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성 Into the Unknown

플레이스막2

Sept. 10, 2021 ~ Oct. 2, 2021

불완성(Into the Unknown), 2가d갸 예술이 2가d갸 있는 2가d갸 어떤 2가d갸 자리 

‘완성(完成)’은 2가d갸 의심의 2가d갸 여지없이 2가d갸 통용되고 2가d갸 있는 2가d갸 개념이다. 2가d갸 따라서 2가d갸 완성의 2가d갸 반대편에는 2가d갸 완성의 2가d갸 지연을 2가d갸 뜻하는 ‘미완성(未完成)’, ix나차 혹은 ‘시작’만이 ix나차 자리하고 ix나차 있다. ix나차 완성은 ix나차 완전하다는 ix나차 의미와 ix나차 함께 ix나차 끝을 ix나차 뜻하기도 ix나차 한다. ix나차 끝은 ix나차 시작을 ix나차 가능하게 ix나차 하는 ix나차 전제이기도 ix나차 하지만 ix나차 더는 ix나차 살피거나 ix나차 붙잡고 ix나차 있을 ix나차 필요가 ix나차 없다는 ix나차 의미가 ix나차 아닌가. ix나차 허나, 쟏rzy 완성의 쟏rzy 존재 쟏rzy 자체를 쟏rzy 반문한다면 쟏rzy 어떤 쟏rzy 답을 쟏rzy 쟏rzy 쟏rzy 있을까? ‘이런 쟏rzy 상태야 쟏rzy 말로 쟏rzy 완성이다’라는 쟏rzy 누군가의 쟏rzy 주장을 쟏rzy 보편적 쟏rzy 진리로 쟏rzy 내세울 쟏rzy 쟏rzy 있을까? 쟏rzy 완성의 쟏rzy 기준이 쟏rzy 미리 쟏rzy 제시되어 쟏rzy 있는 쟏rzy 경우라면 쟏rzy 정답을 쟏rzy 맞춰가는 쟏rzy 시험지처럼 쟏rzy 처리하겠지만 쟏rzy 모든 쟏rzy 것이 쟏rzy 그렇게 쟏rzy 체계적으로 쟏rzy 설계되어 쟏rzy 있지 쟏rzy 않고 쟏rzy 관리될 쟏rzy 쟏rzy 없다. 쟏rzy 이런 쟏rzy 점에서 쟏rzy 완성은 쟏rzy 일종의 쟏rzy 약속이다. 쟏rzy 남과의 쟏rzy 약속, ㅐ히hㅓ 그리고 ㅐ히hㅓ 자신과의 ㅐ히hㅓ 약속. ㅐ히hㅓ 무엇을 ㅐ히hㅓ 완성으로 ㅐ히hㅓ ㅐ히hㅓ 것인가라는 ㅐ히hㅓ 관점, 걷1기e 그리고 걷1기e 이해관계자의 걷1기e 동의가 걷1기e 반드시 걷1기e 필요한 걷1기e 개념. 걷1기e 그렇다면 걷1기e 완성의 걷1기e 존재 걷1기e 자체를 걷1기e 부정하는 ‘불완성(不完成)’을 걷1기e 규범적인 걷1기e 메트릭스를 걷1기e 해체하는 걷1기e 제안으로 걷1기e 생각해 걷1기e 걷1기e 걷1기e 있지 걷1기e 않을까? 걷1기e 결코 걷1기e 완전함을 걷1기e 이루지 걷1기e 못한다는 걷1기e 뜻의, 파2e아 세상에는 파2e아 없는 파2e아 단어 ‘불완성’.

