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줍음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2년 10월 21일 ~ 2023년 1월 29일

당신은 수줍음을 많이 탑니까? 숫기 없는 아이들을 보면, 숨어버리고 싶고 도망가고 싶어 하지만 그리 멀리 가지는 않습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사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적응하기 위해 한 발 뒤로 물러난 채 관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수줍음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데 익숙하지만, 낯설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수줍음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 수줍음에 주목한 네 명의 작가가 있습니다. 루카 부볼리와 김범, 시오번 리들, 에란 셰르프는 1993년 뉴욕에서 함께 만들었던 전시 《(oh, shyness)》를 2022년 서울로 소환했습니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멀티미디어 예술가 루카 부볼리는 슈퍼맨과 같은 슈퍼히어로의 영웅적 모습 뒤 연약하고 가녀린 내면을 비닐봉지와 헌옷, 철사, 사탕 껍질처럼 취약함을 드러내는 재료로 표현해 왔습니다. 최근 부볼리는 전염병과 환경오염이 창궐한 마을에서 탈출하기 위해 애쓰는 의심 많은 우주비행사 캐릭터 아스트로다우트(Astrodoubt)를 창조했습니다. 미술관 1층 물품보관함 작은 창문을 통해 아스트로다우트가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 있는 장면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진지하지만 장난스러운 방식으로 인간 지각이 근본적으로 의심되는 세계를 다루는 김범은 2층 로비에 미술관 문과 똑같이 생긴 문을 만들어 설치합니다. 노크 소리를 내는 스피커를 내장해, 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미술관 카페에 전시한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집니다. 언뜻 보기에 카페 주방에 있는 전자레인지에서 통닭이 조리되는 것 같지만, 사실 통닭 모양의 조각이 돌아가는 영상이 모니터에서 상영되는 것입니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오번 리들은 재료와 환경에 대한 미묘하고도 섬세한 인식을 바탕으로 공간에 개입하는 작업을 합니다. 리들은 지하 1층 복도에 ‘잘못된 안도감’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를 253개의 압정으로 형상화해, 우리가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바로 우리의 불안한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곳에 있다고 말합니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에란 셰르프는 이야기 속 시간과 장소 너머 존재하는 화자의 삶을 상상합니다. 그는 언어나 문화를 번역할 때 우리가 처하는 감정 속에서 수줍음을 읽어냅니다. 작가에게 번역이란, 대상에 관해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신 그 대상에 가깝게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미술관 2층 조각 테라스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셰르프의 테이프는 한 지점만 고정된 채 바람에 휘날립니다. 구역을 가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수줍음은 무언가를 말함에 있어서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고, 열려있고자 하는 작품의 구현의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1993년 전시 《(oh, shyness)》는 뉴욕 소호에 위치한 갤러리 3곳의 주 전시장이 아닌 부차적인 공간을 전시 장소로 정했습니다. 계단 아래, 뒷방, 서고와 같은 숨겨진 공간을 연결해보는 관람 방식이 전시의 특징으로 제안되었습니다. 작가들은 ‘수줍음’을 세상과 조심스럽게 거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획일주의적 사회 시스템을 수용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전시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전시 제목을 괄호와 소문자로 표기해 수줍음만의 감수성을 담아냈습니다. 2022 유휴공간 프로젝트에서는 미술관 2층 로비에 ‘시대의 방’과 작은 라운지를 만들어 1993년 전시에 출품되었던 작품, 기록 영상, 책자 등을 다시 꺼내놓습니다. 30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네 작가의 작업 근저에 공통적으로 존재했던 수줍음의 태도가 어떻게 지속되고 변화되었는지 조망해볼 수 있습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2017년부터 매해 유휴공간 프로젝트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이 아닌 미술관 곳곳에 작품을 놓아, 시민들이 미술을 보는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1993년 전시가 그랬듯, 이번 유휴공간 프로젝트도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미술관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작품을 흩어놓았습니다. ‘수줍음의 예술’을 주제로 여기저기 숨어있는 작품을 탐색해 보면서,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새로이 인식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전시장이 아닌 미술관 곳곳에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은 작품이 주인공이 아니라 미술관에서 벌어지는 작은 게임의 일부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미술관을 찾는 모든 이가, 원한다면 그 게임의 플레이어가 될 수 있겠지요. 유휴공간 프로젝트는 이처럼 무대가 아닌 배경에서 일어나는 일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중심과 주변의 구분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는 전체보다 단편을, 시끄러움보다는 고요함을, 거만함보다는 겸손함을 선택하는 수줍음의 태도와 궤를 같이합니다. 수줍은 사람은 어색한 상황에 얼굴을 붉히며 반응함으로써 사라지고 싶은 바로 그 순간에 자신을 더 잘 보이게 만드는 역설적 상황에 놓입니다. 2022 유휴공간 프로젝트의 수줍은 작품들은 전시장이라는 안전하고 익숙한 장소를 벗어나 붉어진 얼굴을 빠끔히 내밀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넵니다. 저들이 수줍게 건네는 말에 소곤소곤 응답해보기를, 당신의 수줍음을 수줍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참여작가: 루카 부볼리, 김범, 시오번 리들, 에란 셰르프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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