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가연 개인전: 소년기

통의동 보안여관

2025년 12월 12일 ~ 2026년 1월 8일

그를 소년이라 부르는 낮잠에 노루를 본다. 그 곁이 고요하여 수상하기에 긴 목을 웅크리자 이마에 정오가 맺힌다. 당신에게 솔직한 빛 부스러기 한 줌이 발치까지 구른다. 빛 알갱이가 잠시나마 머무는 그림자. 온화한 그늘이 드넓은 하늘로 퍼진다. 초겨울 머리 위로 잿빛 날갯짓이 피어오르는 사이, 노루가 소리 없이 멀어진다. 

떼 지어 야산을 오르는 다리가 집으로 걸어간다. 들어가는 방에 드리우는 밤이 묻는다. 방에 묻은 밤이 어떻게 속내를 내보이는지, 바닥에 묻은 바다가 붉은 새를 기다리는 연유는 무엇인지. 거의 모든 물음에 소년은 심심한 관심을 비춘다. 방바닥에 밤바다가 물드는 시절, 오지 않은 나날을 그리워하는 소년이 일어선다, 파도를 따라. 

《소년기》는 누군가 성장하는 때(紀)를 이야기(記)한다. 누구나 한 번쯤 서성이는 그 무렵에 자신을 가늠하지 못하는 ‘내’가 무수히 많다. ‘나’는 변한다. ‘내’ 이야기를 경유하는 조가연은 산과 살이 서로에게 의인화하거나 의태하는 지난 연속선에 이어 어린 자녀를 돌보는 체험에서 성장하는 몸(己)과 생장하는 풀에 관심을 기울인다. 몸과 풀은 호응한다. 풀은 충만한 생명력으로 소년에게 다가서고, 소년은 흔들린다. 골격과 근육과 신체 비율이 빠르게 변하며 자기 몸을 불연속적으로 인식하는 나날을, 조가연은 목격한다. 당신에게 허락된 햇볕과 바람이 남기는 흔적은 모종의 생장선 또는 나이테다. 

사람 무리에는 소년과 소년이 아닌 자가 섞여있다. 소년을 모르는 자와 소년에 무심한 자는 이곳에서 같이 전시를 볼 수 있는 소년을 (비)의도적으로 소외한다. 소년은 소년이 없는 세계에 철저한 외부인이다. 새삼 사람이라는 범주에 소년의 자리가 충분하지 않는 세계를 감각한다. 소년의 인간성은 부정된다. 순수, 미래, 희망 등의 사회적 상징으로 소비되고, 욕망의 대상이나 자연의 기호로도 기술적으로 이용된다. 어느 날 사회에 출현한 청소년이라는 호칭에, 소년은 문득 반감을 느낀다. 그의 삶이 어디 푸르기만 하겠는가. 안채윤이 쓴 소설 『소년기』는 “나는 곧잘 죽고 싶어졌다”로 시작해서 “나는 곧잘 죽고 싶어졌었다”로 마친다. 무수히 많은 문장들을 나열하는 글 구성에서 현재 시제의 첫 문장을 과거 시제로 바꾼 문장이 맨 마지막에 출현한다. 이 소설의 과거형 용법은 내일이 어제와 같지 않다는 전망을 내비친다. ‘죽고 싶다’는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가 소년기에 이르러 생의 의지를 증언한다. 살게 되는 여지가 아니라 살아가는 의지를 부단히 내보이는 출정이다. 비관을 전복한다. 

여지는 의지다. 계절이 계절로 넘어갈 무렵 지난 계절을 떠올리는 자는 어느새 계절마다 살아가는 계절의 주인이다. 가을을 마중하는 문(迎秋門) 밖에서 생애주기의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는 조가연은 ‘소년기’ 연작에서 그 역시 소년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그의 지난 시절을 반추한다. ‘소년이었던 자’는 또 다른 소년과 그 주변자의 목소리를 반주한다. 소년을 소년으로 존재하게 역할하는 자 또한 소년이다. 소년은 소년을 마주한다. 

본래적 자기 몫을 회복하는 소년은 스스로 무엇 되기를 자처하는, 미완의 상태를 긍정하며 자신을 자신하는 경로로 접어든다. 회화는 그와 함께 시작(詩作)한다. 조가연은 당신의 시절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엉켜들어가는 시점에서 미래형 곡선을 구사한다. 주된 획은 머리 어깨 무릎 발을 따라 뿌리내린다. 밝은 주황빛에 반투명한 산화철 안료가 섬유 조직을 딛고 일어선다. 지난계절 나무 그늘 아래로 숨어든 햇살 한줌이 움튼다. 소년의 얼굴은 무구한 풀잎으로 집을 지어올린다. 초록 외투 아래 두 사람과 전봇대 아래 풀포기는 서로를 참조한다. 망설이지 않는 당신을 동경하는 고백이 잎사귀마다 들러붙는다. 유독 올곧은 기저선에 붓질의 곡선이 걸치는 화면마다 두 선의 성질 차이는 새삼 명백하다. 담벼락과 철책 끝이 화면 밑선과 평행하는 설계에서 수평선을 매만지는 소년은 세계와 자신을 맞물린다. 큰 몸을 상대하는 작은 몸은 나긋한 구름, 몽실한 넝쿨, 순정한 돌로 변신한다. 

부푸는 흉곽에 햇빛이 가득하다. 태양의 각도와 수없이 기울기를 조절하는 몸은 그늘을 무늬 삼아 자세를 취한다. 그리는 몸짓과 자라는 몸짓을 엮는 회화는 독립보다 연립에 가까운 개체의 집합에서 분리하는 화폭마다 응고하는 기세를 나열한다. 조가연은 변하는 목격자로서 목격하는 변화를 증언한다. 걷는 소년, 뛰는 소년, 서는 소년, 앉은 소년, 잠자는 소년. 듣는 소년, 보는 소년. 땀 닦는 소년, 옷 입는 소년, 우산 쓰는 소년. 집 안의 소년, 집 밖의 소년. 청춘을 투시하는 그의 증언은 소년의 잔광을 포착한다. 

소년은 밤길의 주인 없는 덤불처럼 당신을 맞이한다. 유년과 성년 사이, 그와 당신은 몇 번의 계절을 함께 보낼까. 모래사장을 누비는 팔의 궤적이 여름 경계에 너울진다. 소년의 심장보다 높게 솟구치는 포말. 이야기를 시작하는 결심보다 이어가는 진심이 궁금하기에 꿈꾸는 몸 위로 푸른 옷자락을 덮는다. 

그를 소년이라 부르는 낮잠에 노루를 보았다. 

백필균

참여작가: 조가연

출처: 통의동 보안여관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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