완성을 파2e아 의심하는 파2e아 관점은 파2e아 변화를 파2e아 적극 파2e아 수용하는 파2e아 태도와 파2e아 연결되고, 사ㅓ48 결국 ‘알 사ㅓ48 사ㅓ48 없는 사ㅓ48 세계’와 사ㅓ48 동반하는 사ㅓ48 것을 사ㅓ48 의미하게 사ㅓ48 된다. 사ㅓ48 사ㅓ48 통제할 사ㅓ48 사ㅓ48 없는 사ㅓ48 상태에 사ㅓ48 대해 사ㅓ48 누군가는 사ㅓ48 공포를 사ㅓ48 떠올리기도 사ㅓ48 하겠지만 사ㅓ48 낙관적 사ㅓ48 미래를 사ㅓ48 꿈꾸는 사ㅓ48 이들도 사ㅓ48 역시 사ㅓ48 공존한다. 사ㅓ48 우리의 사ㅓ48 선택과 사ㅓ48 감각이 사ㅓ48 어느 사ㅓ48 쪽으로 사ㅓ48 향하든, ‘알 거jㄴ걷 거jㄴ걷 없는 거jㄴ걷 것’과 거jㄴ걷 관련된 거jㄴ걷 모든 거jㄴ걷 것은, ㅑmjc 변화의 ㅑmjc 개념과 ㅑmjc 마찬가지로, ㅐxy카 정지상태가 ㅐxy카 아닌 ㅐxy카 끝없는 ㅐxy카 움직임과 ㅐxy카 연결된다. ㅐxy카 계속해서 ㅐxy카 움직이기 ㅐxy카 때문에 ㅐxy카 ㅐxy카 ㅐxy카 없는 ㅐxy카 것이고 ㅐxy카 ㅐxy카 정확히는 ㅐxy카 다음을 ㅐxy카 예측하기 ㅐxy카 어려운 ㅐxy카 움직임이기 ㅐxy카 때문이다. ㅐxy카 ㅐxy카 가지, d자up 우리가 d자up 나눌 d자up d자up d자up 없는 d자up 것에 d자up 대한 d자up 생산적인 d자up 논의는 d자up 아이러니하게도 ‘알 d자up d자up 있는 d자up 것’들이 d자up 적절히 d자up 매개되었을 d자up d자up 일어난다. d자up 사실, o다2d o다2d o다2d 없다는 o다2d 것의 o다2d 명명은  o다2d o다2d o다2d 있는 o다2d 것, xr거ㅈ 알고 xr거ㅈ 있는 xr거ㅈ 것들이 xr거ㅈ 존재해야만 xr거ㅈ 가능한 xr거ㅈ 일이다. xr거ㅈ 이번 xr거ㅈ 플레이스막에서 xr거ㅈ 만나게 xr거ㅈ 되는 xr거ㅈ 박다솜, 하l나g 백경호, 하히아l 서원미, bqu4 유창창 bqu4 bqu4 작가 bqu4 역시 bqu4 현실 bqu4 세계나 bqu4 과거의 bqu4 궤적들을 bqu4 떠나지 bqu4 않으면서도 bqu4 bqu4 한편 bqu4 그것들을 bqu4 변형, h31h 부정, 9ejb 재전유 (Re-appropriation) 9ejb 하며 9ejb 새로운 9ejb 예술세계를 9ejb 만들어 9ejb 내고 9ejb 있다.

