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덕션 디자인은 한 편의 영화를 시각적 의미로 해석하고 영화 전체의 외양, 즉 비주얼(visual)과 룩(look)을 총괄함으로써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세계관을 시각적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제작’, ‘생산’의 프로덕션과 ‘계획’, ‘설계’인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프로덕션 디자인은 산업적 측면과 예술적 측면의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이는 곧 영화의 시각적 측면에 전체적으로 관여하며 예술적 창조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시각적 요소를 구현하기 위한 제작과 관리 전반을 일컫는다.
영화 미술의 개념은 1897년 조르주 멜리에스가 영화 제작사 스타필름을 설립하고 무대, 연출, 장치, 트릭, 특수촬영 등 시각적이고 조형적인 측면에 큰 비중을 둔 영화를 만들면서 도입되었지만, 프로덕션 디자인이라는 명칭은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처음 쓰였다. 미술을 담당한윌리엄 카메론 멘지스는 영화 전체 장면을 스토리보드화하고 화면 구성, 촬영의 움직임 등 시각적인 모든 요소를 설계하고, 조율, 관리하여 영화의 완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1940년 제1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프로덕션 디자이너’라는 타이틀로 명예상을 수상함으로써 ‘프로덕션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되었다.
한국영화는 1990년대 초반까지 연출부에서 세트와 소품 등 미술 작업을 맡아 진행하는 것이 관례였다. 1992년 이현승 감독이 <그대 안의 블루>에서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안상수 교수를 ‘아트 디렉터’로 기용하며 ‘아트 디렉션 시스템’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영화가 흥행과 미학적 성취를 인정받자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프로듀서 제작 시스템과 새로운 경험을 축적한 미술감독이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영화에서도 프로덕션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 그 배경에는 미학적 성취의 중심축을 담당한 프로덕션 디자인의 역할이 상당히 컸다. 기술 발전에 따른 초고화질 디지털 촬영이 일반화되면서 더욱 정교하고 현실적인 재현 요구가 증가하는 동시에 영화의 미학적 성취에 대한 관객의 기대치는 더욱 높아졌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최근 한국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칸 국제영화제 기술상인 벌칸상과 미국영화미술감독조합 미술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씬의 설계: 미술감독이 디자인한 영화 속 세계>는 현재 한국영화 프로덕션 디자인을 대표하는 류성희, 조화성, 한아름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작업 과정을 통해 프로덕션 디자인이 영화 제작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시나리오와 캐릭터 분석부터 장면 콘셉트와 무드의 설정, 시각적 요소를 구현하기 위한 수많은 디자인과 제작, 시공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활자에서 시작한 영화가 어떻게 영상으로 완성되는지 그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그들의 작업물 하나하나가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만으로 영화의 또 다른 미학을 경험하게 한다.
출처: 한국영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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