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 스페셜 2020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2020년 8월 4일 ~ 2020년 8월 26일

거리두기가 함께하기를 압도하는 덕목이자 계율인 시대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일정한 규칙 아래에서이긴 하지만, 극장에서 영화 보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혹 뭉클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것이 함께 보기와 연관된 것인지 혹은 스크린의 크기와 연관된 것인지, 아니면 오직 신작에 대한 참기 힘든 궁금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극장 가기라는 행위의 친숙함은 매체 환경 변화를 비롯한 세상의 숨 가쁜 변화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는 올 여름에도 변함없이 연례 기획전 ‘서머 스페셜 2020’을 8월 4일부터 개최합니다. 상반기에 모리스 피알라, 장 뤽 고다르, 빔 벤더스 등 진지하고 성찰적인, 그리고 다소 무거운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상영했지만, ‘서머 스페셜’에서는 영화 보기 본연의 즐거움과 감흥을 경험할 수 있는, 물론 동시에 영화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들을 상영합니다.

두 개의 섹션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중 하나인 ‘테크니컬러의 시대’는 영화사의 한 시대를 풍미한 컬러 영화 제작 기법인 테크니컬러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들을 되돌아봅니다. 테크니컬러는 할리우드에서 1922년부터 1952년까지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된 컬러 필름 제작 방식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할리우드 고전기의 컬러 영화의 다수가 테크니컬러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테크니컬러는 우리의 뇌리에 온화하고 풍성한 색감으로 남아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컬러가 정확하고 차가운 모던의 신사복을 닮았다면, 테크니컬러는 부드럽고 따뜻한 중세의 야회복을 닮았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흑백과 컬러에 대한 또 다른 생각으로 이끕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컬러가 흑백에 비해 사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테크니컬러의 영화들의 색채는 대개 사실적이라기보다 표현적이라는 것입니다. 할리우드의 초기 테크니컬러 영화 가운데 하나인 <오즈의 마법사>(1939)에서 사실적인 장면은 흑백으로, 환상적인 장면은 컬러로 촬영되었다는 사실은 이 역설의 대표적 사례일 것입니다. 요컨대, 테크니컬러의 색감은 그것의 사실성이라기보다 표현적 풍부함으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장식적인 대저택과 수려한 자연 풍경을 관객의 얼을 빼놓을 정도로 화려한 색감에 담은 전설의 테크니컬러 영화 <애수의 호수>, 아직도 미지의 감독에 속하는 거장 루벤 마물리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며 컬러에 대한 깊은 미학적 자의식이 담긴 <피와 모래>를 비롯해 거대한 이탈리아 저택을 구성하는 다채로운 색채에 광기와 매혹을 담은 루키노 비스콘티의 <폭력과 열정>에 이르기까지, 모두 10편의 테크니컬러 영화에서 눈부신 색채의 향연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인사’는 당대 관객의 깊은 사랑을 받았지만 불현듯 세상을 떠난 배우들의 마지막 작품을 만나는 섹션입니다. 영화 자체로도 존중받을 자질이 충분히 있지만, 그들의 죽음이 급작스러웠기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남은 영화 8편이 상영됩니다. 요절했다고 해도 좋을, 그리고 당대의 아이콘이었던 마릴린 먼로, 제임스 딘, 리버 피닉스, 이소룡이 이 명단에 포함되는 건 당연할 것입니다.

험프리 보가트(<하더 데이 폴>), 윌 로저스(<굽이도는 증기선>)와 스펜서 트레이시(<초대 받지 않은 손님>)는 강렬한 개성으로 스크린에서 군림했던 당대 최고의 스타였지만 마지막 작품을 찍은 후 개봉 직전 혹은 직후에 영면해 그들의 유작에는 모종의 비애감이 운명적으로 깃듭니다. 당대 미국인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은 윌 로저스는 <굽이도는 증기선> 직전에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유쾌한 희극성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개봉관은 종종 울음바다가 되었다는 일화도 전해져 옵니다. 에릭 로메르의 <보름달이 뜨는 밤>과 자크 리베트의 <북쪽 다리>를 본 사람들이라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20대 중반에 심장마비로 영면한 파스칼 오지에의 마지막 작품도 함께 소개됩니다.

여행이라는 단어가 아련하고 특별하게 들려오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머 스페셜’의 상영작을 통해 아쉬우나마 영화 여행을 떠나시길 권합니다.

영화의전당 프로그램디렉터 허문영


상영작

테크니컬러의 시대
피와 모래 (1941, 루벤 마물리언)
천국은 기다려 준다 (1943, 에른스트 루비치)
애수의 호수 (1945, 존 M. 스탈)
분홍신 (1948, 마이클 파웰 & 에머릭 프레스버거)
황금 마차 (1952, 장 르누아르)
이창 (1954, 알프레드 히치콕)
나는 결백하다 (1955, 알프레드 히치콕)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 (1955, 더글라스 서크)
지붕 위의 바이올린 (1971, 노먼 주이슨)
폭력과 열정 (1974, 루키노 비스콘티)

마지막 인사
굽이도는 증기선 (1935, 존 포드)-윌 로저스
이유 없는 반항 (1955, 니콜라스 레이)-제임스 딘
하더 데이 폴 (1956, 마크 롭슨)-험프리 보가트
야생마 (1961, 존 휴스턴)-마릴린 먼로
초대 받지 않은 손님 (1967, 스탠리 크레이머)-스펜서 트레이시
용쟁호투 (1973, 로버트 클라우스)-이소룡
보름달이 뜨는 밤 (1984, 에릭 로메르)-파스칼 오지에
콜 잇 러브 (1993, 피터 보그다노비치)-리버 피닉스


출처: 영화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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