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하, Jessie Tam : 희미한 불면증 Sleepless Remote

중간지점 하나

2020년 7월 4일 ~ 2020년 7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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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와 B는 같은 구조의 방에서 생활한다. 벽은 하얗고, 베이지색 페인트가 칠해진 창문은 약간의 먼지가 쌓여있다. 관리가 잘 된 가구들은 이전 사용자들의 흔적을 가진 채 항상 그대로 있는 듯했다. A는 지층, B는 3층의 방을 사용했다. 이 건물에는 다른 사용자들도 묵는 듯했으나 크게 심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A와 B는 그 사실이 좋았다). A의 창문에서는 축축한 녹색의 땅과 운하가 보였고, B의 창문에서는 지평선과 하늘이 잘 보였다. A와 B는 새로 얻은 방이 마음에 들었다. 라디에이터가 공간을 잘 데워준다는 점도 좋았지만, 당분간은 고향에 돌아가지 않아도 돼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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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익숙해질 때쯤부터 간혹 고향에서는 누군가가 죽었다고 연락이 왔다. 어떤 날은 A에게,  다른 날에는 B에게, 또 다른 날에는 두 사람에게 동시에 연락이 왔다. 그래도 연락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은 꽤나 긍정적이었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자신들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려고 안간힘이라는 것이었으니까. A와 B는 낮 동안에는 이곳에 사는 주민들과 어울리며 낚시도 하고 섹스도 하고 술도 마셨지만, 밤에는 핸드폰을 베개 가까이에 두었다. 주민들은 고향에서 온 이야기를 말해주면 처음에는 눈을 반짝이면서 들었다. 그들은 A와 B를 위해서 울어주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왜 그렇게 얽매여 있느냐고 질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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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 풍경은 새벽이 되면 현실감이 없어졌다. 낮 동안의 생명력이 달에 흡수됐기 때문인지, 자고 있지는 않지만 자는 것 같은 상태가 이어졌다. 침구의 색, 포스터의 색이 전부 희끄무레한 파란색이 되어버릴 때 핸드폰 액정이 가장 밝게 빛났다. 오늘도 고향에서는 여자를 강간하고 폭행하는 일들이 있었고, 약속이라는 이름하에 사람들을 이리저리 옮기는 일들이 있었다. A와 B는 각자의 방에 모로 누워 위에서 아래로 타임라인을 스크롤 했다. 친구들이 공유해 놓은 감춰진 비밀들이 샐 수 없이 위로 올라갔다. 몇 번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다가 실패한 후에, 둘은 얼추 비슷한 시간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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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는 꿈속에서 고향에 있는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은 어릴 적 타던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가던 중이었다. 차창 밖에는 매일 지나치던 산과 바다가 느리게 지나가고, B와 친구들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친구는 세계 여행을 할 것이라고 했고, 어떤 친구는 선생님이 될 것이라고 했다. B는 기억에서는 자신도 무엇을 할 것이라고 얘기했던 것 같은데, 꿈속에서는 그냥 웃고 있었다. 산과 바다와 친구들의 빛나는 살이 예뻐서 웃다가 잠에서 깼다. 아직도 천장이 파랬다.

:In a room with different numbers

역사의 파도에 휩쓸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양하와 Tam은 그 뜨거움에, 혹은 개인으로서 변화하고 싶은 마음에 고향을 잠시 떠났다. 이들은 네덜란드의 한 도시에 ‘새로운 집’을 마련했다. 약간은 평화로운 지구 반대편에서 고국을 돌아보게 된 작가들은 한국과 홍콩이 겪고 있는 변화를 짚어보고 자신의 위치를 점검해볼 수 있었다. 양하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서 지워지고 있는 약자들의 문제를 복기했다. Tam은 홍콩 사태가 본격적으로 심화될 때, 변화하는 고국의 현 상황을 지켜보면서 작업을 이어나갔다. 두 국가 모두 개인의 목소리가삭제되어 온 역사가 있었고, 현재에도 집단 속에서 개인이 누락되어 버리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두 사람은 우회적으로 전달되는 정보를 스크롤 했고 고향의 친구들과 느린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방에서 고향을 기억했다, 삭제했다, 상상하면서 핸드폰 불빛에 의존했다. 잠이 지연된 상태는 여러 이야기를 뒤섞고 새로이 만들어 낼 수 있게 했다. 낮이 되면 둘은 각자의 방에서 벗어나 고국에서 경험했던 시위, 차별, 국가 변혁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고, 작업실에 돌아가서는 여러 사건들에서 누락된 자신들의 목소리를 작업으로 표현해냈다. 이 과정이 가능했던 것은 <<희미한 불면증_Sleepness Remote>>라는 전시 제목이 지시하는 허구적이면서 뚜렷한 새벽의 시간이 두 작가에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참여 작가 : 양하, Jessie Tam

주최: 중간지점
포스터 디자인: 원정인

글: 김주눈

본 전시는 2020년 중간지점에서 진행된 전시 공모 '제1회 중간지점 프로젝트'에 선정된 전시입니다.

출처: 중간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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