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란 개인전 : 있음과 없음

갤러리밈

2019년 9월 25일 ~ 2019년 10월 7일

작가노트​

‘있음과 없음 To Be & Not To Be’

있음이 있으므로 없음이 있고
없음이 없으면 있음도 없다
있음은 지연된 없음이고
없음은 회귀하지 않을 있음이다
있음의 없음과 없음의 있음이다
현전하는 부재이며
부재하는 현전의 삼투 현상인 것이다
경계 너머를 있게 하는 ‘아무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인 공(空)’을 사유하는 것은
나와 여기와 지금을 비워내는 연습
익명적 실존으로 되돌아가는 연습
겸허해지는 연습이다
나는 너이고 모두이며
그렇기에 아무도 아니다

삶은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우발적인 사건들의 총체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현재는 여운과 징후의 틈새이다. 나날이 지나면서 간극이 더욱 넓어지는 구멍은 존재성을 나타내는 층리의 차이와 지연의 양태를 수렴하는 생체기억이다. 틈새를 통해 연약한 내부가 노출됨으로써 외상(外傷)에 의한 생채기가 안으로 번진다. 살갗의 손실에 따른 진동에 반응하는 몸을 거점으로 삼아야 하는 삶은 그래서 때때로 실체가 아니라 흔적으로 존재한다. 몸이 겪는 변화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으니 내 주체성의 지배 아래에 몸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트라우마의 소환을 통해 주체에 대한 인식이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다. 사건은 잊히더라도 상처는 흉터로 남는다. 삶의 도정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누적됨에 따라 구멍 나고 투명해질 때까지, 몸에서 생략이라는 감각의 과정, 축적의 과정, 훼손의 과정이 진행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게 되면 실존의 현실과 기억의 현전 사이에 가로놓인 망각의 한계라는 윤곽만이 현존의 증거가 될 것이다. 그렇게 은신할 보호막을 잃는다면, 자아는 대체 어디로 회귀해야 할까?

차원분열 형태, 요컨대 ‘공간을 함유하는 선 구조물’을 반복적으로 연결한 인체상은 자아와 세계, 몸과 마음, 현전과 부재가 서로 교차하는 실존의 장에 자리한다. 구멍 난 몸은 상실과 보충의 순환을 기본원칙으로 하는 환유(換喩)적 결합이다. 불가역적 세계의 일부를 구성하는 몸의 불완전성, 분열, 붕괴, 해체는 현전과 부재의 동시성(to be and not to be)을 표상한다. 그러한 동시성은 몸에 틈과 구멍을 내고, 그 균열의 폭이 넓어질수록 자아의 부재 가능성이 높아지며, 비자율적 존재가 됨을 의미한다. 구멍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순환하는 시공간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일시적인 현전 가운데 부재하는 존재는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조건으로부터 체화된 고통에 의해서 뿐 아니라, 불확정적 세계의 조건이 구멍을 낳는다. 채울 수 있는 구멍은 모든 생성의 터전이 되지만, 그것의 현전은 공허를 불러일으킨다. 구멍은 의미와 진리 혹은 가치의 균열로 인해 내파된 틈이기 때문이다. 벌어진 틈새에 함몰되지 않고 어떻게 정면에서 구멍을 바라볼 것인가? 경계 너머를 현존케 하는 ‘아무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인 공(空)’을 사유하는 것은 나와 여기와 지금을 비워내는 연습, 익명적 실존으로 되돌아가는 연습, 겸허해지는 연습이다. 그렇게 삶은 숨결에 구멍을 내는 일이다.

존재의 심연을 향해 열려있는 몸은 특정 논리로 포착할 수 없는 애매성을 갖는다.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혼돈 속으로 휩쓸려드는 실존의 모호함과 불안 탓이다. 최소한의 형태만 남기고 희박해지는 존재감은 소멸을 향한 기화(氣化)이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구분이 어려운 세계에서 없음과 있음이 교차되는 찰나의 시간성을 현시한다. 시간과 공간이 공명하는 영역에서의 현존은 있으면서도 없는 존재이다. 있음이 있으므로 없음이 있고, 없음이 없으면 있음도 없다. 있음은 지연된 없음이고 없음은 회귀하지 않을 있음이다. 있음의 없음과 없음의 있음이다. 현전하는 부재이며 부재하는 현전의 삼투 현상인 것이다. 결핍과 보충의 무한순환이 실존의 조건이므로 모든 인간에게 현재는 있음과 없음의 사이를 통과하는 일이다. 순환원리가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결핍과 보충이, 없음과 있음이, 부재와 현전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출처: 갤러리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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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윤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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