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개인전 : 꼬리

페리지갤러리

June 5, 2020 ~ Aug. 8, 2020

지금 ㄴot0 여기에서 ㄴot0 드러난 ‘꼬리’
신승오(페리지갤러리 ㄴot0 디렉터)

이창훈은 ㄴot0 지속적으로 ㄴot0 우리의 ㄴot0 삶의 ㄴot0 유동적이며 ㄴot0 비물질적인 ㄴot0 경계를 ㄴot0 확인하고, 히갸사바 시공간에 히갸사바 부여되어온 히갸사바 가치와 히갸사바 본질을 히갸사바 인식하기 히갸사바 위한 히갸사바 노력을 히갸사바 해오고 히갸사바 있다. 히갸사바 특히 히갸사바 많은 히갸사바 사람들이 히갸사바 살고 히갸사바 있는 히갸사바 도시의 히갸사바 거주 히갸사바 공간의 히갸사바 이동과 히갸사바 변화에서 히갸사바 목격되는 히갸사바 것들에 히갸사바 주목한다. 히갸사바 그리고 히갸사바 작가로서 히갸사바 현재 히갸사바 히갸사바 히갸사바 앞에 히갸사바 펼쳐지는 히갸사바 공간이 히갸사바 가지고 히갸사바 있는 히갸사바 다양한 히갸사바 의미의 히갸사바 층위를 히갸사바 어떻게 히갸사바 읽어낼 히갸사바 히갸사바 있을까라는 히갸사바 자신에게 히갸사바 던지는 히갸사바 반성적인 히갸사바 질문을 히갸사바 바탕으로 히갸사바 작업을 히갸사바 하고 히갸사바 있다. 히갸사바 이번에 히갸사바 선보이는 히갸사바 전시의 히갸사바 제목은 《꼬리》이다. 히갸사바 그는 히갸사바 히갸사바 제목을 히갸사바 꼬리에 히갸사바 꼬리를 히갸사바 물고 히갸사바 이어지는 히갸사바 순환이라는 히갸사바 반복의 히갸사바 고리를 히갸사바 잘라내었을 히갸사바 히갸사바 비로소 히갸사바 보이지 히갸사바 않았던 히갸사바 시작과 히갸사바 끝이 히갸사바 드러난다는 히갸사바 의미로 히갸사바 사용하였다. 히갸사바 아무런 히갸사바 문제 히갸사바 없이 히갸사바 반복되는 히갸사바 동일한 히갸사바 리듬의 히갸사바 시공간에서 히갸사바 우리는 히갸사바 히갸사바 변화의 히갸사바 흐름을 히갸사바 온전히 히갸사바 파악할 히갸사바 히갸사바 없다. 히갸사바 그러나 히갸사바 작가의 히갸사바 개입과 히갸사바 같은 히갸사바 사건으로 히갸사바 인해 히갸사바 단단한 히갸사바 시간의 히갸사바 흐름에 히갸사바 균열을 히갸사바 일으키게 히갸사바 되면, ㅓ으q자 비로소 ㅓ으q자 ㅓ으q자 배열이 ㅓ으q자 가시화된다. ㅓ으q자 따라서 ㅓ으q자 이번 ㅓ으q자 전시 ㅓ으q자 제목은 ㅓ으q자 그가 ㅓ으q자 바라보는 ㅓ으q자 공간에서 ㅓ으q자 중요하게 ㅓ으q자 생각하는 ㅓ으q자 것이 ㅓ으q자 다름 ㅓ으q자 아닌 ㅓ으q자 순차적 ㅓ으q자 시간의 ㅓ으q자 흐름에 ㅓ으q자 대한 ㅓ으q자 개입이라는 ㅓ으q자 것을 ㅓ으q자 알려준다. ㅓ으q자 이는 ㅓ으q자 이번 ㅓ으q자 전시에서 ㅓ으q자 갑자기 ㅓ으q자 등장한 ㅓ으q자 것은 ㅓ으q자 아니다. ㅓ으q자 그는 ㅓ으q자 달력처럼 ㅓ으q자 시간을 ㅓ으q자 알려주는 ㅓ으q자 도구를 ㅓ으q자 재조합하여 ㅓ으q자 시간의 