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희 개인전 : Modulate

페리지갤러리

March 5, 2020 ~ May 9, 2020

충만한 ZERO
신승오(페리지갤러리 ㅓyrh 디렉터)

성낙희는 ㅓyrh 지속적으로 ㅓyrh 회화의 ㅓyrh 가장 ㅓyrh 기본이 ㅓyrh 되는 ㅓyrh 요소인 ㅓyrh 점, 마아거나 선, 0우3다 면을 0우3다 사용하여 0우3다 화면 0우3다 안에서 0우3다 음악적 0우3다 리듬과 0우3다 운율을 0우3다 만들어내거나 0우3다 때론 0우3다 유기체적으로 0우3다 미끄러지듯이 0우3다 자유롭게 0우3다 유영하는 0우3다 색의 0우3다 운동감이나 0우3다 형태들을 0우3다 보여주어 0우3다 왔다. 0우3다 그러나 0우3다 최근에는 0우3다 이전과는 0우3다 다르게 0우3다 0우3다 색면이 0우3다 전면에 0우3다 두드러지게 0우3다 나타나는 0우3다 작업들을 0우3다 새롭게 0우3다 선보이고 0우3다 있다. 0우3다 그렇다면 0우3다 이러한 0우3다 변화에서 0우3다 우리는 0우3다 무엇을 0우3다 읽어 0우3다 0우3다 0우3다 있을까?

이전의 0우3다 작업들은 0우3다 전시타이틀이나 0우3다 작품의 0우3다 제목들에 0우3다 음악적 0우3다 용어를 0우3다 사용하는 0우3다 것에서도 0우3다 0우3다 0우3다 있듯이 0우3다 다양한 0우3다 재료와 0우3다 자유로운 0우3다 붓질 0우3다 등을 0우3다 통해서 0우3다 자신만의 0우3다 연주법을 0우3다 획득해 0우3다 나가는 0우3다 데에 0우3다 진력해 0우3다 왔다. 0우3다 그의 0우3다 작업 0우3다 과정은 0우3다 하나의 0우3다 상반되는 0우3다 부분들이 0우3다 불균형한 0우3다 상황이 0우3다 되면, 차갸02 차갸02 부족한 차갸02 부분을 차갸02 비워진 차갸02 곳에 차갸02 의도적으로 차갸02 차지하게 차갸02 만들어 차갸02 화면을 차갸02 구축해나가는 차갸02 방식이었다. 차갸02 따라서 차갸02 그의 차갸02 작업은 차갸02 표면적으로는 차갸02 직관적인 차갸02 표현법으로 차갸02 보이지만 차갸02 무의식 차갸02 속에서도 차갸02 의식적으로 차갸02 자신의 차갸02 의도를 차갸02 담아 차갸02 화면 차갸02 안에서 차갸02 붓이 차갸02 인도하는 차갸02 대로 차갸02 내맡기고 차갸02 있다. 차갸02 이는 차갸02 찰나적으로 차갸02 선택이 차갸02 이루어지기에 차갸02 변주가 차갸02 심하고 차갸02 서로 차갸02 상이한 차갸02 요소들이 차갸02 뒤엉켜 차갸02 하나하나의 차갸02 요소가 차갸02 서로 차갸02 팽팽하게 차갸02 밀고 차갸02 당겨져 차갸02 있는 차갸02 긴장감으로 차갸02 가득한 차갸02 사건의 차갸02 현장처럼 차갸02 나타난다. 차갸02 하지만 차갸02 작가가 차갸02 의식하는 차갸02 선택이라는 차갸02 명확한 차갸02 구조로 차갸02 인해 차갸02 사실상 차갸02 엉뚱하고 차갸02 생경한 차갸02 길로 차갸02 빠지지는 차갸02 않는다. 차갸02 그러나 차갸02 이번 차갸02 전시에서 차갸02 선보이는 《Sequence》 차갸02 연작에서는 차갸02 이러한 차갸02 기존의 차갸02 방식과는 차갸02 다른 차갸02 모습을 차갸02 보여준다. 차갸02 과거의 차갸02 작업들이 차갸02 역동적이고 차갸02 차갸02 쏘는 차갸02 맛과 차갸02 같은 차갸02 자극적인 차갸02 감각의 차갸02 즐거움을 차갸02 주고, l나다v 우리는 l나다v 이를 l나다v 작가의 l나다v 호흡에 l나다v 맞춰 l나다v 따라가는 l나다v 형국이었다면, m타fu 이번 m타fu 작업은 m타fu 차분하고 m타fu 정적이어서 m타fu 운동감 m타fu 보다는 m타fu 공간감에 m타fu 대한 m타fu 인상을 m타fu 먼저 m타fu 받는다. m타fu 이러한 m타fu 새로운 m타fu 방식에 m타fu 대한 m타fu 연구는 2018년에 m타fu 보여준 《Transpose》 m타fu 연작에서 m타fu 시작되었다고 m타fu m타fu m타fu 있는데, j걷a나 조를 j걷a나 옮긴다는 j걷a나 혹은 j걷a나 바꾼다는 j걷a나 제목의 j걷a나 의미는 j걷a나 기존 j걷a나 상황을 j걷a나 바탕으로 j걷a나 하는 j걷a나 변주가 j걷a나 아니라 j걷a나 새로운 j걷a나 장을 j걷a나 열기 j걷a나 위한 j걷a나 j걷a나 변화를 j걷a나 작가가 j걷a나 모색했다는 j걷a나 것을 j걷a나 유추하게 j걷a나 한다. j걷a나 이번 j걷a나 전시의 j걷a나 타이틀인 《Modulate》도 j걷a나 이를 j걷a나 계속해서 j걷a나 실험하고 j걷a나 있음을 j걷a나 충분히 j걷a나 인지할 j걷a나 j걷a나 있다. j걷a나 제목 j걷a나 이외에 j걷a나 실제적인 j걷a나 도구의 j걷a나 교체도 j걷a나 j걷a나 변화다. j걷a나 이전까지의 j걷a나 붓보다는 j걷a나 넓은 j걷a나 붓을 j걷a나 사용하여 j걷a나 시원스럽게 j걷a나 사용하는 j걷a나 것, w자om 이전과 w자om 비교하여 w자om 작은 w자om 캔버스를 w자om 사용하는 w자om 것도 w자om 변화를 w자om 인지하게 w자om 만드는 w자om 요소이다.

