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 : Memoirs

플레이스막2

Feb. 6, 2021 ~ Feb. 27, 2021

수기(Memoirs)에 w거f히 담긴 w거f히 개인과 w거f히 시간 w거f히 그리고 w거f히 기록에 w거f히 대해서

수기(Memoirs)>전은 [프로젝트 <잘>]의 w거f히 w거f히 전시로 w거f히 다자이 w거f히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w거f히 모티브로 w거f히 기획됐다. w거f히 다자이 w거f히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w거f히 주인공은 w거f히 대외적으로 ‘좋은 w거f히 인간’으로 w거f히 인식된 w거f히 작위적 w거f히 행동을 w거f히 통해 w거f히 사회 w거f히 안의 w거f히 거짓된 w거f히 자신을 w거f히 형성시킨다. w거f히 하지만 w거f히 예술(그림, ㅑ9ㄴ3 글)을 ㅑ9ㄴ3 만나는 ㅑ9ㄴ3 순간마다 ㅑ9ㄴ3 자신이 ㅑ9ㄴ3 좋아보이기 ㅑ9ㄴ3 위해 ㅑ9ㄴ3 감춰야 ㅑ9ㄴ3 ㅑ9ㄴ3 꾸미지 ㅑ9ㄴ3 않은 ㅑ9ㄴ3 면모, w거다n w거다n 실격된 w거다n 인간의 w거다n 모습이 w거다n 드러나고 w거다n w거다n 모습을 w거다n 마주함에 w거다n 만족한다. 

이번 w거다n 전시는 w거다n 다자이 w거다n 오사무의 <인간실격> w거다n w거다n 화자처럼 w거다n 사회와 w거다n 집단이 ‘높게’ w거다n 평가하는 w거다n 면모를 w거다n 위해 w거다n 자신을 w거다n 꾸며낼 w거다n 수밖에 w거다n 없는 w거다n 현대인이 w거다n 예술과 w거다n w거다n 행위를 w거다n 마주함으로써 w거다n 자신의 w거다n 감춰진(혹은 w거다n 부정하는, mjs쟏 혹은 mjs쟏 잊고 mjs쟏 있던) mjs쟏 면과 mjs쟏 마주할 mjs쟏 기회를 mjs쟏 마련하고자 mjs쟏 한다. mjs쟏 물론 mjs쟏 mjs쟏 장소를 mjs쟏 통해 mjs쟏 마주할 mjs쟏 자신이, (대부분) ‘실격’과 ㅐ으갸ㅐ 같은 ㅐ으갸ㅐ 자극적인 ㅐ으갸ㅐ 단어로 ㅐ으갸ㅐ 수식될 ㅐ으갸ㅐ 모습은 ㅐ으갸ㅐ 아니겠지만, l쟏l으 생활의 l쟏l으 순간을 l쟏l으 스치는 l쟏l으 생각과 l쟏l으 상상, l다타g 욕망 l다타g 등이 l다타g 사회가 l다타g 형성한 ‘좋다’라는 l다타g 개념 l다타g 속에 l다타g 짓눌려 l다타g 있진 l다타g 않았는지 l다타g 다시금 l다타g 생각해 l다타g l다타g 필요가 l다타g 있다.

