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관장 최효준)은 신록이 짙어가는 여름만큼 열정적이고 강렬하게 한국 대중문화사에 큰 자취를 남긴 1960-70년대의 디바의 목소리를 통해 베트남 전쟁, 아시아 경제 개발 상황, 히피문화와 아폴로 11호 달 착륙 등 전지구적 문화의 격변기 안에서 다양한 아시아 대중문화의 서사와 변화들을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1960-70년대는 미소간의 냉전이데올로기 대립이 베트남 전쟁과 우주 경쟁으로 가시화된 때였다. 전쟁이라는 참혹함 속에서 인간성 말살을 목도하게 한 베트남 전쟁과 아폴로 11호 달착륙으로 대변되는 인간의 새로운 도약을 약속한 우주과학기술의 발달은 정치적 냉전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서로 다른 결과물이었다. 이처럼 냉전 이데올로기가 일상을 잠식하고 있던 시절, '68혁명‘을 이끈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체제에 저항하며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흐름을 형성한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저항정신은 급격한 대중매체의 보급에 힘입어 청년문화와 히피, 사이키델릭 등의 다양한 대중문화로 시대정신을 공유하며 공존하게 된다.
≪아시아 디바: 진심을 그대에게≫는 이와 같은 미소간의 냉전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대변되는 정치·문화적 자장이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권에서 후기식민 문화에 어떠한 방식으로 현지화 되어갔는지에 주목한다. 이 시기 한국이 ‘군사독재,’ ‘산업화,’ ‘대중문화’와 같은 다양한 표제어로 기억되는 격동의 시대였던 것처럼 식민의 경험을 공유하는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역시 조금의 편차는 있지만 유사한 역사적 궤도 위에 놓여있었다. 이러한 자장 안에서 이번 전시는 폭력과 억압에 의해 ‘퇴폐’로 낙인찍힌 하위문화와 가부장적 군부문화 속에서 소외되었던 여성과 타자들의 목소리에 주목하며, 이를 김추자, 한대수 등으로 대표되는 60-70년대 한국의 대중문화 아이콘과 동남아시아의 대중문화의 프리즘을 통해 제시한다.
전시는 김소영, 노재운, 딘 큐레(Dinh Q. Lê), 박찬경, 아라마이아니(Arahmaiani), 요시코 시마다(Yoshiko Shimada),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Jane Jin Kaisen) 등 동시대 작가와 함께 김구림, 박서보, 성능경 등 60-70년대 기하추상 및 실험미술 작가군, 베트남 전쟁 종군화가로 활약한 천경자의 작품, 그리고 대중음악, 광고, 미디어 등 당시의 사회·문화상을 반영하는 아카이브, 그리고 김추자의 소장품과 활동 당시 녹음된 릴테잎 등을 소개함으로써 시대정신과 함께하는 예술의 기능과 저항의 메시지를 담는다. 베트남 전쟁을 전후한 시기를 다루는 이번 전시를 통해 아시아 디바의 목소리가 독재정권과 견고한 남성중심의 사회체제에 가한 균열의 틈 속에서 소외되고 잊혀진 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기대한다.

노재운 Rho Jae Oon <보편영화 Universal Cinema> 2017,vimalaki.net(웹아트 web art), 6분 50초 6min. 50sec.
노재운(1971-, 한국)은 웹, 그래픽, 비디오, 오브제, 사진, 텍스트, 음악, 설치, 조형물과 회화 등 여러 미디어를 이용해 다양한 영화적 서사와 기법으로 독창적인 미디어 아트와 설치미술 작품을 선보여 왔다. 특히 인터페이스라는 개념을 통해 이미지를 수집하고 채집하는 방식으로 현실 세계의 문제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웹아트를 제시하였다.
이번 전시를 위해 커미션된 <보편 영화>(2017)는 전후 한국과 북한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서브컬처 및 프로파간다 영화 속 여성의 이미지를 파편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작가는 여성을 환기시키는 신체의 이미지를 귀신, 유령과 같은 비인간적 형상에 대입하는 방식으로 영화의 동시대적 의미망과 이데올로기적 장치에 대해 탐구한다.

