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형은 숲을 보면서 그리면 그려지지 않을 것 같지만, 숲이라는 단서만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는 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원하는 상이 떠오를 때까지 두서없이 수집한 이미지 무리를 오랜 시간 동안 바라본다. 무리 속에서 원하는 부분이 포착됐을 때,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내용이 사라질 때까지 확대하거나 왜곡해 보며 시점을 변환시킨다. 그는 에스키스를 통해 형태를 손에 익히며 형상을 다듬는 것이 아니라 눈을 통해 대상을 마음속에 담아 만져보고, 형상이나 지표 같은 부수적인 것들이 말끔히 씻겨나가 온전히 감각만이 남겨지는 순간을 찾는다. 그렇게 정제된 이미지는 회화적 실험과 실천을 통해 캔버스 속 새로운 차원의 중력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화면의 윤기를 조절하거나 새로운 방식의 브러시스트로크를 시도하는 등 회화적 기법 안에서 심상을 캔버스 위에 불러올 방법을 연구하고, 이미지가 캔버스 위에 자리 잡은 이후에는 다시 한번 긴 응시의 시간을 통해 도자기를 빚듯, 머리카락을 자르듯, 꽃꽂이하듯 차분하게 심상의 균형을 맞춰나간다. 대상이 가지고 있던 피상적인 의미는 사라지고 형상이 모호해진 만큼 매개체의 물성이 드러난다. 정제의 시간을 거친 이미지들은 마치 파도에 다듬어진 모래알이 저마다의 형상을 지니듯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로서 떠오르고, 이후 공간 속에서 새로운 구조를 형성한다. 그림은 단독적으로 걸리기도 하고 문장처럼 조합되어 서로에게 흡수되거나, 공명하며 서로의 화면을 보충해 주기도 한다.
주최,주관: 이진형
글: 문소영
디자인: 이재욱
촬영: 이재욱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2023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출처: hall1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