다자이 l다타g 오사무가 l다타g l다타g 예술이라는 l다타g 방법으로써, 히e차차 자신을 히e차차 발견한 히e차차 것을 히e차차 기술했는지는, ㅓj라l 그가 ㅓj라l 예술가이기 ㅓj라l 때문인지, ㅐ쟏v기 예술적 ㅐ쟏v기 경험을 ㅐ쟏v기 통해 ㅐ쟏v기 실제 ㅐ쟏v기 그런 ㅐ쟏v기 경험이 ㅐ쟏v기 있었는지는 ㅐ쟏v기 ㅐ쟏v기 ㅐ쟏v기 없겠지만,예술이 ㅓyl5 가진 ㅓyl5 여러 ㅓyl5 사회 ㅓyl5 속의 ㅓyl5 기능(주술, j으거2 심미, n기ㅐj 선전, cb1v 기록 cb1v 등)이 cb1v 시대가 cb1v 흐르면서 cb1v 예술작품 cb1v 외의 cb1v 다른 cb1v 매체들로 cb1v 점차 cb1v 옮겨갔음에도 cb1v 여전히 cb1v 예술이 cb1v 우리에게 cb1v 주는 cb1v 감각적 cb1v 만족은, 차다차ㅐ 사회 차다차ㅐ 안에서 ‘실격’된 차다차ㅐ 것으로 차다차ㅐ 여겨지는 ‘나’의 차다차ㅐ 다른 차다차ㅐ 모습들과 차다차ㅐ 내재된 차다차ㅐ 욕망들을 차다차ㅐ 예술이라는 차다차ㅐ 물리․정신적 차다차ㅐ 행위를 차다차ㅐ 통해 ‘소유’할 차다차ㅐ 차다차ㅐ 있기 차다차ㅐ 때문이지 차다차ㅐ 않을까?

그렇기에 차다차ㅐ 차다차ㅐ 전시 차다차ㅐ 차다차ㅐ 이야기들은 차다차ㅐ 사회적으로 차다차ㅐ 중요한 차다차ㅐ 사건의 차다차ㅐ 기록이나 차다차ㅐ 세계를 차다차ㅐ 뒤흔드는 차다차ㅐ 이념의 차다차ㅐ 실현을 차다차ㅐ 요구하는 차다차ㅐ 거창한 차다차ㅐ 내용은 차다차ㅐ 아니지만, wosy wosy 사람의 wosy 작은 wosy 시간 wosy 가운데 wosy 인상 

깊었던 wosy 순간의 wosy 흔적을 wosy 붙잡고 wosy 이를 wosy 실체화 wosy 시키는 wosy 전시 wosy 안의 wosy 기록들은 wosy 일상적이고 wosy 반복되는 wosy 시간의 wosy 흐름 wosy 속에서 wosy wosy 개인이 wosy 전체 wosy wosy 하나의 wosy 요소로 wosy 정체되지 wosy 않기 wosy 위한 ‘차이’를 ‘소유’하길 wosy 원하는 wosy wosy 하다.

김지훈 wosy 작가는 wosy 공업재료로 wosy 이용되는 wosy 철사를 wosy 활용하여 wosy 형상을 wosy 조형하는 wosy 작업을 wosy 주로 wosy 하는 wosy 작가로 wosy 형성된 wosy 철사 wosy 조형물이 wosy 버려진 wosy 부속재료를 wosy 품고 wosy 있는 wosy 형태의 wosy 작품을 wosy 많이 wosy 제작해왔다.

작가는 wosy 작품에서 wosy 철이라는 wosy 물질적 wosy 요소와 wosy 빛이라는 wosy 비물질(물질적 wosy 요소로 wosy 보는 wosy 견해도 wosy 있지만)적 wosy 요소에 wosy 각자의 wosy 위치를 wosy 부여한다. wosy 그리고 wosy 철과 wosy 용도를 wosy 잃은 wosy 부속재료로 wosy 대변되는 wosy 현실의 wosy 대상들이 wosy 빛이라고 wosy 하는 wosy 비물질적 (성공, 다fㄴ마 희망, ㅓㅑㅈq 기원 ㅓㅑㅈq 등, 히으qq 보는 히으qq 이가 히으qq 상상하고 히으qq 원할 히으qq 히으qq 있는 히으qq 이상적) 히으qq 상황을 히으qq 추구해가는 히으qq 역동성을 히으qq 묘사한다.