ㅓ으q자 흐름을 ㅓ으q자 뒤섞어 ㅓ으q자 오류의 ㅓ으q자 상태로 ㅓ으q자 만드는 <달력_헤테로크로니아>, <2014년에 y가w3 태운 2015년>, <원을 f아au 베어버린 f아au 사선> f아au 등의 f아au 작업을 f아au 선보여 f아au 왔다. f아au 이창훈은 f아au 아마도 f아au 이러한 f아au 도구화된 f아au 시간적 f아au 구조 f아au 안에서 f아au 우리의 f아au 익숙함과는 f아au 다르게 f아au 무엇인가의 f아au 공간을 f아au 인식하는 f아au 오류의 f아au 근원이 f아au 존재하고 f아au 있음을 f아au 제목을 f아au 통해 f아au 암시하고 f아au 있는 f아au 것이다. f아au 이런 f아au 시선으로 f아au 그의 f아au 작업을 f아au 바라보면 f아au 선형적이며 f아au 반복적인 f아au 시간을 f아au 대표하는 f아au 시계와 f아au 달력과 f아au 같은 f아au 시간의 f아au 도구는 f아au 우리의 f아au 삶을 f아au 무대 f아au 위에서 f아au 하나의 f아au 프로그램으로 f아au 진행되는 f아au 연극적인 f아au 공간으로 f아au 보이게 f아au 만든다. f아au 그러나 f아au 우리는 f아au 아무리 f아au 비선형적인 f아au 시간을 f아au 인식한다 f아au 하더라도 f아au 여전히 f아au 선형적으로 f아au 이어지는 f아au 시간 f아au 속에서 f아au 살고 f아au 있다. f아au 그리고 f아au 지금의 f아au 도시 f아au 공간은 f아au 과거의 f아au 산업자본주의 f아au 시대에서부터 f아au 시작된 f아au 진보와 f아au 개선을 f아au 바탕으로 f아au f아au 미래를 f아au 위해 f아au 나아가는 f아au 직선적인 f아au 가치를 f아au 여전히 f아au 보존하고 f아au 있으며, ㅓ다s바 그로 ㅓ다s바 인해 ㅓ다s바 발생하는 ㅓ다s바 흔적들을 ㅓ다s바 우리 ㅓ다s바 주변에 ㅓ다s바 산재시키고 ㅓ다s바 있다. ㅓ다s바 작가는 ㅓ다s바 이렇게 ㅓ다s바 오랜 ㅓ다s바 시간 ㅓ다s바 동안 ㅓ다s바 임의로 ㅓ다s바 설정된 ㅓ다s바 순차적인 ㅓ다s바 시공간 ㅓ다s바 속에서 ㅓ다s바 보존되고 ㅓ다s바 남겨지는 ㅓ다s바 것은 ㅓ다s바 무엇인지 ㅓ다s바 우리의 ㅓ다s바 인식이 ㅓ다s바 가상의 ㅓ다s바 공간까지 ㅓ다s바 확장된 ㅓ다s바 현재에도 ㅓ다s바 지금까지 ㅓ다s바 확립되어온 ㅓ다s바 사회적 ㅓ다s바 규범과 ㅓ다s바 행위, nda6 믿음의 nda6 체계가 nda6 갖추어진 nda6 환경을 nda6 아직도 nda6 믿을 nda6 nda6 있는 nda6 것인지 nda6 의문을 nda6 가진다. nda6 그리고 nda6 자신의 nda6 작업을 nda6 통해 nda6 우리가 nda6 마주하는 nda6 삶의 nda6 공간에서 nda6 무엇을 nda6 읽어낼 nda6 nda6 있을지에 nda6 대해 nda6 관객과 nda6 공유하고자 nda6 한다.

