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혜 개인전 : STITCHING TIME

G Gallery

2019년 9월 4일 ~ 2019년 10월 12일

언어는 우리의 삶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언어는 그것이 인간의 발성기관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말이든, 종이나 모니터위에 차례로 배열되는 글이든 모두가 다 예외 없이 시간의 지배를 받아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그 선조성(線條性)의 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말은 종이나 모니터와 같은 공간 속에 어떤 글자들의 모습으로 배열될 경우 돌연 일정한 조형적 전체로서 우리의 시선에 다가든다. 여기가 의사소통의 도구인 시간적 매체와 시각적 교감기능으로서의 언어가 만나는 지점이다. 양주혜은 이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아 자신만의 고유한 조형작업을 전개해온 작가다.

물론 언어는 항상 시대와 삶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어떤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는 언어를 습득하여 세상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언어는 반드시 실용적인 면에서 의사소통의 기능만으로 한정되는 것일까? 각각의 언어는 공동체의 정체성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언어는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의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그 삶의 어조와 울림과 광채를 반사하고 또한 창조하기도 한다. 말라르메가 말하는 “종족의 언어”를 통해 우리는 각자의 개인 뿐 아니라 공동체의 목소리에 개성과 생명력을 부여한다. 양주혜는 개인 특유의 경험과 동시에 그가 속한 공동체의 언어를 조형적으로 재구성하고 그 언어에 고유한 색깔의 시각적 문법을 구사하고자 한다.

작가 양주혜의 작품은 경계가 흐려진 현대의 획일화된 언어지형 속에서 자신만의 내면화된 조형언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처음 “색점의 일기장” 계열의 작업을 시작한 1970년대 초부터 40년 넘게 천착해 온 양주혜의 언어는 세계화의 광야에서 자신의 고유한 가치의 매듭을 찾고자 한다. 표면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그때 그때의 형상들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찾아낸 기장 기초적인 언어로 반짝이는 순간의 빛을 수 놓듯이, 한땀 한 땀 삶의 시간을 누비듯이, 그는 바느질 같은 표현 과정 자체를 하나의 새로운 공간으로 재구성한다. 그의 느리지만 집요한 점과 선과 색채의 바느질이 풀리지 않는 매듭의 견고함을 만들어 낸다. 점과 선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조형 단위가 차례로 이어지고 끊어지며 다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시간이 문득 빛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며 그만의 고유한 스타일이 모습을 드러낸다. 흘러가는 시간의 물결에 실려 뜻을 알 수없이 쏟아져 사라지는 언어의 범람 속에서 매 순간 광채를 색점들로 수놓아 펼쳐놓은 포대기 위에 그녀는 “잃어버린 시간” 을 소환한다. 

양주혜의 조형언어 속에는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현재의 시간 위에 포개어 소생시키려는 열망이 깃들어있다. 하나 하나의 색점을 찍는 몸짓과 순간의 집중을 통하여 그가 표현하는 것은 시간의 깊이, 혹은 두께다. 임종 하기 전까지 어머니가 늘 몸을 눕히고 있던 침대의 덮개, 할머니께서 늘 손자 손녀들을 업고 다닐 때 등을 덮어 허리에 잡아 매곤 했던, 100년 가까이 된 아기 포대기 처럼 오랜 시간과 일상의 몸짓이 배어 있는 물품들에 양주혜는 다시 바느질하듯 자신의 시간을 색점으로 찍으며 어머니의 시간, 할머니의 시간 위에 자신의 삶을 겹쳐 그 깊이가 반향하는 공명상자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침대보나 조각이불 등 빛 바랜,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생활의 빛과 어둠이 짙게 스며있는 일상적인 사물들 위에 색점을 찍음으로써 과거의 시간을 지우는 동시에 현재의 시간으로 바느질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그러는 동안에 또 시간이 흐른다. 여러 겹의 시간들이 누적된 공간, 아니 공간으로 변한 시간의 몸을 그는 보여주려는 것이다. 층층이 물감을 찍고, 바르고, 덧칠을 하는 행위들을 통해 과거라는 평면에 현재라는 시간의 높이과 깊이를 창조하는 과정위에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새로운 시간이 되어 올라 앉는다. 이렇게 화면에 쌓이고, 또 벗겨지기도 하는 흔적들을 통해 작품을 보는 이들은 작가가 드러내는 시간의 깊이 속에 잠시 눈을 적신다. 색점으로 나타난 그의 언어는 역사와 시간의 흔적을 넘어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언어의 메아리를 전해온다. 그 언어 속에 혹시 어떤 새로운 공간적 소통 혹은 공감의 가능성이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오로지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무심한 듯, 그러나 줄기차게, 과거를 현재속에 재구성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선보이는 그의 작품은 시간이 닳아 빛이 되고 빛이 이어져 선으로 흐르는 넓은 천을 침묵의 공간인양 우리 앞에 깔아놓는다. 

출처: 지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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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양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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