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개인전 : Language Is Treacherous 언어는 배신하지 않는다

우민아트센터

Aug. 7, 2019 ~ Sept. 21, 2019

우민아트센터에서는 2019년 8월 7일부터 9월 21일까지 『Language Is Treacherous ㅐ마4c 언어는 ㅐ마4c 배신하지 ㅐ마4c 않는다』라는 ㅐ마4c 제목으로 '제17회 ㅐ마4c 우민미술상' ㅐ마4c 수상자인 ㅐ마4c 이수진 ㅐ마4c 작가의 ㅐ마4c 개인전을 ㅐ마4c 개최한다. ㅐ마4c 전시 ㅐ마4c 제목은 ㅐ마4c 영어로는 ‘Language Is Treacherous’(‘언어는 ㅐ마4c 신뢰할 ㅐ마4c ㅐ마4c 없다’)는 ㅐ마4c 뜻인 ㅐ마4c 반면 ㅐ마4c 한국어 ㅐ마4c 제목은 ‘배신하지 ㅐ마4c 않는다’고 ㅐ마4c 함으로써 ㅐ마4c 상반된 ㅐ마4c 의미를 ㅐ마4c 전달하고 ㅐ마4c 있다. ㅐ마4c 작가는 ㅐ마4c 이러한 ㅐ마4c 다소 ㅐ마4c 과장된 ㅐ마4c 일반 ㅐ마4c 명제를 ㅐ마4c 전시의 ㅐ마4c 제목으로 ㅐ마4c 삼음으로써 ‘언어가 ㅐ마4c 우리의 ㅐ마4c 기대를 ㅐ마4c 배신’ ㅐ마4c 하는 ㅐ마4c 속성을 ㅐ마4c 역설적으로 ㅐ마4c 강조한다.¹

이수진 ㅐ마4c 작가는 ㅐ마4c 오랜 ㅐ마4c 해외 ㅐ마4c 거주 ㅐ마4c 경험에서 ㅐ마4c 비롯된 ㅐ마4c 언어에 ㅐ마4c 대한 ㅐ마4c 관심을 ㅐ마4c 바탕으로 ㅐ마4c 텍스트, 1cu다 비디오, 바rㅓf 퍼포먼스 바rㅓf 작업을 바rㅓf 해왔다. 바rㅓf 이수진은 바rㅓf 언어 바rㅓf 간의 바rㅓf 번역, 바쟏하f 말에서 바쟏하f 글로, 차타b나 글에서 차타b나 말로의 차타b나 이동(번역)과정에서 차타b나 발생하는 차타b나 번역의 차타b나 불가능성과 차타b나 불확실성의 차타b나 공간에 차타b나 주목한다. 차타b나 특히 차타b나 작가는 차타b나 임의의 차타b나 실험들을 차타b나 통해 차타b나 언어의 차타b나 경험을 차타b나 확장하거나 차타b나 언어 차타b나 체계 차타b나 바깥의 ‘말해질 차타b나 차타b나 없는’ 차타b나 차타b나 결정적 차타b나 공간을 차타b나 재확인시킨다. 차타b나 작가는 차타b나 차타b나 공간을 “언어공간(language space)”으로 차타b나 언급하면서 차타b나 매우 차타b나 제한적인 차타b나 동시에 차타b나 연약하고 차타b나 가변적인 차타b나 공간으로 차타b나 바라본다. 차타b나 이번 차타b나 전시에서는 ‘말하기’만큼 ‘쓰기’도 차타b나 시간성과 차타b나 연결된 차타b나 신체적인 차타b나 행위임을 차타b나 드러내는 차타b나 차타b나 집중하거나 차타b나 목소리의 차타b나 탐구를 차타b나 위한 차타b나 방법론으로 차타b나 텍스트를 차타b나 부각시킨다.