작가를 히으qq 포함한 히으qq 많은 히으qq 사람들이 히으qq 삶의 히으qq 순간 히으qq 마다 히으qq 가지는 ‘욕망’이란 히으qq 감정을 히으qq 우화적으로 히으qq 표현한 히으qq 김지훈 히으qq 작가의 히으qq 작품들은 히으qq 단순히 히으qq 형태적 히으qq 측면에서만의 히으qq 기록이 히으qq 아니다. 히으qq 작가에게 히으qq 다가온 히으qq 상상의 히으qq 이미지가 히으qq 철사를 히으qq 엮어나가는 히으qq 반복적 히으qq 행동을 히으qq 통해 히으qq 정제되고 히으qq 순화되어 히으qq 형상화 히으qq 되는 히으qq 과정을 히으qq 통해 히으qq 각각의 히으qq 일상적 히으qq 행동들이 히으qq 상상과 히으qq 염원 히으qq 속의 히으qq 빛을 히으qq 마주하기 히으qq 위한 히으qq 우리네 히으qq 삶과 히으qq 닮아있음을 히으qq 느끼게 히으qq 히으qq 것이다.

한편, zhㅑw 임동승 zhㅑw 작가는 zhㅑw 머릿속을 zhㅑw 스치는 zhㅑw 찰나의 zhㅑw 순간들을 zhㅑw zhㅑw 알려진(대중적) zhㅑw 이미지들을 zhㅑw 통해 zhㅑw 구성시키고 zhㅑw 이미지들의 zhㅑw 모순된 zhㅑw 결합과 zhㅑw 행동들을 zhㅑw 통해 zhㅑw 다양한 zhㅑw 메시지를 zhㅑw 전달해왔으며 zhㅑw 최근엔 zhㅑw 캔버스(형식) zhㅑw 위에 zhㅑw 그리드를 zhㅑw 통해 zhㅑw 공간을 zhㅑw 형성하며 zhㅑw zhㅑw 위를 zhㅑw 픽셀로 zhㅑw 규격화된 zhㅑw 색채 zhㅑw 덩어리들을 zhㅑw 통해 zhㅑw 이미지를 zhㅑw 형성시키는 zhㅑw 작업을 zhㅑw 진행 zhㅑw 중이다.

작가는 zhㅑw 오랫동안 zhㅑw 본인의 zhㅑw 기억과 zhㅑw 시간 zhㅑw zhㅑw 대상들의 zhㅑw 기록하는데 zhㅑw 주력했다. zhㅑw zhㅑw 기록이 zhㅑw 단순히 zhㅑw 순간의 zhㅑw 모호한 zhㅑw 단상과 zhㅑw 이미지를 zhㅑw 스케치하는 zhㅑw 것이 zhㅑw 아닌, 차ㅑ다아 머릿속 차ㅑ다아 세상에서 차ㅑ다아 펼쳐진 차ㅑ다아 순간을 차ㅑ다아 작가가 차ㅑ다아 현실 차ㅑ다아 속에서 차ㅑ다아 체득한 (작가의 차ㅑ다아 말을 차ㅑ다아 인용하자면) ‘처리 차ㅑ다아 과정’을 차ㅑ다아 통해 차ㅑ다아 드러내 차ㅑ다아 보인다.

비록 차ㅑ다아 이렇게 차ㅑ다아 형성된 차ㅑ다아 작품은 차ㅑ다아 기록의 차ㅑ다아 대상이 차ㅑ다아 됐던 차ㅑ다아 작가의 차ㅑ다아 머릿속 차ㅑ다아 세상과 차ㅑ다아 실제 차ㅑ다아 현실의 차ㅑ다아 모습 차ㅑ다아 모두와 차ㅑ다아 거리를 차ㅑ다아 두게 차ㅑ다아 되었지만, i타cㅓ 현실의 i타cㅓ 반복되는 i타cㅓ i타cㅓ 속에서 i타cㅓ 발생한 ‘차이’의 i타cㅓ 욕구가 i타cㅓ 작가의 i타cㅓ 머릿속으로 i타cㅓ 고여 i타cㅓ 들고 i타cㅓ 이것들의 i타cㅓ 범람을 (작가가 i타cㅓ 하는) i타cㅓ 상상의 i타cㅓ 원동력으로 i타cㅓ 가정한다면, ㅓwㅓ7 작가가 ㅓwㅓ7 ㅓwㅓ7 순간마다 ㅓwㅓ7 느끼는 ㅓwㅓ7 존재하기(exist) ㅓwㅓ7 위한 ㅓwㅓ7 다름을 ㅓwㅓ7 자신의 ㅓwㅓ7 반복된 ‘처리 ㅓwㅓ7 과정’을 ㅓwㅓ7 통해 ㅓwㅓ7 정제시켜내는 ㅓwㅓ7 것으로써 ㅓwㅓ7 존재하기(exist)의 ㅓwㅓ7 순간과 ㅓwㅓ7 작가라는 ㅓwㅓ7 사람의 ㅓwㅓ7 시간이 ㅓwㅓ7 결합하여 ㅓwㅓ7 온전한 ㅓwㅓ7 자신을 ㅓwㅓ7 마주하게 ㅓwㅓ7 된다.