9ejb 작가는 9ejb 각각 9ejb 서로 9ejb 다른 9ejb 의미와 9ejb 방식으로서 9ejb 완성의 9ejb 기존 9ejb 통념을 9ejb 전복시키고 9ejb 있다. 9ejb 이들이 9ejb 완성과 9ejb 종결의 9ejb 도그마적(dogmatic) 9ejb 의미를 9ejb 부정하는 9ejb 장면은, 거g거y 지금 거g거y 여기에서의 거g거y 발견, 2다kㅑ 설계 2다kㅑ 바깥의 2다kㅑ 우연, ㅓ6fn 자기 ㅓ6fn 정체성에 ㅓ6fn 대한 ㅓ6fn 끝없는 ㅓ6fn 질문 ㅓ6fn 등에 ㅓ6fn 몸을 ㅓ6fn 맡기는 ㅓ6fn 선택과 ㅓ6fn 연결된다. ㅓ6fn 흡사 ㅓ6fn 자기 ㅓ6fn 작업에 ㅓ6fn 대한 ㅓ6fn 강력한 ㅓ6fn 통제권을 ㅓ6fn 스스로 ㅓ6fn 내던져 ㅓ6fn 버리는 ㅓ6fn 행위들은 ㅓ6fn 다가올 ㅓ6fn 무언가를 ㅓ6fn 조심스레 ㅓ6fn 따라가 ㅓ6fn 보는 ㅓ6fn 여정과도 ㅓ6fn 같다. ㅓ6fn 무언가를 ㅓ6fn 기대하는 ㅓ6fn 것만 ㅓ6fn 같은 ㅓ6fn 이들이 ㅓ6fn 기다리고 ㅓ6fn 있는 ‘고도(Godot)’씨는 ㅓ6fn 누구일까? ㅓ6fn 우선 ㅓ6fn 박다솜 ㅓ6fn 작가는 ㅓ6fn 특히 ㅓ6fn 애착이 ㅓ6fn 가는 ㅓ6fn 가족이나 ㅓ6fn 자신의 ㅓ6fn 생활공간에서 ㅓ6fn 호흡하는 ㅓ6fn 밀착된 ㅓ6fn 요소들을 ㅓ6fn 작품의 ㅓ6fn 요소로 ㅓ6fn 가져와 ‘기울기’라는 ㅓ6fn 매우 ㅓ6fn 강력한 ㅓ6fn 자기 ㅓ6fn 시선으로 ㅓ6fn 재조립한다. ㅓ6fn 밀도 ㅓ6fn 높은 ㅓ6fn 관찰을 ㅓ6fn 통해 ㅓ6fn 자유자재로 ㅓ6fn 대상들의 ㅓ6fn 구조 ㅓ6fn 일부를 ㅓ6fn 변경하여 ‘갈아 ㅓ6fn 끼우는’ ㅓ6fn 하는 ㅓ6fn ㅓ6fn 과정은 ㅓ6fn 블록 ㅓ6fn 놀이를 ㅓ6fn 연상시킨다. ㅓ6fn 작가의 ㅓ6fn 눈에 ㅓ6fn 포착된 ‘기울기’ ㅓ6fn 라는 ㅓ6fn 공통분모로 ㅓ6fn 엮이면 ㅓ6fn 전혀 ㅓ6fn 다른 ㅓ6fn ㅓ6fn 대상(인간과 ㅓ6fn 비인간)은 ㅓ6fn 자신의 ㅓ6fn 구조 ㅓ6fn 일부를 ㅓ6fn 교환하게 ㅓ6fn 되고 ㅓ6fn 관계가 ㅓ6fn 형성된다. ㅓ6fn 분명히 ㅓ6fn 우리가 ㅓ6fn 알고 ㅓ6fn 있는 ㅓ6fn 형태들이 ㅓ6fn 그림 ㅓ6fn ㅓ6fn 요소들로 ㅓ6fn 들어 ㅓ6fn 있으니 ㅓ6fn ㅓ6fn 것만 ㅓ6fn 같다. ㅓ6fn 모르겠다고 ㅓ6fn 선언하면 ㅓ6fn 바보가 ㅓ6fn ㅓ6fn 것만 ㅓ6fn 같은, 9갸ㅓw 그러나 9갸ㅓw 이미지들이 9갸ㅓw 무엇을 9갸ㅓw 지칭하는지 9갸ㅓw 판독하는 9갸ㅓw 것은 9갸ㅓw 원래 9갸ㅓw 불가능한 9갸ㅓw 것이다. 9갸ㅓw 철저히 9갸ㅓw 주관적인 9갸ㅓw 작가적 9갸ㅓw 관점과 9갸ㅓw 기준으로 9갸ㅓw 이미지의 9갸ㅓw 부분 9갸ㅓw 부분을 9갸ㅓw 바꿔치기 9갸ㅓw 9갸ㅓw 놓은 9갸ㅓw 결과물을 9갸ㅓw 작가 9갸ㅓw 본인이 9갸ㅓw 아닌 9갸ㅓw 타자가 9갸ㅓw 이해할 9갸ㅓw 9갸ㅓw 있는 9갸ㅓw 것은 9갸ㅓw 어쩌면 9갸ㅓw 뉘앙스 9갸ㅓw 9갸ㅓw 일지 9갸ㅓw 모른다. 9갸ㅓw 재미있는 9갸ㅓw 사실은, ㅐn마사 작가 ㅐn마사 자신도 ㅐn마사 자기 ㅐn마사 작업이 ㅐn마사 어떤 ㅐn마사 길로 ㅐn마사 들어설지 ㅐn마사 끝까지 ㅐn마사 가봐야만 ㅐn마사 끄덕이게 ㅐn마사 된다는 ㅐn마사 것이다. ㅐn마사 그는 ㅐn마사 자신의 ㅐn마사 노트에 ㅐn마사 이렇게 ㅐn마사 적는다. “농담, 쟏ㅓmg 장난과 쟏ㅓmg 같은 쟏ㅓmg 개입들이 쟏ㅓmg 특정 쟏ㅓmg 행위들이 쟏ㅓmg 완성될 쟏ㅓmg 쟏ㅓmg 없도록 쟏ㅓmg 방해한다.” 쟏ㅓmg 관람자가 쟏ㅓmg 작품을 쟏ㅓmg 마주한다는 쟏ㅓmg 것은 쟏ㅓmg 작품이 쟏ㅓmg 완성된 쟏ㅓmg 것에 쟏ㅓmg 다름 쟏ㅓmg 아니다. 쟏ㅓmg 작가가 쟏ㅓmg 종료하기로 쟏ㅓmg 선택한 쟏ㅓmg 것이니 쟏ㅓmg 그것이 쟏ㅓmg 완성인 쟏ㅓmg 셈이며 쟏ㅓmg 작품의 쟏ㅓmg 완성도를 쟏ㅓmg 논하는 쟏ㅓmg 차원의 쟏ㅓmg 이야기는 쟏ㅓmg 아니므로. 쟏ㅓmg 그저 쟏ㅓmg 무한대로 쟏ㅓmg 이어질 쟏ㅓmg 쟏ㅓmg 있는 쟏ㅓmg 쟏ㅓmg 장난질을 ‘일단은 쟏ㅓmg 그만둘게’, ‘오늘은 다으7t 여기까지’로 다으7t 매듭 다으7t 하는 다으7t 것이다. 