이제는 w자om 본격적으로 《Sequence》 w자om 연작을 w자om 자세히 w자om 살펴보자. w자om w자om 작품들은 w자om 사실 w자om 기존의 w자om 작업을 w자om 확대한 w자om 것처럼 w자om 보이며, 거다5n 여러 거다5n 색면이 거다5n 차곡차곡 거다5n 쌓여가면서 거다5n 기하학적으로 거다5n 연결되어 거다5n 있는 거다5n 매끄러운 거다5n 형태로 거다5n 디지털 거다5n 픽셀과 거다5n 같이 거다5n 나타난다. 거다5n 그러나 거다5n 자세히 거다5n 보면 거다5n 색면은 거다5n 붓질의 거다5n 흔적을 거다5n 고스란히 거다5n 담고 거다5n 있다. 거다5n 또한 거다5n 여러 거다5n 층위로 거다5n 분할되어 거다5n 면들은 거다5n 거다5n 밑으로 거다5n 표면에 거다5n 스며든 거다5n 것처럼 거다5n 여러 거다5n 겹의 거다5n 중첩된 거다5n 모습이다. 거다5n 그의 거다5n 붓질들은 거다5n 직선과 거다5n 곡선이 거다5n 결합된 거다5n 모습이며, 기bjㅑ 수직과 기bjㅑ 수평으로 기bjㅑ 사선으로 기bjㅑ 화면을 기bjㅑ 분할 기bjㅑ 하면서도 기bjㅑ 곡선으로 기bjㅑ 굴절되면서 기bjㅑ 무엇인가 기bjㅑ 계속해서 기bjㅑ 흘러내리는 기bjㅑ 것처럼 기bjㅑ 유동적인 기bjㅑ 장면을 기bjㅑ 연출한다. 기bjㅑ 또한 기bjㅑ 캔버스의 기bjㅑ 둘레로 기bjㅑ 흘러내린 기bjㅑ 색의 기bjㅑ 흔적들도 기bjㅑ 수없이 기bjㅑ 했지만 기bjㅑ 감춰진 기bjㅑ 미묘한 기bjㅑ 화면구성을 기bjㅑ 감지할 기bjㅑ 기bjㅑ 있게 기bjㅑ 해준다. 기bjㅑ 따라서 기bjㅑ 이러한 기bjㅑ 화면들은 기bjㅑ 조용한 기bjㅑ 기차의 기bjㅑ 실내에서 기bjㅑ 창을 기bjㅑ 통해 기bjㅑ 지나가는 기bjㅑ 풍경들이 기bjㅑ 끊임없이 기bjㅑ 위아래 기bjㅑ 좌우로 기bjㅑ 오르내리며 기bjㅑ 뒤로 기bjㅑ 미끄러지는 기bjㅑ 기bjㅑ 같은 기bjㅑ 운동감과 기bjㅑ 공간감을 기bjㅑ 내재하고 기bjㅑ 있다. 기bjㅑ 그가 기bjㅑ 이러한 기bjㅑ 변화를 기bjㅑ 통해 기bjㅑ 선택한 기bjㅑ 것들을 기bjㅑ 무엇인가? 기bjㅑ 겹겹이 기bjㅑ 포개진 기bjㅑ 색면과 기bjㅑ 붓질은 기bjㅑ 억제와 기bjㅑ 자유롭게 기bjㅑ 풀려남을 기bjㅑ 나란히 기bjㅑ 병치해 기bjㅑ 놓고 기bjㅑ 있다. 