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정 개인전: 털이 달린 옷과 얼굴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2021년 6월 15일 ~ 2021년 7월 2일

“무엇이든 겉으로 드러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린 시절 일기장에는 표면적으로 행복하게 보이는 문장을 써 내려갔다. 없던 일을 꾸며내거나 부정적인 사건들은 미화 시켰다. 이야기들은 축소되거나 과장 되어졌다.
나의 작업 안에서는 모든 이야기를 뺀 인물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고 주로 사람의 이미지를 재 조합하거나 변형해서 표현했다.
그림 안에 대상들을 쪼개고 쪼개어서 내부를 드러내고자 했지만 이는 또 다른 표면으로 만들어졌다.
내부 기관이 없는 신체는 언제든 무언가로 변형 되어질 수 있는 상태로 놓여진다.
우리를 덮고 있는 건 사실 개개인의 살갗이 아니라 털이 달린 옷이지 않을까. 이연정

이연정은 작품을 통하여 사물과 신체의 모호한 경계에서 이미지를 탐구한다. 신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물에 가까워진다. 때로는 부분 확대된 형태로. 때로는 유기적 질감을 유지한 채 정물화된 형태로. 때로는 분리되어 얽힌 상태로. 중요한 점은 그 경계 위에서 이미지들이 완전히 사물화되기 직전에 멈춘다는 것이다. 가장 정물화된 형상을 표현한 작품에서도 인간성을 연상 시키는 유기적 특징이 반드시 남아 있다. 다시 말하면, 작품에서 표현된 것은 정물화된 '신체'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인공적 원색 또는 무채색으로 표현된 배경은 유기적 특성의 존재를 더욱 강조한다. 정물화된 신체는 그 배경 속에 어떠한 극적인 감정도 절제된 채로 놓여 있다. 신체는 인간의 형태를 유지한 경우에도 성적인 느낌은 거의 느껴지지 않으며, 분리되어 단면이 보이는 경우에도 비애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 — 피나 뼈 — 등은 이미지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구체성을 과감하게 생략한 단색 면의 형태로 표현된 표면에는 어떠한 극적인 감정도 절제된 묘한 답답함이 감돈다.

작품이 빛나는 지점은 답답함으로서의 생활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한다는 데 있다. 작품의 소재는 특별하지 않다. 몸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제공하며 예술의 소재와 주제가 되어왔다. 상처받은 신체 또는 영혼을 상실하고 공동화된 신체의 이미지는 다양한 현대 예술 작품을 통하여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감각을 위협하는 몸의 이미지 — 예컨대 노화한 몸, 파편화되고 고통 받는 몸의 이미지를 통하여 본능적으로 죽음이나 고통을 연상하도록 만드는 — 를 전시하는 비체(abject)화 전략은 지금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연정의 작품이 구별되는 것은 소재나 전략 보다 그것들을 통해 전달되는 이미지의 생생함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감각을 거의 상실한 채 묘하게 닫혀진 신체 이미지를 통하여 우리는 오늘날의 비극이 더 이상 고통을 수반하는 극적인 비극이 아니라 일상화된, 극적인 느낌을 상실한 비극임을 느낄 수 있다. 전쟁의 참화 앞에서 회화는 앵포르멜 형식의 비명을 지르는 듯한 추상 이미지로 반응했다. 이 시대의 비극은 그렇게 극적이지만은 않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비극은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점진적으로 소진되어 가는 비극. 다양성이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나, 여유를 상실한 채 내면적으로는 획일화 되어가는 현실 속의 비극인 것이다. 이연정의 묘하게 답답하고 단순화되어 있는 이미지는 그런 우리 시대의 비극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해 보인다

때로 예술 작품이 한 마디 신음으로 환원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이연정의 <털이 달린 옷과 얼굴>에 전시된 작품도 그런 종류의 작품들 중 하나이다. 피와 뼈를 상실하고 비어버린 몸의 표면 아래서 새어 나오는 소리가 무엇을 말하는 지 듣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예술은 귀 기울이는 자에게만 속삭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참여작가: 이연정
전시서문: 배광일
포스터디자인: 김수정
주최: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출처: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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