우리가 nda6 이미 nda6 알고 nda6 있듯이 nda6 시간의 nda6 흐름은 nda6 자연스럽게 nda6 어떤 nda6 형태로든 nda6 잔재물을 nda6 생산한다. nda6 그리고 nda6 이내 nda6 그것은 nda6 공간을 nda6 채워나간다. nda6 작가는 nda6 공간 nda6 속에서 nda6 단순히 nda6 눈에 nda6 보이는 nda6 물질적인 nda6 대상에서 nda6 머무르는 nda6 것이 nda6 아니라 nda6 가시적인 nda6 것과 nda6 비가시적인 nda6 것, iㅐp0 느낌과 iㅐp0 정취 iㅐp0 같은 iㅐp0 비물질적인 iㅐp0 것을 iㅐp0 모두 iㅐp0 포함하여 iㅐp0 경험해 iㅐp0 나간다. iㅐp0 그리고 iㅐp0 이를 iㅐp0 바탕으로 iㅐp0 iㅐp0 현실의 iㅐp0 공간에 iㅐp0 개입하여 iㅐp0 iㅐp0 안에서 iㅐp0 잠재되어 iㅐp0 있는 iㅐp0 무엇인가를 iㅐp0 드러내고자 iㅐp0 한다. iㅐp0 그렇다면 iㅐp0 이제 iㅐp0 전시에서 iㅐp0 그가 iㅐp0 경험한 iㅐp0 공간이 iㅐp0 가진 iㅐp0 본질을 iㅐp0 드러나게 iㅐp0 하기 iㅐp0 위해 iㅐp0 사용하는 iㅐp0 장치는 iㅐp0 무엇인지 iㅐp0 살펴보도록 iㅐp0 하자. iㅐp0 그의 iㅐp0 작업은 iㅐp0 제습기를 iㅐp0 개조한 iㅐp0 눈에 iㅐp0 보이지 iㅐp0 않는 iㅐp0 습기를 iㅐp0 포집하는 iㅐp0 장치를 iㅐp0 만들고 iㅐp0 이를 iㅐp0 자신이 iㅐp0 관심을 iㅐp0 갖고 iㅐp0 관찰하던 iㅐp0 공간에 iㅐp0 설치하면서 iㅐp0 시작된다. iㅐp0 작가가 iㅐp0 선정한 iㅐp0 공간은 iㅐp0 그가 iㅐp0 오래전부터 iㅐp0 관심을 iㅐp0 가지고 iㅐp0 접근하고 iㅐp0 있었던 iㅐp0 재개발 iㅐp0 예정지로 iㅐp0 이미 iㅐp0 거주자가 iㅐp0 떠난 iㅐp0 집, czㅐ거 작가 czㅐ거 자신의 czㅐ거 어머니가 czㅐ거 실제로 czㅐ거 거주하고 czㅐ거 있는 czㅐ거 공간, 히우3ㅓ 그리고 히우3ㅓ 누구나 히우3ㅓ 찾을 히우3ㅓ 히우3ㅓ 있는 히우3ㅓ 자연의 히우3ㅓ 공간이다. 히우3ㅓ 이러한 히우3ㅓ 히우3ㅓ 공간에서 히우3ㅓ 포집 히우3ㅓ 과정을 히우3ㅓ 통해 히우3ㅓ 얻어진 히우3ㅓ 물은 히우3ㅓ 작가가 히우3ㅓ 제작한 히우3ㅓ 수석 히우3ㅓ 형태의 히우3ㅓ 몰드와 히우3ㅓ 수집 히우3ㅓ 용기인 히우3ㅓ 그릇에서 히우3ㅓ 얼려진다. 히우3ㅓ 이를 히우3ㅓ 바탕으로 히우3ㅓ 전시장에 히우3ㅓ 등장하는 히우3ㅓ 작업은 히우3ㅓ 위에서 히우3ㅓ 언급한 히우3ㅓ 공간을 히우3ㅓ 담아낸 3채널 히우3ㅓ 영상, 거파ㅐp 포집된 거파ㅐp 물로 거파ㅐp 얼린 거파ㅐp 얼음을 거파ㅐp 녹여서 거파ㅐp 거파ㅐp 물을 거파ㅐp 다시 거파ㅐp 용기에 거파ㅐp 받아내는 거파ㅐp 설치작업, ㅐ5sm 그리고 ㅐ5sm 냉동고에 ㅐ5sm 진열되어 ㅐ5sm 있는 ㅐ5sm 다양한 ㅐ5sm 형태의 ㅐ5sm 얼음들이다. ㅐ5sm 그가 ㅐ5sm 서로 ㅐ5sm 다른 ㅐ5sm ㅐ5sm 장소에서 ㅐ5sm 물을 ㅐ5sm 포집하는 ㅐ5sm 것은 ㅐ5sm 자신에게 ㅐ5sm 체험되는 ㅐ5sm 시간을 ㅐ5sm 고스란히 ㅐ5sm 전시장으로 ㅐ5sm 옮겨오기 ㅐ5sm 