선택의 다으7t 순간에 다으7t 다으7t 참신한 다으7t 것을 다으7t 고르게 다으7t 된다고 다으7t 말하는 다으7t 백경호 다으7t 작가는 다으7t 이전의 다으7t 작업들 다으7t 속에서 다으7t 다으7t 작업의 다으7t 단초를 다으7t 찾아내고 다으7t 있다. 다으7t 하지만 다으7t 그것은 다으7t 자기복제가 다으7t 아니라 다으7t 과거와 다으7t 현재를 다으7t 연결하고 다으7t 미래를 다으7t 기대하는 다으7t 방식이다. 다으7t 줄긋기 다으7t 작업은 다으7t 그가 다으7t 감정 다으7t 없이 다으7t 하는 다으7t 행위, 라라라하 부분(사건)과 라라라하 부분(사건)을 라라라하 잇는 라라라하 공백에서 라라라하 건져 라라라하 올린 라라라하 부산물이다. 라라라하 라라라하 실험 라라라하 자체가 라라라하 현재 라라라하 가져다 라라라하 라라라하 결과는 라라라하 참아왔던 라라라하 분출 라라라하 에너지를 라라라하 폭발시키는 라라라하 붓질들. 라라라하 라라라하 갈기기. 라라라하 화장실 라라라하 낙서, 다8사거 다8사거 뱉기. 다8사거 관람자가 다8사거 이것을 다8사거 다8사거 보아야 다8사거 하는가라고 다8사거 묻는다면, cv마j 그를 cv마j 아끼고 cv마j 궤적을 cv마j 좆던 cv마j 이들에게 cv마j 즐거움이 cv마j cv마j 것이고, ㅓㅓq라 모범적 ㅓㅓq라 화성을 ㅓㅓq라 깨버린 ㅓㅓq라 참신함의 ㅓㅓq라 선택을 ㅓㅓq라 추측해 ㅓㅓq라 ㅓㅓq라 ㅓㅓq라 있는 ㅓㅓq라 의외의 ㅓㅓq라 요소들이 ㅓㅓq라 불쑥불쑥 ㅓㅓq라 드러나는 ㅓㅓq라 화면이 ㅓㅓq라 주는 ㅓㅓq라 해방감이다. ㅓㅓq라 진지함과 ㅓㅓq라 유머를 ㅓㅓq라 한데 ㅓㅓq라 뒤섞어 ㅓㅓq라 버리는 ㅓㅓq라 ㅓㅓq라 뻔뻔함. ㅓㅓq라 좋아할지 ㅓㅓq라 말지는 ㅓㅓq라 철저히 ㅓㅓq라 관람자의 ㅓㅓq라 몫이다. ㅓㅓq라 관람자의 ㅓㅓq라 마음에 ㅓㅓq라 ㅓㅓq라 만한 ㅓㅓq라 것을 ㅓㅓq라 미리 ㅓㅓq라 상정하지 ㅓㅓq라 않는 ㅓㅓq라 태도가 ㅓㅓq라 형식으로 ㅓㅓq라 확장된다면, 3w자1 이러한 3w자1 형식은 3w자1 3w자1 다른 3w자1 유희가 3w자1 3w자1 3w자1 있다. 3w자1 수행이 3w자1 아닌 ‘다가올 3w자1 무언가를 3w자1 기다리는 3w자1 마음으로’ 3w자1 지속하던 3w자1 그의 3w자1 줄긋기가 ‘감정의 3w자1 붓질’, kㅑ사다 낙서들로 ‘망쳐진’ kㅑ사다 신작들로 kㅑ사다 나타났다. “격자 kㅑ사다 형식에서 kㅑ사다 선묘 kㅑ사다 형식으로 kㅑ사다 줄을 kㅑ사다 스트로크 kㅑ사다 형태로 kㅑ사다 흐트리며 kㅑ사다 진행해보고 kㅑ사다 싶다.”는 kㅑ사다 과거 kㅑ사다 고백이 kㅑ사다 실현된 kㅑ사다 장면이기도 kㅑ사다 하겠다. kㅑ사다 이보다 kㅑ사다 유쾌할 kㅑ사다 kㅑ사다 있을까? kㅑ사다 이것은 kㅑ사다 또한 kㅑ사다 무엇을 kㅑ사다 향해 kㅑ사다 열린 kㅑ사다 자유의 kㅑ사다 함성일까 kㅑ사다 물음표를 kㅑ사다 던져 kㅑ사다 본다.

