤편의 나라를 그토록 자주 방문했는지를 헤아릴 수 있다.

대중들에게는 ‘배우 조민기’로 잘 알려진 그지만 예술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 외에도, ‘사진가’는 이미 2005년에 <조씨유랑화첩 趙氏遊浪話帖>이라는 같은 제목으로 첫 개인전을 열고 이후 다수의 전시를 꾸준히 이어왔을 정도로 늘 마음과 몸을 쓰는 그의 아이덴티티의 일부다. 그가 쿠바로부터 옮겨 온 ‘말레콘’은, 3월15일부터 27일까지 류가헌에서 열린다.


조민기, 1100*1650cm. Pigment print. 2006


조민기, 600*400cm. Pigment print. 2011


 조민기, 900*600cm. Pigment print. 2011


출처 - 사진위주 류가헌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참여 작가

  • 조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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