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호 개인전 : 미제 Incomplete

대안공간루프

2020년 8월 7일 ~ 2020년 8월 30일

코로나로 인해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피식자와 포식자, 비인간과 인간 같은 이분법적 구분은 의미를 잃어간다. 인간이 비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발생한 바이러스는 기존 질서를 과거의 것으로 만든다. 바이러스라는 재난은 전쟁이나 쓰나미처럼 외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침투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먹고 먹힌다는 약육강식의 서사는 그 의미를 잃는다. 인간 내부에 들어온 이 바이러스는 순순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는 이제 바이러스와의 공존법에 대해 모색해야 한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전환의 시대, 예술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예술가가 현실 사회에서 맡을 수 있는 역할 하나는, 제 예술 안에서 현실에 대응하는 하나의 구체적인 입장을 구현하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현실 사회야말로 비정형적이다. 예술가는 현실 사회에 대한 반성이나 저항 그리고 또 다른 상상력을 자신만의 미감 안에서 구체적 형태로 만들어 낸다. 미학적이며 인식적인 예술가의 시선은 비정형적 현실 사회의 한 단면을 비판적으로 포착할 수 있다.

유비호는 2015년 작업 에서 한국 현대사 속 사회적 재난을 겪은 8명의 생존자와 유족을 인터뷰했다. 형제복지원 생존자, 용산참사 생존자,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참사 유족, 대구지하철 참사 유족 등. 담담하게 제 경험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공통된 질문이 있었다. 과연 누가 재난을 일으킨 가해자인가. 피해자로서 누구를 적대적으로 비난해야 하는가. 재난이 발생한 순간부터 현실 사회에서 그 원인 관계와 행위 주체들은 변이 하기에, 이는 단순치 않다. 국가이기도 하고 담당공무원이기도 하며 언론사 기자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바뀌는 재난의 서사에서, 유비호는 지금 시대의 가치와 체계에 대한 비판을 다시 시작한다.

유비호 개인전 ‹미제未濟 Incomplete›는 주역의 64괘 중 마지막 괘를 차용하며 출발한다. 미제는 “여우가 강을 건너다가 그 꼬리를 적시게 되니, 강을 건너지 못한다”를 뜻한다. 즉 마지막 괘에서 순환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순환이 실패함으로써 다시 새로운 괘가 시작된다는 의미다. 순환의 원리가 제 스스로를 완성시키고 이를 무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지 않음으로 인해 새로운 변화가 가능함을 전제로 한다. 작가는 동아시아의 순환적인 인식적 세계관이 반영된 주역의 괘를 모티브로 하여 미완의 건축물을 전시한다. 미완의 상태를 드러내는 가변적인 비계 구조물이 전시장에 설치되며, 그 위에 영상 이미지와 출력물이 걸려 나간다. 새로움의 창출하기 위한 전제 조건인 미완의 상태. 이를 시각화한 구조물은 전시 기간 내내 변화하며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낼 계획이다.

코로나 이후 언컨택트는 뉴노멀로 규정된다. 언컨택트의 시대, 현대미술 전시장에서 어떤 종류의 컨택트가 가능한가. 역사적으로 전시장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예술작품 사이의 물리적이며 지적 교류의 장, 즉 컨택트 존으로 역할해 왔기에, 이 질문은 제고되어야 한다. 그 실험의 하나로 ‹예술가를 위한 자본주의 세미나›를 전시장에서 3차례 진행한다. 코로나가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자연의 응답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하여, 그 본질과 작동 법칙을 예술가와 함께 연구하는 자리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현상 형태에 대한 피상적 이해에 근거하여, 현대 예술계에서 넘쳐났던 창작의 클리셰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서 비롯된다. 이때 전시장은 예술 작업을 감상하는 관객을 위한 공간이 아닌, 예술 작업을 창작하는 예술가와 그 동료들을 위한 공간으로 뒤바뀐다.

