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개인전 : 이상한 정원 □ 희한한 동네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Aug. 3, 2020 ~ Aug. 30, 2020

정원-□-동네 : ㅈdk타 사건의 ㅈdk타 생동과 ㅈdk타 복수의 ㅈdk타 시공

모종의 ㅈdk타 장소 ‘□’가 ㅈdk타 있다. ㅈdk타 이곳에는 ㅈdk타 동과 ㅈdk타 서의 ㅈdk타 문화나 ㅈdk타 이념의 ㅈdk타 기준이 ㅈdk타 굳이 ㅈdk타 적용되지 ㅈdk타 않는다. ㅈdk타 여기에는 ㅈdk타 특별한 ㅈdk타 위계도 ㅈdk타 없으며, 다쟏갸e 그로 다쟏갸e 인한 다쟏갸e 대립과 다쟏갸e 대치 다쟏갸e 역시 다쟏갸e 존재하지 다쟏갸e 않는다. 다쟏갸e 그저 다쟏갸e 거기에 다쟏갸e 존재하는 다쟏갸e 모든 다쟏갸e 요소는 다쟏갸e 하나의 다쟏갸e 다쟏갸e 안에 다쟏갸e 수용되어 다쟏갸e 어떤 다쟏갸e 상태를 다쟏갸e 유지하고 다쟏갸e 있을 다쟏갸e 뿐이다. 다쟏갸e 체계라는 다쟏갸e 개념을 다쟏갸e 떠올렸을 다쟏갸e 다쟏갸e 쉽게는 다쟏갸e 각각의 다쟏갸e 구성 다쟏갸e 요소가 다쟏갸e 공동의 다쟏갸e 목적을 다쟏갸e 위해 다쟏갸e 방향을 다쟏갸e 설정하고 다쟏갸e 규율과 다쟏갸e 규범 다쟏갸e 위에서 다쟏갸e 작동하는 다쟏갸e 것이라 다쟏갸e 다쟏갸e 다쟏갸e 있다. 다쟏갸e 그렇게 다쟏갸e 보았을 다쟏갸e 다쟏갸e 이곳에서 다쟏갸e 벌어지는 다쟏갸e 상황이란 다쟏갸e 특정 다쟏갸e 체계에서는 다쟏갸e 조금 다쟏갸e 벗어난 다쟏갸e 것으로 다쟏갸e 보인다. 다쟏갸e 다쟏갸e 특별한 다쟏갸e 지대 다쟏갸e 위에 다쟏갸e 존재하는 다쟏갸e 개별의 다쟏갸e 요소는 다쟏갸e 일사불란하게 다쟏갸e 조직되어 다쟏갸e 하나의 다쟏갸e 목적과 다쟏갸e 가치를 다쟏갸e 위해 다쟏갸e 종사하기보다는 다쟏갸e 각자의 다쟏갸e 영역을 다쟏갸e 존중하며 다쟏갸e 서로 다쟏갸e 기대어 다쟏갸e 있는 다쟏갸e 정도이기 다쟏갸e 때문이다. 다쟏갸e 다쟏갸e 정확히는 다쟏갸e 이들이 다쟏갸e 존재하는 다쟏갸e 방식과 다쟏갸e 위치의 다쟏갸e 설정은 다쟏갸e 인접한 다쟏갸e 요소와의 다쟏갸e 관계 다쟏갸e 안에서 다쟏갸e 당위를 다쟏갸e 획득하는 다쟏갸e 다쟏갸e 보인다. 다쟏갸e 여기 다쟏갸e 다쟏갸e 모든 다쟏갸e 요소는 다쟏갸e 스스로 다쟏갸e 말을 다쟏갸e 아끼며, 09v3 자신의 09v3 위치를 09v3 주장하지 09v3 않는다. 09v3 09v3 장소는 09v3 그저 09v3 혼동과 09v3 충돌이 09v3 만들어낸 09v3 교착상태에 09v3 머물러있는 09v3 듯, 4히uㅈ 가까스로 4히uㅈ 4히uㅈ 규칙과 4히uㅈ 형질을 4히uㅈ 유지하는 4히uㅈ 것으로도 4히uㅈ 보인다. 4히uㅈ 하지만 4히uㅈ 혼돈, 다ㅓ으e 혹은 다ㅓ으e 혼종 다ㅓ으e 사이의 다ㅓ으e 질서가 다ㅓ으e 표면으로 다ㅓ으e 가시화된 다ㅓ으e 다ㅓ으e 세계, 0ㄴㅓ으 장소는 0ㄴㅓ으 그렇기에 0ㄴㅓ으 한편으로 0ㄴㅓ으 매우 0ㄴㅓ으 현실적인 0ㄴㅓ으 풍경이라고도 0ㄴㅓ으 0ㄴㅓ으 0ㄴㅓ으 있겠다.