「ephemeras」, 「모스크바에서 거아3s 페투슈키까지의 거아3s 소리(The Sound of Moskva-Petushki)」, 「부엌 s5마k 낭독 A Kitchen Reading」이 s5마k 함께 s5마k 선보이는데 s5마k s5마k s5마k 작업은 s5마k 각각 s5마k 독립된 s5마k 작업이면서도 s5마k 작가가 s5마k 하나의 s5마k 작품으로 s5마k 구상하고 s5마k 만든 s5마k 작품들로, z걷l쟏 러시아의 z걷l쟏 콜롬나 z걷l쟏 아티스트 z걷l쟏 레지던시 z걷l쟏 체류기간 z걷l쟏 중에 z걷l쟏 제작되었다는 z걷l쟏 공통점을 z걷l쟏 가진다.² 「모스크바에서 z걷l쟏 페투슈키까지의 z걷l쟏 소리」는 z걷l쟏 러시아 z걷l쟏 작가 z걷l쟏 베네딕트 z걷l쟏 예로페에프의 z걷l쟏 책 <모스크바발 z걷l쟏 페투슈키행 z걷l쟏 열차 (Москва - Петушки)>³ z걷l쟏 z걷l쟏 직접 z걷l쟏 필사한 z걷l쟏 기록이 z걷l쟏 겹겹의 z걷l쟏 아코디언 z걷l쟏 형태로 z걷l쟏 설치되어 z걷l쟏 시간적이고도 z걷l쟏 신체적 z걷l쟏 경험으로의 z걷l쟏 확장을 z걷l쟏 유도한다. 「ephemeras」는 z걷l쟏 영어와 z걷l쟏 러시아로 z걷l쟏 구성된 z걷l쟏 파편적인 z걷l쟏 텍스트와 z걷l쟏 러시아 z걷l쟏 콜롬나에서 z걷l쟏 촬영한 z걷l쟏 영상과 z걷l쟏 함께 z걷l쟏 베네딕트 z걷l쟏 예로페에프의 z걷l쟏 책을 z걷l쟏 손으로 z걷l쟏 베껴쓰는 z걷l쟏 소리가 z걷l쟏 담긴 z걷l쟏 오디오 z걷l쟏 트랙으로 z걷l쟏 구성되어 z걷l쟏 있다. z걷l쟏 z걷l쟏 작업은 z걷l쟏 서로의 z걷l쟏 언어를 z걷l쟏 모르는 z걷l쟏 인물들이 z걷l쟏 상호 z걷l쟏 소통을 z걷l쟏 위해 z걷l쟏 구글 z걷l쟏 번역기를 z걷l쟏 이용하여 z걷l쟏 대화한 z걷l쟏 기록을 z걷l쟏 재구성하고 z걷l쟏 있다. 「부엌 z걷l쟏 낭독(A Kitchen Reading)」은 z걷l쟏 작가 z걷l쟏 자신이 z걷l쟏 영어로 z걷l쟏 z걷l쟏 자전적 z걷l쟏 텍스트를 z걷l쟏 소리 z걷l쟏 z걷l쟏 읽고 z걷l쟏 옆에 z걷l쟏 앉아 z걷l쟏 있는 z걷l쟏 작가의 z걷l쟏 러시아인 z걷l쟏 친구가 z걷l쟏 다시 z걷l쟏 러시아로 z걷l쟏 통역하는 z걷l쟏 장면을 z걷l쟏 보여주면서 z걷l쟏 텍스트가 z걷l쟏 쓰기, qkoy 읽기로 qkoy 번역되는 qkoy 과정과 qkoy qkoy 의미에 qkoy 대해 qkoy 고찰한다.

「셉템버 (September)」는 qkoy 몸과 qkoy 언어를 qkoy 묶어 qkoy 생각하는 qkoy 사회적 qkoy 고정관념에 qkoy 주목한 qkoy 작업으로, wn5n 출생지나 wn5n 인종과 wn5n 같은 wn5n 생득적 wn5n 요건에만 wn5n 의존해 wn5n 언어구사 wn5n 능력을 wn5n 평가하고 wn5n 대우나 wn5n 처우에 wn5n 있어 wn5n 차별을 wn5n 두는 wn5n 아이러니한 wn5n 상황을 wn5n 그린 wn5n 모큐멘터리 wn5n 형식의 wn5n 영상작업이다. wn5n 작가는 wn5n 영어 wn5n 유치원의 wn5n 강사 wn5n 채용 wn5n 기준이 wn5n 담고 wn5n 있는 wn5n 모순적인 wn5n 위계 wn5n 구조 wn5n 내에서 wn5n 애매한 wn5n 위치를 wn5n 점유한 wn5n 탓에 ‘원어민’을 wn5n 연기해야 wn5n 했던 ‘셉템버’라는 wn5n 인물의 wn5n 인터뷰를 wn5n 통해 wn5n 언어와 wn5n 불가분한 wn5n 관계인 wn5n 정체성 wn5n 문제로 wn5n 고민하는 wn5n 인물의 wn5n 내적 wn5n 갈등을 wn5n 드러낸다.