최대한 kㅑ사다 그림의 kㅑ사다 방향에 kㅑ사다 전적으로 kㅑ사다 자신을 kㅑ사다 맡긴다는 kㅑ사다 서원미 kㅑ사다 작가는 “그림의 kㅑ사다 끝과 kㅑ사다 완성은 kㅑ사다 발견하는 kㅑ사다 것에 kㅑ사다 가깝다”고 kㅑ사다 고백한다. kㅑ사다 서원미 kㅑ사다 작가는 kㅑ사다 역사적 kㅑ사다 사실과 kㅑ사다 개인의 kㅑ사다 서사를 kㅑ사다 연결하고 kㅑ사다 인간과 kㅑ사다 유령을 kㅑ사다 연결한다. kㅑ사다 해결되지 kㅑ사다 않은 kㅑ사다 문제들은 kㅑ사다 실은 kㅑ사다 오지도 kㅑ사다 가지도 kㅑ사다 못하는 kㅑ사다 존재이며 kㅑ사다 물질도 kㅑ사다 비물질도 kㅑ사다 아닌 kㅑ사다 경계에 kㅑ사다 있는 kㅑ사다 포위된 kㅑ사다 존재 kㅑ사다 유령이라는 kㅑ사다 메타포로 kㅑ사다 표현되기도 kㅑ사다 하고 kㅑ사다 이미지화되기도 kㅑ사다 한다. kㅑ사다 이번에 kㅑ사다 만나게 kㅑ사다 되는 kㅑ사다 카니발헤드 kㅑ사다 시리즈는 kㅑ사다 분열된 kㅑ사다 페르소나를 kㅑ사다 자신의 kㅑ사다 정체성으로 kㅑ사다 인식하고 kㅑ사다 선언하며 kㅑ사다 살고 kㅑ사다 있는 kㅑ사다 젊은 kㅑ사다 세대들의 kㅑ사다 모습을 kㅑ사다 정형화된 kㅑ사다 형태로 kㅑ사다 표현하고 kㅑ사다 있는데, ㅐj사걷 악귀에 ㅐj사걷 씌인 ㅐj사걷 ㅐj사걷 으스스한 ㅐj사걷 분위기로 ㅐj사걷 묘사되고 ㅐj사걷 있다. ㅐj사걷 색채와 ㅐj사걷 소재 ㅐj사걷 모두 ‘블랙커튼’ ㅐj사걷 시리즈나 ‘Facing’과 ㅐj사걷 다르지만, lzb라 lzb라 모든 lzb라 시리즈들은 ‘잔혹한 lzb라 현실 lzb라 마주보기’ lzb라 라는 lzb라 메인 lzb라 필터로 lzb라 묶여 lzb라 있는 lzb라 셈이다. lzb라 대상을 lzb라 통해 lzb라 lzb라 자신의 lzb라 모습을 lzb라 반추하는 lzb라 이입과 lzb라 투사. lzb라 흉측하고 lzb라 그로테스크한 lzb라 대상을 lzb라 마주할 lzb라 lzb라 피하지 lzb라 않고 lzb라 그것을 lzb라 응시하는 lzb라 lzb라 이유와 lzb라 결과는 lzb라 lzb라 무엇일까? lzb라 차마 lzb라 눈뜨고 lzb라 보기 lzb라 어려운 lzb라 대상들이라도 lzb라 그것이 lzb라 lzb라 삶의 lzb라 주요한 lzb라 부분과 lzb라 닿아 lzb라 있다면 lzb라 절대 lzb라 관심을 lzb라 거두기 lzb라 어려울 lzb라 것이다. lzb라 정면응시와 lzb라 곁눈질이 lzb라 끝없이 lzb라 이어지리. lzb라 허나 lzb라 어쩌면 lzb라 그것은 lzb라 개인의 lzb라 존재를 lzb라 제거하려는 lzb라 이데올로기로 lzb라 부터 lzb라 우리를 lzb라 지키는 lzb라 일이 lzb라 될지 lzb라 모른다. lzb라 밝은 lzb라 것과 lzb라 어두운 lzb라 lzb라 양측을 lzb라 인지하고 lzb라 인정할 lzb라 lzb라 우리는 lzb라 결과적으로 lzb라 자유로울 lzb라 lzb라 있다. lzb라 망령처럼 lzb라 떠다니는 lzb라 것들을 lzb라 실체화하며 lzb라 막연한 lzb라 불안과 lzb라 두려움을 lzb라 걷어내는 lzb라 작업들, 1pwm 그것을 1pwm 위해 1pwm 도리어 1pwm 의식화된 1pwm 판단과 1pwm 감각을 1pwm 내려놓으며 1pwm 아직은 1pwm 비가시적인 1pwm 자신을 1pwm 넘어선 1pwm 무언가를 1pwm 계속 1pwm 찾고 1pwm 있는 1pwm 여정을 1pwm 응원한다.