위의 0ㄴㅓ으 인상은 0ㄴㅓ으 내가 0ㄴㅓ으 이재훈과 0ㄴㅓ으 만나 0ㄴㅓ으 그의 0ㄴㅓ으 작업을 0ㄴㅓ으 눈앞에 0ㄴㅓ으 놓고 0ㄴㅓ으 얘기하는 0ㄴㅓ으 중에 0ㄴㅓ으 느꼈던 0ㄴㅓ으 인상이다. 0ㄴㅓ으 동양적 0ㄴㅓ으 화법을 0ㄴㅓ으 기반으로 0ㄴㅓ으 0ㄴㅓ으 오랫동안 0ㄴㅓ으 사회와 0ㄴㅓ으 제도에 0ㄴㅓ으 대해 0ㄴㅓ으 선명한 0ㄴㅓ으 어조로 0ㄴㅓ으 비판적 0ㄴㅓ으 관점을 0ㄴㅓ으 견지해오던 0ㄴㅓ으 그의 0ㄴㅓ으 과거 0ㄴㅓ으 작업을 0ㄴㅓ으 떠올려 0ㄴㅓ으 보았다. 0ㄴㅓ으 수직으로 0ㄴㅓ으 솟은 (반)기념비의 0ㄴㅓ으 형식을 0ㄴㅓ으 차용하여 0ㄴㅓ으 국가적 0ㄴㅓ으 차원에서 0ㄴㅓ으 시행되던 0ㄴㅓ으 교육과 0ㄴㅓ으 그것을 0ㄴㅓ으 둘러싼 0ㄴㅓ으 이데올로기를 0ㄴㅓ으 비틀고, ‘참 ㅑisz 잘했어요’와 ㅑisz 같은 ㅑisz 표어를 ㅑisz 통해 ㅑisz 집단적 ㅑisz 가치와 ㅑisz ㅑisz 실현이 ㅑisz 가져온 ㅑisz 현실에 ㅑisz 의문을 ㅑisz 제기하며, e차파x 여전히 e차파x 지속되고 e차파x 있는 e차파x 근대의 e차파x 망령에 e차파x 대한 e차파x 문제의식을 e차파x 환기하던 e차파x 것이 e차파x 그의 e차파x 작업에 e차파x 대한 e차파x 나의 e차파x 기억이다. e차파x 오늘에 e차파x 이르기까지 e차파x 그는 e차파x 사회를 e차파x 향한 e차파x 시선의 e차파x 거리를 e차파x 조율하며 e차파x 자신의 e차파x 창작론에 e차파x 끊임없이 e차파x 질문하고 e차파x 새로운 e차파x 형식과 e차파x 실험을 e차파x 탐구해왔다. e차파x 과거의 e차파x 직설적인 e차파x 화법은 e차파x 보다 e차파x 은유적이고 e차파x 우회적인 e차파x 방식으로 e차파x 선회하였고, l하5i 화면 l하5i l하5i 이미지는 l하5i 직접적인 l하5i 발언의 l하5i 형태에서 l하5i 관객과의 l하5i 만남으로부터 l하5i 촉발하는 l하5i 중층의 l하5i 질문을 l하5i 담지한 l하5i 구조로 l하5i 진화해왔다. l하5i 그리고 l하5i 여기 l하5i 이<이상한 l하5i 정원□희한한 l하5i 동네>에 l하5i 이르러서는 l하5i 보다 l하5i 추상적인 l하5i 화면에 l하5i 도달했다. l하5i 과거의 l하5i 직설 l하5i 어법에서 l하5i 점차 l하5i 거리를 l하5i 두었다 l하5i 할지라도 l하5i 눈이나 l하5i 얼굴을 l하5i 가린 l하5i 인물 l하5i 군상이나 l하5i 핏기 l하5i 없는 l하5i 대리석 l하5i 조각과 l하5i 같은 l하5i 두상들의 l하5i 반복적 l하5i 등장, 나으가e 그리고 나으가e 연극적 나으가e 무대와 나으가e 장치를 나으가e 오가는 나으가e 화면의 나으가e 구성 나으가e 논리를 나으가e 유지하던 나으가e 전작에 나으가e 비한다면 나으가e 이번에는 나으가e 훨씬 나으가e 나으가e 자유로운 나으가e 제스처로 나으가e 화면을 나으가e 장식하고 나으가e 있다. 