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에서의 즐거움(The Pleasure in Drawing)1
양지원의 ‘벽화’2는 하늘과 땅이 은유하는 공간성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그의 작업은 이미지의 캔버스가 될 공간을 선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먼저 현장을 살펴보며 공간의 크기, 벽의 높이와 구조 등 물리적 특성을 파악한다. 특히, 기둥이나 창문과 같은 요소의 형태나 색감, 질감 같은 세부 사항을 확인하는 과정은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의 요소들을 고려해 떠올리는 이미지의 드로잉을 시작한다. 1차로 완성된 드로잉은 모니터로 옮겨져 화면 안에서 이리저리 배치해 보며 시뮬레이션의 과정을 거친다. 이후 실제 현장에서 벽면과 바닥, 천장 등의 공간을 활용해 선과 면, 먹과 페인트, 때로는 오일 파스텔이나 시트지와 같은 재료를 조합하여 하나의 공간을 구성(composition)한다. 이때 구현되는 이미지는 계획한 것과 필연적으로 같을 수 없다. 전시 공간에 놓인 이미지는 “현장의 공기(atmosphere)”와 맞물려 끊임없이 조율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단계를 거쳐 완성되는 양지원의 벽화는 하나의 드로잉이자, 공간을 여는 무대가 된다. 이는 단순한 배경으로서의 무대가 아니라, 작가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형상이 드러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양지원의 작업에서 ‘드로잉’은 매우 중요한 화두다. 작가가 벽화 형태의 작업 형식을 ‘월 드로잉(Wall Drawing)’3 등으로 표기하고 있는 점만 보아도, 드로잉이 그의 시각 언어에서 주요한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전 ‘월 드로잉’에서는 청각적 효과를 환기하는 기호 혹은 기호화된 도형, 알파벳으로 구성된 단어의 형태가 직접적으로 사용되었다면, 최근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점과 면, 색과 선의 추상적 형태로 전환되며, 공간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벽화’적 실천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 형상들은 드로잉의 기본 요소로 작동하며 공간의 확장성을 꾀하고 있다.
작가의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푸른색은 전시 제목의 ‘하늘(Ciel)’을 은유함과 동시에, 그와 대비되는 ‘땅’을 설정하는 요소로 기능한다. 공간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장치이자 그의 작업에 시작점이 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는 근원적 형태로서의 ‘원’을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는데, 이는 점이 응축되고 확장된 형태일 수도 있으며, 작업 초기부터 탐구해 온 ‘씨앗’, ‘자궁’ 등의 키워드가 자연스럽게 발화한 형상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드로잉의 가장 기본 요소인 ‘선’은 공간의 에너지를 전달하며 공간과 공간을 잇는 매개가 된다. 벽면의 선들은 각기 다른 굵기와 형태를 지니고 곧게 뻗어나가거나 멈추며, 벽과 벽을 이어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한다. 이는 그 자체로 움직임과 에너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번 작업은 전시 제목의 세 번째 단어가 암시하듯, 작가가 크고 작은 공간을 기반으로 시도해 온 벽화 작업을 하나의 ‘방’으로 구성한다. 작가의 거의 모든 작업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양지원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공간’이다. 이는 그가 프랑스 유학 시절 건축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그는 평평한 캔버스 대신 4차원의 ‘공간’을 작업의 중요한 요소로 끌어들인다. 이는 공간성뿐 아니라 시간성과 현장성이 본질적으로 요구된다. 이 때문에 사방이 벽화로 둘러싸인 이 방에서는 관객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는다. ‘지금-여기’에서만 존재하는 벽화와 관객이 서로 마주하는 순간, 이 공간은 서로에게 열리며 의미가 발생하는 장으로 변모한다. 이때 벽화는 더 이상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사건(event)’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양지원의 드로잉은 그리는 행위 자체에서 비롯되는 ‘즐거움’을 그 특징으로 한다. 작가와 나눈 여러 대화에서 그는 전시장에 형상을 심어가는 모든 과정―공간의 사소한 부분까지 고려하기 위해 이미지를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는 어려움까지도―을 ‘즐거움’으로 표현했다. 마지막 선과 형태가 자리 잡을 때까지 최종 결과를 알 수 없는 이 과정에서 그가 느끼는 감정이, 공간에 들어선 관객에게도 닿기를 바란다. 또한 관객이 작가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온전히 마주하는 순간, 그 즐거움이 새로운 감각적 울림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글 이은진 (인천아트플랫폼 큐레이터)
1. 글의 제목은 장-뤽 낭시(Jean-Luc Nancy)의 『드로잉에서의 즐거움(Le plaisir au dessin)』(2007)에서 차용하였다.
2.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기존에 사용해 온 ‘월 드로잉(Wall Drawing)’, ‘월 페인팅((Wall Painting)’이라는 표현 대신 ‘벽화’로 표기한다.
3. 작가의 작품 표기방법은 다음과 같다. <JWY.D.00.00.>는 작가의 이니셜(JWY), 드로잉(D), 작품번호, 제작연도로 구성된다. 드로잉 작업을 근본적인 행위로 간주하고, 한시적인 공간에서 보여지고 소멸되는 현장 기록이라는 점에 비롯하여 공간-그리기 작업은 이러한 방식으로 작품명을 사용한다.
기획: 양지원 @jiwon_yang_
전시서문 & 자문: 이은진
설치도움: 김지형, 송나윤, 이경수
영상촬영: 신성민스튜디오 @tjdalstls
사진촬영: 주기범
후원: 서울문화재단
출처: 드로잉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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