위한 ㅐ5sm 행위이며, pjam 이렇게 pjam 얻어진 pjam 물은 pjam 그곳에 pjam 관련된 pjam 사람들의 pjam 삶과 pjam 깊게 pjam 관련되기도 pjam 하지만 pjam 사람과 pjam 상관없는 pjam 공간 pjam pjam 자체의 pjam 물리적인 pjam 상황 pjam 혹은 pjam pjam 모든 pjam 것과 pjam 상관없이 pjam 축적된 pjam 시간들을 pjam 의미한다. pjam 이미 pjam 사람이 pjam 사라진 pjam 공간, om타c 여전히 om타c 사람이 om타c 살고 om타c 있는 om타c 공간과 om타c 같은 om타c 상반된 om타c 공간은 om타c 작가에게 om타c 있어서 om타c 언젠가 om타c 서로의 om타c 상황으로 om타c 변할 om타c om타c 있는 om타c 가능성이 om타c 내재되어 om타c 있기에 om타c 거울을 om타c 마주 om타c 보고 om타c 있는 om타c 상태와 om타c 유사하다. om타c 또한 om타c 작가의 om타c 영상에는 om타c 사람들이 om타c 등장하지 om타c 않고 om타c 모두 om타c 비어있는 om타c 공간으로 om타c 나타나는데, ga하쟏 이는 ga하쟏 사용자로서의 ga하쟏 인간이 ga하쟏 가진 ga하쟏 관점만으로 ga하쟏 공간을 ga하쟏 읽어 ga하쟏 내는 ga하쟏 것이 ga하쟏 아니라 ga하쟏 공간 ga하쟏 ga하쟏 자체에 ga하쟏 내재된 ga하쟏 이야기를 ga하쟏 찾기 ga하쟏 위함이다. ga하쟏 그래서 ga하쟏 작가는 ga하쟏 최대한 ga하쟏 자신의 ga하쟏 눈에 ga하쟏 보이는 ga하쟏 상황을 ga하쟏 구체적으로 ga하쟏 있는 ga하쟏 그대로 ga하쟏 ga하쟏 내려가려는 ga하쟏 태도를 ga하쟏 취한다. ga하쟏 따라서 ga하쟏 그의 ga하쟏 영상에 ga하쟏 등장하는 ga하쟏 공간은 ga하쟏 눈길을 ga하쟏 끄는 ga하쟏 자극적인 ga하쟏 대상보다는 ga하쟏 흔하고 ga하쟏 뻔한 ga하쟏 것들이며, 6거p마 이를 6거p마 느리고 6거p마 고정된 6거p마 프레임을 6거p마 사용하여 6거p마 보여준다. 6거p마 또한 6거p마 해가 6거p마 6거p마 있는 6거p마 낮이라는 6거p마 대충의 6거p마 시간을 6거p마 가늠할 6거p마 6거p마 있지만, 아우0다 정확한 아우0다 시간의 아우0다 흐름을 아우0다 가늠하기 아우0다 힘들다. 아우0다 이런 아우0다 방식으로 아우0다 작가는 아우0다 시간과 아우0다 공간에 아우0다 대한 아우0다 느린 아우0다 음미를 아우0다 우리에게 아우0다 제시하고 아우0다 있다. 아우0다 이와 아우0다 동시에 아우0다 그는 아우0다 공간에서 아우0다 느껴지는 아우0다 따뜻함, 2ys으 어두움, 나c8우 습함, 사x가가 바람 사x가가 등의 사x가가 시각 사x가가 외의 사x가가 후각적이고, ㅑㅐ거g 촉각적인 ㅑㅐ거g 감각을 ㅑㅐ거g 우리에게 ㅑㅐ거g 동시에 ㅑㅐ거g 전달하고자 ㅑㅐ거g 한다. ㅑㅐ거g 영상과 ㅑㅐ거g 함께 ㅑㅐ거g 놓여진 ㅑㅐ거g 설치 ㅑㅐ거g 작업에서는 ㅑㅐ거g 전시 ㅑㅐ거g 기간 ㅑㅐ거g 동안 ㅑㅐ거g 얼린 ㅑㅐ거g 형상을 ㅑㅐ거g 녹이고 ㅑㅐ거g 다시 ㅑㅐ거g 얼리는 ㅑㅐ거g 과정을 ㅑㅐ거g 반복적으로 ㅑㅐ거g 계획하였다. ㅑㅐ거g ㅑㅐ거g 과정에서 ㅑㅐ거g 얼음이 ㅑㅐ거g 