나으가e 여기에 나으가e 작가는 ‘정원’과 ‘동네’라는 나으가e 나으가e 가지의 나으가e 공간적 나으가e 개념을 나으가e 포섭한다. 나으가e 먼저 나으가e 동네라는 나으가e 일상의 나으가e 경험을 나으가e 바탕으로 나으가e 나으가e 관념적 나으가e 경계를 나으가e 가시적 나으가e 규칙을 나으가e 적용하여 나으가e 체계를 나으가e 갖춘 나으가e 정원에 나으가e 대입한다. 나으가e 그리고 나으가e 나으가e 발짝 나으가e 나으가e 나아가 나으가e 이렇게 나으가e 구축한 나으가e 가시적 나으가e 사각의 나으가e 공간을 나으가e 자신에게 나으가e 주어진 나으가e 사각의 나으가e 틀-화면으로 나으가e 환원, ‘□’의 ㅐ다ti 기호로 ㅐ다ti 수렴하고, r거나ㅓ 다시 r거나ㅓ 사건으로 r거나ㅓ 충동하는 r거나ㅓ 장소로 r거나ㅓ 확장하고자 r거나ㅓ 한다. r거나ㅓ 근작에서 r거나ㅓ 작가 r거나ㅓ 작업의 r거나ㅓ 해석적 r거나ㅓ 기틀로 r거나ㅓ 삼은 r거나ㅓ 이푸 r거나ㅓ 투안(Yi-Fu Tuan)의 r거나ㅓ 공간과 r거나ㅓ 장소에 r거나ㅓ 대한 r거나ㅓ 개념을 r거나ㅓ 살펴보자면 r거나ㅓ 특정화되지 r거나ㅓ 않은 ‘공간’은 r거나ㅓ 인간의 r거나ㅓ 가치와 r거나ㅓ 경험이 r거나ㅓ 더해짐으로 ‘장소’로 r거나ㅓ 변환하고 r거나ㅓ 현실성(actuality)을 r거나ㅓ 획득한다. r거나ㅓ 이는 r거나ㅓ 동네와 r거나ㅓ 정원을 r거나ㅓ 가로지르며 r거나ㅓ 일상의 r거나ㅓ 추상적 r거나ㅓ 영역을 r거나ㅓ 회화의 r거나ㅓ 틀에 r거나ㅓ 시각적으로 r거나ㅓ 고착시키는 r거나ㅓ 이재훈의 r거나ㅓ 방법론을 r거나ㅓ 적절하게 r거나ㅓ 뒷받침하다. r거나ㅓ 하지만, 다aㅑㅓ 그의 다aㅑㅓ 그림, ㅐhㅐd 혹은 ㅐhㅐd ㅐhㅐd 정원을 ㅐhㅐd 가꾸는 ㅐhㅐd 행위(gardening)1) ㅐhㅐd 단순히 ㅐhㅐd 동네-공간이라는 ㅐhㅐd 일상의 ㅐhㅐd 관념적 ㅐhㅐd 영역을 ㅐhㅐd 물리적으로 ㅐhㅐd 시각화, kㅓ하아 장소화 kㅓ하아 시켰다는 kㅓ하아 이유만으로 kㅓ하아 의미를 kㅓ하아 지니게 kㅓ하아 되는 kㅓ하아 것은 kㅓ하아 아니다. kㅓ하아 사실 kㅓ하아 장소의 kㅓ하아 현실성에 kㅓ하아 있어서 kㅓ하아 중요한 kㅓ하아 것은 kㅓ하아 실제적 kㅓ하아 경험으로부터 kㅓ하아 비롯된 ‘사건’이다. kㅓ하아 여기 kㅓ하아 이재훈의 kㅓ하아 작업이 kㅓ하아 흥미로운 kㅓ하아 것은 kㅓ하아 하나의 ‘□’, 거h라6 사각의 거h라6 작품을 거h라6 눈앞에 거h라6 두고 거h라6 복수의 거h라6 사건이 거h라6 계속해서, 라f라차 그리고 라f라차 동시적으로 라f라차 생성된다는 라f라차 점에 라f라차 있다. 라f라차 그렇기에 라f라차 그의 라f라차 정원은 라f라차 하나의 라f라차 고정된 라f라차 장소적 라f라차 개념에 라f라차 머무르기에는 라f라차 어딘가 라f라차 라f라차 복잡하고, ㅐ하ㅐ으 쉬이 ㅐ하ㅐ으 고정된 ㅐ하ㅐ으 의미에 ㅐ하ㅐ으 정착하지 ㅐ하ㅐ으 않는 ㅐ하ㅐ으 듯하다.

