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민 개인전 :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From The Father's Times

갤러리룩스

2020년 6월 5일 ~ 2020년 6월 28일

오래된 공간, 기억의 시간들
이선민

<아버지의 시대로부터>작업은 오랜 시간동안 한 가지 일을 연금해온 노년 남성들에 대한 초상 작업이다. 사진 속 인물들은 다난한 한국의 근현대사가 변화무쌍하게 펼쳐졌던 시대를 연금술사로서 또 아버지로서 살아낸 이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번 <아버지의 시대로부터>의 작업은 격랑의 시대를 살아온 노년 세대에 대한 초상인 동시에 이들이 연금한 기술과 가치와 그 살아온 시대를 이들 스스로의 서술을 통하여 반추하는 기억하기의 시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 작업의 시작은 2015년 <연금술사>란 가제를 가지고 출발하였다. 디지털화와 기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모든 것이 속전속결로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오랜 시간 한 땀 한 땀 손으로 정교한 기술을 연마하며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능숙한 연금술사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고 싶었다. 현자를 찾아가 질문을 던지는 순례자처럼 이들이 연금한 것들을 직접 바라보고 그들이 붙잡은 가치에 대하여 또 지금까지의 삶의 여정은 어떠하였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무슨 질문을 하고 또 무슨 대답을 들을지는 미지수였다. 막연히 그들의 오래된 작업 공간에서 그동안 나의 윗세대와 나누지 못했던 오래된 궁금증들에 대해 질문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것이다.

첫 만남은 3대째 수제맞춤 양복점을 경영하고 있는 테일러 이경주님이었다. ‘종로 양복점’이라는 가게 이름처럼 종로에서 대대로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었다. 처음 양복점을 방문했을 때 장식장에 걸려있는 양복들보다 그 위에 나란히 세워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촬영을 마치고 인터뷰를 하며 두런두런 그의 과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50년 동안 양복을 만들어온 그에게 그 기술을 가르쳐 준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고 한다. 그가 독립할 때 본가로부터 들고 나온 것은 달랑 종로양복점이라 쓰여진 간판 하나였다. 그에게 양복 만드는 기술은 부모에게 받은 유일한 유산이며 동시에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가업의 계승이라는 책임감보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더 절박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그 말 속에 그가 감당해야했던 것들이 묵직한 무게감으로 전해졌다. 또 한 가지 인터뷰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에 있는 양복 학교에서 양복을 배웠고 그의 아버지는 만주에 있는 유명한 일본 양복 회사에 취직하여 양복 기술을 배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가 태어난 곳은 만주였고 해방이 되자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돌아와 할아버지가 하시던 종로 양복점을 운영했다고 한다. 이렇듯 그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하에서 일본으로 만주로 이주를 감행하며 기술을 습득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가업을 세워갔던 것이다. 이 종로 양복점의 연대기가 연금술사라는 작업의 가제를 <아버지의 시대로부터>라는 제목으로 변경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태어난 년도를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을 해방둥이라고 소개하였다. 평범하게 보이는 그의 테일러로서의 삶은 이러한 시대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었고 결혼하여 이사를 10번이나 다니면서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종로 양복점의 간판만은 계속 가지고 다닐 정도로 이 ‘종로 양복점’이라는 말에는 그의 전 삶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이번 작업을 함께한 인물들은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에 출생한 세대들이다. 해방 전후로 출생하여 전쟁을 실제로 경험한 세대이며 이들이 독립하여 직업을 가지고 결혼하고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온 60, 70년대는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로 얼룩진 시기였다. 해방과 전쟁, 혁명과 쿠데타, 유신 등 요즘 젊은 세대들은 역사 교과서에서나 접한 사건들을 이들은 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세대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겪은 전쟁과 가난과 이주의 기억들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들 뇌리에는 여전히 생생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이번 작업의 인물 중 88세로 최고령자인 1932년생 김원하님은 14살 때 일본에서 해방을 맞았고 바로 고향인 포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18살에 6.25 전쟁이 발발했고 비행기 폭격으로 집의 유기공장이 모두 불타버려 온 가족이 경주로 피난을 떠났다. 20세에 장남으로서 6남매를 대표하여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하여 생계에 도움이 될 약학을 전공한 후 서울로 상경하여 제일향료회사와 종근당에 근무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45년간 황학동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서울로 이주하여 경제활동을 시작한 30살 무렵인 1960년대에는 4.19혁명과 5.16 군사쿠데타를 목격하였고 70년대에는 유신과 대통령 암살, 12.12 군사 쿠데타를 목격했으며 80년대에는 광주항쟁과 민주화 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지나왔다. 이 모든 시대적 사건들을 겪으며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중학교 때 6.25전쟁이 일어나 집이 폭격 당했던 일과 기차에 매달려 피난 갔던 일과 고등학교 때 남의 집에 입주하여 과외를 하며 고학했던 때라고 대답했다. 종로 양복점 이경주 사장님도 6.25 전쟁이 일어나 온 가족이 피난갔던 일이 살면서 가장 기억나는 사건이었다고 회상했다. 이것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당시 5살 어린 아이였음에도 아직도 그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다고 하였다. 이렇듯 이 노년 세대들에게 ‘전쟁’과 ‘가난’, 그리고 ‘이주’라는 키워드는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자 극복해야 할 절박한 문제였다는 것이 작업을 함께한 분들의 공통된 진술이다.