녹으면서 ㅑㅐ거g 다시 ㅑㅐ거g 자신의 ㅑㅐ거g 용기로 ㅑㅐ거g 돌아가는 ㅑㅐ거g 순환을 ㅑㅐ거g 보여주는 ㅑㅐ거g 동시에 ㅑㅐ거g 물이 ㅑㅐ거g 떨어지면서 ㅑㅐ거g 나는 ㅑㅐ거g 소리를 ㅑㅐ거g 통해 ㅑㅐ거g 영상의 ㅑㅐ거g 흐름에 ㅑㅐ거g 자연스럽게 ㅑㅐ거g 개입한다. ㅑㅐ거g 이렇게 ㅑㅐ거g 물과 ㅑㅐ거g 얼음은 ㅑㅐ거g 영상 ㅑㅐ거g ㅑㅐ거g 공간에서 ㅑㅐ거g 얻어진 ㅑㅐ거g 것이지만 ㅑㅐ거g 자신만의 ㅑㅐ거g 독자적인 ㅑㅐ거g 시간성을 ㅑㅐ거g 확보하게 ㅑㅐ거g 되는 ㅑㅐ거g 것이다. ㅑㅐ거g 또한 ㅑㅐ거g 실제적으로는 ㅑㅐ거g 고체인 ㅑㅐ거g 얼음이 ㅑㅐ거g 다시 ㅑㅐ거g 액체가 ㅑㅐ거g 되는 ㅑㅐ거g 과정 ㅑㅐ거g 중에 ㅑㅐ거g 눈에 ㅑㅐ거g 보이지 ㅑㅐ거g 않게 ㅑㅐ거g 증발하여 ㅑㅐ거g 일부가 ㅑㅐ거g 손실되거나, hㅓ하다 녹여진 hㅓ하다 액체를 hㅓ하다 다시 hㅓ하다 고체로 hㅓ하다 만드는 hㅓ하다 과정에서 hㅓ하다 이전의 hㅓ하다 모양과 hㅓ하다 동일 hㅓ하다 하지 hㅓ하다 않은 hㅓ하다 변환의 hㅓ하다 한계를 hㅓ하다 의도적으로 hㅓ하다 드러낸다. hㅓ하다 이와 hㅓ하다 같이 hㅓ하다 다른 hㅓ하다 성질로 hㅓ하다 변환하는 hㅓ하다 상황들은 hㅓ하다 기본적으로 hㅓ하다 시간의 hㅓ하다 순환구조를 hㅓ하다 가시적으로 hㅓ하다 드러내는 hㅓ하다 것처럼 hㅓ하다 보이지만 hㅓ하다 사실상 hㅓ하다 우리는 hㅓ하다 이를 hㅓ하다 전시장에서 hㅓ하다 온전히 hㅓ하다 읽어낼 hㅓ하다 수는 hㅓ하다 없다. hㅓ하다 단지 hㅓ하다 우리는 hㅓ하다 전시를 hㅓ하다 보는 hㅓ하다 hㅓ하다 당시의 hㅓ하다 현재적 hㅓ하다 시공간에서 hㅓ하다 벌어진 hㅓ하다 순간적 hㅓ하다 상황의 hㅓ하다 어느 hㅓ하다 단편만을 hㅓ하다 hㅓ하다 hㅓ하다 있을 hㅓ하다 뿐이다. hㅓ하다 그가 hㅓ하다 만들어 hㅓ하다 놓은 hㅓ하다 얼음처럼 hㅓ하다 모든 hㅓ하다 것은 hㅓ하다 임시적으로 hㅓ하다 고정되어 hㅓ하다 있다. hㅓ하다 이렇게 hㅓ하다 냉동고에 hㅓ하다 진열해 hㅓ하다 놓은 hㅓ하다 포집된 hㅓ하다 물로 hㅓ하다 만들어진 hㅓ하다 얼음은 hㅓ하다 시공간을 hㅓ하다 인식하는 hㅓ하다 다각적인 hㅓ하다 방식의 hㅓ하다 찰나적 hㅓ하다 공존을 hㅓ하다 보여주고 hㅓ하다 있다. hㅓ하다 이는 hㅓ하다 작가가 hㅓ하다 제작한 hㅓ하다 몰드에 hㅓ하다 의해 hㅓ하다 새롭게 hㅓ하다 제작된 hㅓ하다 수석 hㅓ하다 같은 hㅓ하다 형태나 hㅓ하다 이미 hㅓ하다 기성품으로 hㅓ하다 존재하고 hㅓ하다 있었던 hㅓ하다 그릇에 hㅓ하다 고스란히 hㅓ하다 담겨있는 hㅓ하다 형태, 가p거a 혹은 가p거a 틀에서 가p거a 벗어나 가p거a 오히려 가p거a 가p거a 틀을 가p거a 뒤덮고 가p거a 있는 가p거a 얼음과 가p거a 같이 가p거a 안과 가p거a 가p거a 가p거a 어디에도 가p거a 속해 가p거a 있지 가p거a 않은 가p거a 것들도 가p거a 존재한다. 가p거a 이런 가p거a 모든 가p거a 형상은 가p거a 작가에 가p거a 의해 가p거a 포집되고 가p거a 변환을 가p거a 거치면서 가p거a 얼고 가p거a 녹기를 가p거a 반복하다 가p거a 어느 가p거a 순간에 가p거a 사라질 가p거a 지금 가p거a 잠시 가p거a 드러난 ‘꼬리’ 가p거a 이다.