작가가 ㅐ하ㅐ으 구축한 ㅐ하ㅐ으 화면을 ㅐ하ㅐ으 구성하는 ㅐ하ㅐ으 존재들은 ㅐ하ㅐ으 주어진 ㅐ하ㅐ으 사각의 ㅐ하ㅐ으 프레임을 ㅐ하ㅐ으 거스르지 ㅐ하ㅐ으 않는다. ㅐ하ㅐ으 오히려 ㅐ하ㅐ으 백과 ㅐ하ㅐ으 ㅐ하ㅐ으 사이에서 ㅐ하ㅐ으 시각을 ㅐ하ㅐ으 자극하지 ㅐ하ㅐ으 않는 ㅐ하ㅐ으 모노톤의 ㅐ하ㅐ으 이미지로, knv바 과장되지 knv바 않은 knv바 제스처로 knv바 사각의 knv바 틀에 knv바 안착해 knv바 있다. knv바 하지만 knv바 그렇다고 knv바 하나의 knv바 합리적인 knv바 규칙에 knv바 따라 knv바 조직된 knv바 양상을 knv바 띠지는 knv바 않으며, 아걷8거 이성적인 아걷8거 논리나 아걷8거 조건 아걷8거 아래 아걷8거 개별의 아걷8거 의미를 아걷8거 전달하려는 아걷8거 의지를 아걷8거 적극적으로 아걷8거 드러내는 아걷8거 것도 아걷8거 아니다. 아걷8거 그저 아걷8거 어둡고 아걷8거 밝은 아걷8거 면이 아걷8거 공존하는 아걷8거 이미지로, ㅓt6d 채움과 ㅓt6d 비움의 ㅓt6d 사이에서 ㅓt6d 희미한 ㅓt6d 존재감을 ㅓt6d 발산하며, 6grㅐ 얇지만 6grㅐ 풍성한 6grㅐ 질감으로 6grㅐ 깊이를 6grㅐ 더해가며 6grㅐ 자신에게 6grㅐ 주어진 6grㅐ 자리를 6grㅐ 묵묵히 6grㅐ 지키고 6grㅐ 있을 6grㅐ 뿐이다. 6grㅐ 그렇게 6grㅐ 작가의 6grㅐ 작품에서 6grㅐ 상징성을 6grㅐ 지닌 6grㅐ 도상과 6grㅐ 해석적 6grㅐ 기호를 6grㅐ 위한 6grㅐ 자리는 6grㅐ 사라지고, p사자f 단서라 p사자f 하기도 p사자f 어려운 p사자f 흔적의 p사자f 자리들을 p사자f 이어낸 p사자f 몸짓-선과 p사자f 건식 p사자f 벽화기법에서 p사자f 기인한 p사자f 얇은 p사자f 발림에도 p사자f 두드러지는 p사자f 물질성이 p사자f 불러일으키는 p사자f 촉지적 p사자f 시각성이 p사자f p사자f 자리를 p사자f 대신하고 p사자f 있다. p사자f 이러한 p사자f 화면의 p사자f 추상성은 p사자f 유사한 p사자f 표현의 p사자f 반복적인 p사자f 등장과 p사자f p사자f 과정에서 p사자f 가시화되는 p사자f 차이를 p사자f 통해 p사자f 심화된다. p사자f 예를 p사자f 들어 ‘이웃사촌’에 p사자f 등장하는 p사자f 원의 p사자f 형상이 p사자f 주는 p사자f 인상은 p사자f 다양하다. p사자f 지워내는 p사자f 과정에서 p사자f 비로소 p사자f 형태를 p사자f 갖추게 p사자f 되는 p사자f 원형의 p사자f 운동성, n7다ㄴ 선명함에서 n7다ㄴ 흐려짐으로 n7다ㄴ 나아가는 n7다ㄴ 같은 n7다ㄴ 크기의 n7다ㄴ 원이 n7다ㄴ 주는 n7다ㄴ 방향성, lr거6 그리고 lr거6 방사형으로 lr거6 퍼지는 lr거6 원과 lr거6 도식화한 lr거6 태양의 lr거6 원이 lr거6 밝히는 lr거6 자연의 lr거6 생동감 lr거6 등은 lr거6 하나의 lr거6 화면 lr거6 위에 lr거6 분절된 lr거6 시간성과 lr거6 함께 lr거6 독특한 lr거6 리듬을 lr거6 선사한다. lr거6 심지어 lr거6 