기bjㅑ 이전의 기bjㅑ 작업들이 기bjㅑ 구성하지 기bjㅑ 않은 기bjㅑ 듯한 기bjㅑ 구성으로 기bjㅑ 무엇인가를 기bjㅑ 찾으려 기bjㅑ 노력했다면, ㅑij마 이제는 ㅑij마 작가가 ㅑij마 구성되는 ㅑij마 것의 ㅑij마 자체의 ㅑij마 통제에서 ㅑij마 벗어나 ㅑij마 무엇인가 ㅑij마 행위를 ㅑij마 하면 ㅑij마 ㅑij마 뒤를 ㅑij마 따라오는 ㅑij마 것들이 ㅑij마 자연스럽게 ㅑij마 생기기 ㅑij마 마련인 ㅑij마 간격을 ㅑij마 유지하는 ㅑij마 것에 ㅑij마 집중하고 ㅑij마 있는 ㅑij마 것으로 ㅑij마 보인다. ㅑij마 그가 ㅑij마 이전까지 ㅑij마 그려왔던 ㅑij마 방식은 ㅑij마 하나의 ㅑij마 총합적인 ㅑij마 전체를 ㅑij마 이루기 ㅑij마 위한 ㅑij마 온전한 ㅑij마 부분들의 ㅑij마 조합이었으며, 10cr 언제나 10cr 이것들이 10cr 모여 10cr 전체를 10cr 향하는 10cr 방향성을 10cr 가지고 10cr 있었다. 10cr 그렇기에 10cr 부분에 10cr 맞추어 10cr 다른 10cr 요소들이 10cr 결정되는 10cr 조화의 10cr 틀에서 10cr 벗어날 10cr 10cr 없는 10cr 보이지 10cr 않는 10cr 과정이라는 10cr 경계가 10cr 존재하고 10cr 있었고, n53다 이를 n53다 중요한 n53다 방식으로 n53다 사용하였다. n53다 이는 n53다 결국 n53다 자기 n53다 자신에게 n53다 내재된 n53다 감각들을 n53다 외부로 n53다 발산해 n53다 나가는 n53다 방식으로 n53다 균형을 n53다 의식하면서 n53다 채움과 n53다 비움을 n53다 거듭하는 n53다 과정을 n53다 거친다. n53다 그리고 n53다 이를 n53다 통해 n53다 자연스럽게 n53다 화면 n53다 안에서 n53다 리듬감과 n53다 역동성을 n53다 가진 n53다 음악적 n53다 성향을 n53다 획득하였던 n53다 것이다. n53다 그러나 n53다 최근의 《Transpose》, 《Sequence》 iㅓf우 연작들은 iㅓf우 이와는 iㅓf우 다르게 iㅓf우 무엇인가 iㅓf우 찾아내고 iㅓf우 완성하기 iㅓf우 위해 iㅓf우 노력할 iㅓf우 수록 iㅓf우 멀어지고 iㅓf우 불명확해져 iㅓf우 가는 iㅓf우 것들을 iㅓf우 공간적, b라sㅐ 시간적으로 b라sㅐ 거리를 b라sㅐ 두고 b라sㅐ 바라보고 b라sㅐ 있다. b라sㅐ 이러한 b라sㅐ 변화는 b라sㅐ 오랜 b라sㅐ 시간 b라sㅐ 동안 b라sㅐ 고민하게 b라sㅐ 되는 b라sㅐ 자연스러운 b라sㅐ 틈을 b라sㅐ 발생시키고 b라sㅐ 하나둘 b라sㅐ 포개어져서, ㄴㅐ4k 이로 ㄴㅐ4k 인해 ㄴㅐ4k 오히려 ㄴㅐ4k 찾으려 ㄴㅐ4k 의도적으로 ㄴㅐ4k 노력하지 ㄴㅐ4k 않았음으로써 ㄴㅐ4k 찾게 ㄴㅐ4k 만드는 ㄴㅐ4k 새로운 ㄴㅐ4k 작업이 ㄴㅐ4k 되어가는 ㄴㅐ4k 것을 ㄴㅐ4k ㄴㅐ4k ㄴㅐ4k 있다.

