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도심 속에 자리한 전통 사찰 약수사에서 현대미술가 시치(Sitch)의 개인전 《시종일관 示宗日觀》이 2025년 9월 13일부터 10월 31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본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놓인 근본적 물음을 예술의 언어로 탐구한다.
약수사는 조선 명성황후가 중창한 사찰로, ‘약수사지장시왕도’가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70호로 지정된 역사적 공간이다. 오랜 신앙과 문화유산을 품어온 약수사는 재개발과 신도 감소라는 현실 속에서도 현대 사회와의 소통을 모색해왔으며, 이번 전시는 그 일환으로 마련되었다.
시치(sitch)는 정의와 공정을 상징하는 해태(獬豸)를 주요 도상으로 삼아, 권력의 부패를 경계하고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시선을 오늘의 사회에 비춘다. 또한 약수사의 전통적 상징인 사천왕을 새롭게 해석하여, 미타전을 받쳐주는 돌계단 위에 현대적 조형으로 재현했다. 이를 통해 사천왕은 단순한 수호상을 넘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잇는 관문’으로 자리한다.
이번 전시는 불교를 신앙적 울타리를 넘어 사회·정치적 현실까지 성찰하는 장으로 확장하며, 해태와 사천왕의 상징을 통해 오늘의 혼란과 모순을 비추는 거울이자 공존의 길을 일깨우는 울림을 전한다. 나아가 약수사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대인의 삶과 감각 속에서 새로운 문화적 담론을 만들어가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작가 소개
시치Sitch(b.1989)는 계원예술대학교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으며, 2004년부터 페인터로 활동을 시작해 그래피티와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그린다’는 행위의 의미를 확장해 왔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화두 아래,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적으로 탐색해왔으며, 우리가 ‘안다’고 느끼는 것, ‘보여진다’고 믿는 것을 진정으로 담아내기 위해 무의식과 무의도를 통한 선(禪)의 세계에 몰두했다.
이러한 작가적 태도는 자연스럽게 전통 도상과 색채에 대한 깊은 탐구로 이어졌고, 그 결과 시치만의 독창적인 화풍이 형성되었다. 동시대 감각 속에서 시치의 화풍은 한국적인 미의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을 열고 있으며, 그의 회화적 실험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화이트 큐브, 벽화, 전통 사찰 공간에 이르기까지 — 작가의 손에서 모든 표면은 회화적 장(field)으로 전환되며, ‘그린다’는 행위는 물성과 공간을 초월하는 언어로 확장된다. 작가의 주요 전시로는 개인전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아이디어회관, 서울, 2022)과 그룹전 《Be gentle with us》(FEZH 한남, 서울, 2025)이 있으며, 2021년 서울국제명상페스티벌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동아시아 전통의 신수(神獸) 해태를 중심으로, 오방색(五方色)의 상징성과 작가의 정신적 풍경을 결합한 회화적 시도를 선보인다. 해태는 시비와 선악을 가려내는 상상의 동물로, 정의와 공정을 상징해왔다. 작가는 해태의 형상을 통해 몸과 내면, 욕망과 감각, 그리고 우주적 질서까지 시각화한다. 작품 속 해태는 다섯 가지 색을 통해 자연 원소와 감각, 정서의 층위를 담아낸다.
황색(土)은 눈과 이빨, 발 딛고 선 땅에 배어 있으며, 물질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과 대담한 에너지의 흐름을 상징하며, 흑색·쪽빛·청색(水)은 유동적이고 유기적인 몸통과 발톱에 드러나며, 내면의 확장과 심화된 직관을 표현한다.
붉은색(火)은 체취가 진하게 배어나는 신체에서 발산되는 생명력과 욕망을 시각화하며, 꼬리의 붉은 소나무로 대지와 신체의 연결을 암시하며, 녹색(木)은 머리 위의 산과 꼬리 끝 솔잎에 나타나, 절제된 생명력과 존재의 뿌리를 상징한다. 백색(金)은 몸의 반점과 발, 눈 주변에 드러나며, 부드러움과 단단함, 상반된 힘의 균형을 담고 있다.
〈해태〉는 단순한 도상을 넘어 색과 형태, 방향성과 의미를 통해 인간과 자연, 물질과 에너지를 하나로 호흡하게 하는 상징적 매개체로 자리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해태를 우주의 언어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재해석한다.

2025년 12월 19일 ~ 2026년 5월 31일

2025년 4월 15일 ~ 2026년 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