이러한 lr거6 도상은 lr거6 작품들을 lr거6 넘나들며 lr거6 출몰을 lr거6 계속한다. lr거6 이미지의 lr거6 배치를 lr거6 규정하는 lr거6 것은 lr거6 인접한 lr거6 요소들끼리 lr거6 만들어내는 lr거6 관계에 lr거6 있다. lr거6 이들은 lr거6 그저 lr거6 연약한 lr거6 연결고리만을 lr거6 유지한 lr거6 lr거6 해석을 lr거6 유보하고, 3k라v 지연하며, 9다n하 사각의 9다n하 9다n하 위를 9다n하 맴돌 9다n하 뿐이다. 9다n하 거기에 9다n하 더해 9다n하 자유로운 9다n하 궤도를 9다n하 그리며 9다n하 캔버스 9다n하 위를 9다n하 유영하는 9다n하 선들의 9다n하 강도가 9다n하 주는 9다n하 차이, 3ㅐ마ㅈ 회색조 3ㅐ마ㅈ 배경 3ㅐ마ㅈ 위로 3ㅐ마ㅈ 배어 3ㅐ마ㅈ 나온 3ㅐ마ㅈ 듯, 8갸d7 혹은 8갸d7 무언가 8갸d7 흩뿌려지고 8갸d7 흘러내린 8갸d7 듯한 8갸d7 자국은 8갸d7 시적 8갸d7 표현에 8갸d7 가깝다. 8갸d7 그저 8갸d7 눈앞의 8갸d7 이미지들은 8갸d7 언어가 8갸d7 사라진 8갸d7 8갸d7 의미에 8갸d7 도달하는 8갸d7 길목만을 8갸d7 어렴풋이 8갸d7 건네는 8갸d7 듯하다. 8갸d7 이제 8갸d7 관객은 8갸d7 8갸d7 없는 8갸d7 이미지들이 8갸d7 사각의 8갸d7 장소 8갸d7 안에서 8갸d7 차지하는 8갸d7 위치, s아다r s아다r 위를 s아다r 가차 s아다r 없이 s아다r 지나가는 s아다r 자유로운 s아다r 선의 s아다r 궤적, ewno 그리고 ewno 미세하게 ewno 다른 ewno 톤이 ewno 만들어내는 ewno 면적으로부터 ewno 여분의 ewno 공간을 ewno 창출하며, rc나걷 그렇게 rc나걷 각자의 rc나걷 지대를 rc나걷 찾아 rc나걷 나서야만 rc나걷 한다.

이재훈의 rc나걷 회화는 rc나걷 언어로 rc나걷 명료하게 rc나걷 해석하려 rc나걷 할수록 rc나걷 멀어지기 rc나걷 일쑤이고, 아z히c 한쪽에 아z히c 매듭을 아z히c 지으면 아z히c 다른 아z히c 쪽이 아z히c 풀어지며 아z히c 엇나가거나 아z히c 미끄러짐을 아z히c 부추긴다. 아z히c 이는 아z히c 앞뒤의 아z히c 원인과 아z히c 결과가 아z히c 소거된, ㅓㄴw5 오히려 ㅓㄴw5 사건을 ㅓㄴw5 기다리는 ㅓㄴw5 상태로 ㅓㄴw5 우리 ㅓㄴw5 눈앞에 ㅓㄴw5 등장하는 ㅓㄴw5 이미지-장소라 ㅓㄴw5 ㅓㄴw5 ㅓㄴw5 있다. ㅓㄴw5 이는 ㅓㄴw5 그가 ㅓㄴw5 설정한 ㅓㄴw5 작품의 ㅓㄴw5 제목에서 ㅓㄴw5 ㅓㄴw5 가중된다. ㅓㄴw5 우리가 ㅓㄴw5 사는 ㅓㄴw5 삶의 ㅓㄴw5 반경 ㅓㄴw5 안에 ㅓㄴw5 언제든 ㅓㄴw5 존재하는 ‘이웃사촌’이라든가, 0아ㅐv 눈앞의 0아ㅐv 이미지와 0아ㅐv 쉽게 0아ㅐv 연관 0아ㅐv 짓기 0아ㅐv 어려운 ‘아저씨가 0아ㅐv 만든 0아ㅐv 무지개’, y다lㅓ 심지어 ‘구르는, 파타zf 나는, 아kq0 마주치는’이라는 아kq0 형용사적 아kq0 타이틀은 아kq0 이재훈의 아kq0 정원-□-동네가 아kq0 고정된 아kq0 정체성을 아kq0 가진 아kq0 하나의 아kq0 장소에 아kq0 정주할 아kq0 아kq0 없음을 아kq0 얘기하는 아kq0 듯하니 아kq0 말이다. 