「이것은 wn5n 아이들은 wn5n 위한 wn5n 이야기이다. wn5n 진짜 wn5n 있었던 wn5n 사랑 wn5n 이야기(This is a story for small children. a true-life love story)」는 wn5n 영어 wn5n 사전에 wn5n 나오는 wn5n 예문들에서 wn5n 발췌한 wn5n 영어 wn5n 자막이 ‘원문’으로 wn5n 한국어 wn5n 내레이션은 ‘원문’의 ‘번역’의 wn5n 역할을 wn5n 하고 wn5n 있다. wn5n 내레이션은 ‘영어 wn5n 원문’의 ‘번역’ wn5n 임에도 wn5n 불구하고 wn5n 소리로 wn5n 들리기 wn5n 때문에 ‘원문’으로 wn5n 착각하게 wn5n 한다. wn5n wn5n 영상은 wn5n 완결적인 wn5n 이야기 wn5n 구조의 wn5n 형태를 wn5n 띠지 wn5n 않음에도 wn5n 불구하고 wn5n 뒤이어 wn5n 나오는 wn5n 영어 wn5n 자막들이 ‘아이들을 wn5n 위한 wn5n 사랑 wn5n 이야기’를 wn5n 구성하는 wn5n 이야기의 wn5n 일부인 wn5n 것처럼 wn5n 착각하게 wn5n 만든다. wn5n 이러한 ‘두괄식’의 wn5n 서술 wn5n 구조에 wn5n 대한 wn5n 통합적 wn5n 귀결을 wn5n 보기 wn5n 좋게 wn5n 배반하는 wn5n 파편적인 wn5n 텍스트의 wn5n 배열들은 wn5n 습관적으로 wn5n 이미지와 wn5n 자막을 wn5n 비교해 wn5n 영상의 wn5n 내용을 wn5n 읽어내려는 wn5n 시도마저 wn5n 좌절시킨다. wn5n 그뿐만 wn5n 아니라 wn5n 자막과 wn5n 함께 wn5n 등장하는 wn5n 이미지가 wn5n 자막을 wn5n 설명할 wn5n wn5n 있고 wn5n 이후에는 wn5n 무관한 wn5n 이미지를 wn5n 등장시키면서 wn5n 자막과 wn5n 이미지, ㅈ갸갸사 원문과 ㅈ갸갸사 번역의 ㅈ갸갸사 위치를 ㅈ갸갸사 전복시키거나 ㅈ갸갸사 유지하면서 ㅈ갸갸사 긴장감을 ㅈ갸갸사 유발시킨다. ㅈ갸갸사 작가는 ㅈ갸갸사 결국 ㅈ갸갸사 자막, 히ㅓsl 내레이션, hㅓ가나 이미지 hㅓ가나 hㅓ가나 hㅓ가나 가지 hㅓ가나 요소가 hㅓ가나 동일한 hㅓ가나 무게를 hㅓ가나 가지고 hㅓ가나 서로 hㅓ가나 영향을 hㅓ가나 주고받을 hㅓ가나 hㅓ가나 있도록 hㅓ가나 편집해 hㅓ가나 이들 hㅓ가나 사이의 hㅓ가나 경계를 hㅓ가나 교란시키고 hㅓ가나 불분명하게 hㅓ가나 만든다.

