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민 개인전 : 하얀 자국 Song Sumin : White Trace

아트사이드갤러리

2019년 11월 29일 ~ 2019년 12월 29일

하얀 자국 : 송수민의 작품세계
이정진 (아트사이드 갤러리 큐레이터)

작가 송수민은 직접 경험한 적 없는 사건, 주변의 풍경과 사물의 이미지를 수집하여 이를 재해석하고, 감추고 드러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다의적인 의미의 회화로 연결시킨다. 작업은 주로 인터넷이나 신문 등의 매체에서 주제에 맞는 기사, 사진 이미지를 바탕으로 키워드를 추출하고 여기에서 파생된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작가가 관심을 두는 것은 텍스트와 함께 접했던 이미지를 시간이 지난 뒤 텍스트 없이 이미지만을 마주했을 때에 기억이 변질, 왜곡되면서 핵심은 증발되고 주변의 풍경과 부산물만 남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미지를 봤을 때 정확한 메시지로 귀결되지 않는 부분이나 이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에 주목하고 생경함을 일으키는 이미지를 선택해 이를 해체, 변형시키고 재구성한다.

송수민은 이번 전시에서 인터넷뿐만 아니라 SNS 등을 활용하여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성격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수집하고, 수집한 풍경을 재조합한다. 작가는 현실에 관심을 두지만 타인의 눈으로 본 풍경을 자신만의 시점으로 편집하여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미지를 화면 안에 만들어낸다. 작업을 하기 위해 수집하는 현실의 풍경과 현실에서 만들어내는 조합된 풍경은 작업을 위한 리서치의 과정이자 집적이며 하나의 이야기를 구축하고 있다.

작가는 주로 풍경을 클로즈업해 담거나 멀리서 바라보는 시점을 오가며 그린다. 또한 캔버스 표면 위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고 사포로 갈아내는 방법을 활용하여 작업하는 것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이는 2차원의 화면에 이미지를 좀 더 밀착시키고, 색감과 채도의 미묘한 차이를 준다. 사실적이지만 빛바랜 사진, 혹은 현실과는 다른 낯선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 역시 이러한 작업 방식에 의한 것이다.

과연 하얀 자국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전시 《하얀 자국》은 이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작품 <인공 파편>(2019)과 함께. 다시 말해 <인공 파편>으로부터 파생된 작업들이 이번 전시를 구성하는 것이다. <인공 파편>은 물이 떨어지는 장면인지, (불꽃으로 인한) 연기인지 모호한 이미지를 담아냈다. 이미지를 부분적으로 자르고 확대, 해체하면서 전혀 다른 두 소재에서 조형적 유사함을 찾았다. 진한 초록색의 화면에 물과 연기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하얀 자국’을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그려냈다. 이처럼 송수민은 풍경에 내재하는 조형성을 포착하여 그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해가는 방식을 취한다.

분할된 화면이 돋보이는 <하얀 조각으로부터 시작된 풍경>(2019)은 일상 속에서 마주칠 법한 여러 풍경들을 연결시켜 표현하였다. 풍경의 단편들을 병치시켜 묘사하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연기가 발생된 원인이 되는 화재 사건의 이미지, 군사훈련 등의 다양한 장면을 한데 엮어 흰색의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형태를 등장시킨다. 또한 기하학적 도형들을 통해 조형적 표현에 집중하면서 특정 이미지를 비워두어 장면을 낯설게 느끼도록 유도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과 관계를 맺으며 또 다른 이야기와 풍경들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작품이 또 다른 작품의 재료이자 원동력이 되는 셈이다. 물이 솟구치고 떨어지는 이미지를 표현한 <Piece of white>(2019) 시리즈는 2018년부터 지속해 온 <Empty flower> 시리즈에 동그란 물방울의 형태를 연결한 것으로, 물방울이라는 소재가 지닌 원형의 기하학적 특성에 집중하였다. <새가 머문 자리>(2019) 역시 위와 유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Empty flower>의 화면 속에 물의 파동을 표현한 화면이 자리 잡는다. 물의 파동을 일으킨 새의 존재를 원형으로 등장시켰다. 작가는 <Empty flower> 시리즈로부터 또 다른 형태를 가져왔다. 흰색으로 표현한 꽃의 이미지에서 흰색의 색채를 지닌 물, 불(연기)등의 세 가지 요소를 연결하여 <Blooming pattern>(2019) 시리즈를 선보인다. 기존에 사용했던 초록색보다 낮은 채도로 표현함으로써 흰색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켰다.

송수민은 자신의 상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듯 연상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풍경을 표현하였다. <Light orange> 시리즈는 화재 이미지를 모티브로 한 <붉은 자국>(2018)의 붉은 색채와 뿌연 연기에서 라이트 오렌지 컬러를 떠올렸고, 이것이 <Empty flower> 시리즈와 만나 연기가 가득한 풍경, 안개 낀 산의 이미지 등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작가는 불에서 연기의 색감을 떠올렸고, 불이 난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가 <연등>(2019)이라는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으며, 연등의 불빛에서 <연등에서 비롯된 자국>(2019)과 같은 추상적인 화면을 탄생시켰다. 빛의 모양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린 <빛의 모양>(2019), <빛을 위해 만들어진 풍경>(2019)과 같이 작품과 작품은 유기적인 관계성을 띄고 있다.

작가 송수민은 현대 사회에서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리서치 한다. 그가 현실에서 수집한 이미지는 끊임없이 대체되며 순환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무수한 이미지 속에서 자신이 정한 키워드에 맞는 주제나 소재, 어쩌면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르는 무의식적 데이터들을 화면으로 끄집어내 일종의 맥락을 만들어간다. 수집한 이미지들은 조합과 재조합을 반복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창출하고, 자신의 작품으로부터 파생된 또 다른 풍경을 표현한다. 이러한 그의 화면은 여러 서사와 함께 서로 재구성되며 연결의 확장과 연속성을 향하고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흰색의 자국(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을 회화로 풀어냈다. 초록색의 화면을 기본으로 하되, 추적의 단초가 되는 조형적 요소를 흰색에 두었으며 꽃의 형태나 물이나 연기 등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하얀 자국에 몰두하였다. 주제와 소재는 다르지만 조형적으로는 매치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한 화면에서, 또는 다른 화면에 연결시키고 배치하였다. 이처럼 송수민은 회화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조형적 감각과 의미를 연결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조합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내용을 변화시키는 그의 작업은 서로 다른 맥락으로 조합된 풍경을 통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생성과 새로운 읽기를 유도한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출처: 아트사이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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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송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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