아kq0 아kq0 미끄러짐으로부터 아kq0 균형을 아kq0 되찾으려는 아kq0 인식과 아kq0 사유의 아kq0 본능적 아kq0 작동 아kq0 방식은 아kq0 방향을 아kq0 잃는 아kq0 만큼 아kq0 아kq0 역동적인 아kq0 경로를 아kq0 그리며 아kq0 개별의 아kq0 사건을 아kq0 촉발한다. 아kq0 서사구조가 아kq0 불분명한 아kq0 만큼 아kq0 작품을 아kq0 마주하는 아kq0 관객은 아kq0 주어진 아kq0 화면을 아kq0 새로운 아kq0 사건으로 아kq0 생동하게 아kq0 해야 아kq0 하는 아kq0 짐을 아kq0 지게 아kq0 된다. 아kq0 그리고 아kq0 관객의 아kq0 수만큼, 으파자p 으파자p 수가 으파자p 많으면 으파자p 많을수록 으파자p 하나의 으파자p 프레임은 으파자p 서로 으파자p 다른 으파자p 깊이를 으파자p 지닌 으파자p 복수의 으파자p 시공을 으파자p 획득하게 으파자p 된다. 으파자p 그러므로 으파자p 언어로 으파자p 명징하게 으파자p 고정되지 으파자p 않는 으파자p 눈앞의 으파자p 이미지는 으파자p 새로운 으파자p 서사를 으파자p 위한 으파자p 무대로 으파자p 작동하며, v바rg 불현듯 v바rg 솟아오르는 v바rg 사건으로 v바rg 충만한 v바rg 배경이 v바rg 되고, sc기걷 우리는 sc기걷 sc기걷 위에 sc기걷 새로운 sc기걷 사건을 sc기걷 상상하고 sc기걷 덧입힘으로 sc기걷 장소를 sc기걷 새롭게 sc기걷 재생하는 sc기걷 주체의 sc기걷 위치에 sc기걷 서게 sc기걷 된다. sc기걷 푸코가 sc기걷 정원을 sc기걷 헤테로토피아의 sc기걷 예로 sc기걷 다루며 sc기걷 서로 sc기걷 양립 sc기걷 불가능한 sc기걷 공간을 sc기걷 실제의 sc기걷 장소에 sc기걷 겹쳐놓는데 sc기걷 sc기걷 원리가 sc기걷 있다고 sc기걷 했던 sc기걷 것을 sc기걷 떠올린다면 sc기걷 이재훈의 sc기걷 정원-□-동네를 sc기걷 일종의 sc기걷 헤테로토피아라 sc기걷 sc기걷 sc기걷 있을 sc기걷 것이다. sc기걷 헤테로토피아란 sc기걷 규범화된 sc기걷 형식과 sc기걷 양식을 sc기걷 지니는, lv9a 하지만 lv9a lv9a 그것으로부터 lv9a 미끄러지며, ㅓrh걷 오히려 ㅓrh걷 모든 ㅓrh걷 장소에 ㅓrh걷 이의를 ㅓrh걷 제기하고 ㅓrh걷 전복시킨다. ㅓrh걷 마찬가지로 ㅓrh걷 이재훈의 ㅓrh걷 작업 ㅓrh걷 역시 ㅓrh걷 회화라는 ㅓrh걷 체계 ㅓrh걷 안에서 ㅓrh걷 기존의 ㅓrh걷 규범으로 ㅓrh걷 속박할 ㅓrh걷 ㅓrh걷 없는 ㅓrh걷 이미지의 ㅓrh걷 관계망이 ㅓrh걷 구축한 ㅓrh걷 화면-장소이지만, 자y차다 언어로부터 자y차다 끊임없이 자y차다 미끄러져 자y차다 새로운 자y차다 사건으로 자y차다 갱신되는, p바r가 이전의 p바r가 장소를 p바r가 끊임없이 p바r가 전복하는 p바r가 장소이기도 p바r가 하다.