제인 진 카이젠 Jane Jin Kaisen <몽키하우스 – 기묘한 만남들> 2017, 싱글채널영상, 11:00min
덴마크 출신 설치 미술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제인 진 카이젠(1980-, 한국, 덴마크)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입양에 따른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문제, 남북으로 갈라진 한국의 분단 상황, 그리고 동아시아의 정치·문화적 상황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식민주의, 군국주의, 전쟁, 이산/이주와 관련된 여러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인 현실의 접점을 풀어내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서울시립미술관 커미션으로 제작된 <몽키 하우스> 연작(2017)은 60-70년대 동두천 미군부대 근처에 위치했던 동명의 집창촌을 배경으로, 거리 여성들의 인권과 삶의 흔적들, 남한과 미국 정부의 협상을 통해 이중고를 겪었던 여성들의 삶을 반추하는 작품이다.

김소영 Soyoung Kim <고려 아리랑 Koryo Arirang> 2017, 싱글채널영상, 21분 51초 21 min. 51 sec.
김소영(1961-, 한국)은 여성사의 기록, 한국 영화사, 동아시아의 신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거류> , <황홀경> , <원래, 여성은 태양이었다> 여성사 삼부작 이후, 장편 극영화 <경,2010>, <도시를 떠돌다, 2015>를 연출했다.
<고려 아리랑>(2017)은 김소영 감독의 망명 삼부작 중 두 번째 작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2016)의 미공개 영상 및 아카이브를 20분 분량으로 재편집한 영상으로, 고려극장이 배출한 디바 방 타마라(Bang Tamara)의 삶과 음악을 조명한다.

요시코 시마다 Yoshiko Shimada <물질을 소멸하자! Banner of Disappearance> 2016(1966년 작업 복제), 천에 프린트, 75*1100cm
요시코 시마다(1959-, 일본)은 공적인 언어와 사적인 영역의 삶이 교차되는 상징체계를 끊임없이 추적하는 페미니스트이자 예술 활동가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와 군국주의에 의해 자행된 위안부 문제, 전후 일본의 가부장제와 여성 억압적 성정치, 결혼과 가족 이데올로기와 아시아 여성의 타자화 문제 등, 여성주의와 반전주의를 통해 서구와의 관계 속에서 아시아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들에 관심이 있다.
시마다의 아카이브 컬랙션은 1960-70년도 일본에서 발생한 히피문화와 꼬뮨의 형성을 탐구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1967년도에 형성된 일본의 첫 번째 히피 그룹인 ‘부조쿠’의 아카이브를 다룬 《일본의 히피 운동》, 일본 개념주의 운동과 마츠자와 유타카와 반물질주의 운동을 다룬 《너바나 코뮨》, 마지막으로 신체 없는 무용, 무용 없는 무용을 갈구했던 《너바나의 뮤즈: 카즈코 츠지무라(1941-2004)》에 대한 다양한 사료를 아시아에 전파된 히피모더니즘의 기록들을 보여준다.

아라마이아니 Arahmaiani <상처 여미기 Stitching the Wounds> 2006, 스티로폼으로 채워진 실크천, 가변크기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미술가 중 한 명인 아라마이아니(1961-, 인도네시아)는 1980년대에 동남아 미술계의 퍼포먼스 분야를 이끌며, 퍼포먼스뿐 아니라 회화, 드로잉, 입체,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해 왔다.
<상처 여미기 Stitching the Wound>(2006)는 2001년 미국 911테러이후 서로 다른 문화적·종교적 배경을 가진 문명의 충돌 속에서 미디어에 표출된 무슬림의 부정적 재현과 스테레오타입에 반기를 드는 작품이다. 평화를 사랑하고 관용할 줄 아는 무슬림 문화와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했으며, 태국 무슬림 커뮤니티 여성들과 공동 작업으로 실크 천으로 무슬림의 절대 신인 ‘알라’를 재현해냈다.