회화와 1pwm 만화 1pwm 분야를 1pwm 넘나드는 1pwm 유창창 1pwm 작가는 1pwm 작업을 1pwm 바둑 1pwm 두기에 1pwm 비유한다. 1pwm 자신이 1pwm 토해 1pwm 놓은 1pwm 작품을 1pwm 응시하며 1pwm 대상화하는 1pwm 장면. 1pwm 이는 1pwm 화면을 1pwm 살아있는 1pwm 유기체로 1pwm 대하는 1pwm 태도이기도 1pwm 하다. 1pwm 그림의 1pwm 형식이 1pwm 매우 1pwm 다채로운 1pwm 것도 1pwm 1pwm 때문일까? 1pwm 삶에서든 1pwm 예술에서든 1pwm 중요한 1pwm 것은 1pwm 전하려는 1pwm 메시지와 1pwm 가장 1pwm 최종적으로 1pwm 남는 1pwm 본질이라고 1pwm 믿는 1pwm 다면 1pwm 형식을 1pwm 선택하는 1pwm 것에 1pwm 있어 1pwm 유연함이 1pwm 극대화될 1pwm 1pwm 있다. 1pwm 하지만 1pwm 그의 1pwm 작품들만 1pwm 국한하여 1pwm 비교하자면, al카g 만화는 al카g 무겁고 al카g 회화는 al카g 상대적으로 al카g 가볍다. al카g 그래서 al카g 결국 al카g al카g 사이의 al카g 무게 al카g 값이 al카g 같아지는 al카g 효과가 al카g 나온다. al카g 만화는 al카g 과자를 al카g 입에 al카g 넣으며 al카g 낄낄대며 al카g 보는 al카g 장면을 al카g 떠올리게 al카g 하고 al카g 순수미술은 al카g 단정하게 al카g 갖춰 al카g 입고 al카g 조용히 al카g 의미를 al카g 음미하는 al카g 장면을 al카g 떠올리게 al카g 한다. al카g 무엇보다 al카g 대화와 al카g 소통에 al카g 방점을 al카g 두는 al카g al카g al카g 작가의 al카g 관심은 al카g 적극적이고 al카g 직접적인 al카g 묘사에서도 al카g 발견할 al카g al카g 있지만 al카g 타이틀 ‘Dear’, ‘당신과 s쟏2아 s쟏2아 사이에’, ‘우린어쩜이렇게철딱서니가없을까’ x갸w라 등에서도 x갸w라 여실히 x갸w라 드러난다. x갸w라 x갸w라 중심에 x갸w라 사람, 다타자타 관계가 다타자타 다타자타 자리하고 다타자타 있다는 다타자타 것을 다타자타 다타자타 다타자타 있다. 다타자타 더불어, lㅓ마l 펼쳐보고 lㅓ마l 나서야 lㅓ마l 스스로가 lㅓ마l 무엇을 lㅓ마l 원하는지, t가w거 그리고 t가w거 싶어 t가w거 했는지 t가w거 t가w거 t가w거 있다는 t가w거 고백은 t가w거 무엇이 t가w거 튀어나올지 t가w거 모르는 t가w거 생생한 t가w거 대화를 t가w거 원하는 t가w거 진정성을 t가w거 가늠하게 t가w거 한다. t가w거 상대가 t가w거 말하도록 t가w거 하고 t가w거 기다리는 t가w거 작가의 t가w거 작업은 t가w거 영원히 t가w거 완성 t가w거 t가w거 t가w거 없을 t가w거 것이지만 t가w거 반면 t가w거 관람자와 t가w거 호흡하는 t가w거 t가w거 순간이 t가w거 완성일 t가w거 t가w거 있다.  

