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와 무게의 [ ] 균형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021년 1월 14일 ~ 2021년 3월 27일

속도와 무게의 [     ] 균형?

여기 퀴즈가 하나 있다. 속도와 무게의 [     ] 균형의 빈칸을 채워야 하는 문제이다. 알다시피 속도는 어떤 물체의 위치 변위를 변화가 일어난 시간 간격으로 나눈 값이고, 무게는 물체에 가하는 중력의 정도이다. 스피드와 질량은 어떤 관계에 놓여 있을까? 비평가는 언어로 세상을 풀이하는 사람이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어원과 정의,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과 사회적인 영향력까지 동원하여 총체적인 실재 개념을 가늠하려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것은 개념 접근으로만 풀 수 있는 퀴즈가 아니다.

속도와 무게의 균형 관계를 묻는 이 질문은 금천구 독산동에 위치한 전시 문화 공간 ‘예술의 시간’의 지역기반 프로젝트의 제목이다. 이 프로젝트는 매년 프로젝트 참여 작가가 금천구 일대를 리서치 하여 결과 보고전을 발표하는 프로젝트이다. 예술의 시간의 모기업 (주)영일프레시젼은 독산동에서 40년 간 반도체 부품 제조업체로 굴지의 시간을 견딘 회사이다. 상대적으로 문화 불모지였던 이곳 독산동에 예술 공간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운 마음이 컸다.

이 프로젝트는 두 개의 축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첫 번째는 금천구 일대 도시 특색과 예술의 시간이다. 두 번째는 ‘지역기반 예술 프로젝트’ 혹은 ‘커뮤니티 아트(community art)’라고 하는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예술 장르이다. 여기서는 두 축을 중심으로 속도와 무게의 균형 관계를 묻는 지극히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를 분석한 뒤, 다시 예술의 시간에서 전시되는 시각예술의 조각들로 문제를 봉합하려고 한다. 비평가의 협소한 언어의 세계를 타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예술가들이 힘이 되어줄 것이다.

금천구는 한국의 제조 산업의 역사와 그로 인한 사회계급을 언급할 때 빠져서는 안 될 장소이다. 1960년대 구로구와 금천구 일대는 ‘구로공단’이라는 이름의 한국 주요 수출산업공단으로 조성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첨단산업 위주로 산업 구조가 재편되며 구로는 ‘구로 디지털단지’, 금천은 ‘가산 디지털단지’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구로공단’은 한국사회에서 특정한 정서와 향수까지도 불러일으키는 무형적 실체이며, 지금도 여전히 이 지역은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일터이자 산업의 현장이다. 노동자 계급과 도시의 지역성이 예술가들과 조우할 때 종종 새로운 예술이 탄생할 때가 있는데, 한국의 노동문학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장소 역시 구로공단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조세희가 1978년 발표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 한국 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이 소설 속에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작가는 구로구 가리봉동을 비롯해 인천 동구, 종로구 무악동, 동대문구 면목동 등을 취재하여 창작에 참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밖에도 1987년 이문열이 발표한『구로아리랑』, 신경숙의『외딴 방』(1995), 박범신의『나마스떼』(2006) 역시 노동 문학이라는 특수 한국문학 장르에 종속되며 구로공단의 현장과 한국사회 하층 계급을 묘사하며 결국은 합치되지 못한 노동자 연대와 한국사회의 모순을 폭로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노동문학이 노동자와 하층 계급의 불행과 에너지를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형식을 띠는 것으로 구로공단의 지역성을 다루고 있는 데 반해, 시각예술이 지역성을 다루는 방식은 조금 다른 차원에서 진행되어 왔다. 1970년대 서구에서 ‘공동체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새로운 장르의 미술사조는 현대미술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벗어나 사회로, 삶으로, 행동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신념을 기반으로 한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서도 관 주도 형식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예술가들이 리서치 를 진행하고 예술 작품으로 재해석한다든가, 더 나아가서는 커뮤니티 주민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의 시간에서 진행하는 이번 지역기반 프로젝트는 예술가들의 해석에 가장 큰 방점이 놓일 수밖에 없다. <속도와 무게의 [     ] 균형>에 참여하는 작가는 총 네 명이다. 설치 작가 김상현, 김시하, 홍세진 그리고 스페셜 아티스트로 초청된 미디어 아티스 트 유비호이다. 작가들에게 금천 일대는 각각의 다른 시각적인 이미지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김상현 작가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과거 제조단지의 노동집약적인 현장과 현재의 난개발이 뒤섞여 미래의 희망까지 품고 있는 복합 단지로 독산동을 바라본다. 김시하 작가에게 구로공단은 괴담과 시각작가 특유의 파편적인 이미지로 각인되고, 홍세진 작가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금천구 소재 아트 레지던시 금천예술공장에서 입주 경험을 통해 좀 더 가까이 이 동네를 관찰한 바 있다.