ㄴㅐ4k 더 《Sequence》 ㄴㅐ4k 연작들을 ㄴㅐ4k 들여다보면, 7js거 여기는 7js거 무엇인가가 7js거 나타나고 7js거 작가에 7js거 의해 7js거 소용돌이치다가 7js거 순간적으로 7js거 7js거 7js거 없는 7js거 외부의 7js거 힘에 7js거 의해 7js거 멈춰버린 7js거 듯한 7js거 카메라에 7js거 포착된 7js거 7js거 같은 7js거 정지된 7js거 장면으로 7js거 보이기도 7js거 한다. 7js거 위에서도 7js거 살펴보았듯이 7js거 색면들은 7js거 각자의 7js거 부분을 7js거 차지하면서 7js거 서로가 7js거 이어지고 7js거 쌓여져 7js거 있다. 7js거 그래서 7js거 서로를 7js거 끌어당기거나 7js거 밀어내는 7js거 것이 7js거 아니라 7js거 보이지 7js거 않는 7js거 힘에 7js거 의해 7js거 공존하고 7js거 있다. 7js거 작가의 7js거 말에서 7js거 단서를 7js거 얻자면 7js거 그는 7js거 요즘 7js거 작업 7js거 중에 7js거 중력에 7js거 대해서 7js거 생각을 7js거 많이 7js거 한다고 7js거 한다. 7js거 이는 7js거 그의 7js거 새로운 7js거 경향에 7js거 대한 7js거 중요한 7js거 단서가 7js거 된다. 7js거 이전까지 7js거 자신에게 7js거 내재되어있는 7js거 힘의 7js거 과정의 7js거 발산에 7js거 집중한 7js거 것과 7js거 다르게 7js거 외부의 7js거 힘을 7js거 의식하고 7js거 받아들이는 7js거 그의 7js거 생각은 7js거 7js거 변화이다. 7js거 따라서 7js거 빠른 7js거 태세 7js거 전환을 7js거 통한 7js거 균형 7js거 잡기의 7js거 과정보다는 7js거 차분히 7js거 주변의 7js거 물질적, l카fl 비물질적인 l카fl 영향을 l카fl 충분히 l카fl 인지하고 l카fl 느린 l카fl 움직임을 l카fl 통해 l카fl 오랜 l카fl 시간을 l카fl 통해 l카fl 완성되어 l카fl 나가는 l카fl 결과 l카fl l카fl 자체에 l카fl 집중한다. l카fl 이렇게 l카fl 그의 l카fl 붓질과 l카fl 색의 l카fl 선택은 l카fl 이전과는 l카fl 다르게 l카fl 무엇인가를 l카fl 분명히 l카fl 드러내면서도 l카fl 차근차근 l카fl l카fl 위를 l카fl 덮어 l카fl 나가며 l카fl 자신의 l카fl 본능적 l카fl 감각들을 l카fl 뒤섞어 l카fl 이전의 l카fl 흔적을 l카fl 지워버린다. l카fl 이러한 l카fl 결과물은 l카fl 단순한 l카fl 조화가 l카fl 아니라 l카fl 외부와 l카fl 내부의 l카fl 일체성을 l카fl 가지고 l카fl 있으며, 79마ㄴ 단순히 79마ㄴ 서로 79마ㄴ 다른 79마ㄴ 것이 79마ㄴ 어우러지기 79마ㄴ 위한 79마ㄴ 인위적인 79마ㄴ 결합으로 79마ㄴ 나타나지 79마ㄴ 않는다. 79마ㄴ 다시 79마ㄴ 말해 79마ㄴ 서로의 79마ㄴ 자리를 79마ㄴ 대신 79마ㄴ 차지하기 79마ㄴ 위해 79마ㄴ 역동적으로 79마ㄴ 힘을 79마ㄴ 겨루고 79마ㄴ 경쟁하는 ‘부분’들이 79마ㄴ 아니라 79마ㄴ 희미해져 79마ㄴ 버린 79마ㄴ 서로의 79마ㄴ 존재를 79마ㄴ 환기시키는 79마ㄴ 것이다. 79마ㄴ 결국 79마ㄴ 작가는 79마ㄴ 비물질적으로 79마ㄴ 존재하고 79마ㄴ 있는 79마ㄴ 힘을 79마ㄴ 자신의 79마ㄴ 내부와 79마ㄴ 연결시키고, ㅓez4 이러한 ㅓez4 과정을 ㅓez4 통해 ㅓez4 나타나는 ㅓez4 결과로서의 ㅓez4 작품을 ㅓez4 하나로 ㅓez4 응축된 ㅓez4 장면으로 ㅓez4 완결 ㅓez4 시킨다.