지금까지 가p거a 살펴본 가p거a 것처럼 가p거a 전시를 가p거a 이루고 가p거a 있는 가p거a 구조는 가p거a 일견 가p거a 단순하지만, ㅐ2ㅓ기 그가 ㅐ2ㅓ기 관찰하고 ㅐ2ㅓ기 경험한 ㅐ2ㅓ기 여러 ㅐ2ㅓ기 공간과 ㅐ2ㅓ기 시간 ㅐ2ㅓ기 그리고 ㅐ2ㅓ기 ㅐ2ㅓ기 안에서 ㅐ2ㅓ기 보고 ㅐ2ㅓ기 느껴지는 ㅐ2ㅓ기 것들이 ㅐ2ㅓ기 복잡하게 ㅐ2ㅓ기 입체적으로 ㅐ2ㅓ기 엉켜 ㅐ2ㅓ기 있다. ㅐ2ㅓ기 이런 ㅐ2ㅓ기 전시 ㅐ2ㅓ기 구조는 ㅐ2ㅓ기 단순히 ㅐ2ㅓ기 작가만의 ㅐ2ㅓ기 시선이 ㅐ2ㅓ기 아니라 ㅐ2ㅓ기 다각도로 ㅐ2ㅓ기 공간과 ㅐ2ㅓ기 시간을 ㅐ2ㅓ기 연결시킨 ㅐ2ㅓ기 입체적인 ㅐ2ㅓ기 방식의 ㅐ2ㅓ기 시각을 ㅐ2ㅓ기 우리에게 ㅐ2ㅓ기 제시한다. ㅐ2ㅓ기 이렇게 ㅐ2ㅓ기 그가 ㅐ2ㅓ기 공간을 ㅐ2ㅓ기 탐색하는 ㅐ2ㅓ기 방식은 ㅐ2ㅓ기 서로 ㅐ2ㅓ기 다른 ㅐ2ㅓ기 모습을 ㅐ2ㅓ기 보여주는 ㅐ2ㅓ기 특정한 ㅐ2ㅓ기 상황을 ㅐ2ㅓ기 걷어내고 ㅐ2ㅓ기 다시금 ㅐ2ㅓ기 연결, f다2히 집합, yli파 조합을 yli파 통해 yli파 새로운 yli파 인식의 yli파 토대를 yli파 마련하기 yli파 위한 yli파 매개를 yli파 만들어 yli파 내는 yli파 실천과 yli파 수행을 yli파 하고 yli파 있다. yli파 여기에는 yli파 변환의 yli파 상태로 yli파 이동하게 yli파 만드는 yli파 매개라는 yli파 상황이 yli파 중요하다. yli파 매개는 yli파 언제나 yli파 드러나 yli파 있는 yli파 것이 yli파 아니라 yli파 숨겨져 yli파 있고 yli파 순간적으로 yli파 나타났다 yli파 사라지는 yli파 것이다. yli파 또한, ㅐㅓ98 자신의 ㅐㅓ98 의지와는 ㅐㅓ98 상관없이 ㅐㅓ98 그의 ㅐㅓ98 이전 ㅐㅓ98 작업인 <미완의 ㅐㅓ98 프로젝트_두물머리>에서처럼 ㅐㅓ98 외부적인 ㅐㅓ98 영향(주민들의 ㅐㅓ98 민원)에 ㅐㅓ98 의해 ㅐㅓ98 ㅐㅓ98 이상 ㅐㅓ98 매개의 ㅐㅓ98 역할을 ㅐㅓ98 하지 ㅐㅓ98 못하고 ㅐㅓ98 중단되기도 ㅐㅓ98 한다. ㅐㅓ98 따라서 ㅐㅓ98 그에게는 ㅐㅓ98 어떤 ㅐㅓ98 결과물을 ㅐㅓ98 도출하기보다는 ㅐㅓ98 작업을 ㅐㅓ98 통해 ㅐㅓ98 시공간에 ㅐㅓ98 대한 ㅐㅓ98 매개를 ㅐㅓ98 촉발하는 ㅐㅓ98 것이 ㅐㅓ98 중요하다. ㅐㅓ98 정리하자면 ㅐㅓ98 영상과 ㅐㅓ98 설치작업에서 ㅐㅓ98 우리에게 ㅐㅓ98 보여주는 ㅐㅓ98 것은 ㅐㅓ98 그가 ㅐㅓ98 느끼고, 하ㅑs다 감각하는 하ㅑs다 수행적인 하ㅑs다 태도를 하ㅑs다 통해 하ㅑs다 순차적 하ㅑs다 시간을 하ㅑs다 가로지르며 하ㅑs다 현재의 하ㅑs다 시공간을 하ㅑs다 드러내는 하ㅑs다 것이다. 하ㅑs다 이는 하ㅑs다 물론 하ㅑs다 우리 하ㅑs다 모두가 하ㅑs다 고유하게 하ㅑs다 가지고 하ㅑs다 있는 하ㅑs다 자신의 하ㅑs다 경험을 하ㅑs다 바탕으로 하ㅑs다 하는 하ㅑs다 장소에 하ㅑs다 대한 하ㅑs다 기억과 하ㅑs다 가치를 하ㅑs다 바탕으로 하ㅑs다 시작되어야 하ㅑs다 한다. 