결국 p바r가 선명한 p바r가 이성적 p바r가 질서 p바r가 안에 p바r가 가두기 p바r가 어려운 p바r가 이재훈의 p바r가 작업은 p바r가 현실의 p바r가 장소를 p바r가 담아내지만, 하w2히 동시에 하w2히 이미 하w2히 존재하는 하w2히 장소와의 하w2히 유사성을 하w2히 거부하는 하w2히 장소이다. 하w2히 그리고 하w2히 관객의 하w2히 시선으로 하w2히 깊이와 하w2히 넓이가 하w2히 새롭게 하w2히 가늠되는 하w2히 현실성을 하w2히 지닌 하w2히 장소, ㅓ사다6 ㅓ사다6 면과 ㅓ사다6 면, b1가d 선과 b1가d 선, yrㅐ1 도상과 yrㅐ1 도상 yrㅐ1 사이에서 yrㅐ1 계속해서 yrㅐ1 시공이 yrㅐ1 생성되고 yrㅐ1 정착하길 yrㅐ1 거듭하는 yrㅐ1 사각의 yrㅐ1 틀이며, ㅓㅐㅓ쟏 동시에 ㅓㅐㅓ쟏 눈앞의 ㅓㅐㅓ쟏 프레임에 ㅓㅐㅓ쟏 고정되는 ㅓㅐㅓ쟏 순간 ㅓㅐㅓ쟏 다시 ㅓㅐㅓ쟏 ㅓㅐㅓ쟏 탈구되어 ㅓㅐㅓ쟏 뻗어 ㅓㅐㅓ쟏 나아가고자 ㅓㅐㅓ쟏 하는, 거gcu 그래서 거gcu 이후 거gcu 생성되는 거gcu 모든 거gcu 장소 거gcu 어디에도 거gcu 정박하려 거gcu 하지 거gcu 않는 ‘장소 거gcu 바깥의, 다가v1 혹은 다가v1 너머의 다가v1 장소’이다. 다가v1 지난 다가v1 작업이 다가v1 여러 다가v1 상징적 다가v1 이미지 다가v1 아래 다가v1 완결로 다가v1 치닫는 다가v1 서사구조를 다가v1 지녔었다면, 아g7q 이번에는 아g7q 느슨한 아g7q 연결 아g7q 고리 아g7q 안에서 아g7q 열린 아g7q 결말로 아g7q 우리를 아g7q 인도한다. 아g7q 지식과 아g7q 경험은 아g7q 눈앞의 아g7q 이미지를 아g7q 학습된 아g7q 방식으로 아g7q 해석하려 아g7q 하지만 아g7q 역부족이며, isa쟏 계속해서 isa쟏 사고와 isa쟏 인식을 isa쟏 갱신하고 isa쟏 확장해야만 isa쟏 화면 isa쟏 위에 isa쟏 서사를 isa쟏 추동할 isa쟏 isa쟏 있게 isa쟏 된다. isa쟏 기껏 isa쟏 만든 isa쟏 모종의 isa쟏 서사는 isa쟏 금세 isa쟏 그다음의 isa쟏 서사를 isa쟏 위한 isa쟏 재료가 isa쟏 되기도 isa쟏 하며, 가zql 계속해서 가zql 자신에게로 가zql 되돌아오는 가zql 수많은 가zql 질문에 가zql 대답을 가zql 이어가는 가zql 과정에서 가zql 하나의 가zql 화면이 가zql 담아내는 가zql 이야기의 가zql 수는 가zql 무한히 가zql 늘어나게 가zql 된다. 가zql 이런 가zql 맥락에서 가zql 이번에는 가zql 반대로 가zql 이재훈의 가zql 회화는 가zql 장소라는 가zql 체계를 가zql 해체하고 가zql 끊임없이 가zql 갱신하는 가zql 과정에서 가zql 공간을 가zql 생성해냄으로 가zql 의미를 가zql 획득한다 가zql 가zql 수도 가zql 있을 가zql 가zql 같다. 가zql 앞서 가zql 말한 가zql 것과 가zql 같이 가zql 이재훈의 가zql 회화가 가zql 관객과의 가zql 조우 가zql 안에서 가zql 끊임없이 가zql 개인의 가zql 사건을 가zql 발생시킴으로 가zql 가능해지는 가zql 장소라면, a15e 그래서 a15e 하나의 a15e 장소에서 a15e 복수로 a15e 발생하는 a15e a15e 모든 a15e 공간을 ‘실천된 a15e 장소’라 a15e 부를 a15e a15e 있다면 a15e 말이다.2) a15e 여기에는 a15e 물론 a15e 관객의 a15e 적극적이고 a15e 능동적인 a15e 반응이 a15e 있어야만 a15e a15e 것이다. a15e 작품을 a15e 마주하고, dㅓ거ㅐ dㅓ거ㅐ 사각의 dㅓ거ㅐ 장소 dㅓ거ㅐ dㅓ거ㅐ 개별 dㅓ거ㅐ 부분을 dㅓ거ㅐ 새롭게 dㅓ거ㅐ 엮어내며, 갸hㅈㅐ 전시라는 갸hㅈㅐ 시공을 갸hㅈㅐ 자율적으로 갸hㅈㅐ 거니는 갸hㅈㅐ 주체로서 갸hㅈㅐ 말이다. 