딘 큐레 Dinh Q. Lê <어둠 속의 비전 Vision in Darkness> 2015, 싱글채널 비디오, 27분 50초
딘 큐레(1968-, 하티엔, 베트남)는 다양한 방식으로 베트남의 공식적 비공식적 역사가 내포한 복잡한 서사구조를 직조하며 현대적 삶의 맥락 안에서 과거의 기억이 상기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한다.
<어둠속의 비전 Vision in darkness>(2015)은 1960-70년대에 활약한 베트남 작가 쪈 쯍 띤 (1933-2008)의 삶과 작품들에 대한 짧은 기록 영화이다. 정치적 전향과 이데올로기 문제로 사회와 가족, 친구들로 부터 소외되고, 동료 예술가에게도 천대받았던 쪈 쯍 띤의 고된 삶의 여정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개인의 삶과 공산당 치하에서 자유의 의미를 되묻는다.

응녹 나우 Ngoc Nau <그녀는 욕망을 위해서 춤춘다 She Dances for Desire> 2017, 싱글채널비디오, 5분
응녹 나우(1989-, 베트남)는 회화, 설치, 퍼포먼스, 사진 등 예술의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고 있는 신진작가이다. 작가는 각종 매체를 사용하여 베트남 사회가 현재 직면한 동시대적이고 사회적인 쟁점들을 스스로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조정한다.
초청된 <그녀는 욕망을 위해서 춤춘다 (2017)>는 영화제작 프로그램인 신체감지 키넥트(Kinect) 센서를 활용한 뎁스키트(Depthkit)를 통해, 공산당 체제하에서 오랫동안 금지되었던 베트남의 전통 모신(Dao Mau)신앙과 그 제의들을 디지털 퍼포먼스 영상 및 리믹스 음악으로 재현한 작업이다. 전통 문화와 현대 문화의 접점과 무속과 과학이 그려내는 정령과 신체라는 이분법, 디지털 시대에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되돌아 온 종교적 의식이 현대 사회에서 다시 권력과 부를 향한 자본주의적 욕구로 변해가는 사태를 보여준다.
박찬경 Park Chan Kyong <파워통로 Power Passage> 2004, 가변 설치, 복합매체, 경기도미술관 소장품
미술가이자 기획자, 평론가, 영화감독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찬경(1965-)은 분단과 냉전이라는 한국 근현대사가 낸 생채기들의 풍경을 다뤄왔다.
<파워통로>(2004)는 1970년대 냉전기에 미국과 소련이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우주도킹 시스템을 연합 개발하던 시기, 남한과 북한이 대남 대북 침략용 땅굴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내용을 SF영화, 과학자료, 사료 이미지를 통해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영상 설치물이다. <파워통로>는 군사 기술 등의 근대적 산물들이 지배한 냉전이데올로기와 그 이면에 작동했던 우주과학기술이 60-70년대 현대미술 언어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기 위한 전제로서 《SF적 상상력과 도시적 실재》 섹션의 다른 작품들과 전시의 가교역할을 한다.
정은영 siren eun young jung <틀린 색인: 여성국극 아카이브 Wrong Indexing: Yeoseong Gukgeuk Archive> 2017, 가변설치
정은영(1974-, 한국)은 2008년부터 《여성국극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여성국극 구성원과 공동체들을 통해 다양한 서사와 문맥, 전통과 근대성, 여성성과 타자성이라는 질문들을 던져왔다.
<틀린 색인: 여성국극 아카이브>는 1940년대~50년대에 크게 유행하였으나 이후 서구 대중문화와 유입과 국내 대중음악의 발전으로 인해 쇠퇴한 여성국극의 끝자락에 남겨진 배우들의 경험을 사료이미지와 영상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젠더 교란과 성정치의 문맥과 사회적 규범 속에 잊혀져간 배우들의 ‘예술하기’와 ‘살기’의 과정을 아카이브의 형식으로 전달한다.