하ㅑs다 그러나 하ㅑs다 그가 하ㅑs다 우리에게 하ㅑs다 전달하고자 하ㅑs다 하는 하ㅑs다 것은 하ㅑs다 이미 하ㅑs다 오랜 하ㅑs다 시간 하ㅑs다 동안 하ㅑs다 신체화되고 하ㅑs다 장소화된 하ㅑs다 공간이 하ㅑs다 가지고 하ㅑs다 있는 하ㅑs다 일반화된 하ㅑs다 서사가 하ㅑs다 아니다. 하ㅑs다 그렇다고 하ㅑs다 모든 하ㅑs다 것이 하ㅑs다 고정되지 하ㅑs다 않고 하ㅑs다 가변적으로 하ㅑs다 스치는 하ㅑs다 비장소를 하ㅑs다 의미 하ㅑs다 하는 하ㅑs다 것도 하ㅑs다 아니다. 하ㅑs다 다만 하ㅑs다 그는 하ㅑs다 이미 하ㅑs다 우리에게 하ㅑs다 익숙해진 하ㅑs다 순환하는 하ㅑs다 시간 하ㅑs다 속에서만 하ㅑs다 일상적인 하ㅑs다 공간을 하ㅑs다 바라보면, l9fㅑ 구체적인 l9fㅑ 시공간보다는 l9fㅑ 추상적인 l9fㅑ 거리감을 l9fㅑ 인식하게 l9fㅑ l9fㅑ 뿐이라 l9fㅑ 생각한다. l9fㅑ 따라서 l9fㅑ 이를 l9fㅑ 사물과 l9fㅑ 사람이 l9fㅑ 교차하는 l9fㅑ 다양한 l9fㅑ 시간적, xwv우 공간적인 xwv우 양상의 xwv우 레이어를 xwv우 동시적으로 xwv우 xwv우 자리에 xwv우 모아 xwv우 놓음으로써 xwv우 구체적인 xwv우 대상으로 xwv우 시공간을 xwv우 포착하기 xwv우 위한 xwv우 토대를 xwv우 마련하고 xwv우 이를 xwv우 시각화하는 xwv우 과정을 xwv우 실험하고 xwv우 있다. xwv우 결국 xwv우 그의 xwv우 작업에서 xwv우 우리는 xwv우 작가의 xwv우 시선을 xwv우 따라 xwv우 공간을 xwv우 응시한다. xwv우 그가 xwv우 매개하고자 xwv우 하는 xwv우 시공간의 xwv우 가치는 xwv우 이번 xwv우 전시에서처럼 xwv우 우리와 xwv우 공간이 xwv우 서로 xwv우 응시하면서 xwv우 다양한 xwv우 감각들을 xwv우 동시에 xwv우 입체적으로 xwv우 느끼게 xwv우 하는 xwv우 것이다. xwv우 우리도 xwv우 알다시피 ‘인간’은 xwv우 실제의 xwv우 공간에서 xwv우 가상의 xwv우 공간까지 xwv우 끊임없이 xwv우 이동한다. xwv우 다시 xwv우 말하면 xwv우 공간의 xwv우 시선으로 xwv우 보면 xwv우 우리는 xwv우 잠정적인 xwv우 거주자이다. xwv우 그렇기에 xwv우 우리가 xwv우 이미 xwv우 가지고 xwv우 있는 xwv우 모든 xwv우 가치는 xwv우 하나를 xwv우 위해 xwv우 집중되는 xwv우 것이 xwv우 아니라 xwv우 분산되어 xwv우 퍼져 xwv우 나가야 xwv우 한다. xwv우 그리고 xwv우 이를 xwv우 위해서 xwv우 우리는 xwv우 그 ‘꼬리’를 xwv우 발견해야 xwv우 한다. xwv우 하지만 xwv우 작가는 xwv우 모든 xwv우 것을 xwv우 새롭게 xwv우 전도하여 xwv우 전복하기 xwv우 위한 xwv우 자세를 xwv우 취하지는 xwv우 않는다. xwv우 다만 xwv우 어떻게 xwv우 우리의 xwv우 삶과 xwv우 연결된 xwv우 시공간 xwv우 속에서 xwv우 끊임없이 xwv우 움직이며 xwv우 변화하는 xwv우 것들을 xwv우 어떻게 xwv우 조합하고 xwv우 재배열하여 xwv우 인식할지, tㅈ우거 다시 tㅈ우거 말해 ‘꼬리’를 tㅈ우거 찾기 tㅈ우거 위해 tㅈ우거 적극적으로 tㅈ우거 공간을 tㅈ우거 읽는 tㅈ우거 태도를 tㅈ우거 제안할 tㅈ우거 뿐이다.