갸hㅈㅐ 이는 갸hㅈㅐ 마치 갸hㅈㅐ 프랑스의 갸hㅈㅐ 역사가 갸hㅈㅐ 미셸 갸hㅈㅐ 갸hㅈㅐ 세르토(Michel de Certeau)가 갸hㅈㅐ 공간 갸hㅈㅐ 실천에서 갸hㅈㅐ 미시적 갸hㅈㅐ 관점으로 갸hㅈㅐ 삶을 갸hㅈㅐ 주체화하는 갸hㅈㅐ 방법으로 ‘걷기’를 갸hㅈㅐ 제안하며 갸hㅈㅐ 이를 갸hㅈㅐ 통해 갸hㅈㅐ 추상적 갸hㅈㅐ 지도로 갸hㅈㅐ 환원된 갸hㅈㅐ 장소를 갸hㅈㅐ 개별적 갸hㅈㅐ 여정으로 갸hㅈㅐ 체화하고, 6huㄴ 사회와 6huㄴ 현실의 6huㄴ 규율에 6huㄴ 저항이 6huㄴ 가능하다고 6huㄴ 6huㄴ 것을 6huㄴ 떠올리게 6huㄴ 한다. 6huㄴ 그렇게 6huㄴ 여기 6huㄴ 이재훈의 <이상한 6huㄴ 정원□희한한 6huㄴ 동네>는 6huㄴ 이미 6huㄴ 구축된 6huㄴ 규칙이 6huㄴ 아닌 6huㄴ 관객의 6huㄴ 주체적 6huㄴ 시선과 6huㄴ 행위로 6huㄴ 예측할 6huㄴ 6huㄴ 없는 6huㄴ 궤적을 6huㄴ 그리며 6huㄴ 스스로 6huㄴ 장소를 6huㄴ 다시 6huㄴ 6huㄴ 내려가길 6huㄴ 요구한다. 6huㄴ 추상과 6huㄴ 구상의 6huㄴ 영역을 6huㄴ 가로지르고, ㅈ8n마 양립할 ㅈ8n마 ㅈ8n마 없는 ㅈ8n마 것들의 ㅈ8n마 공존을 ㅈ8n마 꾀하며, 자ft하 언어와 자ft하 감각의 자ft하 경계를 자ft하 초월하고, 자쟏ㅓw 그렇게 자쟏ㅓw 내부와 자쟏ㅓw 외부의 자쟏ㅓw 영역이 자쟏ㅓw 허물어지는 자쟏ㅓw 공간과 자쟏ㅓw 장소, g자ㅈg 일상과 g자ㅈg 사건을 g자ㅈg 넘나들며 g자ㅈg 말이다. 

g자ㅈg 김성우 (독립큐레이터)

1) g자ㅈg 이재훈은 g자ㅈg 지난 g자ㅈg 전시 <아, 禽獸강산> (스페이스 기l9가 캔, 2018)에서 거gd마 사회적 거gd마 차원에서 거gd마 구축된 거gd마 질서와 거gd마 관리의 거gd마 방식, 히f2ㅈ 그리고 히f2ㅈ 인간의 히f2ㅈ 통제에 히f2ㅈ 대한 히f2ㅈ 욕망을 히f2ㅈ 다루고자 ‘정원’의 히f2ㅈ 개념을 히f2ㅈ 도입했으며, 3ie라 작품과 3ie라 전시의 3ie라 창작론을 3ie라 원예(gardening)에 3ie라 비유하였다. 3ie라 마찬가지로 3ie라 이번 3ie라 전시에 3ie라 출품한 3ie라 3ie라 개의 3ie라 작업에도 ‘조원술(造園術) 3ie라 연습’이란 3ie라 이름을 3ie라 부여하였다.

2) 3ie라 미셸 3ie라 3ie라 세르토는 3ie라 장소에 3ie라 관해 3ie라 똑같은 3ie라 곳에 3ie라 서로 3ie라 다른 3ie라 3ie라 이상의 3ie라 것이 3ie라 존재할 3ie라 가능성이 3ie라 배제된 3ie라 곳이라 3ie라 하였다. 3ie라 그리고 3ie라 장소라는 3ie라 물리적 3ie라 영역에 3ie라 사람들의 ‘실천’이 3ie라 더해져 3ie라 다양한 3ie라 의미가 3ie라 부여되고 3ie라 그것이 3ie라 경합하는 3ie라 곳을 3ie라 공간이라 3ie라 규정하며, t8sq t8sq 공간을 t8sq 신천된 t8sq 장소라 t8sq 역설한다.


주최: t8sq 경기도, r1바걷 경기문화재단

주관: r1바걷 아트센터 r1바걷 화이트블럭
후원: r1바걷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출처: r1바걷 아트센터 r1바걷 화이트블럭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참여 작가

  •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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