‹미제 Incomplete›는 이제껏 국내외 미술계에 만연했던 사고의 틀에 대한 비판과 맞닿아 있다. 현실사회주의 붕괴 이후 유토피아를 꿈꾼다는 것 자체가 의미를 잃었을 시점부터, 현대 미술계는 관계 맺기에 집중했다. 전시장은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플랫폼으로 불렸고, 미술계에서는 내용 없는 담론성과 이를 연결 짓는 사교성이 인기 있는 주제가 되었다. 자본주의 비판이라는 클리셰와 성추행으로 이어지는 사교성은 과거 전시들이 지향한다고 주장했던 민주적 공동체나 비위계적 평등 사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미제 Incomplete›에서 유비호는 현재를 알 수 없는 미래로 진행 중인 Sci-Fi적 세계로 상정한다. 이를 구현한 비계 구조물은 건축을 완성하기 위해 사용되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사건의 상태를 드러내 보인다.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는 가변적 구조물에 걸린 낯선 이미지들을 마주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컨택트 존을 소개한다. 전시장은 조화롭고 평화로운 상태라는 공상 속 공존이 아닌, 위험과 문제를 동반하며 함께 살아가는 현실 속 공존을 구현하는 공간이 된다.

글: 양지윤

유비호(b, 1970)


유비호는 2000년 첫 개인전 ‹강철태양› 이후 동시대 예술가, 기획자, 미디어 연구자들과 함께 ‘예술과 사회 그리고 미디어 연구모임’인 ‹해킹을 통한 미술행위(2001)›, ‹Parasite-Tactical Media Networks(2004-2006)› 등을 공동 조직하고 연구활동을 해왔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예술과 사회에 대한 미적 질문을 던지는 ‹유연한 풍경(2008, 2009)›, ‹극사적 실천(2010)›, ‹공조탈출(2010)›, ‹트윈픽스(2011)›등을 발표했다. 그 외 단체전 ‹4.3미술제(제주도립미술관, 2017)›, ‹다중시간(백남준아트센터, 2016)›,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5.18민주광장, 2014)›, ‹미래는 지금이다(국립현대미술관, 2013)›, ‹악동들 지금/여기(경기도미술관, 2009)› 등에 참여했다. 2013년 ‘성곡 내일의 작가상’ 수상기념으로, 2015년 성곡미술관에 초대되어, 개인전 ‹해 질 녘 나의 하늘에는(2015)›을 치렀었고, 최근 '쿤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 아티스트 레지던시(베를린, 2017)'와 '빌바오아르테 아티스트 레지던시(빌바오, 2018)' 그리고 '글렌피딕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더프타운, 스코틀랜드)'에 참가했다.


연계 프로그램 ‹예술가를 위한 자본주의 세미나 1›

코로나19는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자연의 응답이다. 예술가들은 자본주의의 비인간성과 인간 소외를 말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금융자본주의의 사악함을 그려왔다. 코로나 세계는 예술가로 하여금 자본주의 시스템의 본질과 작동 법칙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요청한다. 클리셰가 되어버린 창작과 전시 미학들, 제도에 순치된 전위성의 성찰과 재구성을 요청한다. 세미나 1은 마르크스 ‹자본›에서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난해하다 알려진 1권 ‘상품과 화폐’ 부분을 집중해 살펴본다. 스탈린주의와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에서 오독, 신좌파나 포스트 구조주의에서 오해와 왜곡들도 함께 검토한다.

강연 신청 링크
https://forms.gle/QHejXyxm7JEZbyx48

강연: 김규항
장소: 대안공간 루프
정원: 20명

일정
1회 - 8월 14일(금) 오후 2~5시
2회 - 8월 22일(토) 오후 2~5시
3회 - 8월 29일(토) 오후 2~5시

강연자 소개
김규항은 1998년 이후 ‹씨네21›, ‹한겨레›, ‹경향신문› 등에 칼럼을 써왔다. 근래에는 매체 기고를 중단하고 급진적 현실 변화의 논리와 전망을 담은 저작 집필과 실천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아웃사이더› 편집주간을 지냈고, 2003년 어린이교양지 ‹고래가 그랬어›를 창간하여 발행인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예수전›, ‹김규항의 좌판›, ‹B급좌파›,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혁명노트› 등이 있다.


주최/주관: 대안공간 루프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출처: 대안공간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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