그렇다면 ㅓez4 ㅓez4 모든 ㅓez4 것을 ㅓez4 통해 ㅓez4 유추할 ㅓez4 ㅓez4 있는 ㅓez4 성낙희가 ㅓez4 최근의 ㅓez4 작업에서 ㅓez4 중요하게 ㅓez4 생각하는 ㅓez4 것은 ㅓez4 무엇인가? ㅓez4 그가 ㅓez4 지금까지 ㅓez4 해오고 ㅓez4 있는 ㅓez4 회화는 ㅓez4 조그만 ㅓez4 부분들에서 ㅓez4 시작하여 ㅓez4 자신의 ㅓez4 회화에 ㅓez4 필요한 ㅓez4 부분은 ㅓez4 채우고 ㅓez4 나머지는 ㅓez4 탈락시키고, 다z하카 이를 다z하카 꾸준히 다z하카 다듬어내는 ‘부분’이라는 다z하카 것에 다z하카 대한 다z하카 지속적인 다z하카 관심에 다z하카 기인한다. 다z하카 그리고 다z하카 시시각각 다z하카 변해가는 다z하카 자신 다z하카 주변의 다z하카 현실 다z하카 상황들과 ‘나’의 다z하카 내면에서 다z하카 획득되거나 다z하카 외면하는 다z하카 선택에 다z하카 의해서 다z하카 하나의 다z하카 조그만 다z하카 부분을 다z하카 완성시켜 다z하카 나가는 다z하카 과정에 다z하카 집중한다. 다z하카 따라서 다z하카 이것은 다z하카 저마다의 다z하카 성질을 다z하카 가진 다z하카 이질적인 다z하카 것들을 다z하카 배열시키는 다z하카 조합이다. 다z하카 그리고 다z하카 작가는 다z하카 이렇게 다z하카 쌓여가는 다z하카 부분들을 다z하카 화면에서 다z하카 다시 다z하카 재조합하고 다z하카 새롭게 다z하카 환기되는 다z하카 것들을 다z하카 끊임없이 다z하카 반복적인 다z하카 그리는 다z하카 행위로 다z하카 보여주고 다z하카 있는 다z하카 것이다. 다z하카 그러므로 다z하카 그에게 다z하카 중요한 다z하카 것은 다z하카 자신에게 다z하카 비워져 다z하카 있는 다z하카 부분과 다z하카 채워진 다z하카 것이 다z하카 무엇인지 다z하카 세심하게 다z하카 인식하고, 가c히ㅓ 어떻게 가c히ㅓ 반응할 가c히ㅓ 것인지에 가c히ㅓ 대한 가c히ㅓ 선택이다. 가c히ㅓ 결국 가c히ㅓ 그의 가c히ㅓ 회화는 가c히ㅓ 이러한 가c히ㅓ 끊임없이 가c히ㅓ 선택하는 가c히ㅓ 삶이 가c히ㅓ 반영되어 가c히ㅓ 있기에 가c히ㅓ 채워져 가c히ㅓ 있지만 가c히ㅓ 채워진 가c히ㅓ 것이 가c히ㅓ 아니며, w7z우 부분들 w7z우 하나하나에 w7z우 세밀한 w7z우 관심을 w7z우 가지고 w7z우 있는 w7z우 것이다. w7z우 이와 w7z우 같이 w7z우 그는 w7z우 새로운 w7z우 작업을 w7z우 선보이지만 w7z우 근본적인 w7z우 태도에는 w7z우 변화가 w7z우 없다. w7z우 다만 w7z우 자신을 w7z우 채우기 w7z우 위해 w7z우 부족한 w7z우 부분에 w7z우 대한 w7z우 선택이 w7z우 최근의 w7z우 작업들에서 w7z우 보이는 w7z우 것은 w7z우 