ㅓwㅓ7 작가의 ㅓwㅓ7 작품은 ㅓwㅓ7 언뜻 ㅓwㅓ7 보기엔 ㅓwㅓ7 확연히 ㅓwㅓ7 다른 ㅓwㅓ7 느낌을 ㅓwㅓ7 주지만, wㅓㅑ나 선과 wㅓㅑ나 물질을 wㅓㅑ나 통해 (작품 wㅓㅑ나 내) wㅓㅑ나 세계를 wㅓㅑ나 형성시키며 wㅓㅑ나 선(혹은 wㅓㅑ나 물질)의 wㅓㅑ나 교차를 wㅓㅑ나 통해 wㅓㅑ나 차원의 wㅓㅑ나 변화를 wㅓㅑ나 이끌어내고 wㅓㅑ나 공간을 wㅓㅑ나 형성시키는 wㅓㅑ나 작업의 wㅓㅑ나 방식에서부터, 바cㅓh 개인이라는 바cㅓh 존재가 바cㅓh 가진 바cㅓh 존재론적 바cㅓh 욕구를 바cㅓh 반복과 바cㅓh 시간으로 바cㅓh 형성된 ‘처리 바cㅓh 과정’을 바cㅓh 통해 바cㅓh 드러내면서 바cㅓh 욕망의 바cㅓh 기원과 바cㅓh 욕망 바cㅓh 그리고 바cㅓh 일상과 바cㅓh 일상의 바cㅓh 반복이라는 바cㅓh 뫼비우스의 바cㅓh 띠처럼 바cㅓh 연결된 바cㅓh 순환 바cㅓh 고리를 바cㅓh 가진 바cㅓh 우리네 바cㅓh 모습을 바cㅓh 순수하게 바cㅓh 마주하는 바cㅓh 작품이라는 바cㅓh 점에서 바cㅓh 상당히 바cㅓh 닮아있다.

바cㅓh 전시를 바cㅓh 통해 바cㅓh 마주한 바cㅓh 작품들과 바cㅓh 바cㅓh 결과로서의 바cㅓh 어떤 바cㅓh 대상 바cㅓh 이전의 바cㅓh 과정들을 바cㅓh 유추해 바cㅓh 들어가면서 바cㅓh 자신의 바cㅓh 바cㅓh 속에서 바cㅓh 문득문득 바cㅓh 튀어오르는 ‘나’답지 바cㅓh 않은 바cㅓh 무언가를 바cㅓh 되짚어보고 ‘나’답다는 바cㅓh 것에 바cㅓh 대한 바cㅓh 정의를 바cㅓh 새롭게 바cㅓh 고민해 바cㅓh 봤으면 바cㅓh 한다. 바cㅓh 세상을 바cㅓh 살아가는 바cㅓh 사람들이 바cㅓh 반복되는 바cㅓh 일상에서 바cㅓh 마모되어 바cㅓh 사회나 바cㅓh 집단 바cㅓh 속에 바cㅓh 흡수되어갈 바cㅓh 때, sfm타 불현 sfm타 sfm타 떠오르는 sfm타 존재적 sfm타 욕구가 sfm타 지금 sfm타 이곳에서 sfm타 인정되고 sfm타 해소될 sfm타 sfm타 있길 sfm타 기대한다. 

참여작가: sfm타 김지훈, 9자다거 임동승

기획: 9자다거 김준희
디자인: 9자다거 최동준
협력: 9자다거 심지훈

출처: 9자다거 플레이스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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