10여 년 전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도 이 분들과 비슷한 1935년생이다. 나의 아버지도 <아버지의 시대>작업의 인물들처럼 전쟁과 가난을 겪었고 홀 홀 단신 고향인 부산에서 서울로 이주하여 낯선 땅 서울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았다. 이처럼 ‘전쟁’과 ‘가난’, 그리고 ‘이주’라는 키워드는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모델이 된 노년 세대들에게 공통분모와 같은 기억이다. 1999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작업했던 초기작 <여자의 집> 사진에서는 명절에 모인 여러 세대들의 시선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교차한다. 그 수평을 달리던 시선들이 이번 노년 세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로서 사진가의 눈에 보여지고 들려지기 시작하였다. 이 세대는 이러한 시대적 환경을 극복하는 데에 온 에너지를 집중하고 생활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좌우 돌아볼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나아갈 수 밖에 없었던 세대였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기도 하였고 ‘취미도 못 가져봤고 이거저거 돌아보고 살 정신 없었다’ 는 말속에서 이 노년 세대들이 통과해야 했던 절박한 삶의 여정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시대로부터>작업은 사진 속 노년의 인물들이 평생에 걸쳐 연금한 일들과 지켜온 가치와 그 살아온 시대를 조명하고 있다. 수 십 년의 시간이 응축된 그들의 공간과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공간과 하나가 된 듯 익숙한 이들의 모습들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운 오래되고 손때 묻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응시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오래된 물건들과 평생 연금한 기술과 가치가 어떻게 다음 세대로 흘러가는지 그들의 시간을 천천히 따라가 보려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진이 올려진 테일러 이경주님의 장식장 안에는 이들에게 전수받은 기술로 만든 양복들이 차곡차곡 걸려 있다. 이것들을 배경으로 서있는 노년의 테일러를 바라보며 그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몸으로 부딪치며 겪어왔던 세월을 생각한다. 또 그가 지켜온 것들은 무엇일까도 생각해 본다. 켜켜이 책이 쌓인 건축가의 오래된 서가와 50년 동안 광장시장을 지킨 유비상회와 그 안에 수북히 쌓인 원단들, 성수동 금속 제조 공장에 빽빽이 쌓여있는 수많은 물건들과 커다란 시계, 4대째 이어온 대장간의 망치 등 이들의 오래된 오브제들도 천천히 바라본다. 종로 양복점과 유비상회 사장님의 50년을 이어오고 있는 오래된 우정도 떠올려 본다. 컴퓨터도 없었고 기계화도 되지 않았던 시절 몸과 손으로 일구고 지켰던 이들의 시간들이 이 공간에 가득히 흐르고 있다. 나의 아버지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손에서 손으로 전수한 정신과 기술들도 함께 말이다. <아버지의 시대로부터>작업은 마치 오래된 서가에서 한 권 한 권 책을 꺼내 읽듯 천천히 이 이야기들을 읽어가려 한다.

이렇듯 이번 <아버지의 시대로부터>작업은 노년 세대들의 시간을 기억해주는 작업이다. 이들 노년 세대가 감당해온 삶의 네러티브와 그 기억이 담긴 공간을 응시하고 경청하는 것이다. 1996년 <황금투구>란 제목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 나는 아버지를 시이저에 비유하여 바라보았다. 25년이 지난 지금 내 딸이 그 당시의 나의 나이와 비슷해질 제법 많은 시간들이 흘렀다. <아버지의 시대로부터>작업은 지금 세상에는 없지만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와 비로소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업을 하며 익숙한 내 아버지의 포우즈와 문장들이 보여지고 들려졌다. 그렇게 나는 나의 아버지의 삶으로 초청되었고 그 시대와 대화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시대로부터>작업이 아버지의 세대와 동시대의 또 다른 세대들과 나누고자 하는 담론에 다름 아닐 것이다.

출처: 공간291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참여 작가

  • 이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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