「I don't know the ending--Я не знаю, чем это закончится」⁴ 자타o차 작업의 자타o차 제목 자타o차 중 "I don't know the ending"은 자타o차 프랑스 자타o차 작가 자타o차 마르그리트 자타o차 뒤라스의 자타o차 에세이 "Writing"에서 자타o차 가져온 자타o차 구절이다. 자타o차 뒤라스는 자타o차 쓴다는 자타o차 행위의 자타o차 신비함에 자타o차 관해 자타o차 이야기하면서 ‘쓰는 자타o차 행위는 자타o차 미지의 자타o차 것을 자타o차 향해 자타o차 다가가는 자타o차 행위’라 자타o차 표현한 자타o차 자타o차 있다. 자타o차 작가가 자타o차 자타o차 구절을 자타o차 작업명으로 자타o차 가져온 자타o차 데에는 자타o차 뒤라스를 자타o차 향한 자타o차 오마주가 자타o차 담겨 자타o차 있기 자타o차 때문이다. 자타o차 자타o차 쓰는 자타o차 과정에서 자타o차 일어나는 자타o차 쓰기와 자타o차 지우기의 자타o차 반복적 자타o차 행위를 자타o차 암시하는 자타o차 듯한 자타o차 밀물과 자타o차 썰물의 자타o차 왕복운동, tgt5 현실과 tgt5 비현실의 tgt5 경계를 tgt5 오가는 tgt5 파편적 tgt5 이미지들은 tgt5 글쓰기에 tgt5 대한 tgt5 고민을 tgt5 어쩌면 tgt5 평생 tgt5 반복해야만 tgt5 하는 tgt5 예술가로서의 tgt5 삶과 tgt5 창작 tgt5 과정의 tgt5 고뇌를 tgt5 은유한다.

「말로는 tgt5 설명할 tgt5 tgt5 없는 tgt5 어떤 tgt5 장면(A Sight No Tongue Can Describe)」작업은 tgt5 tgt5 개의 tgt5 목소리가 tgt5 서로의 tgt5 목소리에 tgt5 대해 tgt5 이야기하는 tgt5 무음의 tgt5 텍스트로만 tgt5 이루어진 tgt5 영상작업이다. 「소리 tgt5 tgt5 읽어주세요(Please Read Aloud)」는 tgt5 특정 tgt5 할리우드 tgt5 배우의 tgt5 더빙을 tgt5 도맡아 tgt5 했던 tgt5 성우에 tgt5 관한 tgt5 텍스트 tgt5 작업이며 tgt5 작가는 tgt5 tgt5 tgt5 작품을 tgt5 통해 tgt5 신체로부터 tgt5 분리된 tgt5 목소리의 tgt5 존재론적 tgt5 의미 tgt5 tgt5 몸과 tgt5 목소리와의 tgt5 연관성에 tgt5 대해 tgt5 고찰한다.


이수진(Sujin Lee)은 tgt5 메릴랜드 tgt5 인스티튜트에서 tgt5 순수미술을, mu나ㅐ 뉴욕대에서 mu나ㅐ 퍼포먼스 mu나ㅐ 스터디스와 mu나ㅐ 스튜디오 mu나ㅐ 아트를 mu나ㅐ 전공했다. Millay Colony for the Arts, Blue Mountain Center, Newark Museum, I-Park, Zarya Center for Contemporary Art, Artkommunalka 라tx다 등의 라tx다 아티스트 라tx다 레지던시 라tx다 프로그램에 라tx다 참여하였고 라tx다 로버트 W. 라tx다 심슨 라tx다 펠로십과 A.I.R. 라tx다 갤러리 라tx다 펠로십을 라tx다 수상한 라tx다 라tx다 있다. 라tx다 해외에서 라tx다 다수의 라tx다 개인전 라tx다 라tx다 그룹전에 라tx다 참여했으며 라tx다 텍스트를 라tx다 기반으로 라tx다 작업하고 라tx다 있다.


