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한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부유하는 존재로 읽힐 수도 있고, 비어있기 때문에 통로로 기능하거나 가능성으로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작품 속 흐릿한 사람은 역설과 부조리함으로 존재하는 우리의 초상이다.’ (함성언)
이재헌
작가의 여섯 번째 개인전 <하얀 성(White Castle)>이 6월 23일부터 7월 28일까지 갤러리SP에서 진행된다. ‘하얀 성’은 작가가 작업실을 다니는 길에 위치한 모텔의 이름이다. 다양한 욕망의 장소이자 많은 사람들이 거쳐가는 하얗지만은 않은 공간을 ‘하얀 성’이라는 이름으로 탈색한 듯한 아이러니에서 작가는 문득 본인 작업과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 역시 숨겨진 욕망이나 잠재된 무언가를 작업의 소재로 줄곧 다뤄왔으며, 본인의 작품 세계를 진공상태와 같이 텅 빈 것이자 동시에 꽉 찬 포화상태라는 역설적인 정의를 내린다.
작가의 작품은 흐릿한 형상과 비교적 선명한 형상의 극명한 조화가 특징이다. 이는 작가가 현실을 강하게 긍정하고자 하는 욕구와 이에 좌절하는 두 가지 충동이 타협되지 않은 채 그대로 취합된 결과이다. 한때에는 이 두 가지 충동을 하나에 흡수시키려는 노력을 했지만,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 경험 끝에 작가는 양가적인 마음을 인정하고 그대로 드러내기로 했다. 그 결과 그리는 붓질과 지우는 붓질이 한 화면 속에 공존하게 된 것이다. 지우는 붓질은 죽음과도 연관이 있는데, 극단적인 죽음에서 벗어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작가는 꽃이라는 요소를 등장시키도 한다. 작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기 위해 그리기와 지우기라는 자신만의 균형을 잡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번 개인전은 작가가 기존에 보여왔던 작품 세계관을 보다 적극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중 하나의 방식으로 작가는 관심의 영역을 종교, 신적 영역으로 확장했다. 줄곧 인간의 실존을 주제로 다뤄온 작가이기에 죽음과 관련된 ‘신’이라 주제로 확장은 충분한 연계성을 갖는다. 작가가 특정 종교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의 삶, 더 나아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영역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작가는 본인의 방식으로 이 시대가 원하는 새로운 종교화를 제안한다.
참여작가: 이재헌
출처: 갤러리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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