응축된 w7z우 하나 w7z우 부분으로써 w7z우 온전한 w7z우 전체라는 w7z우 결과에 w7z우 다다르기 w7z우 위한 w7z우 것이라는 w7z우 차이만 w7z우 있을 w7z우 뿐이다. w7z우 하지만 w7z우 이번 w7z우 전시에서 w7z우 보여주고 w7z우 있는 w7z우 개별의 w7z우 온전한 w7z우 작업들도 w7z우 전시라는 w7z우 전체 w7z우 총합에서는 w7z우 하나의 w7z우 부분들로 w7z우 위치가 w7z우 다시 w7z우 변한다. w7z우 또한 w7z우 w7z우 넓게 w7z우 보면 w7z우 그가 w7z우 해왔던 w7z우 지금까지의 w7z우 모든 w7z우 작업과의 w7z우 관계에서도 w7z우 일부분이자 w7z우 하나의 w7z우 완결된 w7z우 작품으로 w7z우 유기적으로 w7z우 연결되어 w7z우 있어 w7z우 w7z우 위치가 w7z우 고정되어 w7z우 있지 w7z우 않다. w7z우 그렇기에 w7z우 그의 w7z우 완결되어 w7z우 보이는 w7z우 작업들은 w7z우 완결되었지만 w7z우 완성되지 w7z우 않은 w7z우 것, ㅐ타차거 가득 ㅐ타차거 ㅐ타차거 있지만 ㅐ타차거 아직 ㅐ타차거 비어있는 ㅐ타차거 것이다. ㅐ타차거 이렇게 ㅐ타차거 이번 ㅐ타차거 전시에서 ㅐ타차거 보여주는 ㅐ타차거 새로운 ㅐ타차거 방식의 ㅐ타차거 전환은 ㅐ타차거 자신의 ㅐ타차거 선택이라는 ㅐ타차거 특징적인 ㅐ타차거 과정보다는 ㅐ타차거 결과로서의 ㅐ타차거 부분을 ㅐ타차거 드러내는 ㅐ타차거 데에 ㅐ타차거 적합한 ㅐ타차거 것으로 ㅐ타차거 보인다. ㅐ타차거 이를 ㅐ타차거 위해서 ㅐ타차거 그는 ㅐ타차거 무엇인가를 ㅐ타차거 충분히 ㅐ타차거 인지하고 ㅐ타차거 이를 ㅐ타차거 파악하기 ㅐ타차거 위한 ㅐ타차거 숙고의 ㅐ타차거 시간을 ㅐ타차거 갖는다. ㅐ타차거 그리고 ㅐ타차거 이렇게 ㅐ타차거 시간의 ㅐ타차거 유격을 ㅐ타차거 두고 ㅐ타차거 작은 ㅐ타차거 화면에 ㅐ타차거 점, ㅈs우p 선, 9z79 면, kㅈ1타 그리고 kㅈ1타 색으로 kㅈ1타 얽혀있는 kㅈ1타 부분들을 kㅈ1타 천천히 kㅈ1타 채워 kㅈ1타 나가면서 kㅈ1타 이전과는 kㅈ1타 다르게 kㅈ1타 부분과 kㅈ1타 전체, ev자거 내부와 ev자거 외부 ev자거 힘에 ev자거 공존하는 ev자거 깊이를 ev자거 가진 ev자거 화면을 ev자거 구성한다. ev자거 이것이 ev자거 새로운 ev자거 작업들이 ev자거 절제된 ev자거 붓의 ev자거 움직임으로 ev자거 인해 ev자거 질서 ev자거 정연한 ev자거 것처럼 ev자거 보이지만 ev자거 보이지 ev자거 않는 ev자거 힘을 ev자거 내재하고 ev자거 있으며, ㅓdp거 작가의 ㅓdp거 통제 ㅓdp거 안에 ㅓdp거 있으면서도 ㅓdp거 자유로운 ㅓdp거 움직임이 ㅓdp거 감지되는 ㅓdp거 이유이다.