김추자 아카이브 – 의상, 포스터, 음반, 릴테잎 등 Kim Chooja Archive
김추자(1951-, 한국)는 한국 여성 가수 최초로 소울과 사이키델릭 스타일의 노래를 불렀다. 1969년 「늦기 전에」로 데뷔하여 「님은 먼곳에」(1969), 「거짓말이야」(1971)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으며, 당대 최고의 섹스심벌로 일컬어진다. 당시 미8군부대로 데뷔하여 히키신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신중현이 프로듀스한 가수들 – 펄시스터즈, 이정희, 바니걸스, 김정미 - 가운데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훗날 신중현은 “나는 김추자라는 보석을 통해 한국적 록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었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슬로건이 유행할만큼, 김추자 특유의 관능적인 음색, 의상, 퍼포먼스는 당대 독재정권과 남성 중심 가부장적 사회체제의 반대급부에 존재하는 아이콘이자 반공의 시대를 견디며 살아온 산 증인이다. 이러한 시대를 앞서는 김추자의 노래와 율동, 섹스심볼로서의 문화적 위치는 독재 권력에 의해 저항적인 뉘앙스로 받아들여져 1970년대 대마초 파동, 간첩설 등 크고 작은 스캔들을 통해 활동에 큰 제약을 받기도 했다. 1981년 결혼과 함께 은퇴 선언 이후 33년 만에 2014년 새 앨범 『It’s Not Too Late』로 컴백함과 동시에 콘서트를 열었다. 본 전시에서는 과거 활동 당시 의상과 사진, 영상, 미공개 음원 등이 다양하게 공개된다.
60-70년대 현대미술 – 김구림, 김한, 박서보, 변영원, 이승조, 임응식, 천경자, 최상철, 하종현, 한묵
1960-70년대 우리나라는 한일 국교정상화 및 베트남 파병을 통해 들어온 기금을 바탕으로 산업화와 도시화에 박차를 가한 시기였다. 이제 막 변화하기 시작하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작가들로 하여금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꿈꾸게 하였다. 기하추상의 형태로 드러나는 60년대 후반 미술계의 움직임은 이러한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이와 더불어 미소간의 냉전은 달착륙으로 대변되는 과학기술의 발달을 초래하고 인류의 새로운 도약을 약속하며 SF적 상상력을 자극하였다. 이처럼 변화하는 도시적 삶의 모습과 SF적 상상력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 팝적인 매끈함과 가벼움, 사이키델릭한 대중문화와 결합되며 환각적 색채와 역원근법을 통한 공간의 왜곡, 중력을 벗어난 인간상 등의 형태로 당대 작가들의 작업에 반영된다.
공동기획
이용우
맥길대 예술사 및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도쿄대 정보학환(東京大 情報學環) 특별연구원 및 코넬대 인문사회연구소ㆍ아시아학과 객원교수 역임. 현재 뉴욕대 동아시아학과 (조교수/펠로우)에서 비판적 미디어 문화연구, 냉전기 동아시아 소리 및 영상 문화, 후기식민적 역사 서술방식과 번역의 문제, 집단 무의식과 트라우마에 관한 연구 및 강의. 『Asian Cinema』, 『Pacific Affairs journal』, 『Inter-Asia Cultural Studies』, 『현대문학』, 『이플럭스(e-flux)』 등에 논문 및 에세이 기고. 동아시아 대중음악을 통해 식민의식의 연속성과 감각의 근대성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함께 살펴볼 『아시아디바 : 청각의 근대성』(현실문화연구: 근간), 『Korea, Media, Archive: Rethinking Optics』(University of Hawaii press : forthcoming),『Embedded Voices in-between Empires』(근간) 집필.
주최 : 서울시립미술관
주관 : 서울시립미술관
후원 : 네이버 문화재단, 인도네시아 말랑 음악 박물관
공동기획 : 이용우(뉴욕대학교)
출처 :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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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4일 ~ 2026년 3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