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나 개인전 : Light Grey

공간 가변크기

2019년 12월 5일 ~ 2019년 12월 22일

풍경을 쓰는 법
안성은(미디어 비평, 큐레이터)

조미나는 풍경을 쓴다. 여기서 쓴다는 건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풍경을 작업의 소재/주제로 다룬다는 것이고, 하나는 말하기의 방식 혹은 도구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어떤 상황이나 대상이 풍경이 된다는 건 관찰자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확보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미나의 풍경은 작가가 들여다본 사회와 내면의 심상이 담긴 일종의 기록물로 관객과 만난다. 

첫 개인전 《Light Grey》에서는 옅은 회색을 입힌 새 캔버스 위에 옮겨온 총 8점의 회화 작품이 소개된다. 캔버스에는 이식하거나 가공하지 않은 날것의 자연이 담겨있다. 우거진 수풀, 기이한 암석층, 발치에 닿는 군집을 이룬 풀, 어른거리는 햇살 너머의 나무들, 생경한 질감의 사막과 번뜩이는 불꽃. 채도가 높고 낮은 각각의 장면은 개별의 구조를 가진 자연 속 단면이다. 대상과의 거리에 따라 부분이 전체가 된 장면이 있는가 하면, 제법 거리를 두고 멀찍이 서서 바라본 듯한 장면도 있다.

멀리서 환영과도 같은 불꽃을 바라보거나[1] 가보지 않은 사막 속 환경[2]을 캔버스 속으로 불러들이던 작가는 실제 풍경 앞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작가는 구조에 관심이 있다. 이는 평면을 탐구하며 어떤 상태에 대한 누적된 관찰과 (소리 없는) 크고 작은 폭발로 이어졌다. 이전 작업에서 외부나 가상의 환경을 가공하여 그것이 정리된 풍경으로 다가오기까지 여러 번의 형식 변화(평면 내 시점이동, 덩어리의 해체, 사용 빈도가 낮은 색상 매치 등)를 거쳤다면, 신작에서는 직접 마주한 대상에 대한 관찰을 통해 내밀하게 다듬어진 방식으로의 발산이 드러난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Grass of the night>와 <Fairy stream> 시리즈 (2019)는 작가를 압도시켰던 실제의 풍경에서 발췌한 것이다. 타국에서 마주한 야생의 자연에서 발견한 규칙, 나열, 경외,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구조들을 택했다. 대상과의 거리, 관찰자의 시점과 눈높이에 맞춰 시점의 변화를 담은 이 풍경들을 감상하기 위해선 관람에 움직임을 필요로 한다. 작품의 위치에 따라 고개를 들어 먼 곳을 응시하게 하거나 몸을 낮춰보고, 어깨쯤 왔을 풀의 높이를 가늠해 보게 하는 관람의 방식은 감각적으로 재편된 공간을 경험하게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또한 장면에 대한 상상으로 한눈에 전체를 보기 어려웠을 키가 훌쩍 큰 풀숲 앞에 선 듯한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이처럼 여덟 개의 장면 앞으로 관람자를 바싹 끌어당긴 작가의 눈은 장면에 맞는 관람 동작과 시간사용법을 제시한다.

시각적 경험 외에도 만져질 것만 같은 촉각적 시각성, 실제의 촉감, 그리고 후각을 자극했던 기억 속 감각이 풍경이 되기까지 조미나는 잊히는 기억을 자꾸만 밝혀야 했을 것이다. 기억을 비추는 풍경의 빛이 희미해지지 않고, 잠잠히 그곳에서 누군가의 기억이 되는 곳. 《Light Grey》가 직조하는 풍경이 그와 같은 역할이 되기를 바란다.

[1] Explosion 시리즈, <Untitled>, 53x45.4cm, oil on canvas, 2016
[2] Explosion 시리즈, <Untitled>, 53x40.9cm, oil on canvas, 2016

출처: 공간가변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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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조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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