정리해 ㅓdp거 보자면 ㅓdp거 이런 ㅓdp거 거리 ㅓdp거 두기는 ㅓdp거 대립항이라는 ㅓdp거 부분들 ㅓdp거 간의 ㅓdp거 조화가 ㅓdp거 거듭할수록 ㅓdp거 각자의 ㅓdp거 영역과 ㅓdp거 힘을 ㅓdp거 유지하며 ㅓdp거 긴장과 ㅓdp거 발산의 ㅓdp거 불안정한 ㅓdp거 상황으로 ㅓdp거 고착화되는 ㅓdp거 것을 ㅓdp거 의식적으로 ㅓdp거 회피하기 ㅓdp거 위함이다. ㅓdp거 따라서 ㅓdp거 이러한 ㅓdp거 새로운 ㅓdp거 방식의 《Sequence》 ㅓdp거 연작들은 ㅓdp거 부분들이 ㅓdp거 가진 ㅓdp거 다양한 ㅓdp거 성질들의 ㅓdp거 결합을 ㅓdp거 응축하여 ㅓdp거 결과적으로 ㅓdp거 충만하게 ㅓdp거 채워져 ㅓdp거 있으면서도 ㅓdp거 모든 ㅓdp거 힘이 ㅓdp거 무(無)로 ㅓdp거 돌아가는 ㅓdp거 ㅓdp거 비어있는 ㅓdp거 제로와 ㅓdp거 다름없는 ㅓdp거 허상처럼 ㅓdp거 보이기도 ㅓdp거 한다. ㅓdp거 만약 ㅓdp거 그렇다면 ㅓdp거 그가 ㅓdp거 결국 ㅓdp거 도달하려 ㅓdp거 하는 ㅓdp거 곳은 ㅓdp거 우리가 ㅓdp거 의식하든 ㅓdp거 의식하지 ㅓdp거 않든 ㅓdp거 존재하는 ㅓdp거 바깥의 ㅓdp거 힘 (예를 ㅓdp거 들면 ㅓdp거 중력과 ㅓdp거 같은)과 ‘나’라는 ㅓdp거 주체가 ㅓdp거 가지고 ㅓdp거 있는 ㅓdp거 내부의 ㅓdp거 힘이 ㅓdp거 균형을 ㅓdp거 이루는 ㅓdp거 제로의 ㅓdp거 상태, 차ㅑ카e 다시 차ㅑ카e 말해 차ㅑ카e 부분과 차ㅑ카e 전체의 차ㅑ카e 구분이 차ㅑ카e 없어져 차ㅑ카e 모두가 차ㅑ카e 합일되는 차ㅑ카e 완벽한 차ㅑ카e 상황 차ㅑ카e 일지도 차ㅑ카e 모르겠다. 차ㅑ카e 하지만 차ㅑ카e 이는 차ㅑ카e 쉽게 차ㅑ카e 도달할 차ㅑ카e 차ㅑ카e 없는 차ㅑ카e 어딘지 차ㅑ카e 알지도 차ㅑ카e 못하는 차ㅑ카e 미지의 차ㅑ카e 목적지이다. 차ㅑ카e 그렇기에 차ㅑ카e 그는 차ㅑ카e 위에서 차ㅑ카e 지속적으로 차ㅑ카e 언급해왔던 차ㅑ카e 것처럼 차ㅑ카e 자신의 차ㅑ카e 내면에서 차ㅑ카e 완전함, ag하k 충만함에 ag하k 대한 ag하k 갈망과 ag하k 동시에 ag하k 나타나는 ag하k 미완, msn다 불충분이라는 msn다 의심이 msn다 끊임없이 msn다 순환하는 ‘부분’들을 msn다 조합하는 msn다 반복적인 msn다 작업을 msn다 하고 msn다 있는 msn다 것이다. msn다 이러한 msn다 점들이 msn다 성낙희가 msn다 자신의 msn다 회화 msn다 msn다 자체와 msn다 삶의 msn다 관계에 msn다 뿌리내리고 msn다 있는 ‘부분’이라는 msn다 테제이며, ju히o 작가가 ‘나’를 ju히o 고스란히 ju히o 보여주는 ju히o 방법이다.

출처: ju히o 페리지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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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작가

  • 성낙희

현재 진행중인 전시

Bending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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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m아하ㅐ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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