김상현 작가의 해석은 직관적이면서 상징적이다. 작가는 기계 생산적인 결과물을 통해 영일프레시젼의 역사와 공단의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했다. 실제 프레스기를 통해 제작된 방열판은 기계 공정 생산물이라는 상징을 나타내고, 스테인리스 스틸 재료를 사용해 만든 레드/ 블루/그린/오렌지 작품은 판금 제작이 잦은 금천 공단의 문화를 나타낸다. 또한 공장에 맡겨 음각으로 제작된 드로잉,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고자 의도적으로 삭제된 사진과 프로젝션 등도 모두 작가의 기획 하에 제작되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랜 기간 회사의 역사를 몸으로 버텨온 유압 프레스기가 전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공장의 기계와 노동의 역사를 대변할 수 있는 작품을 고민했던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었다.

김시하 작가의 작업은 보다 공간 활용적이며 은유적이다. 작가는 영일프레시젼의 대표적 제품인 방열그리스에 착안하여, 방열판의 온도 조절 기능을 작업의 테마로 가져와 시각적 공간 설치물을 구현하였다. 고온을 상징하는 붉은 빛의 전등과 저온을 상징하는 창문의 푸른색 시트지, 바닥에 깔린 스테인리스 스틸 폐자재 등 두 개의 빛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적정온도’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자 하였다. 작가 특유의 미니멀한 공간 연출과 서늘한 분위기를 배치하였다.

홍세진 작가의 작업은 참여 작가의 작업 중에서 가장 기술의 미래를 답보하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를 응축하고 있다. 출품작 <바늘의 끝>의 경우 다양한 사이즈와 질감의 ‘구’의 형태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작가가 오랜 기간 착용해 온 보청기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작가는 보청 기계의 진화과정과 더불어 기계의 센서와 감각에 대한 호기심과 나아가 인공지능 기술이 실현화 될 미래에 대한 예술가의 해석을 설치 시각 예술품으로 늘어놓는다. 이 작업은 아주 큰 구의 형태부터 테이블에 오밀조밀 배치된 작은 구들의 다양한 형태와 재질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는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아티스트 유비호의 감동적인 두 영상 작품 <무현금_수행>, <무현금_날 숨>은 무형문화재의 노동을 흑백 영상으로 담아 전시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무현금은 줄이 없는 거문고를 뜻하는데 유비호 작가의 카메라는 무현금을 만드는 장인들의 반복적이고 고된 노동을 클로즈업 된 카메라로 기록하고 있다. 긴 인내를 요구하는 반복 창작의 행위에서 속도는 측정 불가하지만 무거운 무게가 전해지는 작업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참여 작가들에게 퀴즈의 답을 돌린 바 있다. 작가들의 대답을 공개하자면 이렇다.

“속도와 무게의 [     ] 균형”?

김상현 : 존재적
김시하 : 아슬아슬한
홍세진 : 은밀한

관람객 각자의 균형은 전시장에서 찾아보시기를 바란다.

조숙현 (전시기획자 / 미술비평가)

참여 작가: 김상현_Sanghyun Kim, 김시하_Siha Kim, 홍세진_Sejin Hong, 유비호_Biho Ryu
후원: 영일프레시젼
주최: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총괄기획: 주시영
전시기획: 이상미
도움: 정지은

출처: 아트센터 예술의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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