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사진 작업이란 자발적 유배다. 그 유배지를 산책하듯 나는 걷는다. 걷다 만난 사람들의 마음 속 작은 경계심을 허무는 것으로 사진 작업은 시작된다. 선하게 걸으며, 정직하게 웃고, 부드럽게 맴돌며 관찰하고 또 기다린다.

나는 즐거움을 제외한 대부분의 감정에 흥미를 느낀다. 내 사진은 생각, 기억, 지나간 시간 그리고 나누었던 대화들을 환하게 빛으로 감작한 결과물이다. 그러다 어느덧 선들이 정렬되고, 이야기가 완성되는 순간, 나는 맹수같이 그 결과물을 채집한다. 사람들은 내 사진을 통해 누군가의 삶에서 몰래 빌려온 것만 같은 순간들을 만나게 되고, 나는 그 순간들 속에서 영원히 기록될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

나는 연출되고 만들어진 것을 멀리한다. 오직 실존하는 것들에만 흥미를 느낀다. 내 사진은 실험적이거나 진보적이지는 않다. 구닥다리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게끔 하는 힘이 내 사진에는 있다. 사람의 작은 특성들을 하나하나 축적해가는 이 평생의 작업이 내게 주어진 길이라고 받아들인다. 앞으로 생각은 더욱 날카로워지겠지만, 재질과 형식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출처 : 갤러리팔레드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