그가 tㅈ우거 이번 tㅈ우거 전시 《꼬리》에서 tㅈ우거 보여주듯이 tㅈ우거 삶의 tㅈ우거 공간은 tㅈ우거 우리와 tㅈ우거 밀접하게 tㅈ우거 연결되어 tㅈ우거 있고, r거마a 연속적이거나 r거마a 무한한 r거마a r거마a 같아 r거마a 보이지만, 차vgㅐ 사실 차vgㅐ 차vgㅐ 공간은 차vgㅐ 나와는 차vgㅐ 상관 차vgㅐ 없이 차vgㅐ 움직인다. 차vgㅐ 그리고 차vgㅐ 우리는 차vgㅐ 차vgㅐ 공간이 차vgㅐ 어디에서부터 차vgㅐ 시작되어서 차vgㅐ 어떻게 차vgㅐ 분리되고 차vgㅐ 다시 차vgㅐ 재생되는 차vgㅐ 지에 차vgㅐ 대해 차vgㅐ 온전히 차vgㅐ 인식하지 차vgㅐ 못한다. 차vgㅐ 우리에게 차vgㅐ 중요한 차vgㅐ 것은 차vgㅐ 공간을 차vgㅐ 생산하고 차vgㅐ 점유하여 차vgㅐ 장소화 차vgㅐ 하기보다는 차vgㅐ 우리가 차vgㅐ 얼마나 차vgㅐ 한정된 차vgㅐ 차vgㅐ 안에서 차vgㅐ 존재하고 차vgㅐ 있는지를 차vgㅐ 인식하고, 파o차l 어떻게 파o차l 끊임없이 파o차l 순환하면서 파o차l 움직이는 파o차l 공간을 파o차l 읽어낼 파o차l 것인 파o차l 지에 파o차l 대한 파o차l 반성적 파o차l 태도인 파o차l 것이다. 파o차l 그는 파o차l 이러한 파o차l 방식으로 파o차l 우리 ‘삶’의 파o차l 실체를 파o차l 목격할 파o차l 파o차l 있을 파o차l 것이라 파o차l 생각 파o차l 한다. 파o차l 따라서 파o차l 그가 파o차l 작업을 파o차l 통해 파o차l 지금 파o차l 현재의 파o차l 공간들을 파o차l 자신만의 파o차l 방식으로 파o차l 기록해 파o차l 나가는 파o차l 것은 파o차l 우리의 파o차l 시공간의 파o차l 실체를 파o차l 목격하기 파o차l 위한 파o차l 매개체를 파o차l 구축하기 파o차l 위함이다. 파o차l 그리고 파o차l 파o차l 나아가 파o차l 관객들의 파o차l 파o차l 속에서도 파o차l 자신의 파o차l 작업이 파o차l 어떤 파o차l 매개로서의 ‘꼬리’가 파o차l 되길 파o차l 바라고 파o차l 있다.

출처: 파o차l 페리지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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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이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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