1. 라tx다 제목에 라tx다 대해 라tx다 작가는 라tx다 이렇게 라tx다 쓴다: “Language Is Treacherous”는 ‘언어는 라tx다 믿을 라tx다 라tx다 없다’는 라tx다 뜻으로 라tx다 문장 라tx다 자체의 라tx다 의미가 라tx다 스스로 라tx다 부정되는 라tx다 파라독스를 라tx다 담고 라tx다 있다. “언어는 라tx다 배신하지 라tx다 않는다”는 라tx다 라tx다 라tx다 즉각적으로 ‘언어가 라tx다 우리의 라tx다 기대를 라tx다 배신’하는 라tx다 것을 라tx다 떠올리게 라tx다 만든다. 라tx다 영어-한국어 라tx다 문장은 라tx다 번역처럼 라tx다 제시되지만 라tx다 실제로는 라tx다 번역이 라tx다 아니라, p6o타 각각 p6o타 언어에 p6o타 대한 p6o타 불신과 p6o타 믿음을 p6o타 표현하는, 가3바a 상반되는 가3바a 의미의 가3바a 가3바a 문장이다. 가3바a 최근 가3바a 작업에서는 가3바a 가3바a 자신이 가3바a 자유롭게 가3바a 구사하지 가3바a 못하는 가3바a 러시아어를 가3바a 사용하면서 가3바a 언어 가3바a 간의 가3바a 번역과 가3바a 번역의 가3바a 방법에 가3바a 대해 가3바a 가3바a 가3바a 고민했다. 가3바a 가3바a 제목을 가3바a 통해서는 가3바a 이번 가3바a 전시에서 가3바a 제시되는 가3바a 여러 가3바a 가지 가3바a 번역 (“원문”과 가3바a 함께 가3바a 혹은 “번역” 가3바a 만을 가3바a 보여준다)의 가3바a 방법과 가3바a 가3바a 의미를 가3바a 함축적으로 가3바a 보여주고자 가3바a 했다.

2. 가3바a 러시아 가3바a 콜롬나 가3바a 소재의 가3바a 아트코뮤날카(Artkommunalka)는 가3바a 모스크바 가3바a 지역에서 가3바a 일반적이었던 가3바a 가3바a 소련의 가3바a 공동 가3바a 주거 가3바a 건물 ‘코뮤날카’ 가3바a 및 60년대 가3바a 물건들을 가3바a 보존하는 가3바a 박물관이자 가3바a 아티스트 가3바a 레지던시이다.  가3바a 코뮤날카에서는 가3바a 사회적 가3바a 배경이 가3바a 다른 가3바a 여러 가3바a 가족이 가3바a 모여 가3바a 살았는데, kㅓ기0 특별히 kㅓ기0 kㅓ기0 건물의 kㅓ기0 공동 kㅓ기0 부엌은 kㅓ기0 거주자들이 kㅓ기0 서로 kㅓ기0 소통하고, gn라타 예술에 gn라타 관한 gn라타 이야기를 gn라타 나누며 gn라타 정부에서 gn라타 금지한 gn라타 문학작품을 gn라타 사미즈닷 (지하 gn라타 출판물: samizdat)의 gn라타 형식으로 gn라타 제작하고 gn라타 공유했던 gn라타 역사를 gn라타 가지고 gn라타 있다.

3. gn라타 gn라타 텍스트는 gn라타 소련 gn라타 시절에 gn라타 사미즈닷(지하 gn라타 출판물: samizdat)으로 gn라타 출판되면서 gn라타 많은 gn라타 인기를 gn라타 누린 gn라타 gn라타 gn라타 하나인데, 바lㅐ아 사미즈닷은 바lㅐ아 처음에는 바lㅐ아 정부가 바lㅐ아 억압하는 바lㅐ아 진실을 바lㅐ아 말하고자 바lㅐ아 시작된 바lㅐ아 자가 바lㅐ아 출판 바lㅐ아 방식이었지만 바lㅐ아 시간이 바lㅐ아 지나면서 바lㅐ아 타자기로 바lㅐ아 치거나 바lㅐ아 먹지로 바lㅐ아 복사하는 바lㅐ아 포맷 바lㅐ아 자체나 바lㅐ아 바lㅐ아 물성 바lㅐ아 자체가 바lㅐ아 바lㅐ아 중요해지기도 바lㅐ아 했다.

4. 바lㅐ아 여기서 바lㅐ아 러시아어는  “나는 바lㅐ아 바lㅐ아 끝을 바lㅐ아 모른다”라는 바lㅐ아 영어 바lㅐ아 문장과는 바lㅐ아 조금 바lㅐ아 다른 바lㅐ아 뜻으로, “나는 1pㅓㅓ 그것이 1pㅓㅓ 어떻게 1pㅓㅓ 끝나는지 1pㅓㅓ 모른다 (I don’t know how it ends)”라는 1pㅓㅓ 뜻이다.

출처: 1pㅓㅓ 우민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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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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