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주한체코문화원과 함께 11월 11일(수)부터 22일(일)까지 “베라 히틸로바 회고전”을 진행합니다. 60년대 체코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대표적 감독인 베라 히틸로바(1929~2014)는 현실의 모순을 관찰하는 대담한 시선과 관습을 거부하는 독특한 영화적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만든 중요한 작가입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베라 히틸로바의 대표작 <데이지>(1966), <천국의 열매>(1969) 등 초기작만이 아니라, 국내에 전혀 소개되지 않았던 중후기작을 포함한 14편의 작품을 상영합니다.
대학 시절 잠시 철학과 건축을 공부했던 베라 히틸로바는 체코예술대학(FAMU)을 졸업하고 이십 대 중반 이후 영화로 활동 영역을 옮겨 1960년대부터 여러 편의 단편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어두운 현실, 특히 빠른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전후 체코 사회의 숨은 그림자를 정면으로 포착하는 한편, 픽션과 논픽션을 교차시키거나 핍진성을 과감하게 파괴하는 영화 스타일을 통해 60년대 체코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인간이 처한 모순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로 그린 <데이지>, <천국의 열매>, 가부장제와 여성의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가 강렬한 몽타주 속에 터져나오는 <사랑 게임>(1976) 등을 발표하며 체코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때 기억해야 할 건 베라 히틸로바의 관심이 영화 언어의 파격적인 실험에만 그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베라 히틸로바의 전체 필모그래피에서 지속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테마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꿋꿋이 버티며 살아가는 주인공(특히 어떤 난관 앞에서도 웬만해선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는 여성 인물들에게서 이런 특징이 도드라집니다)의 모습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체코의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논픽션의 방법론으로 생생하게 포착한 <무언가 다른 것>(1963), <공동 주택 이야기>(1979), <재앙>(1981) 같은 작품을 통해 그가 보여준 또다른 면모를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점은 집요할 정도로 주류 질서와 정면으로 맞선 베라 히틸로바의 비판 정신입니다. <늑대 소굴>(1986), <올가미>(1998)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장르적 소재를 차용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던 베라 히틸로바는 부르주아의 위선 의식, 폭력적인 가부장제, 개인을 소외시키는 자본주의 체제 등을 누구보다 강도 높게 비판하였습니다. 이때 감독이 즐겨 채택한 방식은 시니컬한 냉소와 날카로운 풍자로서, <위험한 장난>(1988), <유산 혹은 미친놈의 인사>(1992) 등에서 베라 히틸로바가 지배 계급의 부조리를 얼마나 혐오했는지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체코뿐
아니라 세계 영화사에서 중요한 페이지를 차지하지만 그동안 제대로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던 베라 히틸로바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주한체코문화원의 미하엘라 리 원장과 김숙현 프로그래머가 진행하는 시네토크도 준비하였으니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시네토크
일시 11월 14일(토)
오후 4시 <천국의 열매> 상영 후진행 미하엘라 리 주한체코문화원 원장
일시 11월 15일(일)
오후 4시 <데이지> 상영 후진행 김숙현 프로그래머
Dec. 11, 2020 ~ March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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