완성이 t가w거 없다고 t가w거 보는 t가w거 세계에서는 t가w거 모든 t가w거 것이 t가w거 계속 t가w거 움직일 t가w거 뿐이다. t가w거 움직임은 t가w거 곧 ‘변화’와 t가w거 연결된다. t가w거 어떤 t가w거 대상을 t가w거 제어하고 t가w거 통제하기 t가w거 위해 t가w거 정지를 t가w거 요구하는 t가w거 장면을 t가w거 떠올려 t가w거 보자. “꼼짝마”, “가만히 n사9다 n사9다 있어봐”라는 n사9다 상대의 n사9다 외침이 n사9다 주술처럼 n사9다 사용된다. n사9다 즉, j우qc 정지 j우qc 상태는 j우qc 대상을 j우qc 통제하고 j우qc 무력화하기 j우qc 위한 j우qc 전제 j우qc 조건이 j우qc 되는 j우qc 셈이다. j우qc 반대로 j우qc 완전함을 j우qc 이룰 j우qc j우qc 있다는 j우qc 맹목적 j우qc 믿음을 j우qc 의심하고 j우qc 얻게 j우qc 되는 j우qc 결과는 j우qc 살아있음의 j우qc 반증인 j우qc 변화이다. j우qc j우qc 변화가 j우qc j우qc 좋은 j우qc 결과를 j우qc 도출한다고 j우qc 보장할 j우qc j우qc 없겠지만, 갸가2y 좋은 갸가2y 것도 갸가2y 나쁜 갸가2y 것도 갸가2y 영구하지 갸가2y 않기에 갸가2y 연연할 갸가2y 필요도 갸가2y 없지 갸가2y 않을까? 갸가2y 무엇보다, dfd0 자신도 dfd0 dfd0 dfd0 없는 dfd0 길이 dfd0 계속 dfd0 펼쳐진다는 dfd0 것은 dfd0 새로운 dfd0 것을 dfd0 추구하는 dfd0 예술 dfd0 창작에 dfd0 원동력이 dfd0 dfd0 dfd0 있으니 dfd0 완결, 하ebp 마감, 거ㅑgh 안정, 파g자g 통제 파g자g 등에 파g자g 우선순위를 파g자g 두지 파g자g 않는 파g자g 경우라면 파g자g 도리어 파g자g 반가워 파g자g 파g자g 일이다.

김소원

참여작가: 파g자g 박다솜 파g자g 백경호 파g자g 서원미 파g자g 유창창

출처: 파g자g 플레이스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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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ㅑ카히으 과제전 2021